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밭
근본적 질문
결국 죽는데, 태어나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들
1.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2021년
10월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13쪽
내 안에 축적된 오류와 거짓에서 벗어날 것.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을 인지하고, 이들을 확보할 것.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의 수가 많아지면, 이들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줄어든다.
정확성에 통달할 것. 나 자신이 정확성의 도구가 될 것.
14쪽
모델과 나 사이에는 텔레파시적인 교감, 직감이 있다. (없다면 모델로 삼지 마라.)
19쪽
한 색채가 다른 색채들과 만나면서 스스로 변형되는 것처럼, 한 영상은 다른 영상들[이어지는 숏들]과 만나면서 변형되어야 한다. 파랑은 초록이나 노랑이나 빨강 옆에 놓이면 이전과 같은 파랑이 아니다. 변형 없은 예술은 없다.
시네마토그라프의 영화에서 영상들은, 사전 속의 단어들이 그런 것처럼, 어디에 놓이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의해서만 힘과 가치를 가질 수 있다.
23쪽
창조한다는 것은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왜곡하거나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이나 사물들 사이에서, 그들이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새로운 관계들을 맺게 하는 것이다.
24쪽
너는 네가 세운 규칙들로 네 모델들을 인도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너에게 그들 자신을 맡기고, 너는 이들에게 너 자신을 맡긴 채로.
바이올린 하나로 충분하면, 두 개를 쓰지 마라.
26쪽
좋은 영상들을 모아놓으면 혐오스러울 수 있다.
28쪽
네 모델들이 기이함과 수수께끼를 갖고 있다는 증거를 그들에게서 끌어내라.
29쪽
영상[숏] 하나의 절대적 가치는 없다.
네가 적절한 데 사용할 경우에만, 영상과 소리의
가치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움직임의 9/10는 습관과 자동성을 따른다. 움직임을 의지와 사유에 종속시키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30쪽
모든 것이 다 제시되지 않을 때, 단어 하나, 시선 하나, 동작 하나가 이면을 갖는다.
32쪽
너무 뻔한 영상(클리셰)는 아무리 적절해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33쪽
많은 양의 대사가 영화에 해롭지는 않다. 어떤 종류의 대사인가가 문제지 양이 문제는 아니다.
34쪽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서로 가장 다른 네 영상들을 무심하게 이어주는 것은 네 통찰이다.
시를 만들어내려고 쫓아다니지 마라. 시는 접합된 부분들(생략들)로 자기 스스로 침투한다.
37쪽
정확하게 작용하는 탁월한 우연들* 나쁜 우연을 멀리 하고 좋은 우연을 끌어들이는 방법. 좋은 우연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네 구성에 미리 마련해 둘 것.
*”이전에 아무 생각 없이 구석에 방치해 놓은 꽃들을 나는 종종 그립니다.”(앙리 마티스에게 보내는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편지. <회상록>에서 인용.)
38쪽
단지 인상이나 느낌만 주는 데 만족할 것. 그와 무관한 지성의 개입 없이.
39쪽
이념들을 숨기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방식으로 숨길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깊이 숨긴 것이다.
66쪽
궁극적으로 가장 생기 넘치는 것은 가장 밋밋하고 가장 흐릿한 부분들이다.
두 가지 단순성이 있다. 나쁜 단순성은 출발선상에서의 단순성으로서, 너무 일찍 찾은 것이다. 좋은 단순성은 도달했을 때의 단순성으로서, 수년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다.
코로의 말: “애써 찾으려고 하지 마라. 기다려야 한다.”
68쪽
유사성, 차이
더 많은 차이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유사성을 부여하라. 군복과 획일적인 생활 덕분에 군인들 각각의 본성과 특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차려 자세를 하고 모두 부동 자세로 서 있으면, 각자의 독특한 특징들이 나타난다.
70쪽
관계의 적절함이 [영화가] 저속한 채색화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관계가 새로우면 새로울수록, 미적 효과는 더욱 생생해진다.
참된 것은 네가 기용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나 실제 사물들 속에 있지 않다. 네가 이들의 영상을 일정한 순서로 배치하면, 진실의 분위기를 갖게 된다. 거꾸로, 네가 이들의 영상을 일정한 순서로 배치할 때 갖게 되는 진실의 분위기는, 이 사람과 사물들에게 현실성을 부여한다.
71쪽
네가 없었으면 아마도 절대로 보이지 않았을 것을 보이게 할 것.
72쪽
네가 무엇을 하는지 네가 알지 못하면, 그리고 네가 하는 일이 가장 탁월하다면, 너는 영감을 받은 것이다.
74쪽
경제성
동일한 소음들과 동일한 반향을 반복해서 우리가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것.
모델. 그들이 네 영화의 인물이 되는 방식은 그들 자신이 되는 것이고 자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비록 네가 상상했던 것과 다르다고 해도.)
75쪽
네 천재성은 (배우, 배경 등) 자연의 위조에 있지 않고, 기계를 통해 자연에서 직접 취한 조각들을 선택하고 정렬하는 너만의 방식에 있다.
76쪽
미화하지도, 추화하지도 마라. 왜곡하지 마라.
예술이 강한 충격을 주는 것은 자기의 순수한 형식 속에서다.
77쪽
감동적인 영상들로 감동을 주지 말고, (이 영상들에 생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감동적으로 만드는) 영상들의 관계로 감동을 줄 것.
78쪽
네 영화가 무엇을 나타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넘어서, 네 영화를 움직이는 선과 볼륨의 조합으로 바라보라.
79쪽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것들을 없앨 것.
극도의 복잡성. 네 영화들은 시도이고 모색이다.
80쪽
아름다운 사진,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라 필요한 영상, 필요한 사진.
관객을 존재와 사물에 대면하게 할 것. 굳어진 관습(클리셰)에 따라 관객에게 자의적으로 자리를 부여하지 말고, 예측할 수 없는 네 인상과 느낌에 따라 네가 너 자신에게 자리를 부여하는 것처럼 할 것. 그 어떤 것도 사전에 결정하지 말 것.
81쪽
우리가 재현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파편화는 불가피하다.
존재와 사물들을 분리시킬 수 있는 부분들로 볼 것. 이 부분들을 고립시킬 것. 이들에게 새로운 의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부분들을 독립적으로 만들 것.
*”어떤 도시나 어떤 시골은, 멀리서 보면 도시이고 시골이지만, 가까이 가면 집, 나무, 기와, 나뭇잎, 풀, 개미, 개미의 다리... 하는 식으로 끝없이 달라진다.” (파스칼)
82쪽
실재는 극적이지 않다. 드라마는 극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일정하게 진행하면서 생겨나게 될 것이다.
84쪽
우리는 덧붙이면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잘라내면서 창조한다. 발전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늘어놓지 말 것.)
물고기를 얻기 위해 연못을 비울 것.
85쪽
냉담한 논평[보이스오버]은 대조를 통해 어떤 영화의 미적지근한 대사를 다시 데울 수 있다. 회화에서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의 대조와 유사한 현상.
너무 무질서하거나 너무 질서정연한 것들은 균등해져서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무관심과 권태가 생겨난다.
86쪽
모델. 너는 모델들이 가진 힘의 한계를 정해놓지 말고, 이들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의 한계를 정해놓아야 한다.
단순성과 적절성에 자리를 내주는, 수단의 양, 광대한, 거짓됨. 모든 것은 너에게 충분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87쪽
예기치 않은 걸을 추동할 것. 예기치 않은 것을 기다릴 것.
시네마는 0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의심해야 한다.
외침 하나, 소음 하나. 그 소리의 반향으로 집, 숲, 초원, 산을 짐작할 수 있다. 소리가 부딪쳐 나오는 정도로 거리까지도 알수 있다.
너는 선명함과 정확도를 통해 눈과 귀가 부주의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88쪽
원인이 결과 뒤에 오도록 하라. 원인이 결과와 함께 나오거나 앞에 나오지 않게 하라.*
*일전에 나는 노트르담 성당의 정원을 걷다가 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의 눈은, 내게는 보이지 않는 내 뒤쪽의 뭔가를 보다가 갑자기 생생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이 남자와 동시에 젊은 여자와 아이—그는 이들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를 봤다면, 행복에 가득 찬 그 남자의 얼굴이 내게 그만큼의 충격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여기에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89쪽
조화로운 관계는, 영상과 소리의 연쇄와 충돌에서 생겨나야만 한다.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대를 만들어낼 것.
카메라와 녹음기가 섬광의 공간을, 네 모델이 너에게 뜻밖에도 새롭게 제공하는 것을 포착하도록 내버려두라. 포기해서는 안 될 선을 포기하지 않고 또 네가 어떤 것도 놓아버리지 않은 채로.
거장은 악보에 쓰여진 대로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음악을 들려준다. 배우-거장.
사물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지 말 것. 규정되지 않은 것의 여백.
촬영한다는 것은 만나러 가는 것이다. 네가 비밀스럽게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그 어떤 것도 만날 수 없다.
새로운 관계들 뿐만 아니라, 다시 연결하고 조립하는 새로운 방법[도 찾아야 한다].
91쪽
네가 느낀 인상이 흥미 있는 유일한 현실이다.
92쪽
네가 네 모델로 인해 깜짝 놀랄 여지가 생길 수 있도록 한계를 잘 설정할 것. 유한한 프레임 속에서 생겨나는 무한한 경이.
날 것 그대로의 실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참된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93쪽
관객에게 부분만을 제공하고서 관객이 그 전체를 추측하도록 길들일 것. 추측하게 할 것. 추측하고 싶은 욕구를 줄 것.
96쪽
네가 찾은 것이 네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유익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놀라고 흥분해서.
사물들이 바로 그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줄 것.
97쪽
가장 일상적인 단어도 제자리에 놓이면 갑자기 광채를 내기 시작한다. 네 영상들은 바로 이 광채로 빛나야 한다.
101쪽
낚싯대 끝에 뭐가 걸릴지 모르는 낚시꾼처럼, 네가 무엇을 포착할지 알지 못해야 한다. (아무 데서나 갑자기 튀어 오르는 물고기.)
관객이 이해하기에 앞서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얼마나 많은 영화가 관객에게 모두 다 보여주고 모두 다 설명해버리는가!
102쪽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노트북>에서) 끝에 대해 잘 생각하라고, 다른 무엇보다 끝에 대해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영화의 끝은 [직사각형의] 표면일 뿐인 스크린이다. 네 영화를 스크린의 현실에 따르게 하라.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화폭 자체와 여기에 칠한 색채의 현실에 따르게 하는 것처럼. 조각가가 자신의 형상을 대리석이나 청동의 현실에 따르게 하는 것처럼.
103쪽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따르면, 대상의 열 가지 속성은 다음과 같다. 명과 암, 색채와 물질, 형태와 위치, 원과 근, 움직임과 부동성.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치다 마주친 행인들은 용수철로 움직이는 대리석 형상 같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내 눈과 마주치자마자, 걸어다니고 응시하는 이 조각상들은 사람이 된다.
‘예술 영화’라는 공허한 이념. 가장 예술이 없는 예술 영화.
104쪽
내가 너무 단순하다고 거부한 것이 사실상 가장 중요하며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것들에 대한 어리석은 불신.
기존의 예술로는 개척할 수 없는, 기존의 예술에 금지된 영역에서 이루어낸 발전.
네 영화의 아름다움은 (우편엽서 같은) 영상 속이 아니라 영상이 끌어낸 형언할 수 없는 것에 놓여 있을 것이다.
105쪽
스스로 철의 원칙을 정련하는 이유는 이 원칙들에 어렵게 복종하거나 어렵게 불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106쪽
참된 것을 향한 네 열정에서 사람들은 단지 괴벽만을 볼 뿐이다.
나쁜 평판에 아랑곳하지 마라.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지나치게 좋은 평판을 두려워하라.
교만한 귀족들의 표적이 되었던 위대한 옛 예술가들의 단순함과 겸손함을 무한히 찬양하라.
107쪽
관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관객에게 네 의지, 네 기쁨을 부과하라.
늘 같은 노래만을 반복하기 때문에 종달새가 그렇게 찬양받는 것일까?
108쪽
새로움은 독창성도 현대성도 아니다.*
*루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려고 하지도, 다르게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프루스트는 도스토옙스키가 특히 구성에서 독창적이라고 말한다. 바다의 파도처럼 순류와 역류가 있으며 순전히 내적이면서 남다르게 복잡하고 밀도 있는 전체는, 또한 (완전히 다르지만) 프루스트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것이 한 편의 영화에도 통할 것이다.
109쪽
손, 머리, 어깨 등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 이때 불필요하고 걸리적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이 사라지게 되는지! 놀라운 경제성!
감정은 기계적 규칙성의 속박으로부터, 메커니즘으로부터 태어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몇몇 위대한 피아니스트에 대해생각할 것.
디누 리파티처럼, 거장은 아니지만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음들을 동등하게 친다. 같은 지속 시간을 유지하면서 같은 강도로 2분 음표를 치고 4분 음표, 8분 음표, 16분 음표 등도 마찬가지로 친다. 그는 감정을 건반의 터치와 접목시키지 않는다. 감정을 기다린다. 감정이 마침내 생겨나서 그의 손가락들, 피아노, 그 자신 그리고 콘서트홀 전체를 사로잡는다.
110쪽
감정에 대한 저항으로 얻어낸 감정의 생산.
한 학생이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던 자신을 찬양하자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적절한 순간에 음을 정확하게 치는 게 중요해.”
두 가지 종류의 참된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참된 것을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들이 보면, 무미건조하고 밋밋하고 지루해 보이는 참된 것이 하나, 다른 하나는...
111쪽
촬영이 혐오스럽게 느껴지고,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 지치고 무기력해진 최근의 끔찍한 나날들도, 내 작업 방식의 일부를이룬다.
정확한 목표 설정은 수많은 모색으로 이어진다. 드뷔시의 말: “다른 화음이 아니라 바로 이 화음으로 결정하기 위해 일주일을 보냈다.”
112쪽
기적을 거부하지 마라. 달과 해에게 명령하라. 천둥과 번개를 날뛰게 하라.
113쪽
특별히 관객을 위해 일하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다. 만드는 순간에 내가 하는 일은 단지 나에게만 시도할 수 있을 뿐이다. 남은 것은, 잘하는 것뿐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항상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네가 할 수 있는 한) 형식에 대해서는 정확할 것.
내가 (모델) F나 G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때문에 이들이 내게 그토록 흥미로운 존재가 된다.
네가 네 머릿속에서 이미 했고 또 열 번씩 더 한 것보다 직관이 네게 불어넣는 것을 더 선호하도록 하라.
독서에서 끌어낸 아이디어는 항상 책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사람과 사물들에게 직접 갈 것.
114쪽
화가의 눈을 가져라. 화가는 응시하면서 창조한다.
“모든 움직임은 우리를 드러낸다.” (몽테뉴) 그러나 움직임이 우리를 드러내는 것은, 움직임이 (지시를 받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동적일 때뿐이다.
자동성에 대하여. 다음의 말 또한 몽테뉴의 것이다: “우리는 머리카락에게 곤두서라고 하거나, 피부에게 욕망이나 두려움에 떨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손은 종종 우리가 보내지 않은 곳에 가 있다.”
X는 유행을 따르기 위해 자기 영화에 거의 모든 것을 집어넣는다. 마치 너무 많은 색채로 작업하는 화가처럼.
116쪽
오해. 몇몇 오해에서 출발하지 않은 혹평이나 찬사는 (거의) 없다.
첫눈에 “이거다 또는 이게 아니다.” 추론은 (우리가 첫눈으로 본 것을 승인하기 위해) 그다음에 온다.
사물을 습관에서 끌어낼 것. 사물을 마취에서 깨어나게 할 것.
118쪽
다음은 없어서는 안 될, 스스로를 향한 절대적 신뢰에
대한 세비녜 부인의 말이다: “내가 내 자신의 말만 들을 때, 나는 대단한 일을 해낸다.”
모든 것들의 평등성. 똑같은 눈과 똑같은 영혼으로, 과일 그릇, 자기 아들,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린 세잔.
침묵은 음악에 필수적이지만, 음악의 일부는 아니다. 음악은 침묵에 근거를 두고 있다.
120쪽
네 모델의 눈물로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거나 바라지 마라. 이와 반대로, 정확히 자기 자리에 놓인, 저 영상이 아니라 바로 이 영상, 저 소리가 아니라 바로 이 소리로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거나 바라야 한다.
121쪽
정직해질 것. 실재 중에서 참으로 바뀌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할 것. (거짓된 것의 끔찍한 현실.)
직감이란 말을, 작업라는 데 쓰는 두 개의 숭고한 기계와 어떻게 연결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카메라와 녹음기여, 모든 것을 다 설명해버리는 지성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려가다오.
11월
31일
12월
7일
오 영혼이여, 억압 없이, 나는 그대와 함께 그대는 나와 함께, 그대의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한다,
인간의 항해, 인간의 정신으로 귀환하는 항해,
이성의 초기 낙원,
그곳으로 돌아가는, 지혜의 탄생으로, 순수한 직관으로 돌아가는,
다시금 온당한 창조가 수반되는 항해.
성균관대 박물관,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
8일
공자는 무슨 복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무엇보다 큰 잘못을 피하는 방법으로 주역 공부를 하려 했던 것이다.
무릇 오로지 스스로 굳건하기를 조금도 쉼이 없어야 하늘과 조화를 이뤄 나아갈 수 있고 (좋지 않은 것들이)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없을 것입니다.
배는 스스로 하나며
하나는 모든 것이다.
배는
그 하나도 없는
눈을
안팎으로 나누며
간다.
믿는다.
남이 믿지 않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는 팔을 어제와 내일로 뻗고
간혹 방황한다.
9일
생각이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곧 와해되어 버린다. 그리고 파악의 대상인 사물들처럼 산만하고 비논리적인 것이 된다. ‘유연한’ 사고는 현실 위로 퍼져서, 현실과 하나가 된다.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체계’를 원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예전에 철학자는 사색을 하되 글은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멸받지는 않았다. 인간이 효율성 앞에 무릎을 꿇은 이래, 천박한 인간들은 작품이라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생산하지 않는 사람을 ‘실패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 ‘실패자’들이 바로 현자였을 것이다. 우리 시대를 구원할 사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현자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십 년 혹은 일생처럼 분절된 시간에 따라서만 행동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행위를 영원한 시간과 결부시키면, 시간과 행위 둘 다 증발해버린다. 그것은 공허 속에서의 모험이며, 부정(否定)의 생성이다.
나는 서서 결심한다. 나는 눕는다. 그리고 그 결심을 취소한다.
우리가 느끼는 타인에 대한 혐오감이란? 우리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돌려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구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서성대는 창녀처럼 나는 매일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다.
보통 사람은 얼굴 뒤로 자신을 숨기지만, 정신병자는 얼굴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밝힌다. 가면을 잃어버린 그는 자신의 불안을 공개하고 아무에게나 내민다. 자신의 비밀을 공표한다. 그렇게 무분별한 행동은 우리를 짜증나게 한다. 그를 묶어서 고립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둘 다 각자 일생의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 속에 우리 지친 영혼을 쉴 수 있으니
나의 온화한 친구여, 그래도 우리 어쩌면 서로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존재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0일
그대의 존재를 아침처럼 반기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대의 부재를 밤으로 여겨, 마치 높은 하늘에서
::비유가 꼭 화려할 필요없다. 아주 새롭지 않아도, 적절하면 된다. 시 전체의 완성도가 관건이다. 부분적으로 진부하니, 상투적이니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여행은 삶에서 출발하여 죽음을 향해 간다. 사람들, 짐승들, 도시들, 기타 모든 사물들, 그 모든 것은 상상의 소산이다. 그것은 하나의 소설. 하나의 허구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11일
정신이란 사방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멀리 우회하여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모든 혁명은 역사 속으로 흐르지만, 여전히 역사를 범람시키지는 못한다. 혁명의 강물은 처음 흘러나왔던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또 다시 흐르리라.
"자기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 스스로 재능을 아는 화가가 '법고창신'하며 노력하면 오래토록 좋은 화가로 남는다. 그런데 자신의 장점을 모르고 엉뚱한 길로 새는 화가는 에이징 커브에 이르면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미술계의 세계도 냉혹한 세렌게티 초원과 같아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미술사가와 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의 조짐을 눈치채고 과정을 기록하여 현실을 경계하여야 한다. 이런 것이 예술 종사자 각자의 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내고 박생광'은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 성공한 화가이다.
소위 ‘전문가’들은 자신들끼리만 전문 용어를 남발하며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양 토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고 떠드는 때도 많습니다. 일반인의 질문을 받아보면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자폐적 세계에 갇혀있는가를 깨닫기도 합니다. 전문가는 일반인의 평범한 질문에 대해서도 답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똑똑한 학부생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면 실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것”
내 동료인 신경심리학자 마르셀 킨스번에 따르면, 생각하기가 힘든 이유는 진리에 이르는 가시밭길과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쉽고 솔깃한 길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은 대부분 이런 유혹에 저항하는 일이다. 샛길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한숨)
여러분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쉬운 길이 있으면 쉬운 길로 가는 것이 더 똑똑한 선택이다. 파인만의 자서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와 『남이야 뭐라 하건』은 생각을 잘하고 싶은 모든 사람의 필독서다. 두 책을 읽으면 거칠기 그지없는 문제를 길들이는 법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청중을 현혹시키는 속임수를 배울 수 있다.
여느 장인과 마찬가지로 대장장이도 도구가 필요하지만 유일하게 대장장이만이 자신의 도구를 스스로 만든다.
토머스 베이스 목사는 뛰어난 수학자로, 베이지언 통계적 사고의 뼈대인 ‘베이스 정리’를 남겼다.
::성직자인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 수학자였던 이들이
있다. 종교와 과학을 모순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역사에 의해 반박된다.
귀류법이란 상대방의 전제에서 형식상의 모순(말이 안 되는 결론)을 이끌어내어 논증이 틀렸음을 밝히는 방법이다.
::티벳 불교 대론의 과정과 목표도 이와 같다.
엄밀성은 떨어지지만 효과는 이와 맞먹는 사고실험도 있다. 직관을 불러일으켜 명제를 논파하며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진심으로 무릎을 치게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것을 나는 ‘직관펌프intuition pump’라 부른다.
나는 직관펌프를 사랑한다! 직관펌프 중 어떤 것은 뛰어나고 어떤 것은 미심쩍으며, 새빨간 속임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직관펌프는 수 세기 동안 철학을 지배한 힘이다. 이솝 우화의 철학자 버전이라고나 할까.
생각도구는 늘 귓전을 맴도는 철학의 멜로디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정교한 논증과 분석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거기에 쓰인 생각도구는 매우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좋은 직관펌프는 어떤 논증이나 분석보다 강력하다.
진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이에 대해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겠다고 제때 판단할 수 있으려면 시의적절하게 정보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외부의 힘’에 얽매이지 않고 ―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탓에, 모든 외부의 힘으로부터 단절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자유의지는 우리가 다채로운 인과적 맥락에 잠기는 것을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로 한다.
직관펌프를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설득 도구’로 여긴다면, 이 도구를 ‘역설계’하고 모든 부품을 검사하여 각 부품이 무슨일을 하는지 확인하면 성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그 호프스태터는 1982년에 나와 공저한 『이런, 이게 바로 나야!』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안성맞춤의 조언을 내놓았다. 직관펌프를 조절 장치가 많이 달린 도구로 생각하여, “모든 손잡이를 돌려보”면서 변수가 달라져도 똑같은 직관이 펌프질되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괴짜 교도소장’ 직관펌프에 어떤 손잡이가 있는지 알아보고 손잡이들을 돌려보자.(반증되기 전에는) 모든 부품에 기능이 있다고 가정하고, 부품을 하나하나 갈아 끼우거나 조금씩 변형하면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본다.
1. 밤마다
2. 그는
3. 수감자들이 모두
4. 깊이 잠들 때까지
5. 기다렸다가
6. 감방 자물쇠를 모조리 따고
7. 문을 밤새도록 열어둔다.
우리는 한 직관펌프를 이용하여 또 다른 직관펌프를 설명한다. 이 수법을 기억해두기 바란다.
학술지에 실리는 학문적 글쓰기는 주제를 비개성적이고 딱딱하게 표현하고 장식, 수사, 암시를 최소화하는 것을 선호, 아니 고집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생각 중에는 형식에 구애됨 없이 은유를 구사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고(모든 수법을 동원하여) 닫힌 마음의 벽을 공략해야만 가능한 것이 있다.
과학자들이 ‘말뿐인’ 이론적 논의를 곧잘 미심쩍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학 방정식으로 정식화되지 않은 논증을 비판하는 것이 훨씬 까다롭고,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수학 언어는 타당성을 보증한다. 농구 경기에서 공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시비를 가려주는 골대 그물과 같다.(그물 없는 농구 골대에서 농구 해본 사람은 골과 에어볼(림에도 맞지 않은 노 골_옮긴이)을 분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하지만 수학으로 다스리기에는 너무 애매하고 난감한 문제도 있다.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주제에 정통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또한 스스로에게 입증하고 싶어 안달이며, 전문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하여 외부인을 주눅 들게 하고(이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방법이다) 아무리 난해한 기술적 논증을 펼치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능력을 과시한다. 박사 과정 대학원생과 동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쓴 철학 논문은 대체로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그래서 거의 안 읽힌다.
철학을 하다 보면 엄밀한 논증을 펴고 모든 전제에 번호를 매기고 추론 규칙에 이름을 붙여야 할 때와 장소가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잘난 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이 엄밀한 논증을 할 수 있음을 논문에서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떤 학생들은 그때의 버릇에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다. 공정을 기하자면, 문학적 장식을 덕지덕지 바르고 심오함을 흉내 낸 대륙의 과장된 수사도 철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나보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겉만 번드르르한 현자보다는 깐깐하고 꼬치꼬치 따지기 좋아하는 논쟁꾼을 선택하겠다. 적어도 논쟁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이 오류인지 파악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중간 지대, 즉 시와 수학의 가운데쯤 되는 곳에서 철학은 최고의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난해한 문제를 명쾌하게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도구는(논증의 첫발을 떼기 위한) ‘고정된’ 고정점(이후 모든 탐구의 토대가 되는 탄탄한 ‘공리’)을 확립하기보다는 고정점의 ‘후보’가 될 만한 자리를 소개한다. 이 고정점은 이후 탐구의 범위를 한정하되 누군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면 수정되거나 아예 폐기될 수도 있다.
붐받이: 역효과를 낳는 생각도구, 즉 겉으로만 이해를 돕는 것처럼 보일 뿐 실은 빛 대신 어둠과 혼란을 퍼뜨리는 생각도구.
“거짓을 믿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믿지 말라”라는 사람은 속지 않겠다는 개인적 공포심에 압도당하고 있는 겁니다. …… 마치 장군이 병사들한테 한 사람이라도 부상당하기보다는 언제까지나 싸움을 말라고 타이르는 것과도 같죠. 그런 식으로 해서는 적이건 자연이건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오류라는 게 그렇게 중대한 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선 아무리 조심해도 오류에 빠지게 마련인즉 거기에 신경과민이 되는 것보다는 마음을 가볍게 먹는 쪽이 보다 건전한 태도라 할 수 있을겁니다.
— 윌리엄 제임스, 『신앙론』
당신이 어떤 이론을 시험한다고 하자. 또는 어떤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싶다고 하자. 당신은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모두발표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결과만 발표한다면, 매끄러운 논문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양쪽 결과를 모두 발표해야 한다.
—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서투른 병법을 사용하면 오히려 몸에 큰 해를 입힌다”
집을 지을 때 적당한 자재를 적당한 곳에 배치해야 한다. 재목이 곧고 마디가 없으며 보기 좋은 것은 앞쪽 기둥으로 삼고, 조금 마디가 있어도 곧고 튼튼한 것은 바로 손질해 뒷 기둥으로 쓴다.
다소 무른 것도 마디가 없이 보기 좋은 나무는 모양을 살펴보아 문지방·상인방·문짝 미닫이용인가를 구분한다. 마디가 있거나 구부러져 있어도 튼튼한 나무는 그 집의 곳곳을 잘 살펴보고 잘 찾아 쓴다면 그 집은 오래 지탱할 것이다. 또한 재목 속에 마디가 많고 휘어 발판으로도 쓸 수 없으면 나중에 땔감으로라도 써야 한다.
남을 잘 알지 못하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 자신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모든 일에 있어서 진실되지 못한 마음이 생겨난다. 평소에 그 길에 전념한다고 해도 정도(正道)에 어긋나 있다면 진실되지 못한 것이다. 진실의 도를 깨닫지 못하면 마음의 사소한 어긋남이 나중에는 크게 빗나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 한 손으로 적을 무찌르기 힘든 경우에는 두 손으로 해치운다. 시간을 버는 일이기도 하다.
큰칼을 다루는 법이란 빨리 휘둘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물’의 장에서 다루겠다. 큰칼은 넓은 곳에서 사용하고, 작은칼(와키자시)은 좁은 곳에서 쓴다. 그 기능을 아는 것이 도의 기본이다.
무기를 한 가지만 써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무기를 많이 지니는 것은 부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른사람을 따라하지 말고 자기 몸과 자기 손에 적당한 무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박자가 있다. 무사의 일생에도 박자가 있다. 신분이 올라 벼슬을 하여 입신 출세하는 박자, 실패하여 뒤로 물러서는 박자, 뜻대로 척척 맞는 박자, 어긋나기만 하는 박자 등.
전투에 있어서 적의 박자를 살핀 후 상대가 예상치 못한 박자로써 치고, 전략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박자를 발휘해 비로소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평소에나 전투에 임해서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마음에 여유를 갖고, 지나치게 긴장하지 말고 조금도 흐트러지지 말아야할 것이다.
10년 전 나는 작곡은 합리와 비합리라는 대립물을 통합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관념적으로 이는 또한, 엄밀히 구분되어 있으며 결합과 연속이 논리적으로 연관되거나 임의로 선택된 부분과 소리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연속성을 부여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부분의 엄밀한 분할, 즉 구조는 소리의 음 길이라는 요소에 작용하는데 진동수와 진폭, 음색을 포함한 소리의 모든 측면 중에서 침묵의 특성이기도 한 것은 오직 음 길이뿐이기 때문이다. 당시 구조는 단순히 양의 척도로 여겨지던 박자라는 기존의 박절적(拍節的) 수단으로 실제 시간을 분할하는 것이었다.
부분의 엄밀한 분할, 즉 구조는 소리의 음 길이라는 요소에 작용하는데 진동수와 진폭, 음색을 포함한 소리의 모든 측면 중에서 침묵의 특성이기도 한 것은 오직 음 길이뿐이기 때문이다. 당시 구조는 단순히 양의 척도로 여겨지던 박자라는 기존의 박절적(拍節的) 수단으로 실제 시간을 분할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상관없는 부분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구조는 소재의 존재만큼이나 소재의 부재로도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다.
이렇게 구조의 몸체에 방법의 기능을 도입하고 이 둘을 질서와 자유라는 대립 관계에 둠으로써 구조는 불확정성을 띠게된다.
예전에 침묵은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극으로 다양한 목적에 유용하게 쓰였다. 그중에는 고상한 편곡을 목적으로 두 소리 또는 두 소리의 그룹을 분리해 관련성이나 차이를 강조하는 사례도 있고, 표현성을 목적으로 음악 어법에서의 침묵을 휴지나 구두점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 또 구성을 목적으로 침묵을 도입하거나 중단해 미리 결정된 구조 또는 체계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를 정의하는 사례도 있는데, 위의 목적을 비롯해 다른 목적이 전혀 없는 경우 침묵은 무언가 다른 것, 즉 침묵이 아니라 차라리 소리, 주변음이 된다. 이 소리의 성질은 예측하기 어려우며 변화무쌍하다.
(의도의 일부를 이루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침묵이라 불리는) 이러한 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세상은 이 소리들로 가득하며 실제 단 한순간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기술적으로 최대한 소리를 제거해 만든 무향실에 들어간 이는 두 가지 소리를 듣게 된다. 하나는 높은 소리, 하나는 낮은 소리다. 높은 소리는 그의 신경계가 작용하는 소리고 낮은 소리는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다. 이것으로 들을 귀만 있다면 소리는 영구히 들린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이 귀가 아무 할 일이 없는 사고와 결합할 때 그 사고는 자유롭게 청취의 행위로 들어가 각 소리를 많든 적든 선입관의 근사치인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듣게 된다.
중력. 일반적으로 우리가 남들에게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안의 중력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남들에게서 받는 것은 그들 안의 중력으로 결정된다. 이 둘이 (우연히) 일치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일치 하지 않는다.
어째서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조금이든 많이든 필요로 한다고 드러내는 순간에 상대는 멀어지는가? 중력.
식량을 얻기 위하여 늘어선 줄. 같은 행동이라도 동기가 고귀할 때보다는 저급할 때가 더 쉽다. 저급한 동기에는 고귀한 동기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 있다. 저급한 동기에 부여된 에너지를 어떻게 고귀한 동기로 옮길 수 있을까?
스스로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은 암소가 발목에 찬 족쇄를 끌고 가다가 무릎이 꺾이고 마는 것과 같다.
단 한 가지 치료법. 빛을 양분으로 삼는 엽록소.
심판하지 말 것. 모든 과오는 동등하다. 빛을 양분으로 삼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과오가 있을 뿐이다. 그 능력이 없어지면 모든 과오가 가능하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니.”*
이 능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요한복음 4장 34절.
중력이 개입하지 않는 움직임으로 하강하기. 중력은 하강하게 하고, 날개는 상승하게 한다. 제곱의 힘을 가진 다른 날개가 중력 없이 하강하게 할 수 있을까?
창조는 중력의 하강 운동, 은총의 상승 운동, 그리고 은총의 제곱의 힘이 행하는 하강 운동으로 이루어진다.
낮아지기, 정신적 중력에서 그것은 올라가기이다. 정신적 중력은 우리를 높은 쪽으로 떨어뜨린다.
너무 약해서 타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도 못할 때, 인간은 자기 안의 우주의 표상에 해를 끼친다.
복수의 욕망은 기본적인 균형을 되찾으려는 욕망이다. 균형을 다른 차원에서 찾을 것. 혼자 힘으로 그 한계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빈 자리에 닿게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리라.)
선을 사랑해서 고통스러운 길로 들어섰지만 결국 한계에 이르러 타락하고 마는 사람들의 비극.
사람들이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의 자기희생을 본받는 일이다.
나 역시 나 스스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용서다.
수선화들은 저절로 피어나고 또 피어났거든.
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 같았어.
우리의 삶은 늘 행운이 기습적으로 닥쳐오는 것 같았지.
그렇게 영원히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우리는 깨닫지 못했던 거야
영원히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수선화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던 거야
결혼식 날과 같이 행복한
나날이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지는지를!
:: 마침표가 안 찍힌 문장들은 원문에서 뒷문장과 연결된 문장일 것이다. 일반적인 글에서라면 하나의 겹문장으로 번역하고, 어순의 변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 어순의 중요성을 고려해 이렇게 번역한 것일 것이다. 나라면 원문에서 하나의 겹문장이었더라도, 두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했다면 마침표를 추가했을 것이다. 없던 마침표를 추가하더라도 크게 잘못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번역에서 변형은 불가피하지만 보존에 전전긍긍하며 매달리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최대한 원문에 가까우려다 보니 마침표를 추가하는 것에 소극적이 된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에 마침표 몇 개가 추가된다고 의미 상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다.
진실한 마음[眞心]은 실재의 영역인 법계(法界,dharmadhātu)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거대하다.
12일
학생과 교사를 위한 10 개의 규칙
규칙 1 : 신뢰하는 장소를 찾은 다음, 잠시나마 그곳을 신뢰해 봐.
규칙 2 : (학생의 일반적 의무)
선생한테서 모든 걸 끌어내.
동료 학생들한테서 모든 것을 끌어내.
규칙 3 : (교사의 일반적 의무)
학생들한테서 모든 걸 끌어내.
규칙 4 : 모든 걸 실험이라고 여겨.
규칙 5 : 자기 규율이 중요해. 이 말은 현명하거나 똑똑한 사람을 찾아서 그를 따르기로 선택한다는 뜻이야. 규율 잡혀있다는 것이 좋은 방식으로 따르는 거라면, 자기 규율이 잡혀 있다는 건 더 나은 방식으로 따르는 거야.
규칙 6 : 리더를 따라가. 실수는 아무것도 아냐. 성공도 실패도 없어. 만들기만 있을 뿐.
규칙 7 : 유일한 규칙은 작업이야. 작업을 하면 무엇인가에 이르게 돼. 결국 뭔가를 손에 넣는 사람은 줄곧 작업하는 사람이야. 팬들을 놀릴 수는 있어. 하지만 선수들을 놀릴 수는 없어.
규칙 8 : 창조와 분석을 동시에 하려고 하지 마. 그 둘은 서로 다른 과정이야.
규칙 9 : 뭔가 해낼 수 있을 때마다 기뻐해. 자신을 즐겨. 생각보다 쉬운 일이야.
규칙 10 : 우리는 모든 규칙을 깰 거야. 우리 자신의 규칙마저도.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미지의 "x"을 위해 여지를 넉넉히 남겨두면 돼.
+추가 단서 :
항상 멈춰 있지 마.
모든 것에 다가서.
항상 수업에 참석해.
손에 잡을 수 있는 건 뭐든 읽어.
신중하게 자주 영화를 봐.
모든 것을 간직해. 나중에 유용할지도 모르니까.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생각해보면 다들 그렇지 않은가?—그가 인생에서 맞닥뜨린 우연한 상황들은 희한하게도, 무기력과 고립된 본능의 형상을 따라 본능의 모양대로*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 「창세기」 1장 26절에 나오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참조.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을 믿었듯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에 대한 믿음을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나는 언제나 주변부에 속한 인간이고, 내가 속한 집단뿐만 아니라 집단을 둘러싼 거대한 공간까지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신을 완전히 내버리지도, 인류를 대체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경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인류에 대한 숭배는, 동물이 신처럼 숭배되고 신이 동물의 머리를 지녔던 고대 숭배 신앙의 재현 같았다.
나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얼마 안 되는 이들에게서 단념이라는 삶의 방식과 숙명이 된 관조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종교적인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 능력도 없다. 신앙은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믿을 수 없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도 알 수 없다.
과학에서는 모든 것이 절대적인 자연법칙에 복종한다는 핵심 교훈만을 취한다. 이 절대 법칙 앞에서 우리는 제멋대로 반항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반항 역시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교훈마저도 아주 오래된,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다를 바 없음을 확인하고, 허약한 자가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훈련을 포기하듯이 더는 애쓰지 않는다.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임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감각 안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방대한 이국땅을 탐험하듯이 감각을 탐구한다.
우리가 쓰는 산문과 시는—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설득하려는 의지를 걷어내고 보면—독서의 주관적인 쾌락에 온전한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큰 소리로 책을 낭독하는 행위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며, 우리가 쓰는 글은 가장 불확실한 미학적 관조의 결과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잊기 위해 밀짚을 엮는 죄수라기보다는 그저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개에 수를 놓는 소녀에 가깝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밤이 올 때까지 이 거리를 걷고 있자니 내 인생이 이 거리의 삶과 닮았다고 느껴진다. 낮에는 아무 의미 없이 북적이고 밤에는 북적임이 철저히 부재한데, 이 또한 아무 의미 없다. 나는 낮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밤에는 나 자신이다. 나와 알판데가 거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길모퉁이를 돌아나가는 전차처럼, 또는 밤늦은 시간에 야경꾼이 외치는 목소리, 해 질 무렵의 지루함을 깨뜨리며 갑자기치솟는분수인 양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 노래 같은 목소리처럼 내 앞에 나타나던 꿈들.
인생에서 원했던 것은 너무나 적었건만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줄기 햇살, 가까운 들판, 한줌의 평온과 한 쪽의 빵,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거부당했다. 동냥 주는 것을 거절하는 이가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외투 주머니 단추를 풀기 귀찮아서 그러듯이. 결국 내가 원한 것들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위대한 존재가 누리는 밤의 영광이여! 아무도 모르는 찬란함이 빛나는 침울한 왕좌…… 갑자기 나는숭고한 감정을 느낀다. 그건 황무지의 수도승이나 은신처의 은둔자가, 예수가 속세를 떠나 동굴과 사막으로 간 본질적인이유를 깨달을 때 느낄 법한 감정이다.
아, 알겠다! 나의 고용주 바스케스 사장은 바로 ‘인생’이다. 지루하고 불가피하고 고압적이며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인생. 이 진부한 인물이야말로 인생의 진부함을 의미한다. 겉에서 볼 때 바스케스는 나에게 모든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인생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층* 방은 예술을 의미한다. 그래, 예술. 인생과 같은 거리에 살되 주소는 다른 예술. 나를 삶에서 해방시켜주지만 산다는 것 자체에서 해방시켜주지는 못하고, 인생과 마찬가지로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단지 다른 장소에 있을뿐인 예술.
도라도레스 거리는 모든 사물의 의미와 모든 수수께끼의 해답을 품고 있다. 단, 왜 수수께끼가 존재하는가 하는, 결코 해답이 있을 수 없는수수께끼는 제외하고.
아, 지속되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꿈이여!
아, 떠올랐다 구름에 뒤덮이고 만
별처럼 반짝이던 희망이여!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한 목소리는
“계속 나아가라! 나아가라!” 외치지만
내 영혼은 과거(침침한 수렁!) 위에 떠 있습니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사색이 되어!
이제, 운명의 폭풍우가
나의 현재와 과거를 어둡게 뒤덮었으니
부디 당신과 당신 세계에 대한 감미로운 희망으로
나의 미래를 환히 밝혀주소서!
