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6년, 기사년(己巳年), 1869년
1월 2일
• 임금이 근정전에서 사직에서 지낼 제사에 필요한 서계(誓戒)를 올림.
• 왕족이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하던 것을 자유롭게 응시할 수 있도록 함.
1월 8일
• 사직단에서 기곡대제(祈穀大祭)를 지냄.
1월 12일
• 엄석정(嚴錫鼎)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15일
• 한성의 각사와 각영에서 1868년 회계장부를 올림.
1월 19일
•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할 때 동철(銅鐵)을 무역한다고 사칭하여 3만 냥을 소비한 김재구(金在九)를 효수함.
2월 10일
• 이유응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1일
• 김응균(金應均)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5일
• 이경하(李景夏)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8일
• 《대전회통(大典會通)》을 보수하도록 함.
3월 11일
• 흥인문의 문루가 낮아 8척을 돋우고 상량을 올림.
3월 16일
• 흥인문의 개수가 완공됨.
4월 23일
• 박규수(朴珪壽)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2일
• 남상길(南相吉)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6일
• 이주철(李周喆)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6월 11일
• 문묘의 개수가 시작됨.
7월 1일
• 임금이 근정전에서 종묘와 영녕전 추향(秋享)에 쓸 향과 축문을 내림.
7월 7일
• 성균관에서 칠석제(七夕製)를 시행하여 수석을 차지한 자에게 직부전시(直赴殿試) 하도록 함.
이달
• 성균관 비천당(丕闡堂) 개수공사에서 상량이 이루어짐.
8월 5일
• 유치선(兪致善)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4일
• 시전(市廛)의 화재로 종각이 소실됨.
9월 13일
• 성균관의 문묘 공사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비천당에서 응제시(應製試)를 행함.
9월 29일
• 의정부에서 10조목의 대학별단서(大學別單書)를 올림.
10월 8일
• 송정화(宋廷和)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21일
• 수어청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물품이 소실됨.
12월 29일
• 한성부에서 전국의 호구 수를 올림. 한성부 인구 20만 6,967명, 4만 5,8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