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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4·19혁명

[ 四一九 ]

시대명 현대
연도 1960년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대규모 반독재투쟁. 이날의 유혈사태를 일컬어 <피의 화요일>이라고도 한다.

전날의 에 자극받은 서울시내 대학생들은 여러날 전부터 계획한 시위를 앞당겨 이날 오전 각 대학별로 총궐기선언문을 낭독하고 중앙청을 향해 시가행진에 돌입했다. 곧이어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대에 합세, 오후 1시경에는 서울시내 전역의 시위군중은 1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한편 경찰은 과 면담하겠다는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효자동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차별 발포를 감행, 많은 사상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흥분한 시위군중은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서울신문사와 반공청년단 본부·자유당 본부 등을 습격, 불태우거나 파괴한 데 이어 서대문의 집도 습격했다. 이곳에서는 정치깡패들이 몽둥이로 학생들을 살상하기까지 했다.

이날의 구호는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등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수호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서울시내가 완전히 무정부상태에 빠지자 당황한 정부는 오후 3시를 기해 서울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한 데 이어 유혈 사태가 벌어진 부산·대구·광주·대전에도 계엄령을 선포했다. 밤늦게까지 산발적으로 계속되던 시위는 송요찬 계엄사령관을 필두로 계엄군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일단 가라앉았으나, 하루 동안의 시위로 서울에서만 1백여 명, 부산에서 19명, 광주에서 8명 등 전국적으로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라는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이 4·19혁명은 4·25 로 이루어졌다.

동의어

피의 화요일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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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조경제
7. 이승만 독재체제의 구축
8. 4월혁명과 제2공화국
4·19혁명 지금 읽는 중
9. 민중운동의 고양
10.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1. 5·16과 군사독재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