사실 나는 책을 진지하게 깊이 읽는 편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느낌이 오는 문장 두세개 정도를 포착해서 노트에 적어놓는다. 그런 문장들을 추려내는 것 자체로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게 가능하다.
뤼미에르 이후에, 멜리에스가 있었고, 멜리에스 이후에, 막스 랭데가 있었다. 뤼미에르의 리얼리즘, 멜리에스의 상상과 환상, 그리고 막스 랭데의 희극적 정신—모든 영화적 표현이 거기 있었다.
그 이후에 더 이상의 “리얼”은 남아 있지 않다.
After Lumière, there was Méliès, and after Méliès, there was Max Linder. With the realism of Lumière, the imagination and the fantasy of Méliès, and the comic spirit of Max Linder -- all cinematographic expression was there. There's no more "real" left after that.
발달한 건 기술이다. 그러나 예술은 표현이다; 기술은 표현이 아니고, 과학이다. 영화 카메라는 과학적 기계이지, 예술 작품이 아니다.
What evolves is technology. But art is an expression; technology is not an expression, it's science. The movie camera is a scientific machine, not a work of art.
위대한 이탈리아 조각가, 도나텔로에 대해 말해진 것처럼, 그는 그리스 비극의 단순성과 르네상스의 리얼리즘에서 단순함과 정확함, 명료함을 찾고 있었다. 가장 깊은 것들이 표면으로 오도록.
As it has been said about Donatello, the great Italian sculptor, he was looking for the simplicity of the Greek tragedies and the realism of the Renaissance, simple and exact, clear, so that the deepest things come to the surface.
그러나 가만! 이 벽들, 이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아케이드들,
이 퇴락한 기둥 대좌들, 슬프게도 거뭇해진 이 기둥 몸체들,
기둥 위 희미한 수평대들, 이 무너져 내리는 기둥의 띠장식,
산산이 부서진 처마돌림띠들, 이 파손, 이 잔해,
이 돌들, 아 슬프다! 이 잿빛 돌들, 이게 전부란 말인가.
부식하는 ‘시간’이 ‘운명’과 나에게 남긴,
그 명성이 자자하고 거대한 그것의 전부란 말인가?
“전부는 아니지” 메아리들이 나에게 대답하네, “전부는 아니오!
우리들로부터, 모든 유적들로부터 예언의 우렁찬 소리들이 영원히 생겨나
현명한 자들 안으로 들어간다오.
F. S. O.에게
그대 사랑받고 싶나요?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현재의 오솔길에서 벗어나지 말게 하오!
지금 그대 자신인 모든 것이 되면서
그대 자신이 아닌 그 무엇도 되지 마오.
그러면 그대의 온화함, 그대의 품위,
그리고 그대의 지극한 아름다움이
세상이 끝없이 찬양하는 주제가 될 것이고
그대에 대한 사랑은, 그저 세상의 의무가 될 거예요.
나에게 그대에 대한 기억이란
마치 풍랑으로 소란한 바다 저 멀리 떠 있는
마법에 걸린 섬과 같답니다.
대양이 멀리까지 폭풍으로 요동치는 동안에도
그 빛나는 섬 바로 위에는
가장 청명한 하늘이
한결같이 미소 짓고 있답니다.
비록 나는 피아노를 위한 음악에서 작곡 수단의 구조와 방법을 지배하는 힘으로서의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지만 소리 그 자체를 음미해 보면 소재를 지배하는 힘으로서의 사고는 존재함이 분명하다. 여기서 소리란 단지 기존 그랜드피아노의 소리로, 건반을 누르거나 현을 튕기고 손으로 눌러 약음화시켜 나는 소리에 피아노 몸체 안팎에서 나는 소음을더한 것을 말한다. 이 가능성의 우주가 가진 제한된 성격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어린아이의 옹알이나 맹인의 더듬거림을 닮게 된다. 사고는 이 작은 유희가 일어나는 경계를 확립하는 힘으로 재등장한다.
소리 그 자체에 근거한 우주 안에서 소리를 구성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소리는 진동수와 진폭과 음길이와 음색을, 또 곡 안에서는 연속적 질서를 갖고 있다.
13일
일찌감치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건 의미 없다고 여겼다. 1960년대 동양화의 주요 재료인 수묵필 중 붓과 먹을 버리고 종이만 취한 그는, 한지를 활용하는 동양화의 기조 위에서 출발하지만 방법 면에서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e)’ 시리즈를 상기시키는 서구적인 조형방법, 즉 전후 추상미술과 궤를 같이 했다.
“남들은 과슈다, 먹이다 구별을 하는데 나는 그런 구별 자체를 안 하고, 그냥 검정색이다 하고 여긴다” 하지만 먹은 번지면서 물기와 함께 확산해 가는 반면 불투명 수성 안료인 과슈는 스스로 응결하기 때문에 서로 역작용 하며, 그로 인해 화면에 은밀한 내재율로 인한 잔잔한 여운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영화에 있는 것들의 반은 놓친다. 음악을 들을 때와 비슷하다. 모든 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 체험을 값어치 있게 할 만한 것들이 충분히 있다.
영화의 경우 우리는 미국의 영화제작 방식에 의해 우리가 한 번 만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훈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감자를 먹을 때, 감자의 모든 원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 나는 매우 고전적이다. 나는 소설, 주로 19세기 소설을 깊이 찬탄해 왔다. 상이한 종류의 내러티브가 있다. 즉 소설, 회화, 음악에서의 내러티브들.
영화는 사물을 보고, 식별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발명되었다. 영화는 주로 과학의 도구였다... 생명체를 상이한 방식으로 보기 위한 것이었다. 볼거리는 영화의 5에서 10퍼센트이어야 한다. 나머지 전부는 탐구와 에세이를 의미하는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연구를 위한 다큐멘터리이어야 한다. 나는 반은 소설가이고 반은 에세이스트이다—이런 경우는 영화계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다.
고다르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접근 방식은 상업 영화처럼 플롯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이란 무의식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이고 마지막 편집 단계에서 그것이 괜찮다거나, 혹은 아니다! 라는 것을 깨달을 수있다.
이것은 화해이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것과의 화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뭘 원하느냐는 것과의 화해이다. 무언가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하며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하기를 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다루기를 원한다. (...)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난 더 이상 일이 잘 되어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저렇게 되어 간다고 화내지 않는다. 오직 나의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 따름이다.
내 영화가 기존 영화와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영역 또한 방대하다.
나는 내가 만들 수 있어야 하는 영화를 목표로 삼고 그것의 일부, 2/3, 때로는 9/10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매우 외롭다. (...) 내면적으로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들과 아주 활발히 교제하고 있다. 물론 상대방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나 외면적으로는 너무 외롭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그것이 내 특성이고 내 삶의 사실이다. 쏘로의 월든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음악과 같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나 저것을 확실히 의미한다고 아는 척하지 말자.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의미는 있지만 정확히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법이 문장 자체보다 중요했다. 혹은 문법은 문장들이 될 수 있었던 것들의 기념품이 되었다.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문법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과학자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수학의 정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리에는 더하기, 빼기, 그리고 등호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대본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촬영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내가 100-120 페이지 정도 썼던 초안이 있었는데 3주 뒤에 찍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제작자와 스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하다. 우리는 3달, 어쩌면 3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당신들은 준비가 되었는가?” 아무도 준비가 안 되었지만 촬영했다. 왜냐하면 결국 영화는 영화이고 그건 삶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는 법이다.
이미지는 마음이 창조한 것으로서, 두 가지 상이한 실재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두 가지 실재들이 멀면 멀수록, 그 이미지는 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이미지는 그 자체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영화이다. 이미지는 그것을 내가 어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상상하면서 보고 있을 때 생기는 관계이다. 이미지는 관계이다.
얼 스탠리 가드너(...)에게 느껴지는 신비는 단지 묘사의 신비인 반면에, 조이스에서는 글쓰기 자체의 신비가 소설의 일부가 된다. 관찰자와 우주는 동일한 우주의 한 부분이다. 그 사실은 과학자들에 의해 금세기 초에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소립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소립자들의 위치는 알 수 있지만, 그것들의 속도는 알 수 없다. 혹은 속도는 알 수 있으되, 소립자들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찰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묘사하는 사람은 묘사의 한부분이다.
일상사를 통해 형이상학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것이 예술가의 과제이다. 세잔이 그린 사과는 단순한 사과 이상의 것이다. 혹은 단순한 사과이거나.
빛을 등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배후의 빛은 영사기에 속해야 할 것이고, 카메라는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우리 앞에 두고 있듯이, 빛을 앞에다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받고 난 다음에 앞으로 던진다.
그래서 당신은 카메라 뒤에 인공 조명을 두지 않는 것인가?
절대로 두지 않는다.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계약서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타협이었다. 영화는 언제나 타협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역이나 터미널이라고 즐겨 생각한다. 기차나 공항들 사이를 오가는 비행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자신을 공항이 아니라 비행기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뉴욕에서 호놀룰루까지 갈 때 자신들이 뉴욕과 호놀룰루 사이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존재한다’는 것은 주로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이를 내 영화에 넣으려고 한다.
존 콜트레인이나 패티 스미스가 레코드를 만드는 방식은 우리가 영화를 찍는 방식보다 훨씬 더 대담하다. 그들은 마음이 내키면 밤에도 녹음한다. 그들은 부분 부분 녹음하고, 재녹음하고, 변경을 가한다. 그들은 들으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글로 쓰여진 대본은 법처럼 지켜져야 한다. 그 방식은 점점 강력해졌다. 왜냐하면 영화는 현재 학교로 변했기 때문이다.
아무 느낌이 없다면 인상적인 무엇인가를 가져와야 한다. (...) 어떤 사람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거리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나는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 내가 그 거리를 좋아한다거나, 혹은 빛 때문에, 혹은 인상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면 찍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찍지 않고 그걸 잘라 낼 것이다.
그리고 소년 시절이란 하나의 여름 태양이라서
그것이 기우는 것은 가장 쓸쓸한 상실이지요.
우리가 알기 위해 살았던 모든 것은 이미 알게 되었고
우리가 간직하려고 추구한 모든 것은 흘러가버렸으니 말이오.
그러면, 하루살이 꽃처럼 삶이 지도록 내버려두면 그뿐,
한낮의 아름다움을 품고 떨어지도록 하면 그뿐이오.
철학사의 상당 부분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아주 솔깃한 실수를 저지른 역사이며 그 역사를 모르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학생들에게 철학사를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수를 ‘감수’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실수를 저질러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무엇을 고쳐야 할지 뚜렷하고 자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는 발전의 열쇠다. 물론 수술 의사나 항공기 조종사처럼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경우도 있다.
다른 분야의 학자들은 중요한 질문에 정답을 내놓는 데 전문가이지만, 우리 철학자들은 매사를 엉망으로 뒤섞어서 무엇이 정답인지는 고사하고 무엇이 올바른 ‘질문’인지도 알 수 없도록 하는 데 전문가다. 틀린 질문을 던지는 것은 탐구가 처음부터 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하는 행위다. 이것은 오로지 철학자만의 임무다!
실수는 단순한 배움의 기회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실수야말로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세포는 아주아주 뛰어난 복사기다. 이를테면 우리 몸에는 세포가 약 1조 개 있는데 각 세포는 30억 개 이상의 부호로 이루어진 유전체(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했을 때 처음 만들어진 설계도)의 완벽한(또는 ‘거의’ 완벽한) 사본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복사기는 완벽하지 않다. 그랬다면 진화가 중단되고 새로움의 원천이 말라버렸을 테니 말이다. 이 작은 흠들, 진화 과정의 ‘불완전함’들이야말로 생물계의 온갖 놀라운 설계와 복잡성의 원천이다.(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 ‘원죄’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복제 오류일 것이다.)
좋은 실수를 저지르기 위한 핵심 수법은 실수를(특히, 스스로에게서) 감추지 않는 것이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자신의 실수가 마치 예술품인 양 머릿속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는 감정가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예술품이 맞기도 하다.
실수를 음미하고, 나를 헤매게 만든 별난 이상異常을 밝혀내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기묘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교훈을 흡수한 뒤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실수를 뒤로하고 다음번의 큰 실수 기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창한 실수를 저지를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단, 회복이 가능할 만큼만 거창해야 한다.)
자연선택은 지금까지 효과가 있던 것은 무조건 보전하며 크고 작은 혁신을 대담하게 탐구한다. 큰 혁신은 거의 언제나 즉각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 지독한 낭비이지만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지금껏 살았던 모든 생물의 절대다수(90퍼센트 이상)는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지만,여러분의 조상은 단 한 명도 그런불운을 겪지 않았다. 우리는 엄청난 행운아다.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동료의 연구 결과에 대해 경멸을 표현할 때 “틀리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비판자와 공유하는 분명한 오류가 애매모호한 헛소리보다 낫다.
나는 연구 과정에서 한 번도 ― 겉보기에는 ―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극도로 신중한 철학자들을 알고 있다. 이들은 많은업적을 이루지 못하며, 그나마도(결함은 없을지언정) 대담한 결과는 전혀 내놓지 못한다.
누군가의 고백이 가치 있거나 쓸모가 있을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만 일어나는가, 아니면 모두에게 일어나는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면 전혀 새로울 게 없고, 오직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 내가 느낀 것을 글로 쓰는 이유는 느낌의 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고백은 하나도 중요하지않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장부에 숫자를 기입할 때처럼 세심하되 무심하게 나의 문학을 기록한다. 별들이 반짝이는 광대한 하늘과 무수히 많은 영혼들의 수수께끼, 알 수 없는 심연의 밤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혼돈, 이 모든 것 앞에서, 영혼의 단상을 종잇장에 적는 일과 장부에 숫자를 기입하는 일은 도라도레스 거리에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고 어마어마하게 광대한 우주 안에서 너무나 사소한 일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우리가 받는 인상이고, 우리의 전부는 남들이 받는 인상, 즉 우리의 멜로드라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배우인 동시에 관객이고, 시청의 승인을 받은 우리 자신의 신이다.
모든 전략 비평의 본질은 정확히 행위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느릅나무 관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을 담게 됨으로써
새로운 삶을 찾게 될 것이었어.
그대에게 글쓰기는 두려움이었고
때때로 공포가 되기도 했어.
그대의 결혼 선물과 그대의 꿈, 그대의 남편까지 모조리
악령이 앗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 그대의 타자기도
그대의 재봉틀도, 그대의 아이들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이런 두려움이 글을 쓰는 탁자 윗면의 색깔이었지.
14일
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라고 권한다. 우리는 ‘역사는 위대하고도 위대하다’고 배우지만, 사실철학과 윤리적 측면에선 그 누구보다 빈곤하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상징적인 것이 되었다. 뒤샹 이후, 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은 물건을 만들기보다
라이프스타일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태도와 삶의 방식이
내게 가장 중요한 예술이라 생각한다.
예술가란 어떤 마음가짐,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지닌 사람이다. 이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다.
많은 모더니스트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처럼 고다르도 과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과거의 제약과 권위, 혁신을억제하는 사나운 반동적 힘에 의해 괴로움을 겪는다.
고다르의 창작 시기
(안나 카리나) 관습적인 장르 영화의 진부한 패턴들을 재활용하는 동시에 폭파시키던 1960년대 초중반.
(안느 비아젬스키) 주류 영화가 부르주아 데카당스와 막강한 제국주의의 종이 되고 있음을 점점 더 확신하며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만들어 영화를 오염시킨 자본주의적 부패의 세균들을 씻어낼 (전통적 내러티브와 매혹적인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낸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안느-마리 미에빌) 70년대 중반 오토바이 사고 이후, 비디오 실험+내러티브 영화로의 복귀. 1976-1978 프랑스 텔레비전을 위한 에세이 영화 형식의 두 장편 시리즈. (사회문화연구+표현적 영화 예술)
[마리아에게 경배를](1983)과 [오! 슬프도다](1993) 같은 영화에선 종교적 방향으로 관심을 돌려 철학적 주제들, 예컨대물리학과 형이상학의 관계 등을 탐구.
“그는 자신이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고 믿으며 이 발견이 슬프고 절망적인 것일 수 있다는 점에는 전혀 아랑곳 없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반박하는 영화를 만들어나간다.”
고다르의 성격:
장난기
불굴의 의지
변덕
자기 비판
일방성 혐오(변증법적 사유에 대한 정열);
‘말’에 대한 특정 시기의 열렬한 찬사와 특정 시기의 회의, 심지어 적의;
그러나 진짜 말(철학자나 연인 간의 말)과 권력자들의 말의 구분을 통해 ‘말’에 관한 입장 통합.
내 삶의 하루를 살듯이 영화를 만든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즉흥적으로 창조하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삶에서도 완전히 즉흥적으로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좀 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면 미리 만들 영화에 대해 다 생각해 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 개념—전체적인 구조나 생각—은 갖고 있지만 전체적인 생각만 갖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환상이나 백일몽 같은—을 사용하여 대본을 쓴다면 아주 정확하게 작업하고 모든 세부 사항을 계획해야 한다. 하지만 삶으로부터 영화를 만든다면 아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매 상황이 내가 일할 방식을 일러준다.
훔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예술은 표절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새로운 모든 것은 바로 그 때문에 매우 전통적인 것이다.
15일
과학이여! 그대는 늙은 시간의 진정한 딸이어라!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그대 눈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니.
생각에 잠긴 채 희미한 먼 곳을 응시하는 자의 귀에,
그리고 구름처럼 다가오는 그 어둠을 보는 자의 귀에
언제나 몰래 들어오는 속삭임을 들어보라.
그 어둠의 형체와 소리야말로 가장 또렷하고 가장 큰 소리이지 않은가?*
*[원주] 나는 어둠이 수평선 위로 몰래 엄습할 때 그 어둠의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도 있다고 종종 생각해왔다.
—에게
나는 개의치 않으리라, 내 지상의 운명
그 안에, 지상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또한 오랜 사랑의 세월이
한순간의 미움에 잊힌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여, 내가 슬퍼하는 것은
쓸쓸한 자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는 자에 불과한 나의 운명을
그대가 슬퍼하기 때문이라오.
침침한 계곡들, 그림자 지는 물결들,
그리고 구름 낀 듯 뿌연 숲들.
그들은 도처에 뚝뚝 흐르는 눈물 때문에
우리가 발견할 수 없는 형태들.
그곳에서 거대한 달들이 차올랐다가 기울기를
다시, 다시, 다시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장소를 변화시키는
밤의 모든 순간들.
홀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으니, 다른 이들이 보는 대로
보지 않았고, 공동의 샘으로부터
내 열정을 길어낼 수 없었다.
그 똑같은 원천으로부터 나의 슬픔을
얻을 수 없었고, 똑같은 곡조에
내 마음이 즐겁게 깨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한 모든 것, 나 홀로 사랑했다.
내 어린 시절그때,
가장 극심한 폭풍우 몰아친 한 생애의 여명에,
그 모든 선과 악의 심연으로부터
여전히 나를 감싸는 신비를 이끌어내었다.
그 급물살 혹은 그 샘물로부터,
산의 그 붉은 절벽으로부터,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내 주변을 돌던 태양으로부터,
나를 스쳐 날아가던
하늘의 번개로부터,
그 천둥과 폭풍우로부터,
그리고 (배경의 ‘하늘’이 푸른데도)
내 눈에는 악마의 모습을 한
그 구름으로부터.
일상사를 통해 형이상학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것이 예술가의 과제이다. 세잔이 그린 사과는 단순한 사과 이상의 것이다. 혹은 단순한 사과이거나.
부처님은 중생에게 도움이 된다면 대마왕의 모습으로도 나투신다.
고따마 부처님과 같은 인간 존재로서의 부처님의 물리적 모습은 화신(化身)이다. 일반 중생들의 정신적 기질과 요구에 적합하다고 부처님이 추정한 형태이다.
부처님은 온 우주의 중생들을 돕기 위해서 화신(化身)들을 수월하게 나타낸다.
부처님은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도울 수 있지만, 우리는 공덕과 종교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볼 수 없다. 햇빛이 어디에나 똑같이 비추고 있는 것처럼, 부처들은 어디에나 나타나서 교화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힌 배 안에는 햇빛이 들 수 없듯이, 우리의 업(業)이 방해하고 우리가 쌓은 공덕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려는 부처들의 능력이 발휘될 기회가 없는 것이다. 배가 똑바로 세워지면 햇빛이 자연스럽게 비친다. 우리 마음을 정화하고 공덕을 쌓으면, 부처님의 교화 활동들에 대한 이해력도 증진되어 우리는 부처의 4신(四身)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갈피를 못 잡을지도 모른다.
시인이, 만약 한 시인이, ‘진리’나 ‘허구’의
나무 그늘에서 시적 영감을 구하면서도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규칙을 무시한다면 그는
자신의 역할을 거의 살피지 않은 것이고, 아무것도
읽지 않은 것이고, 읽은 것보다도 더 적게 쓴 것이고,
한마디로, 영혼도 분별도 기교도 없는 바보라오.
그 학파, 그 이교적인 그리스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뭐라고 불리건 그 의미는 똑같지만)
그 학파의 논제로도 활용된 다음과 같은 규칙 말이오.
“항상 마음속에서맨 처음 떠오르는 것을 먼저 쓰라.”
포의 작법론 산문들은 한결같이 창작의 지향점으로 ‘진리’나 ‘교훈’이 아닌 ‘예술적 효과’를 강조하였고, 그 ‘효과’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시의 상징성이나 암시성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미묘한 “저류”로 흘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B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포의 시론에 따르면 시적 정서는 “불명료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사실 시인이라는 존재가 시적 영감에 고무되어 ‘격정’의 언어를 토로하는 존재가 아님을 선언한 것이 포 자신이다. 즉 포는 의도한 ‘효과’에 따라 치밀하게 시 세계를 구축하는 ‘자의식적인 창작자’라는 개념을 <작법의 철학>과 <시의 원리> 등에서 제시한, 시대를 앞서간 현대적인 시인이자 이론가라는 것을 기억할 때 그의 시는 전기적인 접근을 넘어 해석의 지평이 확장될 여지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의 시들을 살펴보면 그의 시 세계는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낮과 밤, 아름다움과 두려움, 죽음과 삶, 열정과 광기 등의 경계 지대에서 끊임없이 재현이 무력해지는 모호한 인식을 탐색하고 있으며, 포는 그 모호한 경계 지대를 형상화할 수 있는 이른바 ‘자각몽’적이라 할 자의식적인 미학을 작동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포의 시들은 서정성에 한정되지 않는 시들이 많으며, 그 경계 지대의 혼돈과 모호함과 불안정함이 최면적인 음악성의 도움을 받으면서 종종 극적 성격으로 통어되는 시 세계로 드러난다.
모든 허구 창작은 독창성을 추구하되, 플롯의 맨 마지막 대단원을 정하고 시작되어야 한다고 포는 전제한다. 사건의 얼개를 먼저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효과”를 먼저 확정한 후에, 그 효과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건, 배경, 주제, 소리 등의 디테일을 구성해야 한다.
시의 분량은 지나치게 짧아서도 안 되지만 효과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을 넘어서면 안 된다. 시가 추구하는 예술적 효과는 “영혼을 고양시키는” “깊은 흥분”인데 이것은 장시에서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에 따르면 장시는 엄밀히 말해 “짧은 시적 효과”들이 단속적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최고로 구현하는 어조는 슬픔 혹은 “우울함”이고, 지상에서 “가장 우울한 주제”는 죽음이기에, 죽음이 아름다움과 결합한 주제 즉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시적인 주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포는 시를 넓은 의미에서 “천상의 미를 향한 인간의 갈망”으로 규정하고, 시인의 사명은 그저 삶 속의 다양한 형상, 소리, 향기, 정취를 충실히 묘사해내는 것을 넘어 “영원성과 관련이 될 듯한 아름다움의 한몫”이라도 얻으려고 “분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을 고양시키는 흥분” 속에서 경험되는 시적 정서는 음악에서 가장 잘 성취되며, 언어에 한정된 시의 의미는 음악적인 “리듬이 실린 아름다움의 창조”라고 말한다.
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의 목적은 행복이고, 교훈은 행복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마치 그 수단이 궁극적인 목적인 양 독자를 “설득”하려고 하는 문학에 반대한다.
포는 예술을 “오감이 자연 안에서 영혼의 베일을 통하여 지각한 것의 재현”이라고 정의한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할리우드—20년대, 30년대, 그리고 4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할리우드의 위대한 나날들—는 지극히 이례적인 환경들이 결합합 결과이다. 국내에서는 영화가 연예 산업을 지배했다. 스튜디오들은 자기들만의 배급망과 극장을 갖고 있었다. 동시에 유럽에서는 많은 배우들, 작가들,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피신해왔다. 그래서 영화의 역사의 짧은 기간 동안 할리우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재능과 가장 거대한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상영 독점권을 와해시킨 미국 정부의 조정 명령이 있고, 텔레비전이 도래하고, 전후 매우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유럽 영화가 등장했다—이 모든 일들이 할리우드 와해의 원인이 되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두 번째 영화를 시작했을 때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해, 꿈꾸는 것이 아니야, 라고.
주제는 중국여인이라는 제목의 어떤 영화가 스스로 영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는 배우들일 뿐만 아니라, 배우들을 보여주는 예술적 방식이다. 두 가지 모두이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반영이라는 현실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예술은 거울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울—카메라가 있다.
나는 영화가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는 사물이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카메라로 움직이는 영화라고 이름 붙여진 현실이다. 영화는 그 두 가지 사이에 있다.
16일
철학
올 겨울엔 이런 일이 있었다 진눈깨비 치던 오전 난 택시를 타고 공항터미널로 가고 있었다 그날 제주에서 제주대 대학원박사 논문 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사 옆에 앉고 그는 50대로 보이는 남자 공항터미널로 가면서 그가 힐끗힐끗 곁눈으로 나를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은 무얼 하십니까? 난 검은 바바리를 걸치고 낡은 밤색 가방을 무릎에 놓고있었다 글쎄 뭐 하는 사람 같아요? 그랬더니 기사 왈 철학하는 사람 같군요! 네? 철학이요? 왜 있잖아요? 풍수도 보고 예언도 하는 철학 말입니다 진눈깨비 치던 겨울 오전이었다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 인터뷰 하면서 "어느 시대건 인재가 없었던 적은 없다. 인재를 보는 눈이 없는 지도자의 시대가 있었을 뿐이다"는 말을 듣고서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1701년4월 재위36년을 맞은 숙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어찌 말세여서 인재가 없기 때문이겠는가? 옛부터 창업한 임금은 모두 이전 나라의 인재를등용하여 성공에 이르렀으니, 어느 시대인들 인재가 없겠는가? 다만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해 쓰지 못할 뿐이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진정한 새로움은 창작환경과 유통환경을 바꾸는 데 있지 않나 해요. 아즈마가 지식인이라면 모두가선망하는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겐론’이라는 활동공간 겸 출판사를 차린 것도 그 때문이고요. 자발적으로 자영업자의길을 선택한 것인데, 재미있는 점은 그리고나서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는 고백이에요. 사실 대학인간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학교 안에 있었고 평생을 그 안에서 보내기를 원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사업자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번거로운 문제들과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지요. 학위 같은 것은 종잇장에 불과하고요. 작가는 쓰기만하는 존재로 남을 경우 모든 번거로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만, 자신이 작가이자 출판사 역할까지 하게 되면 문학의 환경이나 유통구조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게 되죠. 하지만 그것이 작가에게도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해요. 발자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러했고요. 이들은 책상 앞에서 펜대만 굴리지 않았죠.
“흐름에 반해 헤엄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흐름의 방향을 알아차리는 것은 현명한 축에 속한다.”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 다리를 저는 내 이웃의 정원에 놓인하나뿐인 화분에 핀 조그마한 식물처럼. 그 화분은 내 이웃에게 기쁨을 주며, 때로는 나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내가 쓰는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글 덕분에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고, 혹시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나름의 가치가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나는 언제까지나 회계사무원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시나 문학은 내 머리에 앉은 나비와 같아서,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나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이다.
17일
나쁜 건 인간이다
옛날 산속에 귀신이 살았습니다. 키도 작고 못생긴 귀신. 발가락이 뒤에 있고 발꿈치는 앞에 있는 귀신. 말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귀신은 마을로 내려와 냄비와 그릇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나쁜 인간들은 종이 냄비와 종이 그릇을 빌려주었습니다. 귀신은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몹시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냄비를 불에 놓았습니다. 냄비도 그릇도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잣집 부엌에서 몰래 그릇들을 훔쳐 마을 사람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정말 나쁜 건 인간입니다. 이건 남회근 선생 '금강경 강의'에 나오는 이야기다.
李賀
당나라 시인 이하는 체구가 가냘프고 연약했고 시를 빨리 지었고 매일 아침 해가 뜨면 허약한 말을 타고 어린 종을 데리고 나서며 종은 등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메고 그는 시가 떠오르면 시를 써서 비단 주머니에 던져 넣고 그는 제목을 정하고시를 짓지 않았으므로 시를 제목에 억지로 맞추지 않았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와 지은 걸 다시 살펴보는 일이 없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지은 시들을 보고 말했다 너는 심장을 토해내야만 그만 두겠구나 그의 시는 일반 규범에서 벗어나 흉내 낼 수 없고 그는 길에서 쓴 많은 시들을 바로 버리고 스무 일곱 살에 죽었다
결국 셰익스피어로부터 피란델로에 이르기까지의 위대한 연극, 그리고 햄릿의 주제는 무대 위에 무대가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영화를 시작할 때 나는 아주 분명한 관점, 하지만 아주 전체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단지 그 관점을 훨씬 더 분명하게 만드는 것 뿐이다.
Q: 고다르, 당신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상적 조건이 있다고 믿는가? 혹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조건—어려움들—이 그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가?
A: 어려움을 가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와 마찬가지이다. 어려움을 뚫고 길을 개척해야 한다.
내가 배우에 대해 좋아하는 점은 그들이 시나리오에 적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른 배우를 기용하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는 정도이다.
나는 적어도 배우의 50%를 영화에 가져간다. 그의 개인적인 삶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을 가져간다. 그를 가르치고 싶지도 않고, 그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그가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있겠지만 강요하기는 싫다.
내가 배우의 얼굴을 찍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배우의 얼굴을 찍는 것은 그 일이 영화에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그 얼굴 뒤에서 다른 무엇인가가, 즉 배우의 진짜 얼굴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 얼굴을 찍은 과정에 있다. 그것이 언제나 내 처음의 목적을 변화시킨다.
우연과 함께 일할 때 아마 한번은 좋을 수 있지만 백번이 나쁠 것이다. 그리고 언제 좋고 나쁠지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을 가질 뿐이다. 우연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통제에 의해 일하는 것 모두를 해보고 싶다.
나는 나 자신을 할리우드 감독이라고, 언더그라운드 감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 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미학을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은 주제에 달려 있다. 『중국여인』은 아주 단순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단순한 일들에 대해 아주 겸허한 태도로 배우려고했기 때문에 형태도 단순해야 했다.
사회적 성격의 여론 조사를 할 때는 매우 주의해서 질문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질문이 질문자가 살고 있는 상황과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촬영된 현실이고 현실에는 어떤 상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상징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삶일 뿐이다. 상징주의는 추상적인 것으로 삶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과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주제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과학학도가 연구실에서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2~3개월 동안 무엇인가를 탐구한 것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삶에서 차이를 추구하려 하는 반면 사실 우리는 유사성을 추구해야 한다. (...) 나에게 과학자와 에세이스트는 동일한 존재이다.
브레송은 영화를 만들 때 음악적 구조가 아니라 “생각하는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
“고다르는 영화의 스콧 피츠제럴드이며 60년대에 있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대에게 여러 예술들이 가졌던 의미의 종합과 비견할 만하다. 즉 반역, 로맨스, 새로운 스타일의 삶이다.”
노동자 계급이나 사회 문제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참여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한에 있어서 참여적이 된다.
영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플래허티의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이다. 즉 다큐멘터리 리얼리즘과 연극이 있고 이 둘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는 결국 동일한 것이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을 통해 연극의 구조에 도달할 수도 있고, 연극적 상상력과 허구를 통해 삶의 실재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앞서 나가야 한다고 느낀다. 여명은 언제나 몇 년 후에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앞서서 어떤 것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해 못할 거지만 상관없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아마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보는 즉시 그것을 이해하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 영화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영화가 모순적이 되기를, 꼭 함께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 나란히 놓여지기를, 즐거운 동시에 슬픈 영화가 되기를 의도했다. 물론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고 이것 혹은 저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법이지만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하고 싶었다.
어쨌든 그때 느꼈던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당장 알아내야 하고, 그것을 해야 하며, 그래서 그 결과가 좋으면, 처음 촬영부터 잘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배후로부터 배우가 모르게 다가가는 것이 좋다. 배우가 혼자 해낼 수 있도록 맡겨 놓고 역할을 파악하려는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저절로 나타나는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순간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차츰차츰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나간다.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영화적으로 보일지에 관해 걱정하지 않고 찍는다.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정말 모르겠다.
눈이 눈을 찾다가 눈을 잃는 거니까 암흑 속을 더 듬어서 밝은 빛을 찾기 전에 시력을 잃어버려 밝던 눈이 어두워져요.
그래서 학습은 목표를 넘어서요. 원하는 걸 얻으려고 학습한 끝에 반드시 해야 할 일거리를 잊어버려요. 열심히 추구하던사물을 성취하나 불타는 성읍처럼 얻자마자 잃어요.
18일
나는 '정책 선거'라는 말을 싫어한다. 정책은 평소에 잘해야지. 선거는 '홍보' 내지 '인식'이다. 대선의 경우 인물 선거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하는지가 대중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시나무, 네 잎이 하얗게 어둠 속을 응시한다.
내 어머니의 머리칼은 결코 세지 않았는데.
민들레, 그렇게 우크라이나는 초록빛이다.
내 금빛 머리칼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비구름, 그대는 우물가를 장식하는가?
내 고요한 어머니는 모두를 위해 울고 있는데.
둥근 별, 그대는 황금 리본을 짠다.
내 어머니의 심장은 납총탄에 상처를 입었는데.
떡갈나무 문, 누가 돌쩌귀에서 그대를 들어올렸는가?
나의 다정한 어머니는 올 수 없는데.
너 역시 노래를 불렀지, 그리고 우리는 안개 속에서 격자를 엮었다네:
아마도, 집행자는 아직 오고 있을 것이고 우리의 심장은 다시 뛸 거라서;
아마도, 탑은 아직 우리 위에서 뒤척일 것이고, 교수대는 떠들썩하게 세워질 거라서;
아마도, 수염은 우리를 일그러뜨릴 것이고 그들의 금발은 붉어질 거라서……
또한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우울이 항아리들에 담겨 나올 거예요:
그들이 마시기 전, 우울은 꽃처럼 한껏 어두워집니다, 마치 물이 아닌 듯,
마치, 한층 더 어두운 사랑에 대해, 수용소의 한층 더 검은 잠자리에 대해, 한층 더 무거운 머리칼에 대해 질문을 받은,
이곳의 천 가지 아름다움인 듯……
그들은 나뭇등걸 주위로 잠처럼 숨어든다, 마치 꿈을 선사하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계속해서 압박해오는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곧 비슷한 상황에 다시금 둘러싸이고 만다. 마치 사물을 주관하는 보이지 않는 섭리 속에 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적대감이라도 있는 것 같다. 내 목을 조르는 어느 손 하나를 간신히 떼어낸다. 곧이어 그 손을 떼어낸 내 손에는, 목에서 손을 떼어내는 순간 내 목에 걸려 있던 올가미가 함께 묶여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올가미를 조심스럽게 벗겨보려 하지만, 내 손으로 내 목을 더욱 조르게 될 뿐이다.
나의 모든 것은 오래전에 죽은 어린아이의 해묵은 앨범 표지에 붙어 있는 광택 나는 왕자 그림 같다.
19일
돼지고기
서해 바다엔 풍랑이 일고 풍랑 속에 배가 떠 있었다 난 누군가 모는 풍뎅이처럼 생긴 차를 타고 해안을 달린다 저녁인지 오후인지 알 수 없지만 해안에도 물이 넘치고 우리는 물 속을 계속 달리고 한참 달리자 돌산이 나오고 돌산에 해가 비치고 돌산 앞 바다에도 풍랑이 인다 우린 돌산 앞 작은 포구에 차를 세운다 포구에선 마을 사람들이 큰 솥에 돼지를 삶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삶은 돼지를 준다 그때 내가 말했지 너무 많습니다 이걸 어떻게 다 먹는담? 속으로 중얼대며 삶은 돼지고기를 손에 들고 풍랑 이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뤼미에르와 에이젠슈테인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겪은 변화를 실천 속에서 연구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즉 현재의 세계에 대한 영화를 만듦으로써 그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며 이것이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곳이 각각의 특수한 투쟁을 갖고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묘사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 주요 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블랙 팬서’가 무장하는 것이 정당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적합한 정책을 나는 모르고, 알려줄 수도 없다.
배급 방식에 대한 걱정은 사람들이 만들 영화 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배급에 대해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제작에만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배급을 바꿀 유형의 영화를 창조한다.
:: 한국 문학의 등단 제도 역시 결국 배급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름난 경로를 통한 등단에의 욕망은 결국 판매와 비평 두 배급에의 욕망이다. 그 배급망에서 자신이 유통되고 싶다는 의지이다. 영화계에는 cj 유통이 아니더라도 독립영화계가 존재한다. 물론 독립영화계 또한 영화제라는 또 다른 배급망이 존재한다. 문단의 배급망은 중앙문단으로 일원화돼 있다. 지방 문단이 있지만 내부 당사자를 제외하면 다른 누구에게도 가시화돼 있지 않다. 아침달 같은 새로운 등단 경로가 만들어지지만 그 역시 일원화된 배급망으로 향하는 또 다른 길일 뿐이다. 문제는 새로운 배급망의 창조이다.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가 그걸 만들 것이다.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돈, 명예 등 물질적/비물질적 보상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카메라 앞에서 급진주의자들을 착취할 뿐이지, 카메라 뒤에 있는 급진적인 감수성을 원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와 대립되도록 내 영화의 이미지들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 수많은 이미지들이 있지만, 말은 거의 없다. (...) 텔레비전에서 베트남에 대한 수많은 이미지들을 보지만,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말은 거의 없다. (...)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갖느니, 아무 이미지도 갖지 않는 것이 낫다.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수백만 권의 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단지 한권의 책을 갖고 있고, 그것이 그들이 필요한 전부이다.
::매혹이 먼저고, 분석은 나중이다.
우리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구분이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모든 것은 허구이다. (...) 베르토프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현실의 요소들을 이용하면서 실제로 픽션 영화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아주 현실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리얼리즘이고, 또 어떻게 우리는 이것을 성취했는가? 그것은 일종의 ‘비현실화’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 이 영화가 연극적 은유로 가득 차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브레히트적인 영화라 하겠다. (...) 즉 사회악을 다루고 싶을 때 영화감독들이 갖게 되는 기본적인 전통과 겨루는 방식이다.
:: "[데뷔작 <앵커리지>를 만들었을 때] 우리는 갓 세상에 나온 고집쟁이들이었고, 사람의 관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게 되죠. 그 무렵에는 진짜 적은 할리우드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진짜 적은 독립영화(Indie)였죠. 할리우드는 자신들이 하는 일에 정직해요. 대개의 경우 독립영화는 주류로 진출하기 위한 욕망을 서툴게 감추면서 늘 일종의 '가짜-저항'의 스탠스를 취하는데, 그러면서 주류의 형식, 템플릿, 구원서사(redemption arcs)를 활용하죠. 얼마간 우리는 그런 선댄스적 감수성 일체에 대한 일종의 응답을 내놓으려 했던 것인데, 다행히도 이제는 그런 게 한층 흔한 입장이 되어서 우린 다른 방향의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C. W. 윈터
TV에 나오는 닉슨의 연설만큼 더 허구적인 것은 없다. 끔찍한 허구, 하지만 어떤 종류의 현실을 지닌 허구. (...)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이 허구와 당신간의 관계이다.
우리는 스크린을 칠판, 흰색 흑판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 칠판에는 세 가지 요소들, 세 가지 사회 세력들이 있으며, 그것은 세 가지 ‘소음들’에 의해 재현된다. 사장의 목소리, 공산당의 목소리, 좌익의 목소리. 이것이 현재 프랑스에 존재하는 세 가지 사회적 힘들이다. 이러한 세 가지 소음들은 현실에서 가져왔다. 우리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질서 있게 모아 놓았을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기 인생의 스타로 생각한다. 그것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현상소로 보내지는 영화는 아니겠지만, 매일 무엇을 만들어내고, 자신에 대한 프로그램을 짜고, 자기 자신이 자기 소유의 컴퓨터, 일종의 마시멜로우 기계가 된다. 매일 아침 자신을 코드화하고, 프로그래밍하고, 컴퓨터로 만든다. 자신이 찍는 영화에 자신을 스타로 기용한다. 자기 자신은 또한 카메라맨, 배우, 엑스트라, 현상소이다.
우리는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소통하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무엇을 소통할 필요가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소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새로운 내용에 맞는 새로운 형식들을 창조하고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두 장의 사진으로 영화를 만듦으로써, 우리는 백만 달러짜리 영화를 상대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적은 것들, 단지 두세 장의 사진과 카세트 하나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여러 해에 걸쳐 말해왔다.
에이젠슈테인은 편집을 갖고 일하지 않았고 단지 한 앵글 다음 다른 앵글을 두었을 뿐이었다. 같은 시간에 베르토프는 실질적으로 편집을 다르고 있었다. (...) 두 이미지들이 서로 교차되는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3의 이미지가 구성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정된 쇼트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트래킹 쇼트를 발명해야 한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똑같아 보일지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맑시스트이거나 마오주의자이기 때문에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의 사회적 이용이 더 중요하다. (...) 사실 전체 영화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 트래킹 쇼트로 간주될 수 있다.
