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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노동운동

[ 勞動運動 ]

시대명 근대/일제강점기

노동자의 생활조건·사회적 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한 사회운동. 자본 유입에 따른 식민지 산업의 일정한 발달로 노동자 수는 증가했으나, 노동조건은 날로 악화되는 가운데 극심한 민족간의 차별대우는 노동자들을 자각시켜, 노동쟁의가 급증했다. 특히 1920년대 후반기에는 노동자들의 질적·양적 성장과 조직운동의 발전에 힘입어 쟁의 건수·참가자수가 급증, 20년부터 30년 사이에 총 891건, 73,450명이 쟁의에 참가했다.

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 각지의 공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생기고 이들이 지역별 노조연합체, 전국적 조직으로 발전되기 시작, 25년의 평양·서울·부산 등지의 인쇄공 파업, 26년의 목포 제유공 파업, 27년의 영흥 총파업, 29년의 등이 잇따라 일어났다. 노동쟁의의 요구 역시 임금인상이나 인하반대로부터 8시간 노동제·단체교섭권 확립 등 전반적인 노동조건 개선요구로 바뀌어갔고, 파업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지역의 소작쟁의 등 과 함께 전개되기도 했다. 노동운동은 30년대에 들어와 일제의 파쇼적 억압에 저항하면서 더욱 치열해져서 종래의 공개적인 합법활동으로부터 비합법활동으로 전환, 혁명적 적색노동조합으로 재조직되었다. 이는 일제의 탄압과 , , 비서부의 등이 미친 영향 때문이었다.

30년대 노동쟁의는 일제의 정책에 따라 중화학공업이 북부지역에 집중 건설되면서 평안도·함경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임금인하 반대 요구가 특히 많았다. 30년대 전반기에 매년 150~200건, 참가자 12,000~18,000명의 쟁의가 발생하는 등 활발한 양상을 보였으나, 30년대 말 일제가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전시통제하에서도 저항은 끊이지 않았으며, 43년 흥남질소화학공장 폭파사건, 44년 청진 일철(日鐵)제철소 파업, 성진 고주파공장 파업 등이 계속 발생했다.

20~30년대초에 걸친 노동쟁의

20~30년대초에 걸친 노동쟁의
연 도 노동쟁의
건수 참가인원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1931
1932

  36
  46
  72
  45
  55
  81
  94
119
102
160
205
152

  3,405
  1,799
  6,041
  6,751
  5,700
  5,984
10,523
  7,759
  8,293
18,972
17,114
1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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