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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11년, 을묘년(乙卯年), 1735년

조선 영조 11년, 을묘년(乙卯年), 1735년

1월 1일

• 임금이 유시(諭示)를 내려 팔도와 양도(兩都)에 농사를 권장함.

1월 7일

• 장릉(長陵)의 수도(水道)를 막는 역사가 오래 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경기감사에게 차사원(差使員)을 정해 책임지고 역사를 완성하도록 함.

1월 30일

• 관상감(觀象監) 관원 안중태(安重泰)를 연경에 보내 《일전표(日躔表)》 《월리표(月離表)》 《칠요역법(七曜曆法)》등의 책을 사오게 하고, 영조 12년부터 역서(曆書)를 만들게 하여 이 역법(曆法)을 쓰도록 함.

2월 21일

• 임금이 융복(戎服) 차림으로 말을 타고 노량교장(露梁敎場)에 거둥하여 하루 종일 무사들을 사열함.

2월 28일

• 김재로(金在魯)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7일

• 임금이 대보단(大報壇)에 나아가 제사를 행함.

3월 12일

• 정형익(鄭亨益)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3월 18일

• 이만선(李萬選)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4월 18일

• 원자(元子)의 수두(水痘)가 회복되었으므로 임금이 명정전에서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사유(赦宥)를 반포함.

4월 20일

• 증광감시(增廣監試)의 복시(覆試)를 설행하여 생원과 진사 100명을 뽑음.

4월 22일

• 교정청(校正廳)에서 《선원보략(璿源譜略)》과 《열성팔고조도(列聖八高祖圖)》 《국조어첩(國朝御牒)》을 바침.

윤4월 13일

• 증광전시(增廣殿試) 문과 42명, 무과 151명을 뽑음.

윤4월 15일

• 이성효(李性孝)가 마계(馬契)에서 돈을 징수하는 것은 한강 주변에 사는 백성들에게 지나친 고역(苦役)이 된다 하여 그 시정을 건의함.

5월 1일

• 충주 · 청주 · 나주 · 원주가 반역의 변란(이인좌의 난)으로 그 호(號)를 강등했으므로 충청도를 공홍도(公洪道)로, 전라도를 전광도(全光道)로, 강원도를 강춘도(江春道)로 이름을 고침.

5월 20일

• 영조 4년(1728)의 역란(逆亂) 이후 도성 문을 닫고 순라군을 발송하는 것을 모두 황혼으로 시점(時點)을 삼았는데, 병조판서 조상경(趙尙絅)이 다시 야종(夜鐘)의 시각으로 한정하자고 청함.

5월 28일

• 송인명(宋寅明)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5월 29일

• 팔도에 모두 호환(虎患)이 있었는데, 영동지방이 가장 심하여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40여 명에 이름.

6월 17일

• 날씨가 무더우므로 승지를 보내 죄가 가벼운 죄수들을 석방함.

7월 9일

• 임금이 태묘(太廟)의 추향대제(秋享大祭)를 행함.

7월 24일

• 감시(監試)의 복시(覆試)를 행하여 생원과 진사 각 100명씩을 뽑음.

8월 8일

• 임금이 관학(館學)에서 강하는 유생들을 시험하여 진사 이홍직(李弘稷) 등 3명에게 전시(殿試)에 나가도록 함.

8월 29일

• 식년전시(式年殿試)에서 문과 37명, 무과 55명을 뽑음.

9월 10일

• 임금이 경덕궁(慶德宮)에 나아가 세조의 영정(影幀)을 봉심(奉審)함.

9월 17일

• 임금이 경덕궁에 거둥하여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세조의 신 · 구영정(新舊影幀)을 받들고 영희전(永禧殿)으로 돌아옴.

10월 10일

• 정시(庭試)를 행하여 7명을 뽑음.

10월 19일

• 정형익(鄭亨益)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1월 12일

• 청의 사신이 와서 모화관에서 맞이하였는데, 청의 건륭제(乾隆帝)가 등극한 조서를 반포함.

11월 16일

• 사학(四學)의 유생 7명이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재임(齋任) · 재생(齋生)과 조관(朝官) 2명의 이름을 써서 신문(神門)에 붙이고 벌을 주니, 수재생(守齋生)들이 권당(捲堂)함.

11월 17일

• 청의 사신이 돌아가니 모화관에서 전송함.

11월 27일

• 호랑이가 북부(北部) 삼천동(三川洞) 굴속에서 살았는데, 떼 지어 다니며 개와 돼지를 물어감.

12월 1일

• 관에서 물건을 수송할 때 한성부민의 말을 빌리는데 폐가 많으므로 1736년부터 1년에 운송하는 바리를 1만 필로 정하고, 봄 · 가을로 나누어 쌀을 지급하되 양서(兩西) 지방에서 공물(貢物)을 운송하는 예대로 하게 함.

12월 3일

• 김취로(金取魯)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2월 12일

• 임금이 삼복(三覆)을 행하여, 사형수 가운데 사형으로 단죄한 자가 5명임.

12월 13일

• 이성룡(李聖龍)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2월 27일

• 임금이 사형수 가운데 16명의 사형을 감함.

12월 30일

• 1735년 경중(京中)은 오부(五部)의 원호(元戶)가 3만 3,836호, 인구가 18만 7,756명(남자 9만 1,219명, 여자 9만 6,537명)이며, 팔도는 원호가 158만 4,336호, 인구는 679만 2,042명(남자 338만 123명, 여자 341만 1,919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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