나는 ‘앵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앵글이 무엇인지를 내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다르는 항상 “나는 거의 친구가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한다.
그에게 최근 읽은 것 중에서 좋아하는 픽션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리저리 걷다가 대답했다. “주로 역사책을 읽습니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더 매력적인 길을 보여준다는 것을 언제나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 길도 픽션으로 가는 길이지만, 아직 길도 아니고, 숲과 나무들이 무성하죠. 20년간 픽션을 읽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을 찾으려다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것. 동반자 없는 활동으로서의 연구.
그는 송신기에서 수신기로 가는 신호가 통신로 즉 채널을 지나는데 그때 소음이 더해진다고 썼습니다. 신호의 문제입니다. 친밀한 사람들 사이의 대화. 두 채널 사이에서 일어나는 누출음.
영화는 어떤 이미지에 대한 어떤 이미지에 대한 어떤 이미지입니다. 그 이미지들은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나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한 다음, 다시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다르게 묻는 법을 익히는 것. 좋은 영화는 적절히 제기된 물음들의 문제입니다.” 그는 새로움을 미학적인 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장비라고 믿는다. “사람이 타격을 입었을 때 다음 두 가지 일 중 하나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더 잘 생각하게 되거나, 예전보다 뇌가 더 손상된 상태로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다락방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으면 성당지기가 되는 것이나 포주가 되는 것이나 모두 명예로운 일처럼 보인다.
자신의 적들을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 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적들로 만족하는 순간, 젊음은 끝난 것이다.
우리는 실제 우리 자신보다 아래에 머물러 있어 우리 자신과 일체감을 느낄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원한은 거기서 생기는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타인들에게 복수한다.
나는 불확실함의 바다를 표류하면서 조그만 슬픔이라도 느끼면 마지막 구원의 손길처럼 그것에 매달린다.
모든 중상 비방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우리의 게으름에 대한 것이다. 게으름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주검이란 우리 안에서 준비되고 있는 주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일
추운 바람 속에
이 불은 작년에 켜던 불 작년에 작년에 이 방에 앉아 불을 켜고 작년에 켠 불이 지금 켜는 불 이 봄도 작년에 온 봄이다 오오 이 봄의 허벅지에 쓰는 시도 작년에 쓴 시 오늘이 작년이다 추운 바람 속에 시를 쓰고 비 오고 빗 속에 그대 어깨 떨리고 국밥집 불빛만 따뜻하다 사랑은 무엇이고 비는 무엇인가 내가 작년에 비를 맞는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정당 안에 있으면서 결론을 안에서 도출해나가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 되는것". 민주주의의 기본이 안 된 생각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정당을 만들며 그 정당들이 의회나 공론장, 한 사회안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당정치에서 민주주의는 1차적, 근본적으로 정당내가 아니라 정당간에서 이뤄진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두려움을 빈정거림으로 바꾸는 법을 배운다.
가장 깊은 침체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갑작스레 죽음의 실체를 포착한다. 표현 불가능한 의식의 한계, 언어화가 불가능한 형이상학의 실패,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무식한 노파의 한숨이 철학자의 현학적 말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조용히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그릇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도
그릇된 사랑에 대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컨은 화가로서의 경력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젊었을 때에는 어떤 의미로든 진정한 주제가 없었다고 말하며, 더불어 흥미를 끌 만한 주제를 오랫동안 찾아 헤맸기 때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주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베이컨은 우정이란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혹평하면서 그것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장 유익한 우연은 그림을 어떤 식으로 계속 진행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극도로 절망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베이컨은 절망으로 인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보다 과감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절망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베이컨은 형태들의 배치를 생각한 다음에 그 형태들이 스스로 형성되는 것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런 우연에 의한 형태가 매우 정확하면서도 동시에 모호해야 한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만 이미지가 더욱 생생해진다고 믿었다.
초상화 작업에서 문제는 대상 인물의 맥박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기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상화가 매력적이면서도 어려운 이유입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물감이 내게 지시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캔버스에 올려놓는 이미지가 내게 작품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점차적으로 작품이 형성되면서 드러납니다. 이것이 내가 혼자 있는 것을, 다시 말해 절망감과 함께 남겨져서 캔버스에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나는 캔버스에 붓으로 아주 대략적인 스케치를 그립니다. 대상의 모호한 윤곽만을 그린 뒤 대개 아주 큰 붓을 사용해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즉각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점차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르누아르가 말했습니다. 캔버스를 3개월 동안 벽으로 돌려놓고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잊어야 그 뒤에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 채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요.
나는 가능한 한 가장 특색 없는 제목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작품을 ‘이러저러한 것을 위한 습작’이라고 부릅니다. (...) 나는 가능하면 특색이 없는 제목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이미지 안에서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 제목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즈 야스지로, 나쓰메 소세키의 제목 짓기.
나는 오독에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대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조차도 내가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저 내가 보기 좋은 것을 그릴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그것 말고 달리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겠습니까? 보는 사람을 위한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하는 겁니까? 나는 나 말고는 그 누구도 흥분시키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즉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외관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는 내 삶이 가능한 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저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파에 투표합니다. 그들이 좌파보다는 덜 이상적이어서 좌파의 이상주의로부터 방해를 받게 되는 경우보다 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바보 같은 짓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정말로 그리고 싶은 주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또한 오늘날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수준일지라도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미술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특징들을 제외한다면 결국 사람의 신체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여과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그림을 보다 더 인위적으로, 보다 더 왜곡되게 만들고 싶습니다. (...) 해변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를 그릴 때 유일한 작업 방식은 해변과 파도를 일종의 구조 위에 놓고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해변과 파도를 본래의 맥락으로부터 떼어 내어 상당히 인위적인 구조 속에서 다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 그림에서 나는 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그런 다음에는 우연이 나를 위해 해변과 파도를 던져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인위적이라 해도 그 그림이 해안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와 유사하기를 바랍니다.
해변과 파도를 들어 올려서, 다시 말해 해변과 파도를 파편화하여 전체 그림 안에서 그것들을 들어 올릴 수 있어야 인위적이면서도 해변에 부딪치는 바다를 그린 여느 그림보다 한층 더 실제적으로 보일 겁니다.
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수록 실제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창작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작가의 자기비판을 통해 이루어지며, 작가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아 보이는 것은 그의 비판 감각이 보다 예리하기 때문이라고 종종 생각합니다. 이는 그가 어쨌든 보다 많은 재능을 지녔다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비판감각을 갖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나는 종종 카메라로 그림이 진행되는 과정을 찍어 두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작업 과정 중에 더 진척시키려고 하다가 그림의 최상의 순간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의 의도적 표현을 깨뜨리기 위해 나는 헝겊으로 작품 곳곳을 닦아 나거나 붓을 사용하거나 뭐든 손에 들고 문질러대거나 테레빈유나 물감을 작품에 던집니다. 그러면 이미지는 자발적으로 나의 구조가 아닌 자체적인 구조 안에서 발전하게 됩니다. 그 뒤에 나가 원하는 바에 대한 감각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캔버스에 남겨진 우연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의도적인 이미지의 경우보다 한층 더 유기적인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확실히 자신의 감각 안에 있는 이미지, 즉 정신적인 이미지와는 무관한 자신의 존재 구조 안에 자리 잡은 감각적인 이미지가 우연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할 때 긴장을 더 내려놓게 됩니다. 그다음에 비판적인 측면이 작동하고 우연히 유기적으로 주어진 그 기초 위에서 이미지를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다른 이미지보다 그 이미지가 유기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 이미지에 감각이 달라붙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이 풍경처럼 보이지 않는 풍경화이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그 색이 한층 더 완벽하게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작품에서 자연주의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강렬한 파란색을 원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 물감을 캔버스에 던졌습니다. 파도가 되기를 바라는 부분에 물감을 던졌지만 그것은 파도를 만들지 못했어요. 하지만 거기에 마음에 드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물감이 파도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분출하는 물과 유사해 보였고, 그래서 그것을 뿜어져 나오는 물로 바꾸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내가 다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나는 결코 다 사용하지 못할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형상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즉 어떻게 형상을 실제적으로 보이게끔 만들 것인지, 어떻게 그것에 대해 느끼는 방식에 보다 실제적이게끔, 본능에 보다 실제적이게끔 만들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요즘 정치는 점점 더 저질이 돼가는 듯하다. 여러 대통령을 모셨지만 과거엔 여야 간에 인간적 예우가 있었다. 국회에선날 선 말을 주고받더라도 저녁엔 타협하고 그다음 날엔 웃으며 만나 다시 정치가 굴러갔다. 지금은 국민을 두 파로 갈라서 싸움과 증오를 부추긴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그걸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정치인들 책임이 크다.
나의 멘토 중 한 분이 노신영 전 총리다. 내 첫 부임지인 인도에서 대사로 모실 때부터 총리 의전 비서관으로 일할 때까지 많은 걸 배웠다. 그분은 자주 당태종의 ‘정관정요’를 말씀하셨다. 거기 보면 아랫사람한테 잘 대하라, 그들의 말을 잘 들어라, 자기 고집 세우지 마라 같은 군주의 처세가 나오는데, 노 전 총리는 이게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세라고 강조하셨다. 구체적으로는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꼭 해라, 우표도 직접 붙여라, 거기에 성의가 담긴다’고 하셨지. 사무총장 되고서도 내게 오는 편지와 이메일, 문자에 직접 답장하는 이유다. 그런 걸 노신영 총리에게서 배웠다.
‘신은 누구나 언제든지 용서를 하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한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엘리엇이 이 작품들을 ‘사중주’라고 부른 취지는 거창한 ‘교향곡’에 대비되는 사색적 실내악곡이며, 서너 개의 다른 목소리들이 각기 현악 사중주의 악기들처럼 분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하려는 것이었다.
이 도는 세상의 정지 지점에, 육체도 아니고 육체 없음도 아닌, 떠나오지도 다가가지도 않은, 정지 지점에, 거기 춤이 있어,
붙잡힘도 움직임도 아닌, 또 그걸 고정이라 부르지 마라,
과거와 미래가 모인 거기를. 떠나오지도 다가가지도 않는 운동, 오르지도 기울지도 않는. 그 지점만, 그 정지 지점이 아니라면,
춤이란 없을 터, 또 오직 있는 것은 춤 뿐.
난 ‘거기’에 갔었다 말할 수 있을 뿐, 어딘지는 몰라.
얼마 동안인지도, 말할 수 없어, 말하면 그것을 시간에 놓게 되니.
하지만 과거와 미래를 묶는 사슬이
변하는 육체의 미약함에 엮여,
인간 존재를 천국과 지옥 형벌에서 막아준다
둘 다 육체가 감내할 수 없기에.
하나 오직 시간 안에서만 장미 정원의 그 순간,
비 내리치는 정자의 그 순간,
땅거미 질 때 바짝 마른 교회 안의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으리, 과거와 미래에 연루됐기에.
오직 시간 안에서만 시간은 정복되니.
말들 움직이고, 음악 움직인다
오직 시간 안에서만, 하지만 오직 살 뿐인 것은
오직 죽을 수밖에. 말은, 발화 후에,
침묵에 이른다. 오직 형식, 모형 덕에
말이건 음악이건
정지에 이를 수 있다.
21일
태양을 바라보는 자세를 자주 바꾼 나머지 이제는 어떤 자세가 기준인지 모르겠다.
수줍음이란 방어 본능 이상으로 하나의기술이다. 이해 받지 못한 인간들이 가지는 과대망상으로, 계속 세련돼지는 기술이다.
“호흡을 하다가 좌측 장기 부분이 너무 아팠다. ‘이 뭐꾜’ 화두를 아무리 들어봐도 아픈 고통은 온전히 내 것이더라. 육체라는 것도 맘과 함께 가야 된다는 걸 절감한다. 택시를 타고 배를 움켜쥐고 응급실로 갔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아픈적이 없었다. 의사가 보더니만 배를 수술해야 된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진통제도 효과가 없더라. 3시간 링거 맞고 응급실에서 결가부좌를 틀었다. 오전 5시부터 3시간 집중적으로 호흡을 했다. 그러니 풀어지더라. 기막힘은 결국 호흡으로 풀어야 된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검사하니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이런 참선병이 도처에 숨어 있으니 혼자서 함부로 수행해선 정말 위험하다.”
“고독하고 외롭지 않으면 공부가 안된다. 철저하게 자기와 만나야 된다. 외부에서 찾으면 없다.”
22일
정신이위험한 상태에 있을수록, 피상적이고 경박하게 보이고 싶어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기를 바란다.
30대가 지난 사람이 여러 사건에 대해서 기울이는 관심이 천문학자가 떠도는 소문에 기울이는 관심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에게 가기 위해서 신앙심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자살에 대한 반박:우리의 슬픔에 그리도 기꺼이 봉사했던 이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23일
갈매기 나라
막차를 타고 어머니, 갈매기 나라에 갑니다. 갈매기 나라엔 갈매기만 삽니다. 바람 부는 밤에 갈매기 나라가 보입니다. 내 머리가 갈매기 나라에 닿습니다. 이제 내 머리, 인간을 떠나 갈매기와 함께 있으니, 갈매기는 끼룩거리며 바다의 상처를 알려줍니다. 눈물 한 방울이 썩어 마침내 바다가 됩니다. 바다, 밤마다 생의 플랑크톤 플랑크톤이 내 머리로 들어와 존재가 됩니다.
대추꽃
어느 날 꿈에 그는 빈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넓고 조용하고 마당엔 대추꽃이 막 피어나 초여름 같았다 방에는 낯선 두 세명의 書生이 앉아 그에게 시 짓기를 청했다 그는 시 지을 줄 모르는 서생이지만 시 한 편을 지었다 '나무 위엔 대추꽃 활짝피고/빈집은 적막하여 아무도 없네/봄바람 끝없이 불어와/만리에 봄풀이 새롭구나' 꿈에서 깨어 그는 꿈에 지은 시를 벽에 붙였는데 바람이 웃었다
24일
비
갈매기 하나 유리창에 부딪쳐 피를 흘린다. 비 오는 날엔 술을 파는 상점에서도 술 대신 비를 팔고, 비 오는 날 거리로 나가는 건 나가지 않는 거나 같다. 벌판에 서 있는 정신병원만 유독 비에 젖는다. 비 오는 날엔 누가 찾아와도 이내 떠나버린다. 그가 떠나버린 자리엔 그의 레인코트만 비에 젖을 뿐 아아 육체는 어디 갔는가 정신은 기아는 빵은 모르겠다. 비 오는 날의 빵은 비, 술도 비이다.
“사유는 패배한 다음에, 그리고 행동하기 전에 온다.”
작은 병정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행동을 위한 시간은 지나갔고... 반성을 위한 시간이 왔다.”
삶의 단편들을 참을성을 갖고 충실하게 결합할 수 있으면 가장 훌륭한 전체가 만들어질 것.
먼 곳에 대한 갈망이 사람을 죽게 만든다.
“단순성은 미덕이며, 솔직함은 기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제국주의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기반이 없는 집단 창조란 레스토랑에서의 단체 회식과 실제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싶으면 다르게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보통 어머니가 보고 싶어했었지만, 보고 싶어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은 매우 즐거울 것입니다. 이것은 놀이입니다.
“노동자가 직접 한 말 대신에 여전히 맑스의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정치에 대한 영화가 있고 정치적인 영화가 있습니다. (...) 정치에 대한 영화는 행동을 기록하지만 그 행동의 일부가 아닙니다. (...) “정치에 대한 영화”는 픽션과 그 픽션에 대한 관념이 정치적인 요소에 의해 문제로 떠오르지 않은 영화이다. 반면 “정치적인 영화”는 의심을 제기한다.
범죄적 제보자들이 있습니다. 범죄적 비-제보자들 말입니다. 실제 범죄가 일어난 경우에 범죄자는 진짜 질병은 거론하지않은 채 그 사건을 보고하는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들은 암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고 환자에게 이야기하는 의사와 같습니다.
지금은 롱 쇼트가 적어졌습니다. 스티브 맥퀸과 영화를 만든다면 무도회 장면의 롱 쇼트는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티브 맥퀸에게 훨씬 많은 돈을 쓰니까요.
고다르를 보면 나는 그 누구보다 브레히트를 연상하게 된다. 그들은 비슷하게 하층민적 서정성, 패러독스에 대한 경사, 건조한 이론화에 대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이론이 그들의 작품이 가진 접근 가능한 풍요로움에 의해 반박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나는 언제나 배급업자, 텔레비전 간부, 큰 회사로부터 금지되었다. 내게 가해진 검열은 ‘섹스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라거나 폴란드에서처럼 ‘정부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였다.
그들이 우릴 속인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을 속인 것인가, 목소리 잠잠한 노스승들,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고작 속임수 지침서?
그 평정이란 신중히 꾸며낸 둔감함일 뿐,
죽은 비밀들이나 아는 지혜일 뿐
이들이 삐죽 들여다본 그 어둠 속에선 쓸모없어
아니면 그 어둠을 피해 눈들 돌리셨나. 가만 보면
기껏해야 제한된 가치밖에 없다
경험에서 파생된 지식이라는 것에는.
그 지식은 짜인 틀을 덧씌우고, 또 위조한다,
틀이란 매 순간 새것이기에
또 매 순간은 새것이고 또 충격적으로
이제껏 우리 삶을 모조리 견적내기에. 우리를 속이지
못하는 것들은 오직 속이되, 더는 해하지 못하는 것들뿐.
아직 믿음은 있으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있는 것.
생각 없이 기다리라, 너는 아직 생각할 채비 되지 않았으니.
그리하여 어둠이 빛으로, 잠잠함이 춤사위로 변하도록.
그대는 말하겠지 내가 반복한다고
내가 이미 전에 한 말들을. 나는 다시 그 말 하리라.
내가 다시 그 말 해봐? 거기에 이르려면
네가 있는 거기에 이르려면, 네가 없는 거기에서 떠나려면
너는 그 길 아무 환희 없는 길로 가야 한다.
네가 알지 못하는 바에 이르려면
너는 그 길 곧 무지의 길로 가야 한다.
네가 소유하지 못한 그것을 가지려면
너는 소유 상실의 길로 가야 한다.
네가 아닌 그것에 이르려면
너는 그 길 곧 네가 아닌 길을 통해 가야 한다.
또 네가 알지 못하는 바만이 네가 아는 바요
또 네가 가진 것은 네가 갖지 못한 것이요
또 네가 있는 그곳은 네가 없는 곳.
우리의 건강은 오직 저 질병뿐
우리가 죽어가는 간호사께 순종한다면
그가 늘 살피는 바는 기분 좋은지가 아니라
우리와 또 아담의 저주를 기억하게 함이며,
또, 나아 회복되려면, 우리 병이 더 깊어져야 함이며.
이미 발견된 것들,
한두 번, 아니면 여러 번, 그 발견자들은 우리가 감히
겨뤄보기 힘든 이들—하지만 경쟁은 무슨 경쟁—
오직 잃은 것들 되찾자는 싸움만 할 뿐
또 찾았다 다시 잃고 또 잃은 그것들을. 게다가 지금, 상황은
불길해 보이니. 하지만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아닐지도.
우리의 몫은 오직 시도하는 것. 나머진 우리 알 바 아니다.
사랑이 제일 제 모습다운 경우는
지금과 여기가 더는 상관없을 때.
25일
라산스카
바로크 시대 음악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성탄절 무렵, 생기 없는 죽음의 계절
성탄절 무렵, 생기 없는 죽음의 계절,
앞서 내가 말했던 그때,
늑대들 바람을 먹고 살아가는 때,
또 농무(濃霧)와 서리로 인해, 모두들 제 집에 틀어박혀,
깜부기불 근처에 머무르는 때,
한 가지 소망 나를 사로잡으니,
내 마음을 조각내는
지극한 사랑의 감옥을 깨뜨리고 싶구나.
1. 내가 말했다고 상대가 들은 것은 아님
2. 상대가 들었다고 상대가 이해한 것은 아님
3. 상대가 이해했다고 수용한 것은 아님
4. 상대가 수용했어도 그렇게 행동하겠다는 것은 아님
26일
서울대 법대 출신들은 왜 그리 무식하냐?
음. 그냥 주어진 시간에 뭘 했느냐의 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창 가장 습득력이 좋을 때 전문지식을 머리에 효과적으로 우겨 넣어야 하고 그걸로 경쟁하는 직군들이, 그 나이에 맞는 기본 소양까지 갖추기는 실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 직업군에서 발군이 되려면 또 우선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이 있는게 사실이고요. 폭넓은 상식은 빈곤한 전문성의 결과일때도 많아서 문이과적인 전인성을 갖춘 인재가 좋을 것 같지만 실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지식인인 경우도 허다하니까요...결국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겠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직업의 선택이다. 우연이 그것을 좌우하며 습관이 석공, 군인, 기와장이를 만든다. 습관의 힘은 매우 크기 때문에, 자연이 그냥 인간으로 만들어낸 것을 인간은 여러 신분을 만들어냈다.
27일
그대는 설치된 올가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나보다 앞서 걸으며,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
숲속에 내동댕이쳤지.
나는 불안하고도 소중한 어린 묘목 같은 나의 유산,
교수형과 추방을 면하고 이 땅에 붙어살 수 있도록
어렵게 얻어낸 사냥의 권리를
그대가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을 보았어. 그대는 울부짖었지
“살인자들!”
그런데 그린 선들이 갑자기 전혀 다른 것을 제시해 주었고 그로부터 그 작품이 생겨난 겁니다. 내게는 그 작품을 그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그 그림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우연이 계속 겹치면서 이어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별안간 전혀 다른 감각 영역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 그것은 홀연히 이미지 전체를 암시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게 된 이유도 기억합니까?
그저 지루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기존의 이미지들은 내게 다른 이미지들을 여럿 제공해 줍니다. 물론 나는 항상 그것들을 새롭게 만들고자 합니다.
실제로 그림은 물감에 의해서 자체적으로 왜곡됩니다. (...) 물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능가하는 뛰어난 작용을 많이 합니다.
우연 중에서 어떤 것들을 보존할지 결정하는 것은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물론 나는 우연의 활력을 간직하면서 연속성을 지키고자 합니다.
나는 그림이 온전히 자기만의 삶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덫을 놓아 잡고자 하는 이미지처럼 독립적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자력으로 살기 때문에 이미지의 본질을 보다 통렬하게 전달합니다.
좀 더 노력을 기울여 진척시키려고 하다가 그림이 그 특성을 모조리 잃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나는 더 나은 그림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유화 물감은 너무나 섬세해서 한 가지 색이나 소량의 물감만으로도 이미지를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시켜서 함축하는 의미를 완전히 바꾸기 때문입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떠오른 최초의 출발점을 포착하여 마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거의 직접적으로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다가 그 이후에는 우연적으로 발생한 그 작품을 의지력으로 더 멀리 밀고 나가는 것에 모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비판을 통해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아주 드뭅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 두 장소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지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 경험이 나쁜 것이라면 그것은 반복이다. 그 경험이 좋다면 그것은 나선형으로 상승할 것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규칙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라고 느끼고 있다. 무조건 반항하거나 복종할 필요는 없다. 시스템 속에서 자기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바꾸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것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미지의 것을 발견해야 한다.
모잠비크에서는 전혀 이미지가 없다. 인구의 80%는 어떤 이미지도 본 적이 없고, 오직 자연만을 보았을 뿐이다. (...)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이미지는 아주 정교해서 더 이상 그것을 읽어낼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나는 그 중간에 살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읽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서 말은 언제나 첫 번째로 오고, 이미지가 두 번째이다. (...) 우리는 다시 이미지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멜리에스는 움직임의 환영을 만드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서로 상이한 종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성 영화에서는 속도의 엄청난 다양성이 있었고, 카메라가 아니라 배우가 그 속도를 결정하였다. 지금 우리는 그 다양성을 잃어버렸고, 항상 같은 리듬 안에 있다. 무성 영화의 리듬들은 유성 영화에서 배우들이 말하는 대사에 의해 늦추어지고, 움직임을 상실해 버렸다.
사물을 보고, 연구하고, 인화하기 위해, 마이크로폰처럼 카메라를 사용하기 위해 슈퍼-8처럼 가벼운 카메라가 필요할 것이다. 먼저 이러한 기술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오직 그런 다음에야 예술과 미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전설로 있기보다 전설과 싸우는 편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전설은 전설과 싸우는 사람의 전설이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속도로 달리게 되면, 올림픽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영화에서만 모든 영화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갖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것. (...)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두 장소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중요한 건 움직임이지,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내 일을 통해 사물들을 두렵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는 이미지와 함께 있으면 더욱 용기가 솟는다.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나 자신을 바깥으로 투사해야 한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것이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다음 보여진 것은 뒤에 두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미지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광객과 같은 것이다.
내게는 일/휴가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더 밀접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28일
내가 영화에서 계속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적인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다. 테이블이나 의자, 신문이 우리에게 봉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 우리 앞에 놓여진 이 테이블만 보더라도, 만들어진 방식 그 자체로 우리에게 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이 테이블이 잘 만들어졌다면 영원히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부서져 버릴 것이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것을 만든 사람은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이다.
물질적인 영화라는 것은 예쁜 화면들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움직임, 느낌의 방식이며, 영화가 가진 그러한 정신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다.
하루하루
언젠가 비전향 장기수 노인 한 분과 대화하며 다소 상투적인 질문을 드렸다. 수십 년을 어떻게 버티셨는가? 그는 답했다. 수십 년도 역시 하루하루니까요. 매일 일어나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동지들과 토론하다 보니 수십 년이 흐른 거라고 했다. 그분의 이념은 다 동의할 수 없지만 (특히 북한 지배체제에 관한)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었다. 586의 행태는 많은 사람에게 도를 넘은 탐욕이라 여겨진다. 굳이 저렇게까지 탐욕을 부릴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실은 빈곤이다. 가치의 빈곤. 삶에 남은 가치가 그런 것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 직함, 부동산, 자식의 체제 내 안정 등. 그들은 그 가치들을 위해 오래 전 다른 가치들을 위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동지들과 함께 굴하지 않고 투쟁한다. 그들의 가치들은 어떻게 사라졌을까. 그들도 잘 모른다. 그들의 수십년 역시 하루하루였다.
29일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 속에서 대단히 많은 암시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사진들은 사람들이 발로 밟거나 구겨서 크게 훼손된 것들입니다. 그런 경우 예를 들면 렘브란트 작품의 이미지에 다른 의미들을 더해 주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렘브란트의 작품이 아니게 됩니다.
화가는 삶에 대한 감각과 느낌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오늘날의 모든 미술가들이 그러하듯 전통에서 벗어나 있을 때에는 특정 상황에 대한 느낌을 자신의 신경계에 최대한 접근하여 기록하는 것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아마도 나는 풍요와 결핍 사이의, 또는 힘과 그와 반대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일겁니다.
나는 항상 가능한 한 직접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무언가가 직접적으로 다가오면 사람들은 공포스럽다고 느낍니다.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때때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거든요. 사람들은 사실 또는 진실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불쾌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우연이 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측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가 나를 도와준다면 나는 그것을 나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나는 우연과 우연이 가져다주는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만큼 순수한 우연이고 얼마만큼 조작된 우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경우에 우연은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할 때 작동합니다. 내가 좀 더 정확하게 모방하려 할 때 보다 삽화적이라는 의미에서 이미지는 극도로 진부해집니다.
내 경우에는 가장 생생한 순간에 사실을 포획할 수 있는 덫을 놓을 수 있느냐가 궁극적인 문제입니다.
나는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우연을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우연은 그런 것입니다.
삽화적인 형태는 사고력을 통해 형태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즉각적으로 말해 주는 반면 비삽화적인 형태는 먼저 감각에 호소하고 그다음에 서서히 사실을 향해 다시 흘러간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실의 불가사의는 비이성적인 흔적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추상표현주의는 렘브란트의 흔적에서 모두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렘브란트 작품에서 그것은 다른 한 가지와 함께 이루어졌는데, 바로 사실을 기록하려는 시도입니다. 따라서 내게는 이 작품이 훨씬 더 흥미롭고 심오합니다.
훌륭한 미술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 질서 안에 대단히 본능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같은 것들은 사실을 정리하여 보다 격렬한 방식을 통해 신경계로 되돌리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미술이 기록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추상미술에는 보도가 없기 때문에 거기에는 작가의 미학과 그의 몇 가지 감각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어떠한 긴장감도 없습니다.
유행은 당신이 특정한 것들에 감동을 받아야 하고 그밖의 다른 것들에는 감동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게 성공한 미술가들조차 자신의 작품이 조금이라도 좋은지 아닌지를 결코 알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사람은 항상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에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 나는 미술이 삶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큰 집착은 스스로에 대한 것입니다. 아마 그다음은 동물이고, 풍경이 그 뒤에 올 겁니다.
나는 폴 발레리가 말했던 ‘전달의 지루함’ 없이 감각을 전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야기가 개입하면 지루함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나는 우리가 오늘날 매우 기이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양극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에는 경찰 보고서와 매우 흡사한 직접적인 기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훌륭한 미술을 창조하려는 시도만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시대에 그 중간이란 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단순한 사실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 이미지의 실재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으로 이끄는 감각의 영역을 열어 주는 것, 이와 같은 것들이 살아 있는 날것으로 포획되어 보존되고 최종적으로는 고정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늘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화가를 찾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의 자질과 감각을 신뢰하기에 내 작품을 진심으로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판단을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다른 예술 분야에서 예를 들자면 엘리엇과 에즈라 파운드, 예이츠가 함께 활동하던 상황이 매우 부럽습니다. 파운드는 황무지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30일
허나 밤이 좋다
허나 밤이 좋다
악몽만 있는 밤이
창백한 망치로 두드리는 밤이
나를 나에게서 분리하는 밤이
나는 좋다
그래도 나는 밤이 좋다
꿈 속에 떠 있는 밤
의식 없는 밤
나는 밤의 주인은 아니지만
밤의 주인은 떠난지 오래다
몇번이나 돌아 누우며
바람 소리만 들리는 밤
아무도 없는 밤
한번도 꿈꾸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밤
과거만 있는 밤
코도 없는 밤
코만 있는 밤
지남철도 없는 밤
이 구부러진 밤이
나는 좋다 횔더린의 궁핍한
시대도 미래도 모조리 잠든 밤
불빛도 불빛도 죽은 밤
비행기도 없는 밤이
나는 좋다
누가 뭐래도 좋다
영혼 따위가 없는 밤
몽상 따위가 없는 밤
악몽만 있는 밤 한없이
식어가는 육체만 있는
이 밤이 나를 나에게서
분리하는 이 밤이
나는 좋다
너무 좋아서
이윽고 나는 밤을
꽉 깨물어 버린다
"당파주의는 현안이 되는 논쟁보다는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두며 실제 문제보다는 사소한 점에 먼저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당파주의는 상대 당의 생각을 모반에 가까운 위험한 것으로 몰아붙이게 만들었다. 전통 한국의 정치생활에서 이러한 당파주의의 일부, 다시 말해서 당파주의의 유산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후유증은 많이 남아있어, 건전하고 근대화된 사회를 건설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31일
군자란 자신이 사는 마을을 편안히 여기는 사람이다.
2022년
1월
1일
누군가는 베일리를 모든 아방가르드 필름메이커들 중 가장 미국인스러운 인물로 일컫기도 한다. 브루스 베일리에게는 이 드넓은 나라, 미국의 널찍함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내가 브래키지의 영화를 어떠한 형식적인 이미지의 특징으로 기억한다면, 내가 마르코풀로스의 영화를 그의 영화 언어의 타협점 없는 순수함 때문에 기억한다면, 나는 베일리의 특정한 이미지들,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생겨나는 특정한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그를 기억한다. 기묘하게도, 그러한 이미지들은 언제나 여행이나, 국토 횡단, 드넓은 공간, 거대한 미대륙을 가로지르는 것과 관련있고, 그 거대함은 『키호테』에서 아리조나 혹은 다른 어딘가의 사막에서 찍은 아주 천천히 사막을 횡단하는 거북의 이미지로 완벽하게 상징되었다.
그의 영화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그는 매우 안정적이고 매우 확실하며 항상 일정한 이미지, 아마도 항상 동일한 이미지를 좇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각각의 영화에서, 누군가는 그가 그 이미지를 찾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미지는, 그 꿈은 아직 그가 손에 넣지 못했고 여전히 다른 곳에 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또 다른 시선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든다.
20세기 사회주의는 변명의 여지 없이 자유와 풍요의 달성에서 자본주의에 패배했다. '진정한', '민주적', 어쩌구 저쩌구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고 사회주의가 살아나진 않는다. 사람도 그렇지만 이념도,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구차해진다.
20세기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던 것일까? 핵심만 꼽아보면, 두 가지다.
첫째, 시장을 대체한 국유화-계획경제의 결함이다.
시장의 장점은 경쟁과 가격을 매개로 생산요소와 생산결과를 최적화한다는 점이다. 단점은 이윤율 하락 시 자본과 노동 모두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놀린다는 점이다. 국유화-계획경제는 경제개발 초기에는 이 둘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가 고도화된 후에는 둘 모두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경쟁과 가격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피드백을 만들 수 없었던게 원인이다.
둘째, 자유주의적 공화국을 대체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정부의 결함이다.
자유주의 공화국의 장점은 입법부가 만든 법에 의해 정부가 제한되고, 독립적 사법부에 의해서 위법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단점은 오랜 기간 기득권을 가졌던 집단이 정부 구성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PT독재 정부는 법치를 당치로 바꾸고, 노동자 농민의 직접 민주주의로 당을 운영하는 게 지향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는 실현된 적이 없다. 공산당의 독재, 공산당 지도자의 독재로 이어졌을 뿐이다. 자유주의 공화국의 단점을 해결하지 못했고, 장점도 계승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주의가 지금은 유효할까? 당연히 아니다. 이건 야만이다. 다만, 흥미로운 건 오류를 세련된 말로 답습하려는 사람들이 최근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일자리)부터 분배(소득)까지 모두 해결해주는 전지전능한 정부론이 진보진영의 컨센서스이다. 법치보다 '민주당의 장기집권'이 더 중요하고,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올바름', 심지어 특정 역사관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다. 일부 급진 좌파들의 경우 국유화-계획경제와 PT독재를 아예 그대로 주장하기도 한다. 스탈린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과연 이것들이 20세기 사회주의의 결함과 근본적으로 다를까? 난 아니라고 본다.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는 세계의 표준-영미 자유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21세기에 어떤 대안 이념이 출현한다면, 그 이념은 20세기 영미 자유주의의 결함과 공백을 정밀하게 개선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포퓰리즘 비판이 현재는 가장 중요하다. 왜냐면 포퓰리즘이란 20세기 자유주의가 단단히 고장났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엇이 고장났는지 파악하지 않고, 여기다 대고 이제는 '사회주의'닷! 외치는 건 20세기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시
시를 써서 무엇 하나 횡설수설 시를 쓰고 잡지에 발표하고 발표해서 무엇하나 잠이 오면 잠이 들지만 잠이 들어 무엇 하고 공부해서 무엇 하고 무엇이 무엇인가 이 시가 속일 뿐이다 글 없는 글, 말 없는 말, 시 없는 시가 있다면 한줌에 들고 그대 찾아 가리라 문을 닫아도 눈이 오고 문을 열어도 눈이 오네
2일
많은 교육계 인사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학 서열이 학벌주의 때문이라거나 학생 서열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를 모두 반박한다. 대학 서열화의 결정적 원인은 ‘돈의 격차’에 있다. 대학 간 재정 격차로 인한 교육 여건의 격차, 특히 학생 1인당 투입하는 교육비나 교수 1인당 학생 비율이 대학 서열화의 결정적 원인이다. 학벌이 존재하지 않는 신생대학에서 단기간에 명문대가 된 포항공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의 사례를 보라. 학벌은 대학 서열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한국이 ‘보편적 원격 교육’에 성공한 요인은 높은 인터넷·스마트기기 보급률, 접속 환경이 열악한 학생에 대한 효과적 지원, 공공기관이 미리 준비한 플랫폼과 콘텐츠, 엄청난 동시접속을 견뎌낸 시스템 지원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 나라는 한국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런데 과연 미리 녹화된 동영상 강의를 위주로 했다면 미네르바 스쿨이 개교와 동시에 그렇게 인기를 끌고, 애리조나주립대가 온라인 학점·학위를 오프라인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이것은 실시간 쌍방향 연결이 가능해진 덕이 크다. 쌍방향으로 수업, 토론, 팀활동 등이 가능해지면서 오프라인 못지않은 다양한 수업·평가 방법을 활용하게 되었고 이로써 교육 효과가 높아진 것이다.
한국에서 ‘창의적 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공허하다. 대부분 ‘교사’를 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창의적 요리를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정작 요리사에게 식재료는 어떤 마트에서만 사라, 요리도구와 조미료는 무엇만 사용해라, 요리를 구상할 시간은 1시간밖에 못 주겠다…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통제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인풋의 양이 많더라도 추상화와 구조화를 할 수 없으면 ‘만물박사’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황에 따라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한 지식 운용은 어렵다.
음악을 배우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이를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전체를 직감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일
역사가적 발상이란 참 모순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거의 필연의 길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 그때 견디기 어렵다고 몸부림쳤지만 그러면서도 발전해 온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어두운 시대를 겪고 나면 그것을 부정하는 새 시대가 오는 것이니까. 나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용하게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역사를 개개인의 노력이 곧 열매를 맺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를 인도한다고나 할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 내 지난날이 있었고 그것은 불가피했다는 의미에서 만족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고. 역사에 공헌했다는 그런 자부나 자신은 조금도 없다.
지난날의 역사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담담하게 기록해야겠지. 오늘의 현실에서 지난날의 역사를 바라보면 그 당시의 악이 오늘의 선을 낳게 했다고 해야 하겠고 그것이 모두 필연의 길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로마 지배하의 어두운 이스라엘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로마의 어둠을 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역사의 필연을 바라보면서 악과 선을 그려내야 하지 않을까.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란 이제는 없는 것 아닌가?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지 어느 계층만을 두둔하는 것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유럽에서도 사회당 계통이 설 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행동하는 방식이 그들의 자질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술, 고문, 섹스, 전쟁.
어떤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고, 어떤 이들은 그 세상이다. 어느 미국인 백만장자, 카이사르 또는 나폴레옹이나 레닌, 작은 마을의 사회주의 지도자 사이에는 질적 차이는 없고 양적 차이만 있다. 그들 아래에는 우리같이 눈에 띄지 않는 이들, 즉 경솔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학교 선생 존 밀턴과 방랑자 단테 알리기에리, 어제 나에게 우편물을 가져다준 배달원이나 잡담을 들려준 이발사, 바로 오늘 포도주 반병을 남긴 나를 보고 쾌차를 빌어주는 동지애를 발휘한 식당 종업원이 있다.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추한 부분은 빼버리고 미덕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들판의 푸름에 대한 묘사에서 들판은 실제보다 더욱 푸르다. 상상 속에서 묘사한 꽃의 색깔은 세포의 실제 생명력 이상의 영속성을 갖게 된다.
생각이 편협한 평론가들은 어떤 시는 길게 운율을 맞추지만 결국은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하는 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아름다운 날은 곧 지나가버린다. 그 아름다운 날을 미사여구로 꾸민 기억 안에 잘 보존하여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저 공허한 세상의 들판과 하늘에서 새로운 꽃과 별로 빛나게 하자.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뒤에 오는 이들에게 우리라는 존재의 모든 것은, 우리가 강렬하게 상상할 것들, 즉 상상을 구체화하여 현실로 이루어낼 것들이다. 역사는 빛바랜 파노라마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해석들의 흐름과 믿을 수 없는 증인들의 혼란스러운 합의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소설가이고 우리가 본 것을 말하는데, 보는 것은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복잡한 일이다.
나에게는 형용사 하나의 쓰임이 실제로 흘리는 눈물보다 더 중요하다.
그림을 그릴 때 생각에 빠지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우연의 게임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늘 스스로 우연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나타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미술가는 영매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미로에서 빈터로 향하는 출구를 찾습니다.
창조적인 활동에서 미술가는 의도로부터 전적으로 주관적인 반응의 사슬을 통해 실현으로 나아갑니다. 실현을 향한 그의 분투는 노력과 고통, 만족, 거부, 결정의 연속입니다. 또한 이는 적어도 미학적인 차원에서는 완벽히 자의식적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물감의 폭력성은 전쟁의 폭력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실재의 폭력성 자체를 새롭게 만들려는 시도와 관계가 있죠. 그리고 실재의 폭력성은 장미 등이 폭력적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단순한 폭력성일 뿐만 아니라 물감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이미지 자체에 내포된 암시의 폭력성이기도 합니다.
테이블 건너편의 당신을 볼 때 나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으로부터 발산되는 전체를 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장막을 두른 채 살아갑니다. 가려진 존재인 셈이죠. 때때로 사람들이 내 작품이 폭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할 때 내가 가끔은 그 장막 한두 겹을 제거할 수 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베이컨: 모든 예술은 분명히 본능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본능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죠.
실베스터: 그렇지만 그것은 훈련과 연습,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본능입니다.
나는 그것이 행운의 연속인지, 화가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본능인지, 또는 본능과 의식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 화가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것인지 여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하고 있는 작업이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을 때 나는 곧장 붓을 집어 들고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아무 데나 물감을 찍어 발랐습니다. 그러면 종종 작업이 갑자기 잘 풀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실베스터: 우연은 항상 존재하고 통제도 항상 존재하며, 따라서 그 둘은 상당히 중복된다.
