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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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왕후 김씨
神穆王后 金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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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후 | |
재위 | 692년~702년 |
전임 | 폐비 김씨(廢妃 金氏) |
후임 | 미상 |
왕후(王后) 왕비(王妃) | |
이름 | |
휘 | 미상 |
이칭 | 미상 |
별호 | 미상 |
묘호 | 미상 |
시호 | 신목(神穆) |
신상정보 | |
출생일 | 655년 이전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700년 6월 1일 |
사망지 | 미상 |
국적 | 신라(新羅) |
왕조 | 신라(新羅) |
가문 | 경주(慶州) |
부친 | 김흠운(金歆運) |
모친 | 요석공주(瑤石公主) |
배우자 | 신문왕(神文王) |
자녀 | 효소왕(孝昭王) 성덕왕(聖德王) 김근질(金根質) 김사종(金詞宗) |
기타 친인척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영창부인(永昌夫人) |
종교 | 미상 |
능묘 | 미상 |
신목왕후 김씨(神穆王后 金氏, 655년 이전 ~ 700년 6월 1일)는 신라 신문왕의 왕비이며, 효소왕과 성덕왕의 모후이다. 선비 폐비 김씨와 사촌간이다.
생애
[편집]출생
[편집]김흠운과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김달복이다. 아버지 김흠운이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므로 적어도 655년 이전에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왕비책봉
[편집]681년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숙청되면서, 당시 왕비였던 김흠돌의 딸 김씨가 폐위되자, 683년 계비로 책봉되었다. 687년 효소왕을 낳았다.
사망
[편집]황복사금동사리함명
[편집]그녀의 사망과 관련하여 국내의 역사서에는 기록이 전무하지만 1943년 황복사 삼층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에서 706년 5월, 성덕왕이 아버지 신문왕, 어머니 신목태후, 형인 효소대왕을 추앙하며 발원하였으며 사리함의 명문 내용 중 신목왕후가 700년 6월 1일에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1]
속일본기의 기록
[편집]《속일본기》 몬무천황 4년(700년) 임오조(壬午條) 11월에 신라에서 살찬 김소모(金所毛)를 파견하여 신라 국왕의 어머니의 죽음을 전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가계
[편집]아버지는 내물왕의 8대손인 김흠운이며, 어머니는 태종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이다. 이두와 화왕계로 유명한 신라 신문왕대의 학자인 설총은 그녀의 어머니 요석공주가 원효대사와 재혼하여 낳은 아들로, 그녀의 이부동생이다.
각주
[편집]- ↑ “황복사금동사리함명(皇福寺 金銅舍利函銘)”.
- ↑ 혹은 金欽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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