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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21년, 신사년(辛巳年), 1821년

조선 순조 21년, 신사년(辛巳年), 1821년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20년 회계장부를 올림.

1월 19일

• 임금이 경모궁(景慕宮)에 전배(展拜)함.

2월 1일

• 일식이 있음.

• 홍희신(洪羲臣)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일

• 임금이 영희전(永禧殿)과 저경궁(儲慶宮)에서 전배(展拜)함.

2월 19일

• 임금이 화성(華城)의 행궁에 머묾.

2월 20일

• 임금이 건릉(健陵)과 현륭원(顯隆園)에 전알(展謁)하고 제사지냄.

2월 21일

• 임금이 환궁하면서 남관왕묘(南關王廟)에 들름.

2월 27일

• 정만석(鄭晩錫)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9일

• 왕대비 효의왕후(孝懿王后) 김씨(金氏)가 승하함. 창경궁의 환경전(歡慶殿)을 빈전(殯殿)으로 함.

3월 10일

• 한성과 지방에서 행하던 습조(習操)와 도시(都試) 등을 모두 정지하도록 함.

3월 14일

• 왕대비의 혼전(魂殿)을 통화전(通和殿)으로 함.

3월 17일

• 왕대비의 시호를 효의(孝懿), 전호(殿號)를 효희(孝禧), 능호(陵號)를 정릉(靜陵)으로 함.

7월 4일

• 한 달 동안 비가 계속 내리자 임금이 기청제(祈晴祭)를 하루빨리 시행하라고 함.

7월 5일

• 도성의 사대문에서 영제(禜祭)를 지냄. 9일에도 지냄.

7월 15일

• 한성과 지방의 적체된 살옥문안(殺獄文案) 처리를 위해 당상관을 파견함.

7월 27일

• 양주의 회암사(檜巖寺) 부도와 비석을 파괴하고 아버지를 묻은 광주(廣州) 유학(幼學) 이응준(李膺峻)을 치죄함.

8월 12일

• 계속된 장마로 한성의 민가 1,079호가 무너져 떠내려가고, 북한산성에서 16명이 압사하고, 한강변에서 16명이 사망함.

8월 22일

• 괴질이 계속되자 양재제(禳災祭)를 지냄.

8월 25일

• 도성의 백성들이 사산(四山)의 소나무를 베어 감.

9월 1일

• 한성부 낭청에게 길가의 시체를 모두 적발하여 진휼하도록 함.

9월 3일

• 청의 사신이 오니 모화관(慕華館)에서 맞이함. 사신이 혼전(魂殿)에 제사를 올리고 난 후 명정전(明政殿)에서 접견함.

• 화령옹주(和寧翁主)가 죽음.

9월 10일

• 임금이 대행왕대비의 영가(靈駕)를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밖에서 하직함. 영가는 시흥행궁에 머묾.

9월 13일

• 대행왕대비(정조의 비인 효의왕후)를 건릉(健陵, 정조의 능)에 합장함.

10월 12일

• 이조원(李肇源)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4일

• 《선원보략(璿源譜略)》의 증수가 완성됨.

11월 8일

• 춘당대(春塘臺)에서 문 · 무과 정시를 시행하여 문과 5명, 무과 112명을 뽑음.

11월 10일

• 성균관에서 구일제(九日製)를 행함.

11월 12일

• 인정전에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을 시험하여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에서 수석한 자를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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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辛酉年), 18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