베이컨: 프랑크와 같은 사람들이 그것은 운이나 우연 또는 무엇이라 부르건 여하튼 당신이 칭하는 바가 아니라고 말할 때 나는 그들이 말하려는 바를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의 의미를 알지는 못합니다. (...) 이는 무의식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언제나 그림에 대한 가망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저 주변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죠. 자신의 그림을 설명할 수 있다면 본능을 설명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베스터: 아니요. 자신의 그림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그림이든 또는 다른 어떤 그림이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지만 자신의 그림에 대한 설명에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알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나는 캔버스 위에 벌어진 흔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떻게 이와 같은 특정한 형태로 발전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 거의 처음 보듯 바라봅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그것을 향해 비이성적인 형태를 밀고 나가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내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바를 알긴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하는 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연이나 운이 나를 위해 가져다주길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작업 과정은 운이나 우연 혹은 직감과 비판적인 감각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실베스터: 나는 모든 미술이 이해가 쉽지 않은 이 두 가지 결합, 곧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과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충분히 거리를 두는 것, 이 양자의 결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라는 바를 시도하는 비논리적인 방법이 논리적인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비논리적인 방식을 통해 작품에 홀연히 외관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그 외관은 완벽하게 사실적인 이미지, 즉 초상화의 경우에는 대상 인물임을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될 것입니다.
나는 늘 우연이나 운을 통해 외관이 존재하되 그것과는 다른 형태로부터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 얼굴 맞은편에 머리 전체에 난 구멍인 것처럼 입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입과 유사할 수 있습니다.
기법을 바꾸고자 노력함으로써 자신에게 철저히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 뒤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매우 성공적으로 기법을 바꾸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기법을 사용하긴 하지만, 나는 그걸 이전에 만들어진 기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작업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도 않죠.
실베스터: 나로서는 일종의 피상적인 쾌락주의, 즉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르는 듯 보이는,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욕구는 삶을 전적으로 지루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흐는 한 편지에서 실재의 변형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그 변형은 정확한 진실보다 더 진실한 거짓이 됩니다. (...)
미술에서 실재는 대단히 인위적인 것이며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히 대상에 대한 삽화에 지나지 않을 테고, 대단히 간접적인 것이 될 겁니다.
4일
어떠한 사회적 재현이든 간에 그 본질적 재료는 사회적 유형, 장르적 유형(“주인공”과 같은) 혹은 심리적 유형과 같은 전형화된 유형에 묶여있다. 더 와이어도 그런 인지 가능한 유형적 존재들을 모든 층위에 배가시키므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지는 그것이 그러한 유형적 차원에서 가져올 수 있는 수정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에 달렸다. 특정 모더니즘 사조는 이러한 유형화의 문제를 그 유형들에 과도하게 미시적으로 다가감으로써 그것이 기반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을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하고 그 유형들을 개별성과 특이성들로 해소시키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도 익숙한 유형을 출발지점으로 삼아야 하고 한편에서는 새롭고 더 주관적인 유형의 출현과 다른 한편에서는 외재적인 사회적 출발지점으로의 아이러니한 회귀라는 이중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여기서 범죄자 개인이 범죄의 수수께끼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사회가 재현에 개방되어야 하고 새로운 차원 혹은 외국 문화처럼 추적되고, 식별되고, 탐사되고, 지도 그려져야 한다. 그때부터 “박스데일”은 수사와 등록의 새로운 수단을 필요로 하는 전체 사회구성체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새로운 사회적 동학을 추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리얼리즘이 발명되어야 하듯이).
이러한 “발견” 혹은 해결책은 전체 환경, 평화-애호적인 부르주아 시민사회로부터 배제된 부분사회 내지는 전체사회의 세계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탐정” 역시도 그러한 세계의 일원이고 공모자이다.
고독한 사립탐정 혹은 헌신적인 경찰관은 낭만주의적 영웅과 반항아(아마도 밀턴의 사탄이 최초일 것이다)에서 연원하는 익숙한 플롯을 제공한다. 점차 사회화되고 집합적이게 되어가는 역사적 공간에서 진정한 봉기 그리고 저항은, 음모가 그룹, 진정한 집단(사르트르는 그것을 연속적인 대중사회 내의 융합된 집단의 형성이라 부를 것이다)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이곳에서 서서히 분명해지고 있다. 여기서 지미 자신의 반항기질(못 말리는 이상주의와 더불어 권위에 대한 불복종, 알코올중독, 성적일탈)은 있을법하지 않은 조합의 동료와 공모자들을 만나게 된다. 레즈비언 경찰, 영리하지만 믿음직스럽지는 않은 한 쌍의 경찰,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지만 이러한 흔치 않은 모험만이 승진의 기회를 줄 것이라는 직감을 가진 경감, 나중에 숫자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둔하고 이기적인 낙하산 인사, 다양한 사법적 조력자, 마지막으로 과묵하고 잘 나서지 않는 해결사.
레스터 프리먼(클라크 피터스)의 천부적 재능은 이러한 문제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 뿐만 아니라 일부 순수한 미스터리적이고 탐정물적 관심사를 건축적이고 물리적인 혹은 공학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매혹으로 옮겨놓는다. 말하자면 추상적인 추론보다는 손재주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처음에 발굴되어서 특별수사팀에 합류할 것을 권유받을 때만 해도 프리먼은 남는 시간에 앤티크 가구 미니어쳐를 조립(그의 부업이다)하는 데 소일하는 사실상의 퇴물경찰관이었다. 이는 인간과 그의 지적 생산성의 낭비에 대한 우화이며 그런 생산성이 그의 열정과 창조력을 여전히 흡수하는 보다 사소하지만 십자말맞추기보다는 그나마 더 나은 활동으로 전치되는―이마저도 운이 좋은 경우지만―것에 대한 우화이다.
마피아와 기업체 간의 비교는 그런 점에서 단지 은유적이거나 비유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 순간에 우리는 위와 유사한 거의 미학적인 창조성을 보게 된다. 스트링거는 박스데일의 패거리를 점차 재조직하고 상품, 경쟁, 투자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사업(la douceur du commerce: 그것은 중세적 야만성을 길들인다)에 언제나 해로운 살육전을 피하도록 갱들을 종용한다. 나는 이 문맥에서 의도적으로 창조성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상당히 정체되어 있고 모든 오랜 문제점들과 역기능을 일으키는 통상적인 관례대로 운영되는 데 만족하는 관료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 요소가 원유토피아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지점에서부터 이미 더 와이어는 정적인 현실을 복제하거나 기존의 모방적이고 자가복제적인 의미에서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다양한 차원의 미시적 레벨에서 이곳의 사회는 숙고된 변화의 과정에, 인간의 프로젝트에, 관습과 전통의 단순한 관성이 아닌 유토피아적 의도의 실천에 종속된 것으로 나타난다.
아도르노는 모더니즘 문학의 목적론이 너무 센티멘털하고 너무 익숙하고 너무 진부하고 전형적이어서 더 이상 예술작업에 사용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터부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론은 비록 반복의 희열이 그 안에서 보다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모더니즘 문학은 반복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최소한 반복을 좀 더 고결하거나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번역하려 모색했던 반면 대중문화는 틀에 박힌 것이라 불리곤 했던 것 위에서 번성한다. 당신은 똑같은 상황, 똑같은 플롯, 똑같은 종류의 캐릭터들을, 당신이 더 이상 똑같은 것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지는 않으며 흥미로운 뒤틀림과 변이가 당신의 관심사를 충족시켰다고 스스로를 확신시킬 수 있을 만큼 그럴싸한 수정을 가미한 채로 보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종래의 패러다임이 축적의 순전한 무게와 진부함에 대한 피로감에 굴복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만일 어떤 소재가 즉각적으로 과거의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소재의 부재가 과거의 패러다임을 신선한 방식으로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식의 조용한 시내와 마을, 회랑으로 둘러싸인 배경의 부재는 (과거의) 영국식 탐정물의 창작을 미국에서는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가 예전에는 병리적인 것으로, 정신상태의 결함으로, 도리에 벗어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모두 다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그 같은 방식으로 악이라든가 혹은 절대적 타자성이라는 고유의 범주들이 극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홀로코스트를 조직한 이들이 단지 일개 관료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절대악을 표상할 여지를 확실히 축소시킨다.
와이어에서는 아무도 다른 지리, 다른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 볼티모어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이다. 그것이 실제로 닫힌 세계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바깥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고립되었다고 느끼거나 무언가가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저런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지방적이지 않다) 확실히 아나폴리스가 (주 수도) 참조점이 되는데 예산상의 결정들(특히나 경찰에 대한)이 거기서 이뤄진다. 필라델피아는 동떨어진 참조점이 되는데 갱단의 구성원들이 가끔씩 그곳을 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은 당신이 킬러들을 고용하거나 매우 특별한 경우에 외부에서 낯선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가는 곳이다. 어디서 그리스인들이 마약을 얻는지는 전혀 추측의 (혹은 주관적인 지도 그리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자연(그리고 해안가)도 존재하지 않는데 가령 그것은 볼티모어로 돌아가서 살해당하기 전 잠시 할머니와 함께 은신하기 위해 유폐된 한 불행한 청소년(왈라스, 마이클 B. 조던)을 당혹스럽게 할 뿐이다. 볼티모어는 거리의 코너―경찰본부, 법정 그리고 시청―들인데 이 때문에 볼티모어라는 고유지명은 (TV 시청자들과 지역적 자부심을 제외한다면) 무관한 것이다. 선착장과 항구가 비록 모든 이해관계와 부패의 네트워크와 연루되어 있다 해도 실제로는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인근의 기항지 혹은 선박들이 거기에 무엇을 하역하든 간에 그것은 전혀 기록되지도, 상상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좋을 만큼 무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박스데일에 의해 운영되는 마약구역을 보았고 거기에는 흑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여전히 공식적인 도시 안의 다른 외국 도시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당신이 사업상의 이유가 없는 한 가지 않는 곳이다. (여기서 “당신”은 공식적인 주류 백인 문화의 일원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지리적 근접성 속에서 여기 이 두 문화 전체는 어떠한 접촉이나 상호작용 없이, 심지어 서로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이 존재한다. 할렘과 나머지 맨하탄이나 웨스트 뱅크와 한때 그 일부였던 이스라엘 도시들처럼 말이다. 심지어 이는 오늘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과도 유사한데 나이 든 동베를린 시민들은 여전히 이전의 서베를린으로 가기를 꺼려하는데 그곳의 아무런 전통도 없는 휘황찬란한 상점과 그들 대부분의 생애에서 낯선 그 모든 자본주의적 문화 때문이다.
인구상의 우세함은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흑인들(사회적으로 직업상으로 심지어 신체적으로)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범주 자체를 완전히 해소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더 이상 “흑인” 같은 것은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흑인의 사회적이거나 정치적 연대 같은 것도 없다. 그러한 이전의 “흑인”들은 이제 경찰이다. 그들은 또한 범죄자나 감옥 수감자일 수 있고, 교육자일 수도, 시장이나 정치인일 수 있다. 더 와이어는 그러한 의미에서 시쳇말로 후-인종적post-racial이다.
프랭크는 돈에 관심이 없다. 프랭크는 볼티모어 항구의 재건과 재활성화를 위한 보다 상위의 기획을 위해 사람들과 접촉하는 데 돈을 사용한다. 그는 역사를 이해하며 노동운동 및 그 주위에 형성된 전체사회가 항구가 되돌아오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거기서 그의 유토피아적 기획, 실현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는―역사는 결코 이러한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그 전형적인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이며 실제로 그와 그 가족을 결국 파괴시키는 공상적인 꿈이 등장한다.
미래 그리고 미래의 역사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양자의 서사에서 디스토피아 SF와 재난서사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더 와이어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유토피아적 미래가 현실과 현재가 그것을 닫기 전에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난다.
코폴라에게는 스튜디오가 있으며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집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다. 반면에 나는 집을 갖고 있고 집을 스튜디오처럼 만들고 싶다.
나는 드 팔마가 실질적으로 이미지와 작업하기 때문에 그를 좋아한다. 그는 이미지를 갖고 시작한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그렇게 경멸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좋은 리뷰, 좋은 비평은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 “너와 다르게 보고 있어” 등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달리 말하자면 “그것을 보자, 증거를 가져오자”라고 말하는 리뷰 혹은 비평이다.
나는 이런저런 시도를 했었고, 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기쁘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 좌파적 여행을 떠난 것 또한 나의 길이었다.
::그렇다. 예술가는 시도하는 사람이다. 성공과 실패, 인정과 무시는 목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가는 길의 여정에 지나게 되는 풍경 같은 것이다.
나는 현재 어떤 철학도 갖고 있지 않다. 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형사나 변호사, 판관 혹은 검사가 되어 법정 소송 같은 곳에서 증거를 가져온 다음 그것이 무엇에 관한 증거라는 것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날 렘브란트, 엘 그레코, 혹은 지오토의 그림들을 볼 때 그 컬러는 그 그림들이 그려지던 당시의 컬러와 전혀 같지 않다.
쿠타르는 기꺼이 인공조명 없이 일하면서도 여전히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커튼 뒤에서 나오는 빛이 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빛과 다르다는 점을 기꺼이 보려 하고, 이해하려 하고, 또 이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고 한다. 그는 우리와 함께 이 빛은 재구성해야 하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지를 기꺼이 함께 궁리한다.
5일
아들의 두 눈은,
내가 흰색의 어린이용 식탁 의자에 앉혀 음식을 먹여주고 있을 때,
순수한 고통의 가장 단단한 물질인
눈물 젖은 보석이 되었어.
슬픔에 찬 아들의 고운 두 손은 얼굴을
젖은 천처럼 계속 쥐어짜고 눈물을 모조리 빼내었지.
그러나 입은 어머니인 그대를 배반하고 있었어—
입은
그대보다 오래 살아남은 생명으로부터 나온
허깨비 같은 내 손에 든 숟가락의 음식을 받아먹었지.
그대 죽은 이후의 삶
때때로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기도 해—
나도 역시 둔감한 장갑처럼 선택되어
그대의 두 손에 끼워져서
두 손이 필요로 하는 것을 했다고. 왜냐하면
내 행위 속에 있는 지문과
그대의 시와 편지 속에 있는 지문,
그리고 그대의 행위 속에 있는 지문은
모두 같으니까.
그대의 두 손
이해합니다—
당신이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던 것을.
저는 당신을 대체하기에는 너무 늦게 나타난 신화였지요.
나의 친구 같은 장인 어른, 이 지하의 세계는 그녀 마음의 고향이지요.
우리들은 불가분의 관계로서 여기에 머물러야만 합니다.
장인 오토의 초상
표준화된 제작팀의 성격(고용된 사람들의 수, 노동 분업, 그 직업의 규범의 측면에서)이 규정하고 있는 작업 관행들 뿐만 아니라 사용 가능한 장비들에 의해서도 미장센이 결정되어왔다 (...)
이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장소, 새로운 앵글, 상이한 관점들, 요컨대 완전히 다른 촬영 방식을 발견하기 위하여 고다르는 동일하고 관습적인 제스처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장비를 필요로 했다.
“나는 내 이미지들을 사냥할 아르테미스를 요구했었다.”
그 물음은 너무 방대하다. 나는 세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기술자들은 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분야에서는 아마 일본인들이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도 국민의 행복을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사정을 이해하는데 4년이 걸린 셈이다. 괜찮다. 4년은 아무 것도 아니다. 4살짜리 아이!
공간이 다르고, 미장센이 다르고, 영화가 다르면, 사회은 더 좋아질 수 있다—그것이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보비알라: 카메라는 디지털 비디오와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수단이 되어 발굴할 수 있는 일종의 광산처럼 되었다. 보나르는 언제나 캔버스를 자신이 그리려고 했던 그림보다 훨씬 큰 것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제의 그림 주변에 손질을 함으로써 대상을 재중심화했다. 시간이나 돈 때문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나는 반투명 리플렉흐 빔 스플리터를 선택했다. 이 장치가 카메라를 거대한 괴물처럼 만들지 않고서도 큰 이미지를 담아내는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6일
진짜 어려운 일은—그리고 우리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일어났음에 틀림없는 일은—모든 프로젝트는 그 성격상 우리 손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쫓기 위하여 우리 주변에 던져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그것은 삶과 비슷하다. 개개인은 프로젝트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프로젝트가 상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얻고 알아두어야 한다. 즉 어떻게 프로젝트가 우리에게서 벗어나는지를 보아야하며 그 가운데에서 때로는 어떤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그 프로젝트 자체가 좋고, 그것으로 기쁨을 얻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변화가 생길 때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적어도 문제점을 연구할 수 있으며 또 그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그 문제점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언제나 기술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견고한 대상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신의 발자국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가 지나갈 적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투자락을 잡아채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잘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의 외투자락을 잡아채는 ‘각성의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 있다.
1950~1960년대 우리나라 정당은 명확한 조직 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몇몇이 모여 ‘우리는 무슨 당’이라고 선언하고 조그만 사무실 하나에 현판만 내건 지사志士형 정당이 대부분이었다. 오늘과 같은 현대식 정당 체계는 1970년대 이후 서서히 형성됐다.
윤보선은 민주당 구파舊派, 장면은 민주당 신파新派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두 사람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쿠데타 직후 장면은 수녀원으로 도망가 54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됐다. 윤보선은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 세력을 응징하자는 주한미군 사령관의 제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군통수권자였던 윤보선이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원칙대로 대응했더라면 쿠데타 세력을 일망타진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일사천리로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윤보선은 그냥 제외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윤보선 같은 사람이 들어와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발상이 나는 좀 의아했다. “윤보선이 겉으로 보면 별것 아닌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대통령을 해봤잖아. 국민들에게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야. 당을 만들려면 그런 사람들의 ‘이름’도 필요한 법이야. 정치를 하다보면 이런 일도 제법 많아.”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곧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었다. 선거는 무엇보다 이기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단시간에 통합 정당을 만들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윤보선 같은 인물을 포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아버지는 판단하셨던 것이다.
윤보선이 각서를 어기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자 할아버지께 여쭸다. “안 하겠다고 각서까지 쓴 사람을 왜 순순히 내버려 두고 계십니까?” 한참 혈기 왕성할 때라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봤던 것 같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정치인이 쓰는 각서는 법률적인 효력이 없어”라고 말씀하시며 씁쓸히 웃으셨다. “그렇다고 소송을 할 거야, 뭘 할 거야. 정치인의 각서라는 것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 뿐이야.” 처음부터 각서의 진정성 따위는 믿지 않고 계셨던 것이다.
1990년 1월 22일,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통합하여 국회 의석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거대 여당을 만들어낸 사건. 통합의 조건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내각제를 실시할 것을 비밀리에 약속했다.
정치인들의 약속을 믿어도 되는 걸까? 이젠 내가 1963년 할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나이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불신 풍토를 부추긴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50년간 한국 정치를 겪어온 나로서는 짙은 회의가 앞선다. 약속의 이면에는 언제나 야욕이 있었다.
당시에는 대통령 관저를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다. 오늘의 ‘청와대靑瓦臺’라는 이름은 4.19 이후 윤보선이 지었다.
5.16은 간단히 툭 잘라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워낙 복잡한 배경이 뒤섞여 있다. 그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바라보면서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전화조차 없던 시절의 사람들에게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되는데 바보처럼 왜 그랬느냐”고 꾸짖는 격이나 크게 다를 것 없다. 역사의 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일을 간단히 흑과 백으로만 구분 짓는다.
5.16은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사건이었다. 말 그대로 ‘군사 쿠데타’다. 총칼을 든 강도에게 맨주먹으로 맞서는 일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위인데, “왜 목숨을 걸지 않았냐”고 누군가 탓한다면 사건의 피해자나 당사자로서는 할 말이 없다. 역사의 특정한 시대에는 나름의 조건과 배경이 존재하는 법이다. 사람은 대체로 그러한 조건과 배경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며 후대의 시선에 그것은 한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시대의 전모를 살펴보지 않고 비난하는 태도는 역사를 대하는 또 하나의 독선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부조리에 대해 먼 훗날 자손들이 “왜 가만히 있었냐”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또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때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판단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것 아닌가. 1960년대를 살았던 우리도 그랬다.
4.19이후 우리나라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매일 같이 시위가 들끓었고 정치는 불안정했다. 심지어 ‘데모를 하지 말자는 데모’가 있을 정도였다.
정치 활동 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에 민주 세력은 더욱 단결해서 선거를 통해 확실히 군부를 제압했어야 하는데, 민주당 구파니 신파니 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갈라져 싸우고, 지도자들은 서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예나 지금이나 분열의 정치, 이기심의 정치라는 것은 이토록 어리석게 반복된다. 쿠데타 세력도 문제지만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폭거 앞에서도 자기 욕심만 챙기면서 국민에게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정치인들 역시 분명 역사 앞에 죄인이다. 정치인의 욕심과 무능은 결국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사랑방과 거실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 넌지시 “무엇때문에 정치를 하려고 하십니까?”하고 물어보곤 했다. 나름의 이상을 갖고 정치인을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건달처럼 보이는 사람인데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자들도 적잖았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의 대답인즉 “이렇게라도 해야 주머니에 용돈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별히 다른 일에 재주가 없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나이가 들어버렸고, 그래서 계속 정치권 주변이나 어슬렁거리면서 자잘한 권력을 탐하는 정치 낭인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정치는 이런 측면에서 본질상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 뚜렷한 목적이나 능력도 없으면서 생계형으로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 말이다.
4.19의 열매인 제2공화국이 무너진 직접적인 이유는 군부의 쿠데타이지만, 사실 제2공화국은 안으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려 밤낮 싸움만 계속했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그것이 간신히 풀리고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는데, 그때에도 대통령 후보직을 놓고 양보 없이 싸웠다.
윤보선이 이끄는 ‘민주당 구파’는 거기서 또 유진산 계열과 김도연 계열로 나뉘어 있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돈은 밖에서 순환되는 것이지 가만히 쌓아두고 있지는 않는다. 이른바 ‘검은 돈’이라는 것은 어디 비밀 금고에 넣어두거나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돈이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주관적 추측이나 선입견만 갖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다 경제를 망치게 된다. 나중에 나는 정치인들의 이런 어리석은 판단과 공명심이 낳은 황당한 정책 사례(예를 들어 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를 숱하게 경험했다.
박정희는 재임 기간 내내 교수들을 믿지 않았다. 화폐개혁 사건을 계기로 ‘교수들은 이론만 알고 현실에 동떨어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박정희가 18년 집권하는 동안 교수 출신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는 자리를 맡긴 사례가 없다.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 재무장관, 부총리까지 하기도 했지만 그저 ‘나팔 부는 사람’ 정도로 앞세울 필요가 있어 데려다 놓았다는 인상 정도다. 나중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 소감을 물었더니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어 관직에 들어와 보니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군인이나 실무 관료들이 갖다 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다가 일 년쯤 되니까 겨우 업무 파악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가 무언가 주장할 수 있는 여력조차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박정희 시대에 관료로 발탁된 교수들은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을 그냥 ‘설명’만 하는 역할로 등용된 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10년 가까이 군사정권에서 일했다는 교수 출신 경제 관료라 할지라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소신 있게 추진한 일이 없다.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런 교수들에게 ‘경제 사령탑’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붙여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는데, 속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다.
나는 독일에서 경제학, 그중에서 재정학을 공부했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도 재정학을 주로 가르쳤다. 재정학은 말 그대로 국가의 재정財政을 다루는 학문이다. 나아가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포괄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세금이 좋은 일에 쓰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납세자로서 긍지와 보람을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 궁극적으로 좋은 정치가 아닐까 싶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그리고 미국의 독립전쟁까지 알고 보면 모두 ‘세금’이라는 도화선으로 촉발했다. 명예혁명은 종교적 갈등도 있었지만 의회 승인 없이 세금을 징수하려는 국왕의 행위에 반발한 것이 정치 개혁으로 이어졌고, 프랑스혁명은 과도한 세금에 대한 국민의 원성으로부터 발발했으며,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보스턴 차 사건’ 역시 문제는 세금이었다.
세금을 왜 걷고, 누가 걷고, 어떻게 걷고, 어디에 쓰고, 무슨 근거로, 무엇을 위해 걷고 쓰는가. 그런 시시비비를 따지는 과정을 통해 근현대 정치가 태동하였다고 말해도 그리 지나친 주장이 아닐 것이다.
부가가치세라는 세금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세금이다.
부가가치세 실행의 가장 큰 조건은 A → B → C → D로 넘어가는 거래의 모든 단계가 투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납세자가 전 단계 세액을 제하고 세금 신고를 하려면 자신이 어떤 원료나 상품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증빙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거래 당사자들이 영수증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무 당국은 그런 거래의 모든 과정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분명한 자료에 근거해 부가가치세를 징수할 수 있어야 한다. 1차 대전 직후 독일에서 그러한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다. 폰 시멘스의 아이디어가 좋긴 하지만 아직은 실행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란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1957년 서독 헌재는 다단계 거래세 징수 방식이 ‘경쟁의 중립성’을 해친다고 판결했다. 다단계 거래세의 세율이 높아지게 되면 기업은 A → B → C → D로 이어지는 거래 과정을 가급적 단축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래야 누진적인 거래세를 회피하면서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다양한 기업이 도태되고 대기업만 살아남게 된다. 독일 헌법은 “세금은 경쟁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단계 거래세가 지속되면 수직 통합을 이루지 못한 기업은 자꾸 손해를 보는 부당한 결과를 낳는다. 서독 헌재는 그것을 곧 ‘경쟁 중립을 깨뜨리는 일’로 보았고, 다단계 거래세가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여 헌법 정신에 위반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 1883~1950는 간접세에 대해 평하기를 “거지가 손에 빵조각을 들고 먹으려고 하는데 눈에 모래를 뿌리고 빼앗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약간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부가가치세를 비롯한 간접세의 역진성은 이처럼 오래된 비판의 소재다.
세금에는 나름의 이론적 원리가 있고,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옆 나라에서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식으로 덤벼들었다가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에는 최초로 부가가치세 이론이 제기된 때로부터 40년이 걸려서야, 그것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고서야 도입이 결정되었고, 헌재에서 결정을 하고도 10년의 실무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반세기에 걸친 연구와 시행착오가 있었던 셈이다.
과학자 아닌 일반인은 과잉 단순화가 과학에서 얼마나 기막힌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과잉 단순화는 ‘거의’ 옳은 작업 모형의 지긋지긋한 복잡성을 쳐내어 지저분한 세부 사항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과학사에서 ‘과잉’ 단순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예는, 라이너스 폴링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온갖 세부 사항을 이해하느라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을 때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지름길로 내달려 DNA 구조를 발견한 것이다.
해상법은 전문가―해상법 변호사―만이 알 수 있는 함정과 예외 규정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복잡하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따라서 ‘해상법 변호사질하기’는 책임을 면하거나 남에게 잘못을 덮어씌우려고 꼼수를 쓰는 행위를 일컫는다.
비판적 논평을 잘하려면 이렇게 하라.
1. 상대방의 입장을 매우 명확하고 생생하고 공정하게 다시 표현하여 상대방이 “고맙습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건 미처 생각 못 했네요”라고 말하게 한다.
2.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을 모두 나열한다(특히 일반적이거나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일 경우).
3. 상대방에게 배운 것을 모두 언급한다.
4. 이렇게 한 뒤에야, 반박하거나 비판할 자격이 생긴다.
사람들은 미스터리 소설을 이야기할 때 『몰타의 매』와 『깊은 잠』을 예로 듭니다. 서부물을 이야기할 때는 『서쪽 길The Way West』과 『셰인Shane』을 언급하죠. 하지만 과학소설이 화제에 오르면 “그 버크 로저슨가 뭔가 하는 거”(버크 로저스는 필립 프랜시스 놀런의 소설 『서기 2419년 아마게돈Armageddon 2419 A.D.』 의 주인공_옮긴이)라고 부르거나 “과학소설의 90퍼센트가 쓰레기야”라고 말합니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과학소설의 90퍼센트는 쓰레기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쓰레기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이고,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의 과학소설은 어떤 소설 못지않게 또는 더 훌륭합니다.
스터전 법칙을 덜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뭐든지 90퍼센트는 똥이다’가 될 것이다. 분자생물학 실험의 90퍼센트, 시의 90퍼센트, 철학 서적의 90퍼센트, 학술지에 게재된 수학 논문의 90퍼센트, 그 밖의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똥이다. 정말이냐고? 어쩌면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별 볼 일 없는 작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깐깐한 사람들은 99퍼센트가 똥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분야나 장르, 과목, 예술 형식을 비판할 때 ……에 야유를 보내느라 자신과 남들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좋은 작품을 쫓아다니거나, 아니면 내버려두라.
우선, 온갖 종류의 한심하고 멍청하고 삼류인 작품이 널려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여러분의 시간과 우리의 인내심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여러분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작품, 그러니까 찌꺼기 말고 그 분야 고수들이 칭송하는 최고의 사례와 수상작에 집중하라.
오캄의 면도날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단순한(구성 요소와 대상이 적은) 이론이 있다면 그것과 설명력이 같으면서 복잡하고 장황한 이론을 만들지 말라. 매우 추운 공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동상의 모든 증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관찰되지 않은 ‘설균雪菌’이나 ‘극지 미생물’을 가정하지 말라. 케플러 법칙이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므로 우리는 숨겨진 제어실에서 행성을 조종하는 조종사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
민감한 문제에 오캄의 면도날을 적용하려는(얼토당토않은) 시도로는 신을 우주의 창조자로 가정하는 것이 나머지 가설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주장(또는 반대 주장)이 있다. 초자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 어떻게 단순하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군더더기의 절정 같은데.
분자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는 최근에 오캄의 면도날을 재미있게 비틀어 ‘오캄의 빗자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지적으로 부정직한 사람들이 어떤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양탄자 밑에 쓸어 넣는 짓을 일컫는 용어다. 이것은 우리의 첫 붐받이, 즉 반反생각도구다. 여기 현혹되지 않으려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오캄의 빗자루로 증거를 현장에서 쓸어버리면 이 ‘부재’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를테면 창조론자들은 자기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감한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한결같이 이를 외면한다. 이들이 주도면밀하게 짜맞춘 설명이 생물학자를 제외한 일반인에게 꽤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이 ‘없는지’가 일반 독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브레너가 오캄의 빗자루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은 창조론과 음모론이 아니었다. 그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열띤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는 진지한 과학자조차도 자신이 아끼는 이론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데이터를 ‘간과’하려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미국에 살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사람들이 정규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것이다.
영화감독들은 관객을 매혹시키기 위해 일부러 극적인 효과를 적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창조적인 작업에서 이런 기술을 알아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서사 기법을 이용한 이야기꾼들이었다. 당신이 신약성서에서 잘 조직된 문장을 자세히 볼 때, 복음서의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된 세부묘사, 은유, 그리고 서사적 요소를 단정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더 중요하게는 논쟁의 여지가 있거나 불쾌하거나 정치적 위험이 있는 것들을 바꾸거나 생략했다. 로마의 탄압이 있던 당시에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내포된 정치적인 의미는 감추었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역사적인 사건에 자신들의 의견을 집어넣었다.
예수와 열두 제자들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먹으며 연명하는 순례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위장 장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예수의 동행자들은 그가 코를 골고, 킁킁거리며 방귀 뀌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예수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일상적인 면들을 배경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예수에게도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간으로 보이게 만든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들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예수는 지나치게 먹는 것을 좋아하고 포도주를 즐기기로 평판이 나있었다. “보아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는 자요,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실제로 일어난 일과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7일
그에겐 행복이 생겼다
그에게도 꿈많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어느날 그에겐 흰머리가 생기고
등이 휘고 토지가 사라지고
후배들은 그를 우습게 여기고
그에겐 코가 사라졌다
그에겐 입도 사라졌다
에로스도 사라지고
그를 지키려는
욕망도 사라지고
에고도 사라졌다
그에겐 성욕도 사라졌다
그는 육체를 추방한 건 아니다
그의 육체는 스스로 사라졌다
아아 그렇다고
정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에겐 정신도 없다
애인을 껴안을
힘도 없다
작은 침대에
등을 구부리고 누워
「어쩜 이대로 죽을지도 몰라」
중얼대며 잠드는 그는
자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걸
비로소 배웠다
자는 건 어린애가
되는 거다
말할 줄 모르던
행복한 시절로 돌아가는 거다
그에겐 행복이 생겼다
마흔 살이 넘자
칼은 없지만
모자도 없지만
주사기도 없지만
예술은 작은 놀이
이제 나는 시를 쓸 수 없다 시라고 생각되는 것! 그림도 그릴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고 연필만 떨리고 물고기 물고기 당신은 물고기에 대해 물었지만 난 물고기도 모른다 시를 쓰든 수필을 쓰든 편지를 쓰든 낙서를 하든 망각이면 된다 망각의 진리! 예술은 결국 작은 놀이이고 망각이고 선과 악 유용성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그동안 난 운이 좋았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한 것만 빼면! 돈 때문에 시를 쓰지 않았고 나이 든 어린애처럼 낱말들과 놀고 살았으니!
8일
아름다움은 견딜 수 있는 공포의 시작일 뿐이야
불교가 처음 티베트에 처음 들어온 것은 서기 7세기로, 티베트 왕 송쩬감뽀(SongtsenGampo, 605 또는 607-649)의 두 왕비를 통해서였다. 각각 네팔의 공주와 중국의 공주였던 그들은 결혼하면서 불상들을 가져왔다. 머지않아 산스끄리뜨 불교경전들과 중국어 불교경전들이 들어왔다. 8세기 후반부터 티베트인들은 인도에서 직접 가져온 경전들을 선호했고, 그것들이 티베트어로 번역된 수많은 불교문헌들이 되었다.
불교는 랑다르마(Langdarma, 838-842 재위) 왕의 통치기간 동안 박해를 받았고, 불교사원들은 폐쇄되었다. 불교경전들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수행은 단편적인 것이 되었고, 다양한 가르침들을 통합된 전체로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다.
아띠샤 스님이 오기 전의 티베트 불교를 ‘닝마(Nyingma)’ 또는 ‘구역(舊譯)’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1세기가 시작되면서 티베트에 새로 들어온 불법(佛法)의 계통은 ‘사르마(sarma, 新譯)’가 되었고, 이것들이 서서히 구체화되면서 까담빠(Kadampa), 까규빠(Kagyupa), 사꺄빠(Sakyapa) 등의 종파를 이루었다. 까담빠 종파는 나중에 겔룩빠(Gelukpa)라는 종파가 되었다.
19세기에 티베트 불교를 접촉했던 서양인들은 라마주의라고 불렀다. 이런 말은 원래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아마도 그들이 티베트에서 수많은 승려들을 보고 나서 그 전부가 라마(lama, 스승)들일 거라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제자들이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스승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중국인들이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티베트 불교를 라마주의라고 부르면 안 된다.
불교는 사회적 신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자신의 종교적 스승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그 사람의 자격과 자질을 점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여래의 4무외(四無畏) : 부처가 설법할 때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네 가지.
(1)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었으므로 두려움이 없음.
(2) 모든 번뇌를 끊었으므로 두려움이 없음.
(3) 끊어야 할 번뇌에 대해 설하므로 두려움이 없음.
(4) 미혹을 떠나는 수행 방법에 대해 설하므로 두려움이 없음.
4무외가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완전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법을 가르칠 수 있었다.
10력(十力)은 여래만이 가진 일련의 특별한 지식이다. 10력으로 인해서 부처님은 유례없는 활동을 하고, 세상에 가르침을 펼치고, 중생들을 능숙하게 가르치며, 그들을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다.
1) 직접적이고 오류가 없는 지각을 가진 여래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알고, 성자(聖者,ārya)들과 보통 중생들이 한 행동의 결과를 모두 알 뿐 아니라, 행동과 그 결과의 관계도 알고 있다.
2) 개개의 중생들에게 끝없이 윤회하는 생애 속에서 특정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미세한 원인들을 포함해서, 과거·현재·미래의 업(業,karma)과 그 결과들[業果]에 대해서 오직 여래만이 완전하고 정확하게 안다.
3) 여래는 보통 중생들이 환생하게 될 다양한 윤회의 세계와 그곳에 환생하게 하는 수행들을 알고 있다. 여래는 삼승의 성자들이 도달하는 열반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수행들도 알고 있다.
4) 여래는 세계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 즉 18계(十八界,dhātu),17) 6근(六根), 외부와 내부의 12처(十二處,āyatana),18) 12연기(十二緣起,nidāna), 22근(二十二根,indriya)19) 등, 무상(無常)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하는 것임을 지혜로 완전하게 이해한다.
5) 여래는 중생들의 상이한 경향(adhimutti,adhimokṣa)들, 즉 중생들의 종교적 목표와 그들이 관심을 갖는 승(乘)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래는 개개의 중생들의 기능과 능력과 염원에 맞춰서 그들에게 불법(佛法)을 가르칠 수 있다.
6) 여래는 개개의 중생들의 믿음[信,saddhā,śraddhā], 정진(精進,viriya,vīrya), 정념(正念,sati,smṛti), 정(定,samādhi), 지혜[慧,paññā,prajñā]의 기능들[根,indriya]의 힘을 알고 그에 맞춰서 가르쳤다.
7) 여래는 선정(禪定,jhāna), 여덟 가지 명상적 해탈(vimokkha,-vimokṣa),20) 아홉 가지 정(定,samāpatti)에 통달했기 때문에 그 단계들과 관련된 번뇌와 정화와 출정(出定,sankilesa,vodāna,vuṭṭhāna) 등을 알고 있다. 번뇌는 명상가가 선정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들이거나, 선정에 들어간 후에 방해하는 장애들이다. 정화는 장애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출정(出定)은 정(定, 또는 三昧)에 들었다가 나오는 방법이다. 여래는 다른 사람들이 선정의 희열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명상 상태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도(道)를 그들이 계속해서 수행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8) 여래는 자신의 수많은 전생들의 양상과 특별한 일들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여덟째 힘과 아홉째 힘은 다섯 가지 신통(神通,abhiññā, abhijñā)21)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 신통이다. 그래서 여래는 자신의 전생들 속에서 개개의 중생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알고, 현생이나 다음 생에서 그들과 개별적으로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9) 중생들이 각자의 업에 따라서 죽고 태어나는 것을 여래는 천안(天眼)으로 본다. 여래는 그것을 알고 각각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데 가장 도움이 될 일을 무엇이든 한다.
10) 직접적인 지식으로 깨달은 여래는 오염되지 않은 마음의 해탈[心解脫,cetovimutti,cittavimukti]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paññāvimutti,prajñāvimukti]22) 속으로 곧 바로 들어가고, 거기에 머물고, 모든 번뇌가 제거되었음을 안다. 여래는 삼승(三乘)의 중생들의 개별적인 깨달음과 성취의 단계도 알고 있다. 여래 10력 중의 마지막 세 가지 힘들은 부처님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전날 밤에 명상하는 동안에 얻은 세 가지 지혜[三明,tevijjā,trividyā]23)이다.
22근(二十根)은 모든 현상 중에서 특히 뛰어난 작용이 있는 것으로 선택된 22가지 현상을 말한다. 6근(六根 : 감각의5근과 마음의1근), 남녀 2근(남녀의 생식기), 명근(命根, 생명력), 건설적인 행동들과 파괴적인 행동들의 결과들을 경험하는 5수근(五受根 : 정신적 행복과 불행, 신체적 즐거움과 불쾌함, 중성적 느낌들),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난 5선근(五善根 : 믿음, 정진, 정념, 선정, 견도(見道)의 지혜), 견도, 수도, 무학도의 세 가지 청정한 힘인 3무루근(三無漏根) 등이다. 처음의 14근은 윤회의 원인이고, 나머지 8가지는 해탈과 완전한 깨달음의 원인이다.
‘마음의 해탈’은 정(定)을 가리킨다. 마음의 해탈에는 감각적 집착과 적의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에 의한 해탈’은 지혜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무명(無明)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마음의 해탈은 지(止)의 결과이며, 지혜에 의한 해탈은 관(觀)의 결과이다. 그 두 가지가 오염되지 않았고, 결합되었을 때, 그 둘은 아라한의 초세간의 도(道)에 의해서 번뇌들이 근절된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1973년에야 온전한 독립을 이룩한 나라다. 무슨 말인지 의아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정신적으로 뿌리를 내린 연도는 1919년이고, 법적으로 기둥을 굳건히 다진 연도는 1948년이며, 재정적으로 독립국가로서 면모를 갖춘 연도는 1973년이다.
1973년 이전까지 우리는 정부 재정조차 마음대로 편성할 수 없는 나라였다. ‘유솜’이라고 부르던 미국 대외원조처USOM ; 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지원 규모가 확정되면 그때야 비로소 원조자금에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며 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저절로 완성된 나라가 아니다. 서서히 만들어진 나라이고, 전혀 다른 나라로 전락할 수도 있었는데 투철한 건국이념을 지닌 정치 지도자와 국민이 차근차근 쌓아 올려 함께 만든 나라다. 정신적, 법적, 재정적으로 ‘나라다운 나라’가 된 지 아직 반세기가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가 100년, 200년 걸려서야 이룬 일들을 우리는 10~20년 안에 뚝딱 만들어냈고, 아직도 그런 압축 성장의 후유증을 겪는 중이다. 압축 성장이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한동안 잘 나가던 사람이 위기를 맞으면 불안감이나 상실감의 낙차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때 나는 새삼 깨달았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으면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는 사람을 이기게 된다는 사실을! 정치를 하면서 이런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지만 부가가치세 도입이 그 깨달음의 시작이었다.
