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광무 6년, 임인년(壬寅年), 1902년
2월 8일
• 임금이 재위 40년을 맞이하여 중화전(中和殿)에서 하례를 받고 반사(頒赦)함.
2월 25일
• 영국판리공사(英國辦理公使), 한국정부에 마포 근처에서의 도적 단속을 요청함.
이달
• 김덕창(金德昌)이 중곡동에 염직공장(染織工場)을 설립함.
4월 16일
• 정부, 일본 제일은행으로부터 일화(日貨) 15만 원을 차입하는 계약을 일본 제일은행 한성출장소와 체결함.
4월 28일
• 이태리영사 프란체세띠, 주차대한한성통리각국통상사무영사관(駐箚大韓漢城統理各國通商事務領事官)에 임명되었음을 한국정부에 통고함.
5월 4일
• 임금이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가 입사(入社)의 예를 거행함.
5월 6일
• 프랑스 해군소장 베일르(Rear Ad.Bayle)가 서울에 옴.
5월 12일
• 독일영사관, 회동(會洞)의 신축 건물로 옮김.
5월 20일
• 일본공사(日本公使), 각국 사절의 명의로 경인간(京仁間)에 신작로를 개설할 것을 요청함.
5월 24일
• 정부, 정동(貞洞)의 미국 · 러시아 · 영국 · 프랑스 공사관 지구로부터 궁궐 남쪽 담장에 붙어 있는 가구상가(家具商街)로 통하는 도로를 폐쇄한다고 발표함. 이에 한성 주재 각국 공사와 영사들로부터 맹렬한 반대가 일어남.
6월 19일
• 미국공사(美國公使), 정동(貞洞)의 전 독일영사관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평남병영(平南兵營) 군사가 그 부근 미국성서회(美國聖書會)의 철책을 파손하고 돌을 던지는 등의 사건을 발생시킨 것에 대해 조처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구함.
7월 4일
• 외부대신임시서리(外部大臣臨時署理) 유기환(兪箕煥), 한국 병졸들이 미국성서회(美國聖書會)의 철책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성서회측에서 그들을 구타한 사건과 관련하여 미국공관에 항의함.
7월 7일
• 미국공사(美國公使), 한국 병졸들이 미국성서회(美國聖書會)의 철책을 파손한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과 미국이 반씩 부담하여 새로 담장을 쌓을 것을 한국정부에 제의함.
7월 15일
• <한국 · 덴마크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
7월 19일
• 정부, 한국 병졸들이 미국성서회(美國聖書會)의 철책을 파손한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과 미국이 합동으로 조사할 것을 미국공사에 요청함.
7월 28일
• 한성부판윤 이한영(李漢英)을 군부협판(軍部協辦)에 임명하고, 그 자리에 엄주익(嚴柱益)을 임명함.
8월 1일
• 겸임 한성재판소 수반판사(首班判事) 이한영(李漢英)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엄주익(嚴柱益)을 임명함.
9월 6일
• 임금이 등극 40년 칭경예식(稱慶禮式) 때 군부(軍部)와 경무청(警務廳) 관리는 삭발하고, 시원임육군부장(時原任陸軍副將) 이하 관리도 단발하도록 함.
9월 12일
• 한성부판윤 엄주익(嚴柱益)을 해임함.
9월 13일
• 한성부판윤에 권종석(權鍾奭)을 임명함.
9월 16일
• 한성부판윤 권종석(權鍾奭)을 관리서(管理署) 관리에 임명함.
9월 17일
• 한성부판윤에 장화식(張華植)을 임명함.
9월 18일
• 미국 · 청나라 · 프랑스 · 영국 · 러시아 · 벨기에 · 독일 등의 공 · 영사(公領事) 공동 명의로 한성의 감옥들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므로 감옥들을 개선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청함.
이달
• 서울 미곡상들이 납세를 거부하며 철시함.
10월 7일
• 일본공사(日本公使), 한성부판윤이 자주 바뀌는 것에 대한 시정을 한국정부에 요청함.
10월 17일
• 이태리영사 꼬싸또(Carlo de Cossato, 葛魯智), 주차한성영사관 프란체세띠의 사망으로 그 후임에 본인이 임명되었음을 한국정부에 통고함.
10월 19일
• 임금이 준공된 경운궁의 중화전(中和殿)에서 하례를 받고 반사(頒赦)함.
10월 20일
• 이태리영사 꼬싸또, 모나꼬(Attilco Monaco, 毛樂高)가 주차한성판리공사대신겸총영사관(駐箚漢城辦理公使大臣兼總領事官)으로 임명되어 11월에 한국에 올 것임을 한국정부에 통고함.
10월 23일
• 임금이 한성부 서서(西署) 반송방(盤松坊)의 전 기보중영(畿輔中營) 뒷쪽에 숭의묘(崇義廟)를 속히 건설하도록 함.
11월 6일
• 이태리영사 까를로 로제띠(Carlo Rossetti, 魯士德), 주차한성영사관(駐箚漢城領事官) 꼬싸또가 해임되고, 본인이 오늘부터 그 후임으로 근무함을 한국정부에 통고함.
11월 29일
• 윤용선(尹容善) 등 각 대신이 이용익(李容翊)을 성토, 연명으로 상소하고 대안문(大安門) 밖에 석고대명(席藁待命)함.
12월 8일
• 경성일본상업회의소, 백동화(白銅貨)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하여 백동화 주조의 중지와 유통 중인 백동화의 환수를 한국정부에 요구함.
12월 29일
• 청국출사대신(淸國出使大臣) 허태신(許台身), 한성총영사(漢城總領事) 부양필(傅良弼)의 임기 만료로 신임 총영사가 취임할 때까지 공사관 번역관 오기조(吳其藻)가 업무 대행할 것임을 한국정부에 통고함.
이해
• 원구단 황궁우(皇穹宇) 동쪽에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석고단(石鼓壇)을 설립함.
• 이용익(李容翊), 사기(沙器) 수출을 목적으로 러시아인 기사를 초빙하여 북장동(北壯洞) 마대영(馬隊營)에 사기제조소(沙器製造所)를 설립함.
• 정동(貞洞)에 손탁호텔을 건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