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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사건

하극상사건

[ 下剋上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60년

을 계기로 군내의 부패한 고위장성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하급장교들의 정군(整軍)운동.

1960년 5월 8일 김종필·김형욱·길재호·오치성 등 육사 8기생 중령 8명이 처음으로 정군모의를 시작했다. 이때 소장파 장교들이 잠정적 행동방침으로 채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를 방조한 군 고위책임자에 대한 책임추궁
△부정축재 장성들 처단
△무능·파렴치한 지휘관급 제거
△파벌조성의 모든 요인 제거 및 군의 정치적 중립 보장
△대우개선.

이들의 모의는 사전에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국가반란 음모죄>로 체포되었으나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이 사퇴함으로써 석방되었다. 이후 해병 제1상륙사단장 김동하 준장이 그의 상관인 해병대사령관 김대식 중장의 해임을 건의하는 등 정군운동은 해병대·공군·해군 등으로 번져나갔고, 이러한 지지에 고무된 5월 정군 운동의 주동자 8명을 포함한 11명의 중령은 9월 10일 현석호 국방장관에게 전군을 통한 즉각적인 <정군>을 단행할 것을 공식 청원한 데 이어 24일에는 육사 7·9·10기의 16인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최영희 연합참모총장에게 정군과 사퇴를 강력히 요구했다.

당초 숙정을 약속했던 민주당 정권은 군부 최고위자에 대한 이러한 공개도전이 군의 지휘체계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는 미국 측의 경고에 따라 이들 16인의 장교를 전원 체포,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이때 홀로 징역 3개월 형을 받은 김동복(金東馥) 대령이 사건 주모자를 밝힘으로써 이듬해 2월 12일 김종필·김형욱·석정선(石正善) 세 중령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지 않는 조건으로 <자원 예편>함으로써 하극상사건은 일단 종결되었으나 이들 정군운동의 주동자들은 이후 5·16군사쿠데타의 주체세력이 되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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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조경제
7. 이승만 독재체제의 구축
8. 4월혁명과 제2공화국
하극상사건 지금 읽는 중
9. 민중운동의 고양
10.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1. 5·16과 군사독재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