당시 재무장관은 금융 관료로 성장한 사람이었다. 금융정책이 일반 국민에게 미치는 결과와 조세정책이 일반 국민에게 미치는 효과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금융정책은 그 경제적 영향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간접적이다. 금리나 환율이 바뀐다고 거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경제가 고도화된 지금도 그렇지만 1970년 초반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세금은 국민의 재산권에 금방 영향을 미친다. 여론도 즉각 반응한다. 금융정책은 말 그대로 ‘정책’으로, 시장 반응이 나쁘면 즉각 철회할 수라도 있지만, 조세는 정책보다 ‘제도’에 가깝다. 한번 법제화되면 쉬이 바꾸기 어렵다. 금융과 조세의 성격이 이리 다를진대, 오래도록 금융만 다루어본 관료는 조세의 특성을 좀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자면 지금껏 우리나라 재무장관은 주로 그렇게 금융을 다루던 관료들이 맡고 있다. 금융을 담당하는 부서는 재무부에서도 엘리트들이 거쳐가는 코스로 통한다. 조세를 담당하는 부서 관료는 성골이 아닌 진골 정도로 여긴다. 특히 세제稅制 담당 부서는 한직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평생동안 그렇게 조세 영역을 얕게 보면서 금융 관료 코스만 착착 밟아 온 사람들이 장관이 되다보니 조세를 다루는 것도 금융을 대하듯 한다. 조세를 금융처럼 ‘잘못되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되지’하는 식으로 다룬다. 지금껏 우리나라에 누더기 같은 세제가 만들어지고 세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신뢰도가 높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의 탓이 적지 않다.
원래 ‘이론’에 따르면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는 조세저항이 없어야 한다. 간접세는 세금이 가격에 전가되고 납세자와 담세자가 서로 다르니, 납세자들은 고분고분 세금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언제나 이론과 다른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정치는 그것을 깨닫는 일이고, 그런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유연하게 정책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일이다. 하지만 책으로만 세상을 배운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하면 ‘이론과 다른 일’들이 자꾸 벌어지게 되고 국민을 이론의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하나의 선거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 익숙하지만 사실 그런 제도는 1988년부터 부활했다. 그전까지(1973~1985년) 우리나라 국회의원 총선거는 한 선거구에 두 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득표율 1위와 2위가 모두 국회의원이 됐다. 무슨 그런 제도가 다 있냐고 하겠지만 승자독식의 구조를 깨뜨려 지나친 정치 과열을 막고 다양한 정당이 등장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제도다. 이를 ‘중中 선거구제’라고 부른다.
지금 젊은이들은 하나의 선거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 익숙하지만 사실 그런 제도는 1988년부터 부활했다. 그전까지(1973~1985년) 우리나라 국회의원 총선거는 한 선거구에 두 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득표율 1위와 2위가 모두 국회의원이 됐다. 무슨 그런 제도가 다 있냐고 하겠지만 승자독식의 구조를 깨뜨려 지나친 정치 과열을 막고 다양한 정당이 등장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제도다. 이를 ‘중中 선거구제’라고 부른다.
상인이 많고 공업이 발달한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부가가치세 도입은 유신 체제의 종말을 앞당기는데 일조했다.
1977년 우리나라에 부가가치세가 실시될 때 기존 영업세를 내고 있던 납세자 숫자는 80만 명 정도였고, 그중에서 부가세를 실질적으로 내야 할 납세자는 14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박정희 정부는 그 14만 명의 저항조차 감당하지 못해 무너진 셈이다. 중산층과 자영업자, 중소 상공인의 마음이 떠나버리면 어떤 정부든 그런 최후를 맞는다.
노동 계층이 늘어나게 되면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독일과 유럽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60년대에 유학하며 그런 변화의 과정을 눈으로 목격했다. 당시 유럽 각국은 학생들의 시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런 학생 시위가 말 그대로 ‘학생’ 시위로 그치면 그리 큰 문제가 없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 세력과 결합하게 되면 그 순간 정부는 무너지게 된다는 교훈 역시 현장에서 실감했다. 학생들의 불만이 사회 전체의 시위로 확산되지 않도록 평소에 복지 기반을 단단히 다져놓는 일이 ‘정권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우리나라 관료 사회의 특징이 그렇다. 담당자가 바뀌면 정책이 분절된다. 새로 바뀐 노동청장을 불러 노동법 개정 취지 등을 이야기해줘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관심도 없어 보였다.
노동법은 일단 내려놓고 제시한 정책이 ‘근로자 사회의료보험’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분명 권위적인 정권이었지만, 이런 정권하에서 오히려 개혁적인 정책이 일사천리로 처리될 수도 있겠다. 그런 가느다란 희망을 가져보았다.
세계 최초로 사회법Social Law을 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사회의료보험 제도와 연금제도를 만들어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아는가? 바로 독일이다. 그럼 독일 어느 시대에 그런 제도를 만들었을까? 흔히 공산당이나 좌파 정부 치하에서 그랬을 것이라 선입견을 갖지만 그렇지 않다. ‘철혈 재상’이라 불린 비스마르크Bismarck, 1815~1898 시대에 독일에서는 여러 복지제도가 생겨났다. 비스마르크는 정치적으로는 비민주적인 통치를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회복지 시스템을 속전속결로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고도화되면 할 수 없는 일을 이런 시기에 오히려 빠르게 추진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했던 것이 사회의료보험이었다.
나는 어떤 조화를 느끼게 해 주는 사람들과 일한다.
내 관심사는 테크닉에 앞서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들을 포착하는 일이다. 즉, 가능한 한 진실하게 가장 진실한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말뿐만 아니라 그 말의 이면에 있는 사고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획득하고 싶은 것은 바로 배우들의 아주 미묘한 표정(표현)들을 통해 그들의 가장 깊은 사고에 침투하는 것이다. 인물의 성격과 무의식적인 감정들, 그리고 그의 영혼 깊은 곳에 존재하는 비밀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밑바닥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내게는 진실한 역할들을 위해 진실한 인물들을 가지는 것이 최우선이며, 그것은 조화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9일
커다란 주제에 대해 써야만 하는 궁지에 몰려 그걸 해결하기 전에 그 문제를 검토하고 밝혀두는 것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이건 일반적으로 문학적 정신의 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으로 그 운동은 심연을 건너뛰는 것이지 그 깊이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쉽게 표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몇 개의 소박한 회고를 중첩시키면 그 인간의 기본적인 동기와 반응을 되살려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의 외관을 만들고 있는 별것 아닌 행위 안에 우리는 자신의 행위 속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을 찾아낸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맥락의 연결에 의해 성립하고 있는 것이고 그의 존재가 암시하는 활동 범위는 우리의 활동 범위를 넘는 일이 없다. 만약 그 개인이 어떤 점에서 뛰어나다고 한다면 그 정신의 작동과 그것이 거치는 길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곤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한양대 교수로 직장을 옮긴 1980년대 초 밤이면 김일성이 자신의 집을 폭파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지붕 위엔 낯선 비행기가 떠 있다고 편지를 보낸 제자가 있었다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하고 결혼에 실패한 그는 대학 시절 서울 집으로 간다며 철길을 계속 걸어간 적이 있지 어느 날은 그의 시집을 영국에서 출판하게 되었으니 선생님이 평론을 쓰셔야 한다는 편지도 보냈다
그 무렵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연구실 문을 열고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서른 정도 나를 보더니 대뜸 선생님이 불쌍해요 그가 한 말이다 잠바 차림에 무언가 들고 있었다 그는 전라도 광주에서 시를 공부하는 청년으로 선생님 생각이 나서 도시락을 싸 왔다며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풀었다 그때 조교들이 들어와 그는 조교들과 함께 나갔지 1980년대 초엔 왜 이런 일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이승훈 씨를 찾아간 이승훈 씨
이승훈 씨는 바바리를 걸치고 흐린 봄날
서초동 진흥아파트에 사는 시인 이승훈 씨를
찾아간다 가방을 들고 현관에서 벨을 누른다
이승훈 씨가 문을 열어준다 그는 작업복을
입고 있다 아니 어쩐 일이오? 이승훈 씨가
놀라 묻는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지요 그래요?
전화라도 하시지 않고 아무튼 들어오시오
이승훈 씨는 거실을 지나 그의 방으로 이승훈 씨를
안내한다 이승훈 씨는 그의 방에서 시를 쓰던
중이었다 이승훈 씨는 원고지 뒷장에 샤프 펜슬로
흐리게 갈겨 쓴 시를 보여준다 갈매기, 모래,
벽돌이라고 씌어 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오?
이승훈 씨가 황당하다는 듯이 이승훈 씨에게
묻는다 갈매기는 강박관념이고 모래는 환상이고
벽돌은 꿈이지요 뭐요?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틀렸어요 갈매기는 모래고 모래는
벽돌이고 벽돌이 갈매깁니다 틀림없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바다는 갈매기가 아닙니다 그건 모래가
벽돌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벽돌은 바다가
아니니까요 바바리를 걸친 이승훈 씨와 작업복을
입은 이승훈 씨가 계속 싸운다 마침내 화가 난
이승훈 씨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좋아요 좋아! 문을 쾅 닫고 사라진다
이 시대의 시 쓰기
물론 이승훈 씨는 시를 쓰신다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라? 언어라? 언어라? 도대체 언어란 무엇인가? 그는 언어 때문에 시를 쓰지만 언어 때문에 실패의 연속이다 언어 유리디체여 그녀를 돌아보면 안된다 차라리 불을 지르라 물론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훔쳐오기 그렇다 이제 그는 유리디체를 훔친다 그가 읽은 책, 그가 읽은 책, 그가 읽은 책, 그리고 최근의 경험, 말라빠진 현실, 엉터리 꿈, 한낮에 졸고 있던 약방, 카페에서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던 사람 (얼마나 고맙다던가?) 그는 작은 일에 약하다 말하자면 예민하다 그의 예민성은 신경증이 되고 우울증이 되고, 신경증엔 히스테리와 강박증이 있고, 우울증이 도지면 나처럼 의기소침해지고 그러나 우울증엔 여러 유형이 있다 창녀가 되고 싶은 유형, 자살을 꿈꾸는 유형, 험담을 하는 유형(최근 나를 괴롭힌, 따라서 나를 줄겁게 한 여자가 이 유형임). 험담은 병이 아니라 이 시대의 상식이다 험담을 하고 모함을 하고 인간들은 우울증을 극복한다 나도 극복한다 우울증 환자 가운데 알콜 중독자도 있고 투전꾼도 있고 약물 중독자도 있고 요컨대 이승훈 씨가 쓰는 시는 우울증의 산물이다 오오 우울증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는 불안이라고 하지만 아마 우울증일 것이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우울증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불안하면 도둑질도 한다 무슨 짓을 못하랴? 그는 오늘도 그가 읽는 책에서 언어를 훔치고 창문도 훔치고 종이도 줍고 물론 불을 지를 순 없으리라 언어 속에서 언어를 훔치는 이승훈 씨여 언어라는 아파트에서 그는 가구나 물건들(예컨대 재떨이, 신발, 양말, 의자, 낡은 셔츠 등)을 훔친다 도둑질을 한다 그는 염치도 없이 염치도 없이 훔친다 벼락처럼 훔친다 이젠 자신도 훔친다 그도 언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책 속에 그가 있다 이 시대의 시 쓰기는 도둑질이다 자연파 시인들은 자연을 훔치고 나 같은 자칭 언어파 시인들은 언어를 훔친다 오오 표절 속에 표절 속에 2월이 간다 김춘수 선생의 <틀림,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시에는 <가도 가도 2월은 2월이다>는 시행이 나온다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낡은 시도 많고 새로운 시도 많고 나처럼 조금 미친 이승훈 씨도 있고 겨울 저녁 불을 켜고 앉아 언어를 훔치는 시인도 있다 그럼 이승훈 씨여 부디 분발하시기 바란다
10일
내 것인데도 낯선 육체는 죽은 듯한 침묵에 싸인 채 가로등의 희미한 달빛 때문에 더욱 쓸쓸한 그늘 속에 누워 있다.
무한대의 한가운데, 확고한 한자리에 놓인 시계가 메마르고 공허한 반시간이 또 흘러갔다고 알려준다. 모든 것이 너무 지나치고, 너무 심오하고, 너무 캄캄하고, 너무 차갑다!
불면의 밤을 위한 교향곡
온 우주가 하나의 실수인 양 모든 것이 잠들었다. 불안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존재하지 않는 군부대 위로 펼쳐지는 형체 없는 깃발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높고 거센 돌풍에 산산이 찢어지고, 창틀은 가장자리가 달그락거릴 정도로 유리를 흔들어댄다. 모든 것의 맨 밑바닥에서 침묵하는 밤은 신의 무덤이다(내 영혼은 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갑자기 새로운 우주의 질서가 도시를 지배하고, 소강상태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하늘 높은 곳의 무수한 흔들림을 졸음 속에서 감지한다. 마루 바닥문이 닫히듯 밤이 닫히자 거대한 고요가 밀려와 나는 잠들고 싶어진다.
고다르 - 예를 들어, 플로베르는 어느 날 "하늘이 푸르다" 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쓴다. 그리고는 3일 동안 끙끙 앓으면서, "하늘은 잿빛이다'라고 써야 하지 않았을까, '하늘' 대신에 '바다'는 잿빛이다 라고 써야 하지 않았을까, '잿빛이다' 대신에 '잿빛이었다' 라고 써야 하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결국 쓰기를 ...
르 클레지오 - "하늘이 푸르다"
고다르 - 그렇다. 그렇지만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르 클레지오 - 시네아스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인가?
고다르 - 그렇다. 영화에서 하늘은 항상 거기 있는 것이다. 나는 결코 "하늘이 푸르다" 라든지 "하늘이 잿빛인 날" 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삶과 창조가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중략) 만약 하늘이 푸르다면 나는 그것을 푸르게 찍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이 흐려진다면 또한 그렇게 찍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받는 인상은 당신들에게 삶과 창조는 다른 것인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2년동안 조셉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의 진정으로 멋있는 남자가 가르치던 뉴스쿨의 영화수업에서 영사기사로 일했다. 그 수업은 세계의 영화를 다뤘고 나는 거기서 빛과 감수성에 대해서 무척이나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밤 시간을 드러내는 빛으로서의 필름의 본성을 다루는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을 보고 신의 계시를 받은 듯 했다. 이것은 무척이나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는 영화를 "읽지" 않고 직시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방송이 많아질수록, 모두에게 한번에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 텔레비전 방송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관객이 분화될 필요를 느낀다. 어쨌건 목표는 사람들을 마취시키는 것이 아니다!
제 영화 <눈은 감길 원하지 않는다...>는 "재현불가능한" 정교한 것들 - 코르네유의 언어의 화신과도 같은 모든 순간의 모든 배역이 발화하는 대사, 소음, 분위기, 바람, 배우들의 노력, 마치 외줄타기와도 같은 그들이 책임질 위험 그리고 암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 텍스트를 연기하는 배우들 간의 호흡 - 달리 말하자면 이미지와 동등한 완벽한 동시 녹음이 중요한 영화입니다.
마가, 마태, 누가는 ‘공관복음서 저자들’이라고 불리고 그들의 복음서는 ‘공관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 이 세 복음서의 저자들은 어느 정도 같은 신학체계를 공유하고 비슷한 시선으로 예수를 바라본다. 요한은 공관복음서 저자들과는 전혀 다른 신학체계를 제안했다. 요한은 ‘네 번째 복음서 저자’로 언급되곤 한다. (...) 요한복음은 다소 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고도로 발전한 신학으로 작업한 신비로운 작품이다. 자신을 ‘세상의 빛’, ‘선한 목자’, ‘인자(사람의 아들)’, ‘참 포도나무’ 등이라고 소개한 예수의 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노시스파 사상(영지주의)에서 우주는 해로운 조물주—하나님보다 낮은 창조자—가 만든 불완전한 창조물이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갇혀 있지만’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예수의 ‘비밀스러운’ 말씀에 주의해야만 진실하고 완벽한 하나님에게 올라갈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의 ‘정력’을 작품에 쏟고 싶다면, 성교를 조금은 포기하고 나머지는 우리의 기질이 원하는 대로 군인이나 승려가 되자”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혁명의 순간에 대한 집단 역학에 대해 잘 알려준다. 체 게바라와 그의 추종자들, 즉 그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말다툼을 벌이다가 길을 잃었다. 많은 사람들이 익사했고 몇 명은 도망갔다.
생성이란 [역사학이 아니라] 지리학에 속하며, 길찾기/ 방향/ 출입구에 속합니다.
생성이란 결코 모방하는 것이 아니며, ...인 양 처신하는 것도, 모델에 자신을 부합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그 모델이 정의나 진리에 속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출발하고 도착하는 혹은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란 없습니다. 상호 교환되는 두 항도 역시 없습니다.
“너는 무엇이 될 거니?”라는 질문은 특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무언가로 되는 한, 그가 되는 바는 그 자신 만큼이나 변하기 때문입니다.
생성은 모방의 현상도 동화의 현상도 아니고, 이중 포획, 비평행적 진화, 두 계 사이의 결혼과 같은 현상입니다. 결혼은 항상 자연을 거스르는 것으로 짝짓기와는 반대되지요.
되는 바는 되는 것 못지 않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말벌은 난초를 재생산하는 도구의 일부가 되고, 동시에 난초는 말벌의 생식 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동일한 생성, 생성의 단 하나의 블록, 혹은 레미 쇼뱅이 말한 것과 같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존재의 비평행적 진화”가 있습니다.
생성이란 가장 지각하기 힘든 것이며, 오직 삶으로만 아우를 수 있고, 스타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작용들입니다. 삶의 양태가 구성이 아니듯, 스타일도 구성이 아닙니다.
오늘날 책을 읽는 양식 있는 태도는 음반을 듣듯이, 영화나 텔레비전 방송을 보듯이, 가요를 듣듯이 책을 다루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특별한 경의와 유별난 관심을 갖고 책을 다루라고 요구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것이고, 명백히 책을 모독하는 행위인 것이죠. 여기에는 난해할 것도 없고, 이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즉 개념이란 정확히 소리/ 색/ 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당신과 궁합이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며, 통과되기도 하고 통과되지 않기도 하는 강(밀)도들입니다. 대중철학, 여기에는 이해할 것도 해석할 것도 전혀 없습니다. 나는 이런 것이 바로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타일은 (...) 하나의 배치, 즉 발화 행위의 배치입니다. 스타일은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더듬거리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말을 더듬을 필연성이 꼭 있어야 하니까요.
게라쟁 루카는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시인입니다. 천재적인 말더듬기라는 자신만의 것을 고안했으니까요.
결코 사람들이 생각한 곳에서, 혹은 사람들이 생각한 길을 따라 사태가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 속에서도 2개 언어 사용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 언어의 내부에서 마이너 언어를 가져야 하고, 우리의 모국어를 마이너 용법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자기 나라 말을 쓰면서 이방인처럼 말하는 것.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문학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진다. 우리는 매 단어에 어떤 의미나 혹은 최소한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는데, 이는 종종 반대의 의미를 갖는 오역이다. 하지만 위대한 문학에서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오역이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오역이든 다 좋습니다. 단, 그 오역들이 해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의 용법에 관련되고, 그 용법을 증가시키고, 자기네 언어 내부에서 여전히 다른 언어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조건에서 말입니다.
“좋은 책들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진다...” 이것이 스타일의 정의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메이저리티의 미래를 생각합니다(“내가 위대한 사람이 된다면, 내가 권력을 갖게 된다면...”). 하지만 문제는 ‘마이너리티-되기’입니다. 즉 문제는 어린이, 미치광이, 여자, 동물, 말더듬이, 이방인인 척하거나, 흉내내거나, 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로 생성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힘,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는 일종의 서툶, 병약함, 허약한 체질, 말더듬 같은 것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혹자에게는 매력이 됩니다. 스타일이 글쓰기의 원천이듯이, 매력은 삶의 원천입니다. 매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삶도 없습니다.
매력은 사람/인격(personne)이 아닙니다. 매력은 사람을 수많은 조합으로 파악하게 하고, 그런 조합을 이끌어 낸 독특한 기회로 파악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매력은 필연적으로 이기는 주사위 던지기입니다. 왜냐하면 우연을 없애거나, 우연의 확률을 따져 손상시키는 대신에, 우연을 충분히 긍정하기 때문이죠.
위대한 사상가들을 보면 그들의 개인적인 삶이 무척 깨지기 쉽고 건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단정지을 수 없는데도, 그와 동시에 그들이 절대적 역량의 상태 혹은 ‘위대한 건강’의 상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그들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조합으로 된 숫자입니다.
매력이 삶에 개체들보다 우월한 비개인적 역량을 부여하고, 스타일이 글쓰기에 씌어진 것을 넘어서는 외적 목적을 부여하는 일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글쓰기의 유일한 목적은 삶입니다. 글쓰기가 이끌어 내는 조합들을 통해 삶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이죠. 이는 ‘신경증’의 반대인데, 바로 이 신경증에서 삶은 끊임없이 훼손되고, 비굴해지고, 개인화되고, 모욕당하며, 글쓰기는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신경증 환자의 반대, 즉 병약한 건강 상태로 위대한 삶을 산 낙천가인 니체는 이렇게 썼습니다. “때로 예술가, 특히 철학자는 자신의 시대에 오직 우연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나타날 때, 이제껏 한번도 도약하지 않은 자연은 단 한번의 유일한 도약을 하는데, 이것은 기쁨의 도약이다. 왜냐하면 비로소 자연은 처음으로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목적지에서 자연은 이제껏 너무 큰 판돈을 걸고 삶과 생성의 게임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자연은 빛나고, 사람들이 매력이라고 부르는 밤의 부드러운 권태는 그 얼굴에 깃든다.”
작업을 할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됩니다. 학파를 만들 수도 없고, 학파의 일원이 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어둡고 은밀한 작업만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지극히 번잡한 고독입니다. 꿈, 환상, 기획들로 북적대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마주침들로 번잡스러운 고독, 하나의 마주침이란 어쩌면 생성이나 결혼과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간에 마주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독의 깊이에서 나오지요.
우리는 (때로는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과 마주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움직임들, 사상들, 사건들, 본체들과도 마주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고유한 이름을 가지는데, 이 고유 명사는 결코 사람이나 주체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효과, 지그재그, 잠재력의 차이 아래에서처럼 둘 사이에서 지나가거나 일어나는 어떤 것, 즉 ‘콤프턴 효과’, ‘켈빈 효과’를 가리킵니다.
콤프턴 효과에서 각 광자는 자유로이 움직이거나 물질의 원자에 아주 약하게 결합하고 있는 단일 전자와 충돌한다. 충돌하는 광자는 그 에너지와 운동량의 일부를 전자에 전달하며, 전자는 이를 받아 튕겨나간다. 충돌 순간에 원래의 광자보다 적은 에너지와 운동량을 가진 새로운 광자가 생성되며, 튕겨나간 전자는 잃어버린 에너지양에 의존하는 각도로 산란된다. 에너지와 파장 간의 관계 때문에 산란되는 광자는 X선의 바뀐 방향의 각도에 따라 더욱 파장이 길어진다.
11일
아직 낮의 사물들 안에 있을지라도, 밤의 왕림은 이제 쉬어야 한다는 내밀한 의식을 천천히 펴지는 부챗살처럼 펼친다.
나는 지금 의무와 세상 때문에 오염된 적 없고 의문과 미래 때문에 더럽혀진 적 없는 기나긴 밤 속에서 내 안으로 도망가고, 내 안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잊어버린다.
신앙의 망령에서 이성의 망령으로 가는 것은 감방을 옮기는 일과 같다. 우리를 오래되고 추상적인 우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예술은, 관대한 이념과 사회적 관심사—이것도 우상이다—로부터도 해방시킨다.
개성을 잃어버림으로써 개성을 찾는 것, 신앙 자체가 이러한 운명을 보증한다.
……인류를 위해 일하거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문명이 지속되도록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뿌리깊고 진저리나는 경멸을 느낀다……
……그 경멸은 지루함으로 가득찬 감정이다. 그들은 각자에게 유일한 현실은 자신의 영혼뿐이고, 현실 세계와 타인 따위는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정신이 꿈에 나타나는 것처럼 끔찍한 악몽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나를 짓누르는 바로 이 순간처럼 외부에 있는 사물보다 나 자신이 훨씬 더 멀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잘못 내린 기차역에서 외롭게 다음에 올 삼등 열차를 기다리는 비 내리고 질척이는 밤처럼 변해버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장점이 그러하고 심지어 모든 단점도 그렇듯이, 그 장점이 과연 장점인지 점점 확신을 잃어간다.
태양이 구름을 가르고 들판에 빛을 던지듯 나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나의 확신에 찬 행동, 가장 분명한 생각, 가장 논리적인 의도 들은 결국 타고난 술주정, 기질적인 광기, 거대한 무지일 뿐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형이상학적 경탄과 함께 깨닫는다. 나는 스스로 행동한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배우가 아니라 배우의 동작에 불과했다.
내가 했던 일이나 생각은 모두, 내가 밖으로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내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허구적인 존재에 대한 복종의 표현이거나, 숨쉬는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의 무게에 대한 복종의 표현이었다. 지금 이 사실을 발견하고 보니, 항상 나는 이 도시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한낱 외로운 망명객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내 생각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오발탄이나 다름없고,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으며, 그저 생각과 의식으로 시간을 채우며 존재했을 뿐임을 이제 알겠다. 지금 나는 현실 같은 꿈이 계속되던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불빛 침침한 감옥에 갇혀 있다가 지진이 나는 바람에 밖으로 나온 기분이기도 하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낯선 마을에 들어선 나그네다. 기억을 잃고 오랫동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았던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세상에 태어나 의식을 갖게 된 이후로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왔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다. 자신에 대한 오해가 우리의 생각이다.
가만 보면, 나이 먹을수록,
과거가 다른 모양으로 변해, 더 이상 단순한 연속—
또는 발전으로도 보이지 않아, 후자는 부분적 오류
피상적인 진화 개념이 부추긴 것,
우린 경험은 했었으나 의미는 놓쳤음을,
또 의미에 다가가면 경험이 다른 형태로
복원됨을, 우리가 행복에 배당할
무슨 의미건 넘어서. 나는 전에 말한 바 있다
과거 경험을 의미 속에 되살림은
한 생애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세대가 겪은 바라고—잊지 않을
아마도 사뭇 형언키 어려운 그 무엇,
기록된 역사의 확언 뒤편을 돌아보는
뒤로 눈길 반쯤 돌려
어깨 너머로, 원초적 공포 쪽 보는 눈길.
지금, 우린 발견하게 된다. 고뇌의 순간들도
(잘못 이해한 탓인지, 아닌지,
그릇된 것들 바라다가 혹은 그릇된 것들 겁내다가,
그건 문제가 안 된다) 마찬가지로 영속적임을
시간이 갖는 그 영속성임을, 우린 이 점을 자신들의
경우보다 남들의 고뇌를, 가까이 경험하며,
우리도 관련될 때, 더 잘 인지한다.
이는 우리 자신의 과거는 행동의 물살로 덮여 있지만, 남들의 시달림은 하나의 경험으로 남아
뒤따른 마모로 조정되지도, 닳지도 않기에.
사람들 변하고, 또 미소 짓고, 하지만 고뇌는 그 자리 그대로.
앞 가거라, 여행자들아! 과거에서 도주치 말고
또 다른 삶 속으로건, 무슨 미래 속으로건.
그대들은 저 기차역 떠난 같은 사람들 아니네.
또는 어느 정거장에건 도착할 자들 아니고,
그대 뒤로 좁혀지는 철로 함께 미끄러지는 동안.
또 엔진 소리 북 치듯 둥둥대는 여객선 갑판 위
그대 뒤로 넓혀지는 물살 고랑 구경하며,
그대들은, ‘과거는 끝났다’고 생각지 말지니
또는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라고도.
행동도 무행동도 아닌 그 순간에
그대는 이 말을 받을 수 있으리, ‘어떤 존재의 영역에서건
사람의 정신은 전념할 수 있다
죽는 그때에’—이 한 행동이
(또 매 순간이 죽은 그때라)
다른 이들 삶 속에서 결실 맺으리라.
또 행동의 결실을 생각지 말고.
앞 가거라.
아 여행자들이여, 아 선원들이여,
항구에 돌아온 자들이여, 또 그대들 몸으로
바다의 시련과 심판, 또는 무슨 사건이건
감내할 자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진정한 목적지니라.”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는 것이란
그저 방치된 순간들, 시간 안과 밖의 순간,
산만함의 발작, 햇살 비추면 사라지고,
눈에 안 띈 들꽃, 또는 겨울 번개
또는 폭포, 또는 너무 깊숙이 들려
아예 들리지 않는 음악, 그러나 그대가 음악이다
음악이 계속될 동안엔. 이것들은 그저 암시며 추측일 뿐
암시에 뒤를 이은 추측, 또 그 나머지는
기도, 준행, 수련, 생각, 행동.
또 그대가 온 이유라 생각하는 바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의미의 겉껍집
거기서 목적을 꺼내려면 그것이 실현되고 나야
겨우 가능할까. 그대가 아예 목적이 없었거나
아니면 목적이 그대가 그려본 종착점 그 너머이거나
또 실현되며 변경됐거나. 저기 다른 곳들 있어
거기 또한 세상의 종착점, 삼킬 듯한 파도에도 좀 있고,
아니면 어둑한 호수 위, 사막에나 도시에—
이는 지난해의 말들 지난해의 언어에 속하기에
이듬해의 말들은 기다리기에 또 다른 목소리를.
세 가지 상태 있어, 비슷해 보이곤 하지만
완전히 다름에도 같은 산울타리에 만개한다.
자아와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애착, 자아와
사물과 사람들로부터 초연함, 또 그 둘 사이서 자라는
무관심은 다른 둘과 닮아 있어 마치 죽음이 삶을 닮듯,
우리가 운 좋은 자들에게 물려받은 바는 그 무엇이건 패배한 자들에게서 우리가 뺏어온 것이니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줘야 했던 것은—하나의 상징,
죽음으로 완전케 되는 상징,
또 모든 것 잘 되리라 또
모든 형편 처지 잘 되리라
동기를 순화하므로
우리가 간청하는 근거에서.
우리가 시작이라 하는 바는 흔히 끝이며
또 끝을 맺는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끝이란 우리가 시작한 그곳. 또 어구와
문장이 옳을 때마다 (말마다 제 집에 있고
다른 말들 지탱하려 자리 찾을 때,
그 말은 수줍거나 뻐기지 않아,
옛것과 새것이 서로 편히 거래하니,
공동의 말 정확하나 상스럽지 않아,
격식 갖춘 말 엄밀하나 젠체하지 않아,
완전히 화합하여 함께 춤추니)
모든 어구와 문장은 끝이며 또 시작,
모든 시는 묘비문.
12일
티끌처럼 남아 있는 이 무기력을 나는 일종의 위생관념의 결여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먹고 자는 일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해야 하고, 그것을 우리는 위생이라고 부른다.
삶의 불가사의에 우리는 상처 입고 여러모로 두려워한다. 그것은 때로 형체 없는 유령처럼 우리를 덮친다. 또 비존재가 소름 끼치는 형체를 띠고 나타나 영혼은 최악의 공포로 얼어붙고 만다. 때로 그 불가사의는 우리 뒤에 있으면서 우리가 돌아보지 않을 때에만 보인다. 그것은 결코 실체를 알 수 없으리라는 극심한 두려움 안에 자리잡은 진실이다.
이제는 사탄 이전에도 있었을 사타니즘을 향한 터무니없는 갈망이 밀려든다. 시간도 실체도 없는 어느 날엔가는 신의 영역 바깥으로 향한 탈출구를 찾아낼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가장 심오한 자아는, 어떤 식으로인지는 모르지만 더는 존재 혹은 비존재의 일부가 되지 않으리라는 갈망이다.
담배를 피우는 이승훈 씨
그는 하루 종일 담배를 입에 물고 일할 때도 입에 물고 제자를 만날 때도 입에 물고 대머리 여가수를 만날 때도 입에 물고 학장을 만날 때도 입에 물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발 담배 좀 줄여요 하고 했지만 그는 의지가 약하다 그는 꿈속에서도 담배를 입에 물고 걷는다 그가 잠들면 비 오는 저녁 그의 담배가 꿈을 꾸고 그는 담배의 꿈속에서도 담배를 입에 물고 방에 처박혀 있다 그를 불쌍하다고 하지는 맙시다 담배 때문에 어느 날 그는 집에서 쫓겨나겠지만 그는 담배를 피우려고 이 세상에 온 모양이다 그는 하루 종일 담배를 입에 물고 거울 앞에서 얼음을 생각하고 장미를 생각하고 무덤을 생각한다 그의 얼굴은 온통 담배다 담배가 시를 쓰고 논문을 쓴다 손톱을 깎고 구름을 본다 아니면 하루 종일 혼자 술을 마신다 하루 종일 혼자 화투를 치고 트럼프를 치고 포커를 하고 마작을 하고 하루에도 마흔 번이나 술을 마시고 그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아니고 하루 종일 작은 방에 처박혀 고독을 즐기신다 말하자면 이승훈 씨는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운다 물론 이건 시다 제발 현실로 착각하지 마시길
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20년이 넘는다.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방을 보며 똑같은 방과 함께 웃으며 담배 피우며 똑같은 책상 똑같은 의자 아아 얼마만이야? 벽에 걸린 거울도 똑같고 거울 보는 나도 똑같고 20년 20년 아니 백 년이다. 스탠드 재떨이도 똑같지. 이 방에서 이 방을 먹으며 똑같은 저녁이면 똑같은 방을 목욕시키고 똑같은 옷을 갈아입혔지. "그렇고말고요." 방이 말하고 난 "잠자코 있어!" 소리친다. 이 방이 아프리카인지 모른다. 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백년 동안 목마른 방에게 물 한 컵 주며 살았지.
봄날은 간다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당신과 함께 봄날은 간다 달이 뜬 새벽
네 시 당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봄날은 간다 맥주를 마시며 봄날은 간다
서울은 머얼다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달이 뜬 거리도 간다 술에
취한 봄날은 간다 안개도 가고 왕십리도 가고 노래방도 간다 서울은 머얼다
당신은 가깝다 내 목에 두른 마후라도 간다 기차는 가지 않는다 나도 가지
않는다 봄날은 가고 당신은 가지 않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해가 뜨면 같이 웃고 해가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 바람만 부는 봄날은 간다
글쟁이, 대학교수, 만성 떠돌이, 봄날은 간다머리를 염색한 우울한 이론가,
봄날은 간다 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13일
살다보면 바보만 만나게 되는 날이 있어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무엇이다
그때, 내 느낌에, 보이지 않는 향로의 향으로 공기가 짙어졌지.
천사들이 카펫 깔린 바닥을 스치듯 걸으며 향로를 흔드는 것 같았지.
“가련한 자여.” 나는 외쳤네 “그대의 신이 빌려주셨구나, 이 천사들 편에 보내주셨구나,
르노어의 기억으로부터 놓여나도록 휴식과 물약을 보내주셨구나.
단숨에 들이켜라 이 친절한 물약을. 그리고 잊으라, 죽은 르노어를!”
까마귀가 말했네 “결코 더는.”
까마귀는 결코 날개짓도 않고 여전히,여전히 앉아 있네
내 방문 바로 위 그 창백한 팔라스 흉상 위에.
그의 눈에는 꿈꾸고 있는 악마의 모든 분위기가 깃들었고
그를 비추는 램프 불빛은 그의 그림자를 바닥 위로 드리우네.
그리고 나의 영혼은 바닥 위로 떠도는 저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결코 더는!
아빠는 나에게 걸려 온 장우혁 닮은 사람의 전화를 끊었다
잘 들으세요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는 성인은
야 진짜 존나 크리피하지 않냐?
그때
그 애 열
다섯 살이었잖아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나의 완전한
로맨스였다
우리는 최선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해서 성공하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때 나는 그녀에게 매력을 끌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줄 수 있는 어떤 것이었고 따라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녀는 화장이나 포즈 이면에, 그리고 그 모던하고 화려한 외양 이면에 뭔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양 뒤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 외피를 벗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연극에서는 말들words이 있다. 그리고 말들은 공간을 채우고, 허공을 떠돌아다닌다. 우리는 그것을 듣고, 느끼며, 그것들의 무게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말들이 재빨리 어떤 배경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들만을 간직하게 된다. 필수적인 것들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재미있다면 스크린에 무엇이 등장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각각의 주제는 어떤 목소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은 주의를 끌어야 한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최대한으로 표현하기 위한 어떤 가능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신을 어떤 형식이나 스타일에 제한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절대적으로 필요치 않은 모든 것은 장애물일 뿐이다. 따라서 길을 가로막는 것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 진로는 뚜렷해야 하며 그 길의 끝에 있는 필수적인 것들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연극 대본의 대사들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너무나 많은 부수적인 가능성들이 있다.
정제를 통해 나는 이미지와 말 그리고 줄거리를 쫓는 관객이 그 길의 끝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열린 진로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싶다. 그것은 말하자면 관객을 위해 대사를 클로즈업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또한 그들의 일하는 방식을 참작한다. 어떤 배우가 뭔가를 말하는 게 어렵다고 느껴지면 우리는 그 문제를 같이 토론하고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수정해 나간다.
나는 큰 효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부드럽게 접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게르트루드의 경우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보다 리듬이다.
내가 얘기한 할만halman이라는 화가는 신문에 그림을 그리능 사람이다. (...) 몇 개의 색만으로 아주 예쁘게 그려낸다. 기껏해야 네다섯 가지 색으로 말이다. 나는 바로 그런 식으로 게르트루드를 하고 싶었다. 몇 안 되는 부드러운 컬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나는 노인 역을 맡기기 위해 실제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을 처음으로 기용했다. 오늘날 그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전통을 깨는 파격이었다. 단역의 경우에는 내게 추천된 배우들 대신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썼다. 또한 두 명의 이류 배우들을 선택했는데, 그들은 틀에 박힌 유명 배우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릴 그리스도의 생애는 스펙터클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세실 B. 드밀의 방식은 죽었다. 하지만 그를 얕잡아보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품고 있었던 것을 표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거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가 했던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오늘날 그를 과소평가하기는 쉽지만 그는 자신의 장르에서 대가였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놓친다. 때로는 그것들을 놓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진정한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많은 우회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는 길을 찾으면 곧장 나아가는 것이다.
그 후에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야만 했다. 처음에 우리의 생각은 그 늙은 의사가 유사에 빨려들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배우에게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쨌든 배워야 하고 때로 그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다음에는 몇 번의 실수를 해야 한다. 좀 전에 당신에게 얘기했듯이 우리는 진정한 길을 찾기 전에 많은 우회로를 거쳐야만 한다.
곧 들뜬 마음을 다잡고 침착해진다. “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 내 영혼 전체가 된 그 문장을 나의 모든 감정을 기댈 의지처로 삼는다. 밤이 되어 멀리 비치기 시작한 견고한 달빛이 전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평화가 저 바깥세상 도시 위로 퍼지듯이 내 위에, 그리고 내 안에 내려앉는다.
……내 혼란스러운 감정의 슬픈 무질서 안에서……
피로와 거짓된 단념으로 이루어진 황혼녘의 슬픔, 아무것도 느끼기 귀찮은 권태, 오열을 억누르거나 진실을 깨달을 때의 아픔. 부주의한 내 영혼 속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버려진 몸짓으로 이루어진 오솔길, 제대로 품어본 적 없는 꿈으로 높이 쌓은 화단, 황량한 길을 분리하는 산울타리 같은 불연속성, 더이상 물이 샘솟지 않는 오래된 연못 같은 추측, 내 혼란스러운 감정의 슬픈 무질서 안에서 이 모든 게 얽혀 초라해 보인다.
나는 어떤 대상을 이해한 후에야 그것을 사랑하거나 증오할 수 있다고 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언만큼 거짓인 동시에 의미심장한 발언을 알지 못한다.
고독은 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동행은 나를 억압한다.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생각이 방향을 잃는다. 모든 분석력을 동원해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방심 상태에서 곁에 있는 존재에 대해 꿈꾸기 때문이다.
자,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의 귀향에 대해 궁리해봅시다.
::봉신연의 도입부와의 유사성. 신들의 회의에 의한 계획으로 시작.
그녀(아테네)는 손에 청동 창을 들고 있고 나그네
즉, 타포스인들의 지도자 멘테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유기와의 유사성. 노파로 변신하여 등장하는 관세음보살.
마주침이란 찾기, 포획하기, 훔치기이지만 거기에는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 없고 오직 긴 준비 과정만이 있습니다. 훔치기는 표절하기, 복사하기, 모방하기 혹은 ~인 체하기의 반대입니다. 포획은 항상 이중-포획이며, 도둑질은 항상 이중-도둑질입니다. 이것이 만들어 내는 것은 상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인 블록, 비-평행적 진화, 결혼, 항상 ‘바깥’과 ‘사이’입니다.
아주 긴 준비 과정은 방법도, 규칙도, 비결도 아닙니다. 짝짓기도, 결혼 생활도 없는 결혼이지요. 내가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것을 넣어두는 가방을 갖는 것이고요. 단, 그 가방 안에 나 역시 넣어진다는 조건하에서 말입니다. 조정하고, 재인식하고, 판단하는 대신 찾고, 만나고, 훔치기. 왜냐하면 재인식이란 마주침의 반대이니까요. 판단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갖는 직무일 뿐만 아니라—좋은 직무는 아니지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이용하는 수법이기도 합니다.
심판자보다는 거리의 청소부가 되기. 살면서 착각을 많이 한 [즉 자기 자신을 많이 속인] 사람일수록 훈계를 잘한답니다. 다시 말해 비스탈린주의에 대해 훈계를 하고 ‘새로운 규칙’을 선고하는 데에는 스탈린주의자가 제격이라는 말이지요.
심판자라는 족속은 있게 마련이고, 사유의 역사는 재판소의 역사와 혼동되어서 순수 이성의 재판소, 순수 신앙의 재판소 등등을 표방합니다.
