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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 독서삼품과를 실시하다

원성왕, 독서삼품과를 실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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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이 독서삼품과를 실시한다는 소식입니다. 신라는 그동안 높은 관직에 오르는 데 신분의 제약이 컸는데요.

이러한 제약을 시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니 많은 이들이 환영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역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 선덕왕이 죽자,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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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38대 원성왕은 왕이 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어요.

그동안 신라는 제29대 무열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제36대 혜공왕을 끝으로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답니다.

혜공왕 말기에는 유난히 반란이 많이 일어났는데, 혜공왕도 반란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2. 김경신, 김양상이 선덕왕이 되도록 돕다

혜공왕 때의 반란을 진압한 사람이 바로 김양상인데요. 그는 훗날 제37대 선덕왕이 되지요.

이때 김양상을 도와준 사람이 김경신입니다.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한 후 김경신은 상대등이 되었어요.

그런데 선덕왕도 아들이 없이 죽고 말아요. 또다시 왕의 자리를 두고 여러 사람들이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누구나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말이에요.

3. 선덕왕의 조카 김주원이 후계자로 지목되다

선덕왕이 죽자 신하들은 회의에서 선덕왕의 조카인 김주원에게 왕위를 잇게 하기로 결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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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은 궁궐로 갈 채비를 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는 거예요. 거센 비에 금세 강물이 불어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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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널 수 없으니 꼼짝없이 발이 묶인 셈이었어요. 하루빨리 가서 왕위를 받아야 하는데 김주원도 애가 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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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경신, 김주원에 반대하는 분위기를 만들다

김경신은 김주원이 갑작스레 내린 비에 궁궐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것이 나에게 기회일지 모른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시켜 소문을 내기 시작했어요. 소문은 사람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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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주원 대신 김경신(원성왕)이 왕이 되다

김경신은 얼른 궁궐로 들어갔어요. 신하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의논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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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경신은 왕이 되었어요. 바로 원성왕이었지요.

6. 강릉에 내려가 마을을 다스린 김주원

홍수로 인해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남자 김주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 후 김주원은 반란을 일으키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어머니의 외가였던 강릉으로 가요.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명주군왕이라는 칭호를 내려 주고 강릉을 다스리게 하지요. 그렇게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됩니다.

7. 왕위의 정당성에 불안함을 느낀 원성왕

원성왕은 자신의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올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자신이 내물왕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했지요.

내물왕은 신라의 제17대 왕으로 성이 원성왕과 같은 김씨랍니다.

하지만 이 점은 많은 귀족들에게 나도 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게 했어요. 뿌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자기들도 다 어느 왕의 후손이니까 말이에요.

어쩌면 그 점도 원성왕을 불안하게 했을 거예요.

8. 자연재해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독 원성왕 대에 자연재해가 잦았어요. 우박과 가뭄이 심했고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당연히 농사도 잘 되지 않았지요. 백성들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워서 귀족들 간의 힘겨루기로 상대등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바뀌는 일도 허다했어요.

자연재해가 계속되어 백성들의 삶은 힘들고, 자신을 지지해 주어야 하는 신하들이 자꾸 바뀌는 모습을 보고 원성왕도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9. 능력에 따라 관리를 뽑는 독서삼품과 실시

시련을 극복한 원성왕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제도를 실시했어요. 이것이 바로 ‘독서삼품과’랍니다.

독서삼품과는 새로 실시된 신라의 관리 선발 제도예요.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의 학생들을 독서 능력에 따라 상품 · 중품 · 하품 등 3품으로 구분하고, 이를 관리 임용에 참고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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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독서삼품과에서 성적을 구분하는 기준

그럼 독서삼품과에서 상중하를 구분하는 기준을 알려 드릴게요.

『좌전』, 『문선』, 『논어』, 『효경』, 『예기』 등 여러 유학 경전에 능한 자를 상등, 『곡례』, 『논어』, 『효경』을 읽은 자를 중등, 『곡례』, 『효경』만 읽은 자를 하등이라고 했어요.

이처럼 원성왕은 유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어요. 유교 경전 실력으로 관직의 위치를 정해 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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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독서삼품과 실시가 가져온 변화

신라는 골품제 사회로 아버지가 높은 골품이면 자식은 실력과 상관없이 높은 관직에 올랐어요.

관리를 뽑는 기준은 골품과 활쏘기 정도였지요. 유교를 가르치는 국학과 연결된 새로운 관리 선발 방식이라는 점에서 독서삼품과는 의의가 있어요.

국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관리가 될 수 있다니, 특히 신분이 낮은 귀족의 자제들은 열심히 공부했겠지요?

자연스레 좋은 관리를 뽑을 수 있게 되니 효과적인 제도였어요. 이것은 후에 고려 시대의 ‘과거제’로 이어진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신라는 유학 수준이 높아져 뛰어난 유학자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