정의와 올바름은 잘못된 관념들입니다. 이를 고다르의 공식, 즉 {하나의 올바른(juste) 이미지가 아닌 단지(juste)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이 대비시켜 봅시다. 이는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영화나 노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관념들이 아닌 바로 그 관념들. 바로 그 관념들이 마주침•생성•도둑질이며, 결혼은 고독한 자들의 ‘둘-사이’입니다.
어떤 관념이 올바른지 참인지 캐낼 필요는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관념을 다른 곳에서, 다른 영역에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영역 사이로 어떤 것이 지나가는데, 이것은 한 영역에도 다른 영역에도 있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다른 관념을 전적으로 혼자서 찾을 수는 없어서, 우연이 필요하거나 혹은 누군가가 이 관념을 당신에게 주어야 합니다. 전문적인 학자가 될 필요도 없고, 특정한 영역을 지식으로 알 필요도 체험으로 익힐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전혀 다른 영역들 속에서 이러저러한 것을 [배우거나 듣거나 읽어서] 취해야 합니다. (...) 차라리 ‘나를 골라 주세요’라고 말하는 ‘픽업’의 태도라고 할 수 있지요.
교수인 나도 딜런처럼 강의를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딜런처럼 갑자기 광대의 가면을 쓰고, 각 세부가 조율되어 있으면서도 즉흥적인 연주를 하는 기법으로 강의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니와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항상 그녀의 생각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와서 나의 뒤통수를 쳤고, 그래서 우리는 두 등불의 신호처럼 점점 더 서로 십자형으로 엇갈리며 교차했습니다.
나는 푸코에 대해 말하고, 그가 나에게 얘기했던 이러저러한 것에 대해 떠들고, 내가 그를 보는 대로 상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별것이 아닙니다. 단, 망치로 두드리듯 끊어서 강하게 발음하는 목소리, 결단력 있는 몸짓, 마른 나무에 불이 붙은 듯 활활 타오르는 생각들, 극도의 주의력과 갑작스러운 종결, 그 부드러움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위험’을 감지하게 하는 웃음과 미소, 이 모든 것 일체를 실제로 내가 만날 수 없었다면 말입니다. 이 고유한 조합으로서 전체가 갖는 이름이 바로 푸코일 것입니다.
역주: 예언자 요나는 아시리아의 대도시인 니느웨에 가서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 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예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다가 폭풍을 만나 3일 동안 고래 배 속에 갇힌다. 3일 동안의 간절한 기도로 고래가 그를 땅으로 뱉어내었고 다시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이 들려온다.
14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마태복음 3장 10절, 누가복음 3장 9절
예수가 성전으로 들어가서 상인들을 내쫓고 환전상이 앉아 있던 탁자를 뒤집거—동전이 공중으로 날아갔다—비둘기를 파는 상인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찬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혁명가보다는 현자, 예언자나 유대 견유학파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는 주로 평화주의자로 묘사된다.
사실 작가, 극작가, 기자들은 언제나 사실을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고 극적인 이야기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공관복음서 저자들도 마찬가지다.
요한복음은 극적인 원리보다는 신학상의 방침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요한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 비극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다음의 연대기를 확립한다. 예수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곳에서 한동안 지내면서, 베드로, 안드레 등과 친구가 되었다. 성전이 무의미해졌다고 하나님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과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요르단 강으로 돌아오자 예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는데, 이는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과의 갈등을 일으켰다.
현대미술가는 대개 세 번 죽는다. 살아서 최종 회고전을 치를 때 죽고, 실제로 숨을 거둘 때 죽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하고/시샘하고 주요 행적을 기억해온 사람들이 모두 죽을 때 정말로 죽는다.
뮤지엄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는, 기억의 공적 자산화와 대물림에 있다. 예술가에 대한 기억, 예술에 대한 기억, 그의 예술이 전달해주는 기억, 세 차원 모두가 결정적 시기마다 창조적으로 갱신돼야 한다.
사후 회고전의 실패는, 대개 '기억의 전달'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할 때 초래된다.
고쳐 말해볼 수도 있다. 영원한 예술은 없지만, 현대미술가가 살아서 최종 회고전을 치를 때 아랫세대의 예찬이 이어지면, 영생을 위한 문이 조성된다. 실제로 숨을 거둘 때 그의 레거시를 잇고자 하는 주요 작가들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영생을 위한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하고/시샘하고 주요 행적을 기억해온 사람들이 그 모두를 뮤지엄 콜렉션과 아카이브를 통해 공적 자산으로 전환하면, 그리고 후대가 그 자산을 창조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미술가와 그의 예술은 영생의 문을 열고 고귀한 역사가 된다.
15일
청년 정치인들께 드리는 말씀이 있는데, 대선 후보 등 이름난 정치인과의 1회성 간담회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마라. 직통인 거 같지요? 그 다음부터는 멀어지는 것밖에 없다. 일꾼 노릇하려면 반드시 (유명하지 않은) 실무자와 접촉해야 한다. 선거캠프 일할 때 후보 눈에 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일한 적이 있는데(사실 말도 안 섞을 작정이었다), 일머리 돌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하나하나 관철되고 구현될 때마다 엄청난 보람이 밀려온다. 정치하기 싫으면 한마디하고 나란히 서서 인증샷 찍어도 됨.
심상정은 초선부터 들인 버릇이 장•차관을 방에 들이지 않고 국•과장 이하 실무자를 불러 토론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책 수립할 때 가장 먼저 보수 지식인을 부르고, 그 다음 공무원을 부르고, 체계 거의 다 잡아놓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혹시 모르니 진보 지식인을 불렀다는. 이렇게 일해본 사람은 예산 기능을 청와대로 뺏들어가겠다는 이재명식 발상과는 어울릴 수가 없다. 요 며칠 방콕 중이지만 그래서 지금까지 왔을 것이다.
최인훈 작가는 “생각의 앞서서 존재하는 존재를 인간의 의식이라는 실험실 속에 옮겨서 관찰하는 것”을 사고(思考)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아도 달은 있고, 별도 있고, 지구도 있어요. 다만 우리가 관찰할 때 그것이 의식의 통제 안으로 들어오는 거죠.” 작가는 인간이 생명을 가진 다른 존재와 차별화되는 점이 바로 사고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간의 살아간다는 것은 피난 다니는 것이 아닌가? 위험한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 피난이라는 화두는 저에게 철학적인 이름이 되었어요.
이쪽으로 가면 폭격이 덜할 겁니다. 저쪽으로 피하면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 역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풀기 위해 소설을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그러다 보니 선배들과는 또 다른 지점이 생겨났습니다. 소설가가 뭐 이런 철학자 흉내를 낼 필요 있느냐는 말은 오히려 촌스럽지. 철학자가 타고났습니까? 사람이면 다 생각하게끔 생긴 거지. 우리가 모자 대신 머리를 쓰고 다니는 건 아니잖습니까.
프랑스에 대한 회상
당신, 나와 함께 떠올리자: 파리의 하늘이여, 커다란 콜키쿰*이여……
우리는 꽃 파는 소녀들에게서 심장을 샀네:
그것들은 파랬고 물속에서 활짝 피었지.
우리 방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우리 이웃이 도착했지, 므시외 르 송주**, 깡마른 작은 남자.
우리는 카드놀이를 했고, 나는 눈동자를 잃어버렸어;
너는 너의 머리칼을 내게 빌려주었지, 나는 잃어버렸고, 그는 우리를 쳐서 넘어뜨렸네.
그는 문밖으로 걸어나갔고, 비가 그를 따라갔지.
우리는 죽었네 그리고 숨을 쉴 수 있었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가을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핀다.
**‘꿈’ ‘공상’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를 남자 이름으로 부른 것.
주고받으려는 자극이 생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게 타인과의 접촉은, 이런 표현이 언어학적 관점에서 허용된다면, 반反자극이다. 혼자 있을 때면 온갖 종류의 현명한 어구가 생각나고, 묻는 이 없지만 재빠른 대답을 찾아내고, 상대는 없지만 재치 있고 사교적인 말들이 섬광처럼 떠오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앞에 있을 때 이 모든 능력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내 상상 속의 유령 같은 친구들, 그리고 꿈속의 대화만이 진정한 현실성을 갖고 선명한 윤곽을 띤다. 오직 그 속에서만 영혼이 거울 앞에서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테주 강*을 좋아하는데, 그 옆에 큰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늘을 좋아하는데, 도심에 자리잡은 거리의 사층 방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라서 좋아한다. 나는 그라사 또는 상 페드루 드 알칸타라**에서 달빛 아래 고요한 도시의 불규칙적이고 장엄한 풍광을 내려다볼 때만큼의 감동을, 들판이나 자연을 볼 때에는 느끼지 못한다.
바람이 불었다…… 처음에는 비어 있는 공간에서 나오는 목소리 같았고…… 구멍 안으로 공간이 빨려들어가는 소리, 아무것도 없는 대기의 침묵이 내는 소리였다. 이어서 세상의 맨 밑바닥에서 올라온 흐느낌이 창틀을 흔들었고 비로소 정말로 바람이 불었다. 그다음에는 침묵의 울부짖음이,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는 터지지 않았던 울음이, 사물의 삐걱거림이, 조각들의 떨어짐이, 세상의 끝에서 온 원자 하나가 더욱 큰 소리를 냈다.
낭만주의란 기독교에서 환상과 신화를 제거하고 그 시르죽은 병적인 본질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낭만주의의 근본 결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혼동하는 데 있다. 우리 모두가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들이 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좀더 완전한 삶, 완벽한 행복, 꿈의 실현을 원한다. □
인간이기에 필요한 것을 원하고, 인간이기에 필요하지는 않아도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똑같이 갈망한다면,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마치 일용할 양식이 없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한다면 그건 병이다. 하늘의 달을 따서 손에 넣을 방법이 있기라도 한 듯 달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낭만주의의 병폐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그는 한 줌의 신선한 바람,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었지요. 또한 그는 지식인의 상황을 독특하게 변화시키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사르트르가 어떤 것의 시작인지 끝인지에 대해 묻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모든 창조적인 사물들이나 창조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중간에 있고, 한복판으로부터 자라납니다.
사상가, 혹은 직업적인 철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말고는 사유를 정말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사유는 자신의 권력 장치들을 가집니다. 그리고 사유가 “나를 진지하게 다루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당신 대신 생각하고, 내가 당신에게 적합성•규범과 규칙들, 하나의 이미지를 주니까요. 당신이 ‘그것은 내 알 바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으며, 철학자들과 그들의 순수한 이론들이 할 일이오’라고 말할수록 점점 더 이런 것들에 종속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사유의 권력 기구들이 미치는 효과입니다.
철학사는 철학에서, 심지어는 사유에서도 언제나 권력의 앞잡이였습니다. 이것은 압제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즉 “플라톤•데카르트•칸트•하이데거와 그들에 관한 이러저러한 책을 읽지 않고서 어떻게 사유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말하면서요. 협박을 일삼는 어느 어처구니없는 학파는, 한편으로는 사상 전문가들을 양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 전문가 집단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전문성에 더 잘 순응하도록 만듭니다. 그들이 이런 전문성을 비웃는 만큼 더 잘 순응하도록 말이지요.
내게 펠릭스만큼 매 순간 움직인다는 인상, 즉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이 하는 몸짓, 자신이 하는 말,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마치 매 순간 새로운 조합을 이끌어 내는 만화경처럼 온전히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항상 동일한 펠릭스였지만, 펠릭스라는 이 고유 명사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계속해서 생겨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것 만세”라고 외치는 것은 아직 다양함을 행한 것은 아닙니다. 다양함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르 타도”라고 말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장르’라는 것이 없다는 듯이 실제로 그렇게 써야합니다.
펠릭스가 말했듯이, 존재 이전에 정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합니다. 우리는 결코 같은 리듬을 타지 않았으며, 언제나 보조가 맞지 않고 어긋났습니다. 다시 말해 펠릭스가 내게 말했던 것을 나는 6개월이 지나서야 이해하고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내가 그에게 말한 것을 그는 즉각, 내 취향으로 보면 지나치게 빨리 이해했고, 그는 이미 딴 데 가 있었습니다.
이원론은 더 이상 단일성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연속적인 선택을 목표로 하지요. 가령 “백인이냐 흑인이냐, 남자냐 여자냐, 부자냐 가난하냐” 등등의 질문 혹은 “우파의 입장이냐 좌파의 입장이냐” 같은 질문에서 계속 선택을 하게 되지요. 여기에는 항상 이항 기계가 있습니다. 이 이항 기계가 책임지고 역할을 분배하며, 모든 대답이 미리 형성된 질문을 통과하게끔 만듭니다. 왜냐하면 질문이란 이미 답변을 염두에 두고 계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배적인 의미에 준하여 가능하리라고 여겨지는 대답을 염두에 두는 것이죠. 그리하여 격자가 구성됩니다. 이 격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이든 실질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정신분석은 (죽음 욕망과 거세, 더러운 ‘작은 비밀’을 배양하는) 아주 냉정한 기획입니다. 환자가 입 밖에 내는 모든 것들을 눌러 부수고, 오직 환자가 내뱉은 말들의 핏기 없는 분신만을 간직하고, 환자가 말하는 환자 자신의 욕망, 경험과 배치, 정치학, 사랑과 증오—이 모든 것을 격자 바깥으로 내던져 버리는 기획이지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사제들, 너무 많은 대표자들이 ‘우리의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떠들어댔고, [그래서] 사제들과 대표자들로 구성된 이 새로운 종족들이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떠들어대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16일
적나라함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섹스가 아닌
어떤 적나라한 고립감을.
이제 밑에는 할리우드가 있다.
저 아래 별들의 세상
—적나라함을 표현하고 있는—
저 갈망, 저 영광
저 갈채—여가, 정신.
꿈과 관련된 취향, 몸들,
여행들: 마음에서 창조되어
섹스를 통해 입 맞추게 되는
실제에 대한 취향—
그 갈망, 그 다정함!
인간의 상상조차
끝없는 영혼의 공백을
채워주지 않는다
차라리 나으리라
이론으로나마 고통의 순례를 하는 것이.
떠돌이의 완벽한 고립이 주는
고통을 발로 느껴보는 것이
이 힙스터
비즈니스 일가의 여행보다는 나으리라.
—밤에 미 대륙을 횡단하기—
그것도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이 공중에서 그 누구도 아닌 느낌
달빛 속에는 구름들뿐
저 아래 사람들은
섹스하고 있고...
바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과 부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일들은 그에게 이차적인 문제였다. 바울은 역사 속 예수가 언급한 말을 자신의 편지에서 거의 아무것도 인용하지 않는다. 바울은 잘 몰랐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공관 복음서의 핵심 주제이다. 이 세 개의 복음서들을 읽는다면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부활이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다는 예수의 말씀이 ‘잊혀진’ 이유는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예수가 우화와 비유를 통해 그린 이상향이 결코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는 다른 잣대로 평가되는 세상이다. 인간의 생각이 뒤집혀 우리가 격분하게 된다. 예수 세미나의 창설자인 로버트 펑크는 우화들을 통해서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뒤흔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라고 결론 내렸다.
17일
낭만주의란 다름아니라 평상시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들을 반대로 뒤집어 드러낸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내밀한 상상 속에서는 위대한 제국을 꿈꾸며, 모든 남자들을 복종시키고, 모든 여자들을 굴복시키며,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영예로운 곳에서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된다. 꿈꾸는 것이 습관이 된 나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런 꿈의 미학적 가능성을 두고 웃어버릴 만큼 충분히 현명하다.
나의 성채는 오래되고 더럽고 짝이 모자라 쓸모없는 카드로 만들어졌다. 카드로 만든 성채는 무너진 게 아니라 한쪽으로 몰려 있는 식탁보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던 하녀의 성급한 손길에 파괴되고 말았다.
감정, 어떤 때는 단지 상상에 불과한 감정까지도 세세히 분석하기, 바깥에 보이는 풍경과 마음을 일치시키기, 신경의 모든 움직임을 치밀하게 해부하기, 욕망을 의지처럼 사용하고 갈망을 생각처럼 사용하기,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 익숙해서 다른 이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흥미롭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런 것들을 느낄 때마다 바로 내가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뭔가 다른 걸 느끼고 싶어지는데, 바로 고전주의 작품 읽기가 그 해답이다.
퇴위하는 왕처럼 나는 읽는다. 왕관과 망토는 떠나는 왕이 땅에 내려놓는 순간에 가장 존엄해지는 법이니, 나의 모든 권태와 몽상의 트로피를 모자이크 타일 바닥에 내려놓고, 본다는 행위의 고귀함만을 들고 계단을 오른다.
지나가는 사람처럼 나는 읽는다. 고전주의 작가들 속에서, 차분한 영혼들 속에서, 고통받지만 말하지 않는 이들 속에서 나는 성스러운 길손이 되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목적 없는 세상에 이유 없이 묵상하는 순례자가 되고, 떠나는 길에 만난 마지막 거지에게 자신의 고독을 최후의 동냥으로 건네준 ‘위대한 망명길에 나선 왕자’가 된다.
그리고 오늘, 내 인생이 지나온 길을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누군가가 팔에 건 바구니에 담겨 변두리 전차역 사이를 옮겨다니는 동물처럼 느껴진다. 떠올려보면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인데, 그것이 가리키는 인생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이런 소풍용 바구니에는 절반씩을 덮는 두 개의 뚜껑이 있기 마련이고, 동물이 꼼지락거릴 때마다 한쪽 뚜껑이 살짝 열린다. 하지만 바구니를 든 팔이 중심 부분을 꽉 누르고, 미약한 존재가 뚜껑을 들어올리려는 움직임은 나비의 여린 날갯짓처럼 부질없을 뿐이다.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한 사물을 이루는데 이는 물질의 양,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 사물이 놓인 환경이다. 이를테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이름은 책상이고, 이 방에 속한 가구 중 하나다. 이 책상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긴다면, 글은 이것이 나무로 만들어졌고, 책상이라고 불리며, 일정한 용도와 목적이 있다는 개념들로 구성될 것이다. 또한 책상 위에 놓인 사물의 배열 상태에 따라 영혼을드러내는 물건들을 수용하고 반영하며 그 물건들에 의해 변형된다는 개념이 포함될 것이다. 책상의 색깔과, 색의 낡은 정도, 얼룩이나 흠 등은 외부 조건에 의해 생긴 것으로 사실 나무라는 본질보다 이런 것들이 책상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책상으로서 존재하는 영혼의 내밀한 본질은 역시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고, 바로 그것의 개성을 이룬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부르는 물건에 영혼을 부여하는 일은 문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절대 실수가 아니다. 사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속성을 부여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밖으로부터 주어지며, 결국 사람의 영혼이란 땅으로부터 사람의 육체라는 똥덩어리를 분리해서 비춰주는 햇빛일 뿐이다.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고찰에서 하나의 온전한 철학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한다. 논리적 가능성에 대한 모호한 생각이 떠올라도, 돌담 옆 검은 흙바닥 위의 똥덩어리가 마치 젖어 으깨진 지푸라기처럼 금빛으로 보이도록 태양이 한줄기 서광을 비추면 내게는 모든 것이 희미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생각하고 싶을 때 나는 본다.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보고 싶을 때면 나는 불현듯 멈춰 서서 모든 걸 잊고, 길게 이어진 나선형 계단 끝에서 위층 창문을 통해, 태양이 제멋대로 뻗어나간 지붕들을 황갈색 작별 인사로 물들이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노인을 잊고 있었다. 그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열고 찾아보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가버렸다. 나에게 어떤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자기 의무를 다했기에 저 모퉁이를 돌아서 가버린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노인은 절대적인 모퉁이를 돌아 가버렸고 아예 이곳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나는 지금 창문을 닫는 것과 같은 태도로 순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18일
코로나
내 눈은 사랑하는 이의 성기로 내려간다:
우리는 서로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 어두운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양귀비와 기억처럼 서로 사랑한다,
우리는 조개 속의 포도주처럼 잔다,
달의 핏빛 속에 잠긴 바다처럼 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저녁에 들이켜네
우리는 들이켜네 한낮에도 아침에도 우리는 들이켜네 밤에도
우리는 들이켜고 들이켜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파네 그곳은 눕기에 좁지 않아서
한 남자가 그 집안에 사네 그는 뱀들과 노네 그는 쓰네
날이 어두워지면 그는 쓰네 독일을 향하여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그가 그것을 쓰고 집 앞으로 나서면 별들이 번쩍이고 그는 휘파람으로 자신의 사냥개들을 부르네
그는 휘파람으로 자신의 유대인들을 불러내 땅속에 무덤을 파게 하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하네 이제 춤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당신을 우리는 밤에 들이켜네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아침에도 한낮에도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저녁에도
우리는 들이켜고 들이켜네
한 남자가 그 집안에 사네 그는 뱀들과 노네 그는 쓰네
날이 어두워지면 그는 쓰네 독일을 향하여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너의 잿빛 머리칼 술라미트여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파네 그곳은 눕기에 좁지 않아서
그는 외치네 땅속으로 더 깊이 찔러라 너희는 이쪽에서 너희는 저쪽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는 허리띠의 쇠붙이를 움켜쥐고 그것을 휘두르네 그의 두 눈은 파랗지
삽을 더 깊이 찔러라 너희는 이쪽에서 너희는 저쪽에서 춤을 위한 음악을 계속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당신을 우리는 밤에 들이켜네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한낮에도 아침에도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저녁에도
우리는 들이켜고 들이켜네
한 남자가 그 집안에 사네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너의 잿빛 머리칼 술라미트여 그는 뱀들과 노네
그는 외치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는 외치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올라가리라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갖게 되리라 그곳은 눕기에 좁지 않아서
새벽의 검은 우유 당신을 우리는 밤에 들이켜네
우리는 당신을 한낮에 들이켜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저녁에도 아침에도 우리는 들이켜고 들이켜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의 눈은 파랗지
납총알로 그는 당신을 관통하네 정확하게 관통하네
한 남자가 그 집안에 사네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그는 자신의 사냥개를 우리에게로 몰아대지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선물하네
그는 뱀들과 노네 꿈을 꾸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너의 잿빛 머리칼 술라미트여
무적霧笛 속으로
숨겨진 거울 속의 입,
교만의 기둥 앞에 꿇은 무릎,
격자막대기를 든 손:
어둠이 그대들에게 이를 때,
내 이름을 불러다오,
나를 내 이름 앞으로 데려가다오.
크리스털
내 입술가에서 당신의 입을 찾지 말라,
문 앞에서 이방인을,
눈 속에서 눈물을 찾지 말라.
일곱 밤이나 더 높게 붉음은 붉음으로 유랑한다,
일곱 심장이나 더 깊게 손은 문을 두드린다,
일곱 송이 장미만큼 더 늦게 샘물은 졸졸 흐른다.
나는 혼자다, 나는 시네라리아 꽃을 꽂는다
농익은 검정으로 가득한 유리잔에. 자매의 입이여,
너는, 창문들 앞에서 계속 삶을 이어가는, 단어 하나를 말한다,
그러자 내가 꿈꾸는 것이, 소리 없이, 나를 감아오른다.
나는 꽃 진 시간의 만개滿開 속에 서 있다
그리고 늦게 오는 새 한 마리를 위해 송진을 아껴둔다:
새는 삶처럼 붉은 깃털 위에 눈송이를 나른다;
작은 얼음알갱이는 부리 속에, 새는 여름을 통과해 온다.
나는 내 마음속에 다 그려지지 않은 몸짓들과, 내 입술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말들과, 끝까지 꿈꾸지 못하고 잊어버린 꿈들이 담긴 우물이다.
나는 누군가 건물을 짓는 도중에 무엇을 지으려 했는지 생각하다 지쳐버려 결국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의 폐허다.
인간 영혼의 한평생은 고작 그림자 속 움직임에 불과하다. 우리는 의식의 여명 속에 살면서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저마다 허영을 품고 살며, 실수를 하는데 그 실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공연의 막간에 잠깐 진행되는 그 무엇이며, 가끔 어떤 문을 통해 기껏해야 무대배경에 불과한 것을 훔쳐본다. 세상은 밤에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혼란스럽다.
사유는 배움의 운동 안에서 정의되는 것이지, 지식의 결과 속에서 정의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피노자도 니체도 ‘저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저자로부터 도주합니다.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방법의 역량을 통해 도주하고, 니체는 저자의 금언(maxime)과는 정반대되는 아포리즘을 통해 도주합니다. (...) 우리가 저자를 정하는 것과 동시에 사유는 이미지에 종속되고 글쓰기는 삶과 차이 나는 활동이 되어 글쓰기의 목적을 글쓰기 자체에 두게 됩니다... 삶에 위배되는 목적에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비평행적 진화는 분화를 통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선에서 다른 선으로 껑충 뛰고,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갑자기 도약하는 것입니다. 균열들, 지각할 수 없는 단절들이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각오를 하고 선들을 끊어 놓습니다.
오랫동안 문학은 그리고 심지어 예술은 ‘학파’로 편성되어 왔습니다. 학파란 나무 모양의 것들입니다. 학파라는 것이 이미 지독한 것이죠. 왜냐하면 학파에는 항상 한 명의 교황과 성명서들, 대표자들, 전위주의의 선언들, 법정들, 파문들, 정치적으로 뻔뻔한 전향들 등등이 있거든요. 학파에 관해 제일 나쁜 것은 문하생들의 씨가 말랐다는 점만은 아닙니다(물론 이건 정말 학파 탓이지요). 가장 나쁜 점은 바로 학파가 동시에 혹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것을 짜부라뜨리고 숨 막히게 한다는 점입니다. ‘상징주의’가 19세기말 너무도 풍요로웠던 시적 운동을 얼마나 숨막히게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초현실주의가 국제적인 다다이즘 운동을 어떻게 짜부라뜨렸는지 생각해 보세요.
저자의 나쁜 점은 그것이 출발점 혹은 기원점을 구성하고, 모든 발화가 [즉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들이] 의존하는 발화 행위의 주체를 형성하고, 지배적인 의미 질서나 기존의 권력 질서 속에서 재인식되고 동일시된다는 점이기 때문이죠. 가령 ‘~로서의 나’라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의 좋은 점은—그 규모가 아무리 적을지언정 지식인의 세계에서—‘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학파를 만들고 마케팅에 연루되는 사람들, 자신들의 자아도취적인 영화와, 인터뷰, 방송, 기분 등을 확인하는 (이런 일들이야말로 현대의 수치죠) 사람들과 무엇인가 다른 것을 꿈꾸는 사람들을 최소한 분리는 시킨다는 전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다른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말을 했는데 사실 이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죠.
질문과 대답, 인터뷰, 대담에서 지루한 것은 대개 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 현재 그리고 미래—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한 저자의 첫 작품이 이미 전체를 담고 있다거나, 역으로 그는 끊임없이 변신하며 새로워진다는 말이 심지어 그리고 항상 가능한 것이죠.
생성에는 과거도 미래도 심지어 현재도 없습니다. 생성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생성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소용돌이 꼴로 둘둘 말리는 것입니다.
생성이란 점점 더 절제하는 것, 점점 더 단순해지는 것, 점점 더 사막이 되어가는 것, 그리하여 군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글쓰기란 무엇인가의 시작도 끝도 아닌 이러한 단순성, 이러한 절제에 이르는 것입니다.
유목민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생성, 여성-되기, 동물-되기, 말-되기만이 있을 뿐이죠. 그들의 비상한 동물적 기술을 생각해 보세요. 유목민에게는 역사가 없습니다. 오직 지리학만이 있을 뿐이죠.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운명처럼 온다. 까닭 없이, 이유 없이, 어떤 구실도 없이, 그냥...”
속도의 문제란 경주에서 일등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속도 때문에 뒤처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속도로 인해 불변하거나 일정하게 지속될 수도 있거든요. 속도는 생성 속에서 포착되는 것으로, 이는 발전도 아니고 진화도 아닙니다. 우리는 택시처럼, 기다리는 줄처럼, 도주선처럼, 교통 체증처럼, 병목 현상처럼, 빨강-파랑 신호등처럼, 가벼운 편집증 환자처럼, 경찰과의 까다로운 관계처럼 있어야 합니다. (...) 당신이 나쁘게 말한 것이 잠시 후에는 매력이나 스타일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속도입니다.
우리는 가장 느리게 작업한 글쓰기 속에서 비로소 이 절대적인 속도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는 효과가 아니라 산물입니다. 음악의 속도는 심지어 가장 느린 것이지요. 음악이 점이 아닌 선만을 아는 것은 우연일까요? 음악에서는 점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음악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생성들일 뿐입니다. 음악은 반(anti-)기억입니다. 음악에는 생성들이 가득합니다.
다양체를 정의하는 것은 구성 요소들도 아니고 집합들도 아닙니다. 다양체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그리고(ET)”입니다. 구성 요소들 사이에 혹은 집합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인 그리고인 것이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말더듬기. 심지어 [이것과 저것이라는] 두 항만 존재할 때조차, 이 둘 사이에는 그리고가 있습니다. 이 그리고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저것이 되는 이것도 아닌, 바로 다양체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군데군데 끊어진 채로 길게 이어지는 도주를 통해 세상을 발견합니다.
저글링
하나만 해도 손이
부족한데 나도 모르게
여러 개를 들려고 한다
손이 없어 자꾸 손을 빌려 오니
여러 번 꼬아 놓은 밧줄의
끝에. 꼬마. 아이.
깨지지 않는 유리
베이지 않는 유리로 된
매개 없이 전진하는 밤
차마 번역하지 못한 시큼한 단어들이
긴 손톱을 끌며 칠판 위를 거니는 밤
내 몸속에는 백 명의 아이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데
나는 단 한 명분도
살아 내지 못하고 발가벗긴 침묵 중
돌을 던지며 노는 아이의
등을 톡톡 두드리면 아이는
돌을 던지다 말고 뒤를 돌아본다
뒤에는 내가 있었던가?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발을 잡았지.
이것 좀 보라지, 여러분,
천사다 이럴 줄이야!
백조 같은 허세꾼,
철길 같은 냉혈한,
거위 같은 지방 덩이,
당신 같은 추남.
요람 교향곡
우유보다도 더, 월하향보다도 더
기쁨의 열매를 주는 나무란다,
겨울엔 금빛 장작,
여름엔 은빛 그늘을 주는데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바람과 새들을 불러 모으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받아들이렴
나무 같은 친구는 없다는 것을,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나무가 항상 네 곁에 있다는 것을,
네가 굳건한 대지를 거닐거나
풍랑이 거센 바다에서 요동칠 때에도,
요람에서 흔들리고 있거나
무척이나 번민하는 날에도,
거울보다 정직하게
노예보다 고분고분하게 말이지.
나무 보호
고집스럽게 흩뿌리는
빗방울 아래
어디로 갈 것인가 가엾은
카탈리나 파라.
아, 내가 알았더라면!
하지만 무엇이 너의 운명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창백한 카탈리나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너를 다시 만날 때까지
이런 말들을 읊조리며
희망을 바라는 것뿐.
카탈리나 파라
무엇이 더 귀한가, 황금? 아니면 아름다움?
더 귀한 건 흐르는 개울물인가
아니면 강가에 뿌리박고 있는 잡초인가?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상처를 헤집어놓거나 아물게 한다.
더 현실적인 건 샘물인가?
아니면 샘물에 비치는 소녀인가?
알 수 없다, 인간은 스쳐 지나가며
모래성을 쌓아 올릴 뿐.
인간의 손으로 만든 투명한 유리잔,
그것이 더 뛰어난 것인가?
차 마시며 하는 질문들
바뀐 것은 없다, 하얀 집들도
오래된 목제 대문들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교회의
가장 높은 탑에 있는 제비들,
정원의 달팽이, 그리고 비석에 낀
축축한 손 같은 이끼.
행복한 하루
순간 웨이터들이 날 감시하고 있다는 편집증적인 생각:
그래 그럴지도.
네 사람은 문간에 모여 있고
나만 홀로 테이블에 앉아
어두운 안뜰에서
광장을 관찰하며, 취해 있으니.
신의 형상으로 분장한 무언극 배우들이
높은 곳에서 입을 오물오물 낮게 웅얼거리며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그들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니,
형체 없는 거대한 것들이 콘도르 같은 날개를 퍼덕이며
장면들을 앞으로 뒤로 바꾸고
보이지 않는 슬픔을 퍼뜨릴 때
그것들의 명령에 따라 왔다 갔다 할 뿐이어라!
저 뒤죽박죽 부조리한 희곡. 오, 확신하라
저 희곡은 잊히지 않으리란 것을!
한 무리의 군중은 저 ‘환영’을 영원히 좇으면서도
결코 그것을 포획하지 못하고 원을 돌아
항상 똑같은 장소로 되돌아오게 되는 저 희곡은,
그 ‘환영’과 무수한 ‘광기’와 그보다 더 많은 ‘죄’
그리고 플롯의 핵심인 ‘공포’가 있는 저 희곡은
결코 잊히지 않으리란 것을.
19일
진보 진영의 금기 중 하나는 민주당 비판의 가드레일. 문재인/민주당을 비판하더라도 선을 넘으면 가차없이 쳐낸다는 암묵적 규범. 예를 들어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 촛불:
촛불정신 배신했다, 촛불을 기억하라! OK.
촛불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 촛불은 무엇인가? X -> 국민을 무시하고, 대중운동을 경시하는 엘리트주의자.
- 최저임금:
최저임금1만원 공약을 지켜라! OK.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은 부작용이 더 크다. X -> 저임금 노동자에 눈 감고, 시장의 논리에 굴복하는 개량주의자.
- 검찰개혁:
제대로 된 검찰개혁 완수하라! OK.
대통령의 검찰 장악 아닌가? 사법방해가 더 위험하다. X -> 정부 비판을 위해 검찰을 비호. 국힘 논리에 굴복하는 법치 보수주의자.
- 이재명:
대장동 비리 해명하라! 친노동 복지 공약이 없지 않은가? OK.
윤석열 식 자유민주주의보다 이명박 식 무제한 정부가 더 위험. X ->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부정하는 시장주의자, 이재명 싫다고 윤석열 지지하는 변절자.
등등... 요컨대, 진보의 금기란 민주당 비판이 아니라, 이른바 진보가 "민주당과 공유하는" 사상이나 정책을 비판해선 안 된다는 것. 심상정 후보가 진보의 금기를 넘어서겠다고 밝혔는데, 정의당이 넘어야 할 금기는 "암묵적으로 민주당과 공유하는 사상과 정책" 아닐까.
내가 젊은 세대들의 영화를 보면서 염려하는 점은 영화를 통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그것이 내게는 경제적 억압의 역사보다 더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독살처럼 미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많은 젊은 감독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영화를 구축하는 동안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단지 느낌에 대한 질문만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질문들을.
영화에는 감독 외에도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것들에 의존하고 있지요. 장인들, 테크니션들, 그리고 사회적 역사 등입니다. 우리 음향 기사인 루이 오셰의 세대에 영화로 들어온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 출신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화는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제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그들의 계급, 그들의 경험, 그들의 지식을 영화 속으로 가져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런 것들은 사라졌습니다. 영화, 영화는 일종의 마피아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기술자의 아들이 기술자가 되고, 배우의 딸이 배우가 되고 그리고 이것은 환상적인 에너지의 쇠퇴를 설명해 줍니다.
야심이라는 것도 역시 사회적인 사실입니다. 하층 계급 출신은 출세하려는 야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영화 애호라는 것 역시 야심의 결여입니다.
우리가 예전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가 걸어오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었고, 휩쓸려 가버리고, 억압되었습니다. 특히 두려운 것은 그것이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의 모델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17이라는 숫자는 불행을 가져오는 숫자입니다.
고다르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해소시키는 데 결코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요. 그는 리얼리티에 의해 정복되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었지요. 바로 리얼리티가 그의 영화에 대항 애정을 해소시켰는데요, 그 이유는 고다르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낡은 반동적인 어떤 것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영화를 만듭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출발해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어요.
우리는 제로에서 출발할 수도 없고 이미 이루어진 것을 무시할 수도 없어요. (...) 만일 우리가 미국의 한 영화 학교를 돌아본다고 하면, 우리는 선생들이 채플린이나 그리피스의 영화를 전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창조해 낸다고 생각하곤 하죠. 그리고는 영화와 붓, 기계를 가지고 스크린을 망쳐버리고 맙니다. 그러고서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곤 하지요. 이것이 한 편의 영화로부터 출발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하는 것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그들(타비아니, 로지, 앙겔로풀로스)이 만들어놓은 것은 바보 같고 위선적인 그런 끔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그것이 영화 속의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린 글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수사에 의해서 흥미를 느끼고자하기 때문입니다. 그 수사가 영화의 주제, 즉 그 내용과 형식이 되어버립니다.
내게 있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감정과, 저항과 느낌과 질문 그리고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지 결코 영화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만든 다음에 우린 우리가 만들어낸 대상물이 완전히 전통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쇤베르크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제가 10분짜리 실내악 혹은 두 시간짜리 교향곡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10분짜리 실내악이나 두 시간짜리 교향곡을 위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거나 그 반대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전통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부터 출발하는데 그 느낌이란, 좀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삶이나 실제적인 느낌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영화에서 온 느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스트로하임이나 그리피스, 미조구치 혹은 르느와르의 영화에 대한 느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상은 복잡한 영화들, 그 앞에서 우리가 “오 하느님, 이건 예술이에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이렇게 말하게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것이 베르톨루치나 타비아니, 앙겔로풀로스 등이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오즈의 경우는 반대이지요. 오즈의 작업이 위대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그가 해냈기 때문입니다. (...) 우린 미조구치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반면, 오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비록 그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비록 거기에 드러나 있더라도 말이에요.)
내가 읽은 다른 동료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경의는 존 포드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존 포드는 “르느와르”라고 답을 했습니다. 기자들이 다시 “그렇다면, 르느와르의 어떤 영화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포드는 “아니, 아니 전부 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바로 이것은 이 시네아스트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르느와르의 작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회화,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중요했던 것은 인간들이 선명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세잔 덕분에 그리고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예술적 창작의 영역에서 얄팍한 문제 의식으로 현실을 변형시키고 예술적 주제와 창작물 사이에 자신들의 허영심을 투영시키고자 하는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선명하게 보기 시작했고 응시를 할 수 있었으며, 사과와 탁자와 의자에 앉은 노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자존심과 야심이지 허영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가진 것이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가지지 못한 것이다!”
— 베르타 시치오
저는 작업을 할 때에 백지 상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 모든 것을 거부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관습들과 우리가 본 모든 영화들에도 불구하고 제로에서 출발해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사나 영화사 혹은 음악 또는 제가 잘 모르는 어떤 것들이 영화 속에 후천적으로 침입하고 난입해 들어올 때, 그것들은 비로소 흥미로운 것이 되는 것이지, 결코 그것에서 출발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화가의 세계를 재창조하려고 하기보다는, 언덕 앞에 스스로를 내던지고 이 언덕으로부터 그것을 언덕이게 하는 어떤 것을 끌어내고, 어떤 물질성 다시 말해 미학적이고, 영화적이며 회화적인 것들을 경우에 따라 끌어내기 위해 언덕과 함께 몇 달, 몇 년을 석탄을 나르면서 지내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훨씬 더 야심찬 일입니다.
한편의 작품을 구축하는 작업은 시간을 압축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우리는 시간을 공간과 함께 압축시킵니다. 음악가는 시간을 시간 속에서 압축시킵니다. 음악과 영화 사이에 유사성은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작업은 우리가 보여주는 공간 속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트래블링과 파노라마 이미지를 보는 것은 정말 따분한 일입니다. (...) 그건 끈끈이에 붙들리고 마는 것일 뿐이에요. (...) 어떻게 공간 속에서 우리가 시간을 압축하고, 어떻게 공간을 압축해서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회화를 참고한다는 것은 어떤 시네아스트에게 있어서 스스로를 단숨에 좀 더 특별한 위치에 자리 잡게 해 줍니다. 이것은 좀 전에 말한 허영심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포: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것이 당신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하는 말입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구요?
스트로브: 그렇습니다.
20일
높은 언덕에 올라가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흔적을 살피는 사람처럼 위에서 스스로를 굽어보니, 나 자신이 다른 모든 사물과 더불어 혼란스럽고 희미한 풍경 같다.
우리는 보통 모르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을 빌려온다. 죽음을 놓고 잠들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잠든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새로운 삶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죽음이 지금의 삶과는 다른 무엇이기 때문이다. 실제와는 약간 어긋나는 오해를 통해 우리는 믿음과 희망을 빚어내고, 행복하다고 믿는 가난한 집 아이들처럼 빵 껍질을 케이크라고 부르며 살아간다.
문명이란 어떤 대상에게 실제로는 상관도 없는 이름을 부여하고 나서 어떤 결과를 꿈꾸는 것이다. 가짜 이름과 진짜 꿈이 만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 대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는데, 우리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은 성적본능이지만 우리는 성적 본능이 아니라 우리가 추측하는 다른 어떤 감정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이 추측으로 인해 실제로 다른 감정이 생겨난다.
우울한 저녁은 불확실한 빛 속에서 지루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저문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므로나는 글쓰기를 멈춘다.
공원은 문명의 요약본 같은 것이다. 즉 자연을 특징 없이 변형해놓은 곳이다. 거기에는 식물이 자라는 동시에 도로, 그렇다, 도로가 있다. 나무가 자라는 한편 나무 그늘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정신이 산만할 때면 내게 정말 돌아갈 집과 가정이 있다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을 잊을 때면 삶의 목표가 있는 보통 사람이 되어, 다른 옷을 꺼내 털고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모든 환상과 환상에 속한 모든 것—환상을 잃어버림, 환상을 갖는 일의 부질없음, 결국은 잃어버리기 위해 환상을 가져야 하기에 미리 느끼는 피곤함, 환상을 가졌던 것에 대한 후회, 그렇게 끝날 걸 알면서도 환상을 가졌던 자신의 지성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한 피로.
너는 너무도 가까워서, 마치 여기에 없는 것 같아.
내 손에서 너는 커다란 꽃을 집어든다:
꽃은 희지도, 붉지도, 파랗지도 않다—그럼에도 너는 꽃을 집어든다.
결코 있어본 적이 없는 곳, 그곳에 꽃은 언제나 머물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있었던 적이 없어서, 그렇게 우리는 꽃의 곁에 머문다
잠과 음식
밤의 입김은 네 침대 시트다, 어둠이 네 옆에 눕는다.
어둠은 네 복사뼈와 관자놀이를 어루만진다, 너를 삶과 잠으로 깨운다,
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지지 않는 것들을
격자에 맞추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찢어 떼어 놓는 데 쓰고 있다
그것은 망각
오늘은 푸르른 봄날,
난 죽을 것 같아 시 때문에,
이 우울한 청년 때문에,
그녀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건만.
아는 건 고작 그녀가 이 세상을 스쳐 지나갔다는 것뿐.
덧없이 사라지는 비둘기가 그러하듯이.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를 잊고 말았지, 서서히
인생사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가짜 소설 쓰는 법
1978년이던가? 시골 대학 교수인 나는 가방 하나 들고 추운 겨울 저녁 서울에 내린다 신촌 연세대 부근 2층 여관으로 올라간다 하룻밤 자려구요 조용한 방 하나만 주세요 여주인은 돈을 받고 난 주인을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창 너머 어둠이 내리던 신촌 로타리 난 가방을 두고 다시 계단을 내려온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오버 깃을 올리고 원효로 목월 선생님 댁에 들른다 선생님 대학원 박사 시험 보러 왔습니다 응 어느 대학이고? 왜 서울대에 응시하지 않고? 서울대 시험 날은 학교에서 지방을 돌며 제자들을 지도하는 출장이 있었어요 선생님은 걱정이 되시나 보다 그 무렵 난 여자 문제로 아내와 싸우고 있었다 오버 깃을 올리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다 내일 아침 일찍 깨워 주세요 몇 시요? 일곱 시요 그러나 밤새도록 술 취한 손님들 주정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로 잠을 설치고 가까스로 잠이 들 때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일곱 시입니다. 부랴부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은 굶고 가방 하나 들고 연세대 교문으로 들어갔지
다니엘 위예: 우린 결국 영화를 만들기 전이나 만드는 동안에는 생각했던 것들과는 반대로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이 상당히 스트로하임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에요. 마찬가지로 ‘침입’인 셈이죠.
스트로브: 우리는 그 사실을 편집실에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1주일 전에 사진을 보다가 알아차렸어요,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개와 고양이, 뱀과 도마뱀을 가리지 않고 깔아버립니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세상에 대해, 그것들이 인간에게 가하는 폐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동차를 보여 줄 때에 우린 늘 멋진 자동차만을 보여 줍니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록 제가 좀 건방진지도 모르겠지만, 10년 동안 생 빅트와르 산을 열 시간씩 바라보면서 세잔이 했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보여질 때에만 사물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과잉이 없을 때에, 사물이 바로 이전의 상태와 비교해서 적절한 그 순간에 보여질 때에만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컷과 편집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사후의 일입니다.)
편집에 대한 생각을 갖기 이전에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수년간 자신의 산을 바라보던 한 남자(세잔)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 존재하는 그것을 발견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어디서 끊어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구도 속에 넣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오늘날 영화를 만든다면 당신이 찍는 것은 이 소격 효과를 불러일으켜야 하며,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보는 차원이나 사람들 사이의 차원 혹은 줄거리나 내레이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이 모든 것의 어느 것도 정상이 아니며 당연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 “대단해. 하지만 이건 모두 좀 이상해. 이것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작업이며, 그것은 바로 편집 이전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이란 우리가 어떤 순간에 그것이 비극적인가를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에 그것이 재미난 것인지도 역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편의 영화는 우리가 이 두 요소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때에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 순간이지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대조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기관차 이 개자식 안으로 던져진다 신경 쓰지
말 것 주가지수가 살짝 떨어지는 것쯤은 여기 정비공이 있으니
펑 쓰레기장 도와줘 제련소 나중에는 합병의 압력이 높아져 간다
그는 이제 질려 버렸다 헉 그는 비행기다 흐느낌 그는 집에 가고 싶다
갑자기 시장 위로 뛰어 든다 마치 폭탄처럼.
21일
자 이리 모여라! 매장 의식의 조사를 읽게 하라, 장례식의 노래를 시작하라!
그토록 젊어서 죽은 자들 중 가장 여왕다운 이를 위한 송가를.
그토록 젊어서 죽었기에 두 배로 죽은 그녀를 위한 비가를.
어떤 종소리도 울리지 마시오!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이 성스러운 희열 속에서
그 선율을 듣게 하지 말란 말이오, 저주받은 지상으로부터 올라온 선율이니!
그리고 나는 오늘 밤 마음이 가벼우니 그 어떤 애도가도 불러대지 않을 거요.
대신, 옛 시절의 환희의 찬가를 불러 천사 같은 르노어를 둥둥 날아오르게 할 거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거기엔 아름다움과 활기, 그리고 비할 데 없는 깊이가 있고, 해학까지도 있으니까요.
우리도 고깃덩어리 아닌가요? 정육점에 갔을 때, 내가 그 자리에, 고깃덩어리 대신 놓여 있지 않은 것이 난 늘 의아스러웠어요.
그것은 미학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이 미학적인 경우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지요...
창조란 나머지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할 그 어떤 필연성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내 삶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만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창조는 사랑과 흡사해서, 당신은 그 무엇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건 필연성의 문제입니다. 그 순간에는 사물들이 어떻게 오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들이 스스로 다가온다는 사실이지요. 사물들 자신을 위해서요. 그게 다예요. 그 후에야 해석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요.
다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것과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자신의 사유를 머물게 하고 확인해 주는 주제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전히 장식적이기만 한 모든 것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화가는 다른 화가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종종 그것을 사취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려고 시도해야만 합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주제와 완전히 일치해야 합니다. 그 주제가 온전히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주제가 당신 안에 거주하고 당신을 내면적으로 괴롭히지 않으면, 장식적인 것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당신은 수많은 책이나 당신 주변에서 주제를 발견하거나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 내 경우에는, 나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그 어떤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늘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균열들, 우연적인 사건들, 질병들을 좋아합니다. 거기에서는 실재가 환영을 포기합니다.
우정은 생겨났다가 흩어집니다. 내 친구들은 죽었습니다. 게다가 늙으면 서로 친구가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율리시스}는 그의 걸작입니다. 조이스는 언어를 비틀었고, 망가뜨렸고, 잘게 찢어 놓았어요... 그는 하나의 기법, 하나의 스타일을 발명했고, 아주 멀리까지 밀고 나아갔습니다. 나는 탐구하고, 분해하고, 낱낱이 분석하고, 발견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피카소의 작품에 대해 커다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점에서이죠.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 ‘표류하게 내버려 둔다’ 난 인생의 대부분을 그런 식으로 지냈습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또 불안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요. 난 그런 식으로, 일생을 표류하며 살았습니다.
내 삶은 우연들의 연속에 불과합니다. 다른 모든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룰렛 게임을 무척 좋아해요. 난 모든 방면에서 우연성을 좋아합니다. 어쨌든, 결국 게임은 항상 패하는 것으로 끝나지요. 그렇지 않나요?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환상이 필요합니다. 아시잖아요, 진실은 변한다는 것을. 진실, 그것은 허구입니다.
우리는 피카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코메티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변형이 필요하죠?” 내가 대답했지요. “아, 하지만 왜 안 되는 거죠?” 그것은 그의 작업 방식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비난할 수 없습니다.
22일
바닥 없는 골짜기들과 경계 없는 물결들
:: 나라면 “골짜기에 바닥이 없고, 물결들에 경계가 없다”고 썼겠지. 그 차이는? ‘바닥 없는 골짜기들과 경계 없는 물결들’은 이미 문학적 수사가 본래 가진 속성처럼 전제돼 있다. ‘골짜기에 바닥이 없고, 물결들에 경계가 없다’는 내가 시를 씀으로써 새로운 해석을 추가한다는 의미이다. 본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애초부터 왜곡된 지각/ 지각은 정상이나 어떤 필요에 의해 문학적 효과를 노리고 동원한 수사.
그렇게 쓸쓸한─쓸쓸하고 죽어 있는
물결을 펼치는 호숫가들에서,
눈 덮여 고개 떨군 백합들 늘어선
그 슬픈─슬프고 싸늘한 물결의 호숫가들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영원히 중얼거리는
그 강 근처 산언저리에서,
개구리와 도롱뇽이 야영하는
그 잿빛 숲가, 늪지에서,
악귀들 사는 그 음산한
작은 못과 웅덩이들 옆에서,
가장 부정한 모든 곳
가장 우울한 모든 구석들에서,
여행자는 간담 서늘해지며 그곳에서
천에 휘감긴 과거의 기억들을 보네.
방랑자 옆을 스쳐 지나며 놀래키고 한숨짓는
수의에 싸인 형체들을 보네.
오래전 고통 속에 죽어, 땅에 묻혔다 하늘로 간
하얀 옷을 입은 친구들의 형상을 보네.
:: 에드거 앨런 포는 어둠을 더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순백색을 대비시킨다.
세잔은 자연의 관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즉, 사상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가에게는 두 가지, 즉 눈과 머리가 있다. 자연을 관찰하는 눈, 표현의 수단을 제공하는 감각을 논리적으로 조직하는 머리, 이 두 가지 모두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해야 한다.
세잔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연은 그에게 근본적인 요소, 예술보다 앞서 존재하는 하나의 기원처럼 나타난다. 단순하게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조형적인 균형과 색채의 도움을 통해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강한 색채의 대비를 이용하여 세잔은 빛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공간을 재현하는 색채적 가치와 회화적 표면 사이의 관계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세잔은 전통적인 공간 구성과 결별하고 모든 현대 회화에 새로운 길을 연다. (...) 세잔은 내용물에 앞서 미리 존재하지 않으며 구별되지 않는 공간을 선보인다. (...) 지붕, 농가, 소나무 숲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종탑 따위를 크거나 작게, 바다의 깊숙한 지점과 하늘의 일부분과 함께 그린다. 여기서 모든 순간적인 특성은 제거된다. 예컨대 자연의 외관은 새로운 통일성 속으로 용해된다.
세잔은 주위 환경이 지닌 모든 가치와 모든 매혹적인 세부 사항, 한 시대를 풍미한 인상주의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의 흥미를 끈 것은 변하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사물의 변하지 않는 측면인데, 그 까닭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흩어지고 어디론가 가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한결 같지만, 우리에게 드러나는 어느 것도 자연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예술은 영속성을 통해서 전율을 주어야만 한다. 예술가는 자연을 영원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로렌스가 멜빌을 비난할 때, 그가 탓했던 것은, 멜빌이 지나치게 여행을 심각하게 여긴 점이었습니다. [멜빌의 작품에서] 여행은 결국 야생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데, 그런 귀환은 퇴행입니다. 여행에는 늘 재영토화하는 수법이 있어서, 사람들이 여행에서 되찾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아버지와 (더 나쁘게는) 어머니입니다. “야생의 것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멜빌은 완전히 병들었다. 떠나자마자 그는 한숨짓기 시작했고, 고래 사냥의 또 다른 극단에 있는 어머니와 안식처라는 낙원을 아쉬워하기 시작했다.” 피츠제럴드는 훨씬 더 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진정한 단절이란 우리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은 어떤 것—그로 인해 과거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모든 것을 회피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조국과 권력 조직과 알코올과 정신분석과 엄마-아빠를 재구성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순전하고 단순항 자기 파괴의 움직임, 피츠제럴드의 알코올 중독, 로렌스의 의기소침,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케루악의 비참한 결말과 도주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프랑스의 다시 시작하기는 백지 상태이며, 기원의 한 점, 항상 불변으로 고정된 점과 같은 최초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또 다른 시작하기의 방식은 중단된 선을 다시 잡고, 끊어진 선에 하나의 선분을 덧붙여 선이 멈추었던 그곳, 즉 두 암벽 사이에 있는 협로나 빈 공간 너머로 선을 지나가게 합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시작도 끝도 아닙니다. 시작과 끝은 점들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중간/한복판입니다. 영국의 0은 항상 중간에 있습니다.
“만물이 서로 얼싸안는 것을 멈추고 서로 등을 돌리게 하소서. 바다의 남자가[즉 인어 남편이] 인간의 아내와 제 자식들에게 얼굴을 돌리고 외면하게 하소서... 바다를 건너고, 바다를 가로지르고, 마음에게 충고를 하소서. 사랑과 가정을 떠나소서.” ‘위대한 발견들,’ 위대한 탐험들은 앞으로 무엇이 발견될까에 대한 불확실함, 미지의 것을 정복하는 일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도주선을 발명하는 일, 배반의 역량과도 관련이 됩니다. 배반의 역량이란 유일한 배반자가 되는 것, 모든 이에게 등을 돌리는 배반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 성서는 서사시도, 비극도 아닙니다. 차라리 최초의 소설이지요. (...) 배반자는 소설에서 필수적인 등장인물, 주인공입니다. 그는 지배적 의미의 세계를 배반하고 확립된 기성 질서를 배반합니다. 이는 협잡꾼과는 아주 다릅니다. 왜냐하면 협잡꾼은 고정된 재산을 획득했다고, 혹은 어떤 영토를 정복했다고, 심지어는 새로운 질서를 세웠다고 우기거든요. 협잡꾼에게는 많은 미래가 있지만, 생성은 조금도 없습니다. 협잡꾼이 사제, 역술가라면, 배반자는 실험가입니다. 협잡꾼이 정치가/국가인이나 궁정인이라면 배반자는 (장교나 장군이 아닌) 전사/전쟁인입니다.
대서양 상공 위로 저기압이 걸쳐 있었다. 저기압은 러시아 상공의 고기압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아직 이 고기압을 북쪽으로 밀어낼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등서선과 등온선은 서로를 지탱했다. 기온은 연중 평균. 가장 추운 달이나 가장 더운 달의 온도, 그리고 일정치 않게 변하는 월별 온도에 비해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 달과 금성, 토성의 띠, 그리고 다른 모든 중요한 현상들도 천문학 서적에 적혀 있는 그대로였다. 대기중 수증기는 최고의 장력을 유지했고, 습기는 아주 적었다. 좀 구식이기는 하지만 사실을 꽤나 잘 드러내주는 한 마디 말로 하자면, 때는 1913년 8월의 어느 청명한 날이었다.
도시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눈을 뜬 채라면, 이러저러한 특징들을 찾아낼 필요도 없이, 거리의 움직임만 봐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낼 것이다.
왜 인간은 파장을 이용해 붉은 색을 백만분의 1밀리미터까지 정확히 묘사할 수 있으면서도 붉은 코에 대해선 그냥 붉다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 코가 어떤 붉은색인지 궁금해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뭔가 중요한 점이 있다. 반면 왜 인간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말도 못하게 복잡한 도시만큼은 그토록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가?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그 도시 또한 불규칙성, 변화, 돌발, 우왕좌왕, 사물들과 관심사들의 충돌, 잘 닦인 길과 그렇지 못한 길, 거대하게 규칙적인 박동, 모든 규칙들의 불일치와 혼란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건물과 규칙과 역사적 전통의 소재들이 거품을 내며 끓고 있는 그릇 속 같았다.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특성 없는 남자
그것은 아직 몇군데 18세기, 혹은 17세기의 양식을 간직한 오래된 정원이었을 테고, 그 단철로 된 울타리 곁을 지나치는 사람은 나무들 사이로 작은 부속건물이 딸린, 지난 시대의 수렵용 또는 여행용 별장 같은 대저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집의 지붕은 17세기 것이었고, 정원과 위층은 16세기의 모양을 띠었으며, 개축되었지만 약간 부서진 채로 남아 있는 정면은 19세기 것이어서, 전체적인 외양은 마치 겹쳐 찍힌 사진처럼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
이 방과 집이 바로 특성 없는 남자의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와 각도, 그들이 내뿜는 삶의 힘들을 평가해보았다. 그의 눈은 재빨리 사람들의 뒤를 쫓았고, 잠시 멈췄다가 놓아주곤 했으며, 잠깐의 공백 동안에는 시선을 그들에게서 떼어내 다음 것으로 건너뛰고 그 뒤를 쫓아가도록 집중하는 일을 소홀히하지 않았다.
한 인간이 거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노력들—주의력의 도약, 눈 주위 근육의 움직임, 영혼의 흐름—이 계산될 수 있을까.
조용히 하루종일 자기 일을 하는 시민의 근육운동이, 하루에 딱 한 번 굉장한 무게를 들어올리는 운동선수의 근육운동보다 더 활발할 것이다. (...) 그러므로 사회적 총합 속의 작은 일상들과 그 모든 총합을 더한 것은 영웅적인 행위보다 더 큰 힘을 세계 안으로 방출하게 된다.
시간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미처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겠지만, 이미 그때부터 시간은 마치 낙타처럼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무엇이 위고 아래인지, 무엇이 앞으로 혹은 뒤로 가는 것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특성 없는 남자의 집과 방, 특성 없는 남자
23일
사물의 모든 면을 보여주지 마라. 얼마 간 여백을 남겨두라.
나는 폐의 단순한 호흡에서 시작해 도시와 제국의 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목표와 움직임을, 하나의 현실과 다른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절대자의 어느 하루와 다음날 사이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졸음이나 꿈, 또는 휴식 따위라고 간주한다.
아미엘*은 우리가 보는 풍경은 우리 영혼의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나약한 몽상가의 부서지기 쉬운 행복일 뿐이다. 풍경은 풍경이 되는 순간 더이상 영혼의 상태가 될 수 없다. 객관화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이미 완성된 시는 시를 쓰려고 생각했던 상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본다는 것은 일종의 꿈꾸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꿈꾼다고 말하는 대신에 본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둘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심리학적 사색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나와 상관없이 풀잎이 자라고 자라나는 그 풀잎 위에 비가 내린다. 햇빛은 이미 자랐거나 앞으로 자라날 풀잎을 비춘다. 언덕은 먼 옛날부터 그 자리에 있고, 바람은 호메로스*가 없더라도 그가 바람 소리를 들었던 때와 똑같이 불어온다. 그러니까 영혼의 상태가 하나의 풍경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이 문장은 이론의 거짓이 아니라 은유의 진실을 포함하기에 더 합당할 것이다.
나를 보호해주는 모든 신들이시여, 지금과 같은 내 모습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외부 세계의 현실에 대한 이 선명하고 환한 시선이, 나의 무가치함에 대한 본능적인 자각이, 보잘것없는 존재로서의 편안함이,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다고 상상할 수 있는 위안이 나와 함께하도록지켜주소서.
아무도 없는 산봉우리에 오르면 특권을 누린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키로 인해 우리는 산 정상보다 높아진다. 적어도 그 장소에서는 자연에서 가장 높은 곳이 우리의 두 발 아래에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연과 술수로 얻었을 뿐 지금 우리가 이룬 높이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정상에 올랐어도 우리의 높이는 그저 우리의 키만한 높이일 뿐이다. 우리가 올라선 산이 우리를 높였지만 그 높이는 우리가 올라간 곳의 높이일 뿐이다.
부자들은 더 수월하게 숨쉬고, 유명한 이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 귀족의 작위는 하나의 작은 산 정상이다. 모든 것이 인위적이지만 그 인위성마저도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산을 몸소 오르거나, 누군가 우리를 산에 데려가거나, 아니면 산 위에 있는 집에서 태어나거나.
위대한 사람은 골짜기에서 하늘까지의 거리와 산 위에서 하늘까지의 거리에 사실은 별 차이가 없음을 안다. 만일 홍수가 난다면 산 위에 있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신의 저주가, 유피테르*가 보내는 벼락이거나 아이올로스**의 바람이라면 골짜기에서 피난처를 찾고 몸을 낮춰 재앙을 피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정말로 현명한 사람은 높이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근육에 담고 있지만, 의식으로는 산을 오르기를 거부하는 자다. 그는 자신의 시선 덕분에 모든 산을 소유하고, 자신의 위치 덕분에 모든 계곡을 가진 자다. 정상을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태양은 정상에서 아주 밝은 빛을 견뎌야 하는 이보다 골짜기에 있는 이에게 더욱 금빛으로 빛난다. 숲속 높은 곳에 자리잡은 왕궁은 거기에 갇혀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잊어버린 자보다 골짜기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 더 아름다운 법이다.
나는 인생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기에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는다. 그리고 테주 강으로 향하는 이 저지대의 거리를 걸어가는 육체와 영혼의 방랑자인 내가, 이미 기울어버린 태양의 다채로운 빛을 받아 다른 세상의 영광처럼 찬란히 빛나는 도시의 높은 곳들을 바라볼 때, 상징은 현실과 하나가 된다.
아마 언젠가는 과학적인 연구로, 모든 것은 같은 공간의 다른 차원일 뿐이고, 따라서 온전히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은 없고,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는 육체로 살고 어떤 차원에서는 정신으로 산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딘가 다른 차원이 있어 지금 여기와는 다른 삶을, 여기와 똑같이 현실로 인식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엽서에 담긴 파리에서 탈출하는 방법
나는 백 번 엄마를 구하려고 했고 백 번 다 구하지 못해서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엄마, 도저히 엄마를 구할 수가 없어
엄마는 마그마에 빠지고 빌딩에 깔리고 땅속으로 꺼졌다
벽이 집어삼켰다
그 여자는 누구니? 당신
당신의 엄마야
말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가 60~70편이면 충분할 시집에 250편의 시를 보낸다든가, 작품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든가, 하는 것은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혀를 차는 편집장 옆에서 그도 그 250편의 시, 1000장에 달하는 원고를 타르륵 넘겨 보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괴물을 의인화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없는 체하고 사는, 굳이 들춰 보지 않는, 있어도 굳이 쳐다보지 않는, 그런 괴물 같은 것들. 나는 가방의 지퍼를 닫으며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꼈다.
자꾸 부풀어 오르는 생각의 실체는 그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실행하는 것이다. 아니, 실행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아니, 실행할 것을 글로 옮기는 것뿐이다. 실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물론 실행한다는 믿음을 가진 상태여야 했다.
그대여
널 뭐라고 부를까
너는 소녀였니
너는 어린아이였니
우린 한 번이라도 애였니
나는 소녀였니
우린 어린 소년일까
나의 어린 그대여
아직 오지 않은
널 뭐라고 부를까
이렇다 할 사건 없이 폴 세잔은 전적으로 고독과 창조 속에 살다 간다. 예술적 사명감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작품 그 자체, 특히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작품들은 프로방스의 풍경, 정물, 인물과 목욕하는 여인 등 몇몇 주제만을 심화하며 반복한다. 이러한 방식은 절대를 추구하는 모든 특성을 보여준다.
세잔의 야망은 현실 세계를 되도록 순간적이지 않게 구성하는 것과 형태를 근본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데 있다. (...) 몇몇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세잔 작품의 놀랄 만한 균형과 개념의 명증성은 니콜라 푸생의 작품을 상기시키는 고전 풍경화의 원칙을 의식적으로 적용한 결과라고 한다. 세잔 자신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지는 엄중한 미를 담고 있는 고향의 자연과 접촉하면서, 세잔은 점점 더 견고한 구조의 필요성에 이끌린다.
마지막 시기에 세잔은 자신이 태어난 시골 풍경과 자주 접촉하면서 지낸다. 세잔은 그곳의 아주 작은 돌멩이나 아주 작은 물의 흐름까지도 인식한다. 강렬하고도 계속된 긴장 상태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식별된 대상이나 자연의 형태는 점차 색채의 흐름과 뒤섞인다.
비둘기에 보내는 송가
이가 득실거리는 엽총이나
장미보다 더 우스꽝스럽다.
그럼에도, 비둘기의 젠체하는 비행은,
그 안에서 세상만사의 해답을
본다고 믿는
외팔이와 절름발이들을 도취시킨다.
그들에게 여우의 직관이,
파충류의 냉철한 지성이,
앵무새의 오랜 경험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비만으로 쓰러지는 수도원장이나
교수보다 더 위선적이다.
묘비명
네모진 얼굴에는
겨우 뜬 눈과
물라토 권투 선수 같은 코와
그 밑으로 아즈텍 조각상 같은 입
—아이러니와 배신의 빛이
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
아주 영리하지도 완전히 멍청하지도 않은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식초와 올리브유의 혼합물,
천사와 야수가 뒤섞인 소시지!
그리하여 그의 아들 또한 배려의 수치를 정확하게 배분할 줄 아는 귀족적인 재능을 어려서부터 거의 무의식적으로 깨달아갔고, 동시에 심사숙고하는 고고함까지도 익혀갔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아무리 해봐야 정신만이 귀족일 뿐인 그의 아버지가 말과 농장, 거기다 전통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행하는 굴종이 늘 마음의 가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런 굴욕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타산적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예컨대 귀족적 기질을 지닌 개는 사람들의 발길질에도 상관하지 않고 식탁 밑의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는 법이다. 이는 비열한 근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믿음과 충성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산에 밝고 냉정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나 관계를 정말 깊이 느낄 줄 아는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에 비하면, 그 반만큼의 성공도 거두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가 정치계에서 행한 일은 지금까지 살면서 해왔던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충직하게 헌신하는 됨됨이를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때때로 자상하게 깨우침을 주는 월등한 학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이 주장하듯,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어느새 가정교사에서 귀족원의 스승으로 변모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에게도 특성 있는 아버지가 있다, 특성 없는 남자
풀밭 주위를 세 바퀴 돈 다음 멍하니 한숨을 쉬었다:
내가 받았던 보답, 정원이 한 쪽에 있는 작은 나무의 형상에 달린 자두들로 날 먹이던 순간,
나의 배고픔을 걱정해 주는 사려 깊은 천사 그리고 나의 메마르고 실연당한 혀.
24일
사실 진실은 단순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건 단순하지 않다.
글쓰기에는 동물-되기가 있는데, 이는 개나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두 계 사이의 우연한 마주침, [절차를 생략한] 직접 교섭이고, 각각의 계가 탈영토화하는 코드를 획득하는 것이죠. 글을 쓰면서 작가는 항상 글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글을 줍니다. 하지만 바로 이들—글을 갖지 못한 이들이 글쓰기에 생성을 부여하지요. 이 생성이 없다면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이미 확립된 기성 권력에 봉사하는 단순한 중언부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글쓰기는 항상 다른 어떤 것—자신의 고유한 생성이 되는 어떤 것과 합류합니다. 하나의 유일한 흐름 위에서만 작동하는 배치란 없습니다. 이는 모방의 문제가 아니라 접합접속(conjonction)의 문제입니다.
배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 얼굴을 잃어야 합니다. 사라져야 하고 미지의 것이 되어야 하지요.
글쓰기의 궁극 목적은 무엇일까요? 여자-되기, 흑인-되기, 동물-되기 등과 같은 마이너리티-되기 너머에는 {지각 불가능하게-되기}라는 궁극적인 기획이 있습니다. 작가는 알려지고 재인식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지각 불가능함은 최고의 빠름과 최고의 느림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죠. 글쓰기는 얼굴을 잃고, 벽을 뛰어넘거나 뚫고 지나가고, 아주 참을성 있게 벽에 줄질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지배적 의미의 벽 위에 핀으로 고정됩니다. 또한 우리는 항상 주관성의 구멍, 즉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우리 자아의 블랙홀 속으로 가라앉지요. 벽은 우리를 고정시키고, 격자 안으로 밀어넣고, 동일시하고, 재인식되도록 만드는 모든 객관적인 결정들이 기입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구멍은 우리의 의식, 감정, 열정, 너무나 잘 알려진 작은 비밀들, 그 비밀들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다 함께 머무르는 곳이고요. 얼굴은 이러한 시스템의 산물이지만, 또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하얀 뺨과 두 눈의 검은 구멍을 지닌 커다란 얼굴. 우리 사회는 얼굴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생성의 선들을 그리는, 탐색중인 머리들을 우리 내부에서 해방하면서 얼굴을 해체할 것인가? 어떻게 벽에 부딪혀 뒤로 튀어 오르거나 으스러지지 않고 벽을 통과할 것인가? 어떻게 그 심연의 바닥에서 빙빙 맴을 돌지 않고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것인가? 어떤 입자들이 블랙홀에서 빠져 나오게 해주는가? 마침내 사랑할 수 있게 되기 위해 어떻게 우리의 사랑조차 깨트릴 것인가? 어떻게 지각불가능한 것으로 될 것인가?
가능성 감각이란 모든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상상하고, 실재를 실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이 다루는 능력을 표현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창조적인 소질은 주목받을 만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가능성 감각은 사람들이 놀랄 만한 것이라 칭송하는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것을 허용하며, 그 둘을 매한가지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들이 섬세하게 직조된 세계라고 말하는 것들 속에서, 가능성 감각을 지닌 사람은 환영과 상상력과 꿈과 가정법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서 이런 성향을 엄격하게 몰아내며,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환상가, 몽상가, 나약한 자, 아는 체 하는 사람 또는 공연히 긁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가능성이란 그렇게 신경이 여린 사람들의 환상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신의 의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능한 체험이나 가능한 진실은 그저 현실의 체험이나 현실적 진실에서 진짜 현실적인 것들의 가치를 뺀 것과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적어도 그것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신적인 것, 불, 비약, 창조의지는 물론,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명’ 혹은 ‘창안’으로 지칭될 수 있는 의식적인 유토피아주의를 품고 있다.
현실은 가능성을 일깨운다. 이는 무엇보다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반복되고 있는 가능성은 총합에 있어서나 평균치에 있어서 늘 그대로 남아 있다. 생각된 것을 실재의 것보다 소홀히 여기지 않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러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바로 그가 새로운 가능성에 비로소 의미와 형체를 부여해줄 사람이다. 그가 가능성을 깨워 일으킬 것이다.
비실용적인 사람은—그는 그렇게 보일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신뢰받지 못하고 예측되지도 못한다. 그는 자신에게 색다른 의미를 주는 그런 행위를 하게 될 것이지만, 일탈적 생각에 합치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것으로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게다가 그는 일관된 생각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그 범죄가 사회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고 책임은 범죄자 개인에게가 아니라 사회제도에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특성을 소유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어떤 확실한 기쁨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자신 스스로에게조차 현실 감각을 부여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스스로를 특성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진행과정을 지켜보아도 될 것이다.
현실 감각이 있다면, 가능성 감각도 있어야 한다, 특성 없는 남자
25일
그래서 새로운 시선으로 내가 아주 좋아한 이미지들을, 내 기억 속에 너무나 단단히 자리잡아 내가 몽상할 때 그걸 되살릴 때마다 내가 기억해 내는 것인가 아니면 상상해 내는 것인가를 이제는 알 수 없는 그 이미지들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희망에서 나는 현상학을 선택했다.
내가 살아야만 했던 인생이 잉태한 불운한 소망들이여! 너희들은 바로 지금 이 시간과 공기, 안개 없는 안개, 가짜 폭풍의 찢어진 옷자락 같구나. 이 풍경과 이 사색을 끝장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고 싶다. 하지만 바다의 악취는 내 의식 속에 퍼지고, 내 안에 있는 낮은 파도는 저 밖 어딘가에 있지만 냄새로만 알 수 있는 검은 진흙 수렁을 드러냈다.
나와 인생 사이에는 아주 얇은 유리 한 장이 있다. 또렷하게 바라보며 인생을 이해한다 해도, 결코 만질 수는 없다.
그렇게 자주 꿈꾸는 나에게도 꿈이 내게서 달아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를 둘러싼 안개가 증발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모서리들이 내 영혼의 살결을 벤다. 내가 보는 모든 가혹함이 그 가혹함을 알아보는 나를 상처 입힌다. 모든 사물에게서 보이는 무게가 내 영혼 안에서 무겁게 느껴진다.
내 인생으로 나를 두들겨패는 것이 내 인생인 것 같다.
흔히 프랑스 학생운동이 가장 규모가 크고 과격했다고 알고 있으나 사실 독일이 더욱 심각했다. 프랑스에 가보니 불과 몇 천 명 정도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던데 독일은 학생시위가 최고조에 이를 때 80만 명 가까이 모였던 적도 있다. 경찰이 발포해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독일에 비하면 프랑스 학생시위는 시시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다수 역사책에는 당시 그 사건을 ‘프랑스 5월 혁명’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68운동=프랑스’라고 도식적으로 생각한다. 독일에 대해서는 학생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다.
프랑스에서 드골은 영웅과도 같은 존재다. 2차 대전 시기 드골은 프랑스 망명정부를 이끈 지도자로 전쟁이 끝나자 내각수반이 되었다가 좌파에 밀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적도 있지만, 1958년 다시 복귀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이 되었다. 1968년 프랑스 학생시위는 그러한 국민 영웅 드골이 불명예스럽게 하야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독일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독일의 학생 시위가 과격하기는 훨씬 과격했으나 그냥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어떻게 그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프랑스는 학생들의 궐기에 근로자와 소상공인이 가세하면서 전 국민적인 시위로 번졌다. 학생 시위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르노자동차를 비롯한 생산 노동자들이 시위 대열에 합류했고 파리의 자영업자들까지 가게 문을 닫고 시위에 참여했다. 반면 같은 시기 독일은, 내가 그때 독일에서 깜짝 놀란 일화가 있는데, 맥줏집 같은 데에서 독일의 평범한 근로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부하는 녀석들이 뭐가 그리 사회에 불만이 많아서 시위를 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학생들의 시위에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동조해서 대통령까지 물러나고, 어떤 나라에서는 학생 시위를 근로자들이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맥주잔을 기울이며 비웃고……. 이것이 바로 프랑스와 독일의 차이다. 학생들의 시위가 사회적인 시위로 확산되도록 만드느냐, 그저 풋내기 학생들의 어설픈 동요와 일탈쯤으로 사그라들게 만드느냐.
소련과 중국 경제를 공부했던 일. 그것 또한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한소수교를 준비하는 과정에 소련 정치지도자들을 만나 대화할 때, 소련 경제의 구조와 역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자 자기들도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을 한국의 경제관료가 알고 있다며 깜짝 놀라곤 했다. 중국 사회주의를 공부해 두었던 것은 한중수교 과정에 중국을 이해하는데 있어 소중한 밑천이 되었다. 분배 문제를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았던 것도 그랬다. 뭐든 배워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깨달았다.
알다시피 독일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경제학이 일찍부터 태동한 나라로, 그런 이론들과 치열하게 논쟁하는 과정을 통해 경제학이 발달했다. 그러다보니 주류 경제학과 입장이 다른 이론에도 비교적 열려있는 태도로 접근하면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합리성을 추구한다. 또 경제학을 경제학 자체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 경영학 같은 분야와 접목을 시도하고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 주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독일에서 유학하는 내내 신문과 잡지를 열 개 이상 구독하면서 세계 경제와 정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도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할아버지를 설득하면서 했던 말이 “과거에는 법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었지만 앞으로는 경제를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된다”는 당돌한 예언이었다. 내가 뭔가 알아서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틀린 말은 아니게 되었다. 이렇듯 인연 같은 우연, 내 나름대로 지속했던 노력과 고찰의 결과가 오늘까지 살아오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 같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대체로 그럴 것이다.
나는 부가가치세를 그렇게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정권은 끝내 밀어붙였다. 박정희 정권은 그러면서 몰락했지만, 부가가치세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부가가치세라는 중요한 간접세 항목이 없다면 제대로 예산을 운용할 수나 있을까?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니 이렇게 된 것이지만, 어쨌든 정권이 죽고 그것이 거름이 된 격이다. 박정희 정권은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후대 대통령들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비스마르크가 ‘복지는 곧 안보’라는 신념을 갖고 제정한 사회법에서 핵심적인 양대 기둥이 바로 사회의료보험과 연금제도다. 독일은 이것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국가다. 당시 자본가들이 극렬히 반대하자 비스마르크가 “기업가들이 지금 정부에 협조하지 않으면 정부가 더 이상 기업가들을 보호할 능력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말로 설득했다.* 복지 제도의 또 다른 의미와 본질을 날카롭게 제시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근로자 재산 형성 저축이라는 제도를 제안했을 때 우리나라 관료들이 그것을 왜 반대했느냐. 그 이유가 우습다. “왜 근로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느냐”는 것이다.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이라는 분이 이렇게 말했다. “농민도 국민이고, 사회 구성으로 보면 농민이 더 많은데, 왜 유독 근로자들을 우대해줘야 하느냐.” 당시 우리나라 사회구조가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런 차원에서 ‘근로자에게 재산을 만들어주는 정책’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과제인지, 그런 점은 전혀 생각지 않는 근시안적인 태도였다.
농민은 적더라도 일단 ‘토지’라는 나름의 생산수단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근로자들은 임금 이외에는 기댈 것이 없는 계층으로, 그들이 자산을 형성하도록 정부에서 의식적으로 돕지 않으면 내내 임금 인상만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으로 사회 불안 요인이 된다. 그들이 자산을 모아 생활이 안정되고, 더 나아가 적더라도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면, 사회는 그렇게 해서 다채로워지고 바탕이 튼튼해진다.
본질은 살피지 못하고 표면에 드러난 문구 몇 개에만 집착하는 관료들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보사부는 왜 복지연금을 먼저 하자고 했을까. 속셈은 이렇다. 복지연금을 도입하면 일단 정부에 재원이 쌓인다. 연금은 국민이 가입하고 대략 20년 후에나 돌려주기 시작하는 자원이니까, 그 기간 동안에는 그 돈으로 정부가 뭔가를 할 수가 있다. 국민이 맡긴 돈을 밑천 삼아 돈놀이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연금 운용이 본질상 이렇다.) 그러니까 복지연금 먼저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3년에 이미 복지연금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경제 구조가 장치산업인 중화학 공업 위주로 옮겨가던 때라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당시 복지연금은 복지가 아니라 그런 재원 마련의 필요성 때문에 제기됐다. 사회보장제도마저 산업화의 틀 안에서 취급하던 시대였다. 돌아보면 국민들의 노후 연금을 이렇게 또 다른 정책 수단의 하나로 취급하는 관료들의 시각과 태도 역시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사회의료보험 실시 대상을 우선 ‘근로자’로 한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근로자들은 보험료를 원천징수 할 수 있는 고정적인 소득이 있어서 그렇다. 그런 혜택과 성과가 쌓이면 가입대상자를 점차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나라의 사회의료보험제도는 처음엔 50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다가 1979년부터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을 대상자로 편입했고, 1988년부터 농어촌 주민과 5인 이상 사업장, 1989년부터는 도시 자영업자까지 포함하여 ‘국민의료보험’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 여러나라가 우리 의료보험 제도를 배우러 찾아올 정도다.
비단 철학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불필요한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동문서답만 할 뿐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무례와 조롱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사람들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한쪽 편에 선다.
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이야기할 때 ― 분야가 같든 다르든 ― 저지르는 실수는 설명을 덜 한다는 것이다. 더 설명하는 실수는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료 전문가에게 무언가를 꼬치꼬치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엄청난 모욕(이를테면 “혹시 철자를 불러드려야 하나요?”)을 가하는 것이다. 동료 전문가를 모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설명을 더 하기보다는 덜 하는 것이 안전하다.
학부생을 소규모(여남은 명 미만)로 선발하여 이들에게 임무를 알려준다. 이들의 임무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은 손을 들고, 끼어들고, 혼란스럽거나 애매한 것이 있으면 전문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해당 주제에 대해 전혀 모르면 안 되기 때문에 미리 정독할 참고문헌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흥미를 느끼는 아마추어여야 한다.) 학생들은 이 역할을 좋아하며, 좋아할 수밖에 없다. 거장으로부터 맞춤형 그룹 과외를 받는 셈이니 말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런 조건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는 임무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요점을 이전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이해시키는 법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ㅅㅂㄸjootsing’는 ‘시스템밖으로뛰쳐나와jumpingoutofthesystem’라는 뜻이다. 이 전술은 과학과 철학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중요하다. 열심히 찾아 헤매지만 좀처럼 찾기 힘든 덕목인 창조성은 종종 자신이 속한 체계의 규칙을 이제껏 상상한 적 없는 방식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이 체계란 음악에서는 고전 화성의 체계일 것이고, 정형시에서는 운율 규칙일 것이고, 예술 장르에서는 취향이나 좋은 형태의 ‘전범’일 것이다. 이론이나 연구 프로그램의 가정이나 원리일 수도 있다. 창조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그건 아무나 한다. 재료를 아무렇게나 배치하면 새로운 형태를 얻을 수 있으니까.)
창조적이라는 것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체계’에서 타당한 이유로 새로움이 ‘튀어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 전통이 말 그대로 ‘무엇이든 허용된다’의 지경이 되면 창조성을 발휘하려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반항할 규칙도, 깨뜨릴 기대도, 전복할 대상도, 놀라우면서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창조할 배경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통을 전복하려면 전통을 ‘알아야’ 한다. 도락가나 초보자가 진정으로 창조적인 결과물을 좀처럼 내놓지 못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여기에 예술과 과학의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이론적 논쟁에서든 아직 검토되지 않은 전제는 얼마든지 있지만, 취약한 전제를 찾을 때까지 한 번에 하나씩 건드려보는 것은 과학이나 철학에서 성공하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이것은 마치 거슈윈의 멜로디를 한 번에 음 하나씩 바꿔보면서 쓸 만한 변주를 물색하는 것과 같다. 부디 행운이 함께하길! 다만, 돌연변이는 거의 언제나 유해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일반적 규칙이 하나 있는데, 오랜 논쟁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양 진영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부릴 때는, 서로 의견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실 양편은 의견 일치가 명백해서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긴즈버그는 자신의 시에 담긴 무척이나 사적인 디테일들을 통해 본인이 체험했던 공포 전체와 그 너머를 본다. 그는 무엇 하나 회피하지 않고 최대한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차지한 다음—그러리라 믿는데, 껄껄 웃고, 자신이 선택한 벗을 사랑할 시간과 뻔뻔함을 확보해 잘 빚은 시 안에다 기록한다.
훗날 아들 폴에게 세잔은, 강물과 마주하면 상이한 각도에 따라 매우 흥미로운 원근법이 나타나 동일한 주제라도 모티프가 여러 가지로 증가하여,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기만 하면 위치를 바꾸지 않고도 몇 달씩 작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입체감을 도식화하는 기교의 위험을 의식한 세잔은 형태를 움직임, 변화, 불확실함 등 삶 자체를 포괄하는 자유 속에서 다시 창조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에밀 베르나르에 따르면, 세잔은 첫째로 어두운 색의 한 점으로 작업에 착수했으며, 둘째로는 그 점을 뒤덮을 색을 사용했고, 이 모든 색이 오브제의 형상을 만들어낼 때까지 채색하는 작업을 셋째로 수행했다고 한다. 조화의 법칙이 세잔을 인도했으며, 모든 조절은 사전에 세잔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작품은 차츰 객관성에서 멀어져갔다. 예컨대 세잔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모델의 불투명성과 거리를 유지할수록, 세잔은 그림 그 자체밖에 아무 목적도 없는 순수 회화 속으로 진입하였다.
매력적인 역설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등장한다. 즉, 한편으로는 자연과 항구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성,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델을 지각하여 고정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힘이다. 친구였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오래전에 배운 교훈에 따라,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모티프’를 숙고하고, 가시적인 현실세계 속으로 시각적 몰입을 하면서, 세잔은 영혼 속에서 상호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색채의 점들처럼 오브제를 지각한다. 각 작품의 내적 구조는 현실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화가의 정확한 결정을 예시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분산되며, 어디론가 가버린다.”
당신의 비밀은 항상 당신 얼굴과 당신 눈동자 안에 드러납니다. [그러니] 얼굴을 잃어버리세요. 회상 없이, 환상 없이, 해석 없이, 점을 만들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세요. 그저 흐름만이 남게 하세요. 때로는 메말라 버리고, 때로는 얼어붙거나 넘쳐흐르고, 때로는 서로 합류하기도 혹은 갈라지기도 하는 그런 흐름만 말이죠.
도주선 위에는 실험-삶이 아닌 다른 것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미래도 과거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미리 알 수가 없지요. “자, 이것이 바로 나야, 있는 그대로의 나”—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더 이상 환상은 없습니다. 단지 삶의 프로그램들만이 있을 뿐이죠. 이 프로그램들은 형태가 만들어지는 듯하면 바뀌고, 깊이 파이는가 싶으면 금세 이를 저버리며 다른 양상을 띱니다. 마치 쉬지 않고 흐르는 강이나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수로처럼 말이죠. 이제는 오직 탐험만이 있을 뿐입니다.
클라이스트와 카프카는 삶의 프로그램들을 만들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삶의 프로그램이란 선언이 아니고 환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예견 능력 저편에 있는 실험을 하기 위한 좌표 찍기의 수단이지요(프로그램 음악이라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 미세 지각들로 이루어진 온 세상은 우리를 지각할 수 없는 것으로 이끕니다. 실험하세요. 절대로 해석하지 마세요. 프로그램을 짜세요. 절대로 환상을 짜지 마세요.
가장 큰 잘못이자 유일한 잘못은 바로 도주선이 삶에서 달아나 상상계/상상적인 것이나 예술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믿는 일일 것입니다. 도주란 오히려 실재계/실재적인 것을 만들고, 삶을 창조하고, 무기를 발견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볼 때, 삶이 개인적인 어떤 것으로 축소되고 작품이 제 안에 목적을 갖는다고 여기는 것은—작품을 총체적인 것으로 여기든지 형성중인 것으로 여기든지 간에 상관없이—바로 동일한 거짓 운동 안에서입니다. 이런 태도는 언제나 글쓰기의 글쓰기라는 것을 가리키지요.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랑스 문학에는 선언, 이데올로기, 글쓰기 이론, 사람들간의 불화, [초점을 맞추는] 조정의 조정, 신경증적 자기 만족, 자기 도취적 법정들이 득시글득시글 넘칩니다.
사실 글쓰기는 글쓰기 안에 목적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글 쓰기의 목적은 삶을 비개인적인 역량의 상태로 실어나르는 것입니다. 이로써 글쓰기는 모든 영토, 제 안에 있을 모든 목적을 포기합니다. (...) 글쓰기에는 흐름이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기능은 없습니다. 이때 흐름은 다른 흐름들,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되기들과 서로 합류하지요. 흐름—이것은 집약적이고 순간적인 어떤 것, 창조와 파괴 사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한 흐름이 탈영토화될 때에만 이것은 다른 흐름들과 접합접속을 이루는데[즉 합류하는데], 이 다른 흐름들은 자신의 차례에 그것을 탈영토화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저 다른 쪽을 탈영토화하고 선을 더 멀리 떠밀 뿐이죠.
도주선에는 영토가 없습니다. 글쓰기는 흐름들의 접합접속과 변성을 수행하고, 이로써 삶은 개인, 사회, 계의 원한에서 도주합니다.
글쓰기는 개인적인 것 이상의 삶—제 자신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을 글쓰기, 그런 글쓰기를 위한 하찮은 비밀이 되지 않는 삶—을 위한 방법입니다. 아, 실재계/실재적인 것은 언제나 내일로 미루어 버리는 상상계/상징적인 것과 상상계/상징적인 것의 비참.
프로토콜 뜻:
사람과 사람이 통신을 할때는 서로 이해할수 있는 언어, 또 공용된 언어를 사용한 전세계 모든 사람과 대화를 할수다면? 컴퓨터와 컴퓨터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 , 즉 공통된 언어를 사용해야한다는 말인데 이 언어를 바로 프로토콜 이라고 합니다.
프로토콜은 사실 외교상의 언어로 의례나 국가간에 약속을 의미합니다. 또 통신에서 어떤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 그리고 통신을 원활하게 받아드리는 하나의 통신 규약 , 약속이라고 보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마도 신 또한 그의 세상에 대해 가능한 가정법으로 말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세상을 창조했고, 그것이 다르게 될 수도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구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면, 그는 혼란스러워져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이다.’ 또는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 이러한 옛날식 격언은 그에게 아주 굉장히 새로운 생각으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가능성과 계획과 느낌을 가진 인간은, 마치 정신병자가 구속복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선 선입견, 전통, 난관과 같은 모든 종류의 억압을 통해 구속당해야 하며, 그러고 나서야 가치나 성숙, 존속과 같은,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울리히, 특성 없는 남자
26일
어느 시기에나 어떤 방식의 얼굴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대의 취향에 맞는 단 하나의 얼굴은 뚜렷이 부각되어 행복과 미를 드러내는 반면, 다른 모든 얼굴들은 이 얼굴을 모방하려 애쓴다. 또한 헤어스타일과 유행의 도움으로, 비록 못생긴 사람이라도 그럭저럭 그것을 모방해내기도 한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전 시대의 궁정적이고 이미 사라져버린 미적 이상을 절대 양보하지 않고 표현해내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얼굴들은, 마치 이전 시대의 욕망이 남긴 시체들처럼, 사랑의 그 거대한 환영 속을 방황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레오티네가 부르는 노래의 그 광활한 공허 속으로 멍하니 빠져든 사람들은, 대담하고 짧은 탱고의 리듬과는 아주 다른 의미에서 코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단지 그녀에겐 모든 고상한 것, 자만, 사치 같은 것들, 그리고 자부심이나 질투, 환희, 열망, 탐닉 같은 느낌들, 다시 말해 생리현상을 통해 개성과 사회적 신분상승을 추동하는 힘들은 흔히 말하는 마음보다는 하복부, 즉 식사의 과정과 연관을 맺고 있었다. 이런 연관성은 이전 시대에 자주 있었던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레오나, 또는 하나의 시각 전환
부드러울수록 애무가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한 어떤 손길이 변덕스러운 오후의 바람이 되어 내 이마와 이성을 향해 불어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권태감이, 상처를 긁지 않도록 막아주는 옷처럼 그래도 한순간이나마 위안을 준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공기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의존해 간신히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가련한 감수성이여! 하지만 인간의 감수성이란 다 그런 게 아닐까. 기대하지 않은 현금이나 기대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미소가 다른 이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쩌다 한순간 지나가는 바람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대단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랑하거나 잃어버리는 모든 것—사물, 사람, 의미—은 다 우리의 피부를 거쳐서 영혼에 도달한다. 신의 눈으로 볼 때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상상 속의 구원과 상서로운 한순간과 모든 것을 찬란하게 잃는다는 착각을 가져다준 이 서늘한 바람일 뿐이다.
한산
그는 나무 잎사귀에 시를 쓰고 마을 벽에 시를 쓰고 가난한 햇살 먹고 살았다 떨어진 옷 입고 바람 부는 저녁이면 절 부엌에서 밥을 짓고 그릇을 씻었다 밥을 지으며 중얼거리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그는 허공을 향해 호통을 치고 사람들이 때리면 손뼉을 치며 깔깔 웃으며 달아났다 지금도 달아난다 지금도 달아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27일
최소한의 실재적인 단위는 단어도, 관념도, 개념도, 시니피앙도 아닌 배치입니다. 발화체를 만드는 것은 항상 배치이죠. (...) 이 배치는 언제나 집합적이고, 우리 안팎에서 군들, 다양체들, 영토들, 생성들, 정동/변용태들, 사건들을 작동시키지요. 고유 명사는 주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두 항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를 가리킵니다. 이 항들은 주체가 아니라 행위자들, 요소들이죠. 고유 명사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민족과 종족, 동식물군, 군사 작전이나 태풍, 집단, 유한 책임 회사와 프로덕션 사무소의 이름입니다.
작가란 저자와 다릅니다. 작가는 우리를 고안해 낸 배치들로부터 배치들을 고안합니다. 그는 하나의 다양체가 다른 하나의 다양체로 지나가도록 만듭니다. 어려운 점은 동질적이지 않은 집합의 모든 요소들이 협동하게끔 만드는 것, 그것들이 다 함께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구조는 동질성이라는 조건들에 연결되지만, 배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치는 공동-작동, ‘공감,’ 공생입니다.
동일시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이 어떤 것도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를 위해, ~를 대신해 말을 하게 되니까요. 반대로 ~와 함께 말을 하고 ~와 함께 글을 써야 합니다. 세계와 함께, 세계의 일부분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대화가 아닌 공모, 애증의 충격. 공감에는 판단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몸체들간의 조화가 있습니다.
에스키모-되기. 이것은 에스키모를 흉내내는 것도, 모방하는 것도, 당신을 에스키모와 동일시하는 것도, 에스키모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에스키모와 당신 사이에 무엇인가를 배치하는 것이죠. 에스키모 자신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지 않는 한, 당신은 에스키모가 될 수 없으니까요.
경험론은 종종 지성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에서 ‘온다’는, 오성에 속하는 모든 것은 감각들에서 온다는 독트린으로 정의됩니다.
위대한 제1원리가 있다고 믿을 때마다, 우리는 엄청난 이원론들밖에 생산할 수 없습니다. 철학자들은 이에 자발적으로 굴복하고 ‘제1원리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존재인가, 자아인가, 감각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만 논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완전히 무용해지는 것, 공통의 흐름에 흡수되는 것, 괴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생각컨대, 글쓰기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점은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유리벽이 없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리라.”
울리히는 물론 그 일을 생생하게 변호하기 시작했고, 놀라운 모성적인 미인에게 그러한 싸움은 결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했다. “그런 싸움이 지닌 열정은, 확실히 아주 작은 시간의 영역, 즉 시민적인 삶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할 속도, 그리고 절대 인식될 수 없는 기호에 의해 진행되는 영역에서 그렇게 많고, 다양하고, 힘차면서도 정확하게 서로 결합돼야 하는 운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거의 의식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스포츠맨들은 실전이 있기 전 며칠 동안은 훈련을 중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근육과 신경조직들이 의지나 목표, 또는 의식을 떠나 아무 말 없이 그 마지막 약속장소에서 서로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위의 순간엔 항상 근육과 신경조직들이 ‘나’와 함께 튀어오르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무언가 이해될 만한 것을 말하려 하는 울리히는, 사랑 역시 종교적이고 위험한 경험에 속한다는 것을 말할 기회를 얻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이성이라는 무력에서 우리를 꺼내 근원 없이 부유하는 상태로 옮겨놓기 때문이었다.
위태로운 순간에 울리히는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특성 없는 남자
굴
굴, 평범한 조약돌 만한 크기로 조약돌보다 울퉁불퉁하고 균일하지 못한 색채로 희끄무레 반짝인다. 그것은 곧 완강히 닫힌 하나의 세계다. (...)
굴의 내부에서 우리는 먹고 마실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발견한다. (문자 그대로) 자개로 된 궁륭형 창공 아래, 위쪽 하늘과 아래쪽 하늘로 내려앉으며 오직 하나의 늪이, 끈적하고 푸르스름한 작은 방이 형성되는데, 후각과 시각으로 밀려오고 밀려나가며, 거무스름한 무늬가 그 가장자리를 수놓고 있다.
가끔은 매우 드물게 하나의 형식이 자개 목구멍에 방울지고, 우리는 곧이어 몸을 치장하기에 유용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문의 즐거움
왕들은 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들은 모른다. 자기 앞 이 크고 친근한 널빤지를 거칠거나 부드럽게 밀고서, 몸을 돌려 다시 그것을 제자리에 두는, —문 하나를 품은 행복.
...방을 가로막는 높다란 장애물을 그것의 배에 위치한 고리로 움켜쥘 때의 행복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몸과 몸이 급속히 맞붙으며 순간 걸음이 지체되고, 눈이 열리고 새로운 방에 온몸이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다정한 손으로 문을 붙잡고, 이후 단호히 밀어 문을 닫는다. —기름칠이 잘 된 용수철의 힘찬 철컥거림에 기쁜 마음으로 안도를 한다.
나무들이 둥근 안개 속에서 해체된다
꽃잎이 흩어지고 열매가 떨어져 나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살아 있는 뭇 특성과 제 몸뚱어리 일부에 대한 포기가 나무들에게는 익숙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계절의 순환
떠나는 새들을 붙잡지도 못하면서, 그들은 그토록 오묘한 꽃들을 만들어낸 것에 기뻐했다. 언제나 같은 잎, 언제나 같은 방식의 펼침, 그리고 언제나 같은 한계. 언제나 대칭인, 또 대칭을 이룬 채 매달린 나뭇잎들이라니! 다시 한 장의 나뭇잎을 틔워라! —같은 것으로! 다시 하나 더! 같은 것으로! 요컨대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급작스러운 깨달음뿐이다. “나무를 방법 삼아서는 나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권태, 새로운 도덕적 회귀. “모두 노랗게 물들도록, 그리하여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라. 정적의 상태여 오라, 헐벗음이여, 가을이여.”
28일
긴장과 이완, 행위와 사랑은 정확하게 시간적으로 나뉘어 있도, 철저한 공학적 연구를 통해 평가된다. (...) 어떤 개인이 자신만의 목표를 버릴 수 없다는 소명 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인 힘을 소모시킬 뿐이다. 사람들이 망설이거나 길게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이 힘에 의해 흘러가는 일반존재는 언제나 좋은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수도 또한 세계의 다른 대도시보다 조금 작았지만, 그냥 도시들보다는 꽤 큰 편이었다. 이 나라는 느낌이 아닌, 잘 계몽되고 모든 모서리들이 유럽 최고의 행정으로 세심하게 다듬어진 방식으로 통치되었다. 단 하나의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들이 고귀한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에 의해 뒷받침받지 못한 천재나 개개인들의 창조적인 동기들을 건방진 행동이나 불손함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잘 모르는 관찰자들은 그것을 애교, 또는 나약하게도 오스트리아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순히 거주자들의 성격으로 설명하는 것은 틀리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한 국민은 적어도 아홉가지 성격, 다시 말해 직업적, 민족적, 국가적, 계급적, 지역적, 성적, 의식적, 무의식적, 그리고 개인적 성격들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자기 안에 통합시키지만, 그것들이 사람들을 해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인간은 이 많은 흐름에서 생겨난 조그만 협곡에 불과하며, 이 협곡으로 그 흐름들은 모여들었다가, 다시 다른 시내로 다른 협곡들을 채우기 위해 흘러나간다. 그래서 모든 지구 위의 인간들은 열번째 성격을 가지게 되며, 그것은 다름아니라 채워지지 못한 방들로서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 환상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며, 이탈리아에서는 영국에서와 다른 색깔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것에 비해 두드러진 것은 늘 다른 색과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이 어디든간에, 환상이란 텅 비고 불가해한 것이라는 점에선 같은 것이기도 한데, 그 안에서 현실은 마치 아이의 상상에 의해 망가진 작은 장난감 도시 같다.
카카니엔, 특성 없는 남자
시내 중심가의 넓은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지나가다 방향을 틀고, 물웅덩이를 만들었다가 여러 갈래의 시냇물이 되었다가 다시 강줄기로 모여든다. 나는 무심하게 그 흐름을 바라보면서 무작위로 오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물의 이미지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살아 있는 그림자들이 나를 에워싼다. 그것들은 내 손안의 불빛과 뻣뻣한가구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다. 여기 햇빛 아래에서는 그 그림자들이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내게도 글쓰는 체계와 규칙을 세우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구가 있다. 사실 체계와 규칙을 두기 전부터 글을 써왔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훌륭한 고전주의 작가들의 전통을 좇아 나는 즉시 두 원칙을 좋은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는다. 첫째, 느끼는 것을 말할 때는 정확히 느낀 대로 쓴다. 분명하다면 분명하게, 모호하다면 모호하게,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게 쓴다. 둘째, 문법은 도구일 뿐, 법칙이 아님을 명심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문법에 복종하라. 자신의 표현을 좌우할 수 있는 자는 문법을 이용하라. 로마의 황제 지기스문트는 연설할 때 저지른 문법 실수를 지적한 이에게 “나는 로마의 황제요, 문법 위에 있도다”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역사 속에 “문법을 초월한 자”, 지기스문트로 남았다. 위대한 상징이 아닌가! 자신이 말할 내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는 자는 자기 방식으로 로마의 황제라 할 수 있다.
우리 앞에 행동거지가 남자 같은 아가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평범한 사람이라면 “저 아가씨는 꼭 남자 같군”이라고 말할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곧 표현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좀더 강한 다른 평범한 사람은 “저 아가씨는 남자네”라고 말할 것이다. 또 표현의 의무를 의식하고 있지만 생각의 관능적 쾌락인 간결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저 총각’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라면 ‘저 총각’이라는 표현을 쓰되 ‘저’를 여성형 관형사로 써서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수와 성性을 통일하는 문법규칙을 파괴할 것이다.
전두환은 어떤 새로운 사실을 들으면 그것을 도식적으로 간단히 이해하는 방면에 탁월했다. 그래서 나중에 경제 운용에 있어서도 ‘물가 인상=나쁜 것’, ‘긴축재정=좋은 것’이라는 도식 아래 굉장히 과격한 예산 동결 조치까지 단행하게 되는데, 그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소개하겠다. 어쨌든 전두환은 된다, 안 된다 하는 상황 판단이 빠르고 한번 결정한 것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일관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면 설득하기 오히려 쉬운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간단히 설명해, 기업노조 체제하에서 누군가 노조에 가입하려고 하면 자신이 그 회사에 오래 다닐지 여부부터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금방 이직할 회사에 굳이 노조까지 가입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식의 기업노조는 안정적인 회사, 규모가 큰 회사, 직원들에 대한 처우 조건이 좋아 이직률이 낮은 회사 등에서 조직률이 높다. 반대로 규모가 작은 회사,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회사, 직원들에 대한 처우 조건이 나쁜 회사에는 조직률이 오히려 낮다. 먹고살 만한 기업에는 노조가 생겨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노조가 힘이 없거나 아예 결성되지도 않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노조에 있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만들어진다. 노동조합은 근로자들의 연대의식을 기본으로 하는데, 잘 나가는 기업의 노조만 계속 잘 나가는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연대의식도 깨지게 된다.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탄생의 기본 정신 자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격이다. 잘 나가는 대기업 노조가 중소기업 노조를 쥐고 흔드는 현상 또한 낳게 된다.
노동조합은 기업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원은 물론 기업 안에 있지만, 노동조합은 산업별 직능별로 ‘외부에’ 있어야 한다. 임금이나 처우 조건을 협상하는 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산업별 직능별 노동조합이 사용자 단체와 협상하고 정부는 가운데에서 중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특정 기업 근로자가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이익에 부합한다. 한편 기업에는 노동조합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非조합원이나 화이트칼라도 있으니 기업 내부의 문제는 서로가 합의하여 기업 안에서 해결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별 직능별로 노조가 만들어지면 단체행동을 하더라도 자기 산업과 직능 근로자들의 전체 이익을 내걸고 하기 때문에 이익을 고루 향유하게 된다. 이런 파업에는 정부가 나서서 중재할 명분도 충분하다. 그런데 기업노조 하에서는 단일 기업의 파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이 사실상 3자 개입으로 비칠 소지마저 있다. 기업노조는 그걸 믿고 내부 설비를 때려 부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농성하며 버티는 과격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이른바 금속노조니 금융노조니 하는 산업별 노조가 있긴 하지만 모두 기업노조를 기반으로 한 연합체 수준이다.
기업노조가 주축이 되면 이렇게 산업별 노조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물론 노총의 의미마저 희미해진다. 기업노조 체제 하에서 노총은 분담금을 많이 내는 대기업 노조의 이익을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대기업 노조는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활동을 잘하기 때문에 노총이 개입할 일이 별로 없다. 따라서 노총은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고, 그러면서도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다보니 정치적인 투쟁 이슈를 찾는 데에만 골몰하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 노총이 딱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 노총은 완연한 정치 집단이 되었고, 그것도 노총이 두 개 있다 보니 서로 정치적인 선명성 경쟁을 하느라 앞다투어 과격해지는 중이다. 이렇게 투쟁성이 강한 노총에게 잘못 보였다가 화를 입을까 두려워 정치권은 계속 노총에 휘둘린다. 서구에서는 노총이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하고 의원을 배출하여 입법 활동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한국의 노총은 그렇게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서구의 노총과는 전혀 다른 편향된 성격의 정치 집단이 되어버렸다.
YH사건과 부마항쟁 등을 박정희 정권은 모두 강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만 들었다. 국민에게 맞서려고 하거나 국민을 자꾸 가르치려고 드는 정권은 결국 국민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마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정권이든 그렇다.
도대체 일개 평교수에 불과한 나를 왜 재무분과 위원으로 지목했을까 의아해서 이유를 물으니 “부가가치세를 없애려고 하는데 좀 도와달라”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이 군인들이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가가치세라는 사실을 알고 있구나, 그런 점에 있어서는 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부가가치세를 없앤다니, 이건 또 무슨 지나친 대응이란 말인가.
나중에 더 겪으면서 알게 되었지만 전두환에게는 다소 이런 측면이 있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을 한두 명씩 옆에 두려는 기질이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운동권 교수’라고 부르는 나에게 일부러 보고서를 쓰라고 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배짱과 아량, 혹은 융통성을 보여주려는 듯한 일을 몇 번 계속했다.
하지만 전두환의 아량은 딱 그 정도였다. 막상 의원이 되어 정부 입장에 맞서는 주장을 자꾸 하자 소속 상임위를 강제로 옮겨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도록 손과 발을 묶어버린 적도 있었다.
목적세는 일반 회계에 포함되는 다른 세금과 달리 반드시 그 목적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사용처가 고정되어 있는 세금은 예산의 탄력성을 떨어뜨린다.* 교육을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해서 교육 재정을 확충해야겠다고 판단했으면 최대한 일반 회계에서 재원을 마련할 방도를 찾아야지 교육에 필요하다고 교육세를 따로 만드는 일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육세는 물론이고 특정 목적에 따라 그때그때 이런저런 명목의 목적세를 만드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조세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나라 고위 관료와 공무원들은 유별난 고집 혹은 자존심이 있는데 자기가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계획한 내용에 대해 누군가 오류나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결코 참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틀렸다고 일단 공격부터 하고 본다. 그러면 상대는 보통 움찔하며, ‘내가 틀렸나?’하고 당황하게 된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여 정책적으로 대결하려면 의원 개개인이 자기 확신이 있고 능력이 있어야 되겠구나. 확신과 능력이 없으면 그들이 전해주는 자료에만 계속 의존하게 되고 거수기 신세가 되면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국회의원의 수준이 높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말 잘하는 의원이 아니라 능력 있는 의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1982년에 어떤 사람들이 “‘새로운 전화기’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고 하자. 그 전화기는 선이 없고, 누르는 버튼도 없고, 화면에 모든 것이 나타나고, 전화기로 계산도 하고, 전화기로 영화도 볼 수 있고, 전화기 안에 책 수백만 권 분량의 정보도 집어넣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전화기를 모든 국민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집집마다 보급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그는 공언했다. 그 전화기 이름을 ‘휴대폰’이라고 했다.
생각은 좋지만 1982년의 기술력으로는 공상 과학에 불과한 이야기다. 당시에 혹여 비슷한 물건을 만들었다 하여도 기지국을 세울 수 없어 상용화할 수 없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때 그런 문제를 들어 비판한 사람을 “휴대폰 보급에 반대했다”고 평가하거나 심지어 “정보통신의 발전을 거역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일은 과연 타당할까.
29일
그는 무대 위에서 세계를 뒤흔드는 모험을 찾아내기를 기대했고, 그 영웅이 자신이길 바랐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 텅 빈 곳에 취한 채 법석을 떠는 한 젊은이를 보았고, 그에게 답하는 것은 돌멩이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소위라는 직함을 얻어낸 감사 못할 인생유전에 작별을 고하고, 그 지위를 내던져버렸다.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세가지 시도 중 첫번째, 특성 없는 남자
기술학교에 처음 들어간 순간부터 울리히는 열병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이렇듯 새로운 형식의 터빈 발전기나 증기 피스톤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본다면, 도대체 누가 아폴로 신전 따위를 보려고 할 것인가? 선악이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기능적인 것이어서, 어떤 행위의 선함이 역사적인 상황에 달려 있고, 한 인간의 선함 또한 상황을 이용하는 심리적이고 기술적인 재주에 달려 있다고 판명된다면, 누가 선과 악에 대한 천년 전의 말에 연연하겠는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단지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비실용적이고, 아주 최고의 경우라도 그 방법은 불확실하고 비경제적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일상을 계산기로 풀어나간다면, 그는 모든 사람들의 주장 중 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만약 당신이 계산기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가 위대한 말이나 감정에 사로잡혔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잠깐만요, 우선 그것의 오류 한계치와 가능성의 가치를 한번 계산해봅시다.’
하지만 왜 엔지니어들이 이러한 예측에 꼭 맞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지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그리고 왜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 이외의 것은 거의 얘기도 하지 않고, 한다고 해도 깊이 들어가봐야 겨우 연골쯤에서 멈출 것 같은 자기들만의 어설프고 연관성도 없으며 피상적인 이야기만 해대는 것인지 말이다. (...) 기계가 아닌, 자신들의 생각이 지닌 대담함을 발휘해야 할 때면, 그들은 마치 망치로 사람을 죽여보라는 부당한 요구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곤 했다.
두번째 시도, 특성 없는 남자의 도덕에 대한 노트들, 특성 없는 남자
무엇이 됐든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좋든 나쁘든—작품은 전체적으로 다 좋을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다 나쁜 작품도 많지 않다—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면에서 다른 감정에 앞서 질투심을 유발한다. 완성된 작품은 자식과 같다. 다른 모든 인간처럼 불완전하더라도 자식이 우리의 것이듯 작품도 마찬가지다.
인류에 대한 성찰은 현재를 연구하는 고고학처럼 부질없는 소일거리다.
30일
우리가 진실을 알고 있다면 이미 그것을 보았을 것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체계와 근사치에 불과하다. 우주가 불가해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간 이하가 되는 길이다. 인간이라면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단어와 문장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을 때 나는 결국 누구인가? 감각의 거리에 버려진 채 ‘현실’의 길모퉁이에서 떨다가 ‘환상’의 빵을 먹고 ‘슬픔’의 계단에서 잠들어야 하는 불쌍한 고아다. 내 아버지의 이름이 ‘신’임을 알지만 그 이름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이로운 것이 되거나 방해물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길이 되거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매번 다른 방법으로 본다는 건 대상을 새롭고 다양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관조하는 영혼은 고향 마을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어도 온 우주를 자기 뜻대로 품는다. 무한은 감방이나 사막에도 있다.
한 기술자가 만들어낸 기계가 세계의 끝까지 배달되는데도, 그 기술자가 자유나 사유의 광활함 대신 그의 전문성에만 매달리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치 기계가 자신을 탄생시킨 수많은 계산을 기계 자신에게만큼은 적용시키지는 못하는 것처럼, 기술자 역시 자신의 기술이 지닌 과감성이라든가 새로움을 자신의 개인적인 영혼에 부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비행, 물고기와 여행하기, 높은 산 밑에 구멍뚫기, 신같이 빠른 속도로 소식을 전달하기,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먼곳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기, 죽은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 잠들어 있는 동안 기적처럼 병 낫기, 사후 20년의 자기 모습 확인하기, 명멸하는 밤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수천 가지 지상과 지하의 일들을 알아내기 같은 인간의 원초적 꿈이 실현된다면, 그리고 빛, 온기, 힘, 즐거움, 만족 같은 게 인간의 원초적인 꿈이라면, 오늘날의 연구들은 더이상 단지 학문은 아니며, 하나의 마법, 즉 신이 인간 앞에서 망토를 벗어 보여주는, 최고의 영혼과 두뇌의 의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종교이기도 한데, 그것의 교리는 엄격하고 용감하며 역동적이면서도 칼처럼 냉정하고 날카로운 수학의 논리에 의해 꿰뚫어지고 지탱되고 있다.
무미건조한 내면, 세부적인 꼼꼼함과 전체적인 무차별성 사이의 무시무시한 혼합, 황량한 개별들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독, 불안, 악, 비할 데 없는 냉담함, 배금주의, 차가움과 권력적인 행위 같은 우리 시대의 모든 특징들은 바로 논리적이고 엄격한 사유를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과학을 좋아한 방식은 단지 과학적인 것만도, 그렇다고 단지 인간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과학이 자신의 범주에서 나온 모든 질문들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유한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과학적인 전망을 인생의 전망으로, 가설을 시도로, 진리를 행위로 바꾼다면, 그땐 어떤 주목할 만한 과학자나 수학자도 남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저작은 그 용기와 전복적인 힘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의 위대한 행위자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런 질문도 한번 해볼 만하다. 세계는 이미 나쁜 길로 빠져버렸으므로, 지금쯤이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는 그에 대한 두가지 답을 마련해놓았다. 왜냐하면 세계가 생겨난 이후, 대부분의 인류는 그의 젊은 시절에만큼은 전복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더 이전 세대들이 현재에 집착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가슴이나 한조각의 육체로 생각하는 것을 우습게 여겼다. 이 젊은이들에게 윗세대의 도덕적인 한심함은 지적인 한심함만큼이나 새로운 관계맺기의 실패로 비춰졌고, 그들 자신에게 타고난 도덕이야말로 성취와 영웅주의, 그리고 변화를 위한 도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조차 현실적인 시대가 찾아오면, 그들은 더이상 그것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시도, 특성 없는 남자
31일
풍경
그대 높은 포플러들이여—이 땅의 인류여!
그대 행복의 검은 연못들이여—그대는 그들을 죽음을 향해 비추어준다!
나는 너를 보네, 누이여, 이 광채 속에 네가 서 있는 걸.
삶이란 본질적으로 정신 상태이기에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길 때 가치 있는 것이고, 가치 평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몽상가는 지폐를 발행하는 사람이고, 그 지폐는 현실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그의 정신세계에 있는 도시에서 통용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아픔들은 내 안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고 거기 있는 것들을 바라보느라 나 자신을 잊어버릴 때 가라앉곤 했다.
2월
1일
경주마나 복싱 챔피언은 그들의 시합과 순위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정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방식으로 스포츠와 아주 객관적인 시합은 천재나 인간적인 위대함이라는 낡은 개념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울리히는 학문을 준비나 단련, 또는 일종의 연습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너무 메마르고, 날카롭고, 편협하고, 전망이 없음이 밝혀졌을 때, 그것은 마치 육체나 의지에 엄청난 압박을 받아 일그러진 표정에 드러나게 마련인 결핍과 긴장처럼 받아들여졌다.
니체의 견해에 의하면, 금세기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의 탐험에 나서고 있고, 다음과 같은 자부심을 가지도록 요구받고 있다. 즉, 모든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들엔 ‘아직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해주고, 임시방편이 원칙이 되는 삶, 그러니까 후세의 누군가가 달성해줄 목표를 머릿속에 담고 사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과학은 강하고 냉정한 지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왔고, 그 때문에 인류의 오래된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생각들이 견딜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비록 그 자리에 언젠가 지성을 정복하게 될 인류가 영혼의 결실을 맺은 골짜기로 내려온다는 희망을 계속 부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 천재적인 경주마가 특성 없는 남자의 생각을 성숙시켰다, 특성 없는 남자
2일
“발터가 무언가를 성취할 거라고 믿지 않는 거니?”
“운명의 타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예정된 한계 때문에 재능있는 청년이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일은 아마 없을 거야.”
청년 시절의 친구들, 특성 없는 남자
저열한 시대엔 역겨운 건축물이나 시조차도 가장 최고의 시대의 것과 똑같은 법칙으로 만들어지고, 이전 시대의 성취들을 파괴하는 데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성취를 능가했다고 생각하며, 그런 시대의 핏기없는 젊은이들조차 자신의 젊은 피가 다른 시대의 새세대만큼이나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듯 낮게 가라앉았던 시대 직후에 매번 갑자기 작은 정신의 상승이 찾아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도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아무도 그것이 새로운 예술인지, 새로운 인간인지, 새로운 도덕이나 혹은 사회계층의 변화인지를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이야기만을 했다. 도처에서 옛것에 도전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모든 곳에서 갑자기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이건 중요한 일인데—실용적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지적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제휴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억눌림을 당했거나 공적인 삶에서는 발휘될 수 없었던 재능들이 점점 발휘되었다. 그 재능들은 너무도 다양했고, 추구하는 목표도 서로 달랐다. 우월한 자가 숭배되었고, 열등한 자도 숭배되었다. 사람들은 건강한 몸과 태양을 찬양했고, 폐병 걸린 소녀의 연정을 찬양했다.
모순적이었고 아주 다양한 목소리들이었음에 틀림없지만, 하나의 공통적인 숨소리를 내기도 했다. 즉 그 시대를 해부해보면, 마치 나무로 된 철의 사각 원 같은 비상식적인 것이 튀어나왔지만, 사실 그 모든 것들은 흐릿한 의미의 잔광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정신의 혁명, 특성 없는 남자
3일
‘당시 우리가 주장을 내세웠을 때, 옳은 말을 하겠다는 것과는 다른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자기자신을 빛으로 밝히려는 욕망이, 빛 가운데 있으려는 욕망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한 시대의 수준이란 것이 위대한 인물들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닌데, 가령 지난 1860년대나 80년대 사람들의 무지함이 헤벨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이 출현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며 이 두 사람 중 누구도 동시대인들의 그 무지함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새로움으로 반짝였고, 결국 사람들은 세계가 더 나빠진 것인지 아니면 자기자신이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를 더이상 구별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는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마치 하루가 푸르게 빛을 뿜고 시작했다가 천천히 구름에 덮여 끝나듯이 시대 역시 그렇게 변해갔고, 울리히를 기다려줄 만한 친절함은 이제 남지 않았다. 그는 시대의 병이 만들어냈고, 천재성을 잡아먹어버린 그 비밀에 찬 변화의 원인을 모두 일상적인 우둔함으로 돌려버림으로써 그의 시대에 보복을 가했다.
우둔함이 이용해먹지 못할 의미 있는 사상이란 하나도 없다. 우둔함은 모든 곳에 활동하며 어떤 진실의 옷으로든지 갈아입을 수 있다. 반면에 진실은 언제나 한가지 옷에 한가지 길만 있었고, 그래서 늘 불리한 입장에 놓였다.
신비에 찬 시대의 병, 특성 없는 남자
쾌락은 본시 헛되지만 고생해서 얻은 게 고생을 불러올 때 제일 헛돼요.진리의 빛을 얻기 위해 고생해서 책 읽고,
그렇게 읽어서 얄궂은 진리가 그자의 시력을 뺏는 거와 같아요. 눈이 눈을 찾다가 눈을 잃는 거니까 암흑 속을 더듬어서 밝은 빛을 찾기 전에 시력을 잃어버려 밝던 눈이 어두워져요. 제 연구는 예쁜 눈을 바라보아서 우리 눈에 기쁨 주는 연구입니다. 눈부신 그 눈이 길잡이 돼서 멀어버린 그의 눈에 빛이 됩니다.
20세기는 산업화와 대량생산이 대중사회와 대중문화를 만든 시대였으며, 그 시스템의 표준을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제국들이 처절하게 투쟁한 시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19세기에 서구 근대에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아시아, 즉 각자의 위대한 문명 전통을 지니고 있던 비서구 세계가 각성한 시대이기도 했다.
4일
5일
6일
“인생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순응하는 거다. 내일이라도 수도회가 나를 딴곳으로 보내면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 있다. 이 인생에 순응하는 거다. 그것이 내 사명이다”
7일
8일
피아노 독주
우리는 경청을 바라며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말하게 하기 위해 말하므로
메아리는 그 자신을 만들어낸 목소리보다 앞선다.
그는 자신이 사물들을 다르게 보고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곳에서, 그리고 그들이 생각없이 어떤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치는 곳에서, 그는 감동을 받았다. 그에겐 팔의 움직임 하나조차 정신적인 모험으로 가득 찬 것이었으나 그 자체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비 같은 것이었다.
만약 인간이 어떤 특별한 노력이나 새로운 이상들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것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맞닥뜨리고 말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에 그 영리함과 우둔함, 천박함과 아름다움의 혼합이 워낙 두텁게 서로 꼬여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떤 비밀이 숨어 있다고 단순하게 믿어버린 것이고, 정확히 판단될 수 없는 아주 모호한 것들의 멈출 수 없는 추락을 주장할 것이다.
“천성적으로 둔감한 사람이라면, 쉽게 영웅적인 기분에 휩싸이지. 그건 1밀리미터 내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른 채 1킬로미터 안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는 총체적인 영혼의 힘을 알지 못하고 있어. 괴테가 개인성이라고 부른 것, 그가 움직이는 질서라고 한 것을 그는 예감하지 못하는 거지. ‘힘과 절제, 의지와 규칙, 자유와 규범, 움직이는 질서라는 그 아름다운 이념’ 말이야.”
그가 그 모든 특성들을 소유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가지지 못한 거야! 그 특성들이 오늘의 그를 만들고, 그의 길을 정해주었지만, 그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었지. 그가 화를 낼 때, 그 안의 무언가는 웃고 있지. 그가 슬플 때, 그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어. 무언가에 감동을 받을 때도, 그는 그것을 거부해버리지. 모든 잘못된 행위도 이러저러한 관계 속에서 선한 것으로 드러내기도 해. 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가능성을 지닌 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야. 그에겐 어떤 것도 고정돼 있지 않아. 모든 것은 변할 수 있고, 부분은 전체 속에, 추측건대 아마도 그가 조금도 알지 못하는 그보다 더 큰 수많은 전체 속에 존재하는 거야. 그의 모든 대답은 부분적이고, 모든 느낌은 하나의 관찰일 뿐이며, 그래서 그에겐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수적인 ‘어떻게’나 이러저러한 부속물들이 더 중요한 것이지.
그는 세상이 아주 복잡해졌다고 그랬어. 마치 물 위를 헤엄치듯이 우리는 불의 바다를, 전기의 폭풍 속을, 자기장의 하늘을, 열기의 늪 따위를 헤엄치고 있다고. 그러나 모든 걸 느낄 수는 없지. 결국 남은 것이라곤 형식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이 인간적인 것인지는 우리도 정확하게 알 수 없어. 그것은 전체야.
결국 우리는 관계나 과정, 형식과 과정의 구정물 같은 것들 위를 헤엄치듯 다니게 되지. 그게 하나의 사물인지 과정인지 유령 같은 사상인지 또는 신만이 아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말이야. 그러고 나면 태양과 성냥개비 사이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어지고, 소화기관의 한쪽 끝인 입과 다른 쪽 끝 사이에도 별 차이가 없게 돼. 모든 일들은 백가지의 측면들을 가지고, 그 측면들 또한 백가지의 연관들을 가지며, 서로 다른 느낌들이 그 모든 것들에 들러붙어 있는 거야. 인간의 두뇌는 즐겁게 사물들을 분할하지만, 사물들은 인간의 마음을 똑같이 쪼개놓고 있어.
내가 확신하건대, 나는 집에 돌아와 너와 커피를 마실 수도, 새소리를 들을 수도, 잠깐 산책을 나갈 수도, 이웃들과 몇마디를 나눌 수도, 그리고 하루가 조용히 마감되도록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 그게 바로 인간적인 삶이지!
특성 없는 사람이 특성 있는 사람에게 끼친 영향, 특성 없는 남자
논리학이란 정확히 대로 같은 것으로, 처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관계들의 논리학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계 판단의 권리들을 존재 판단 및 귀속 판단과 별개인 자율적인 영역으로 재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 더 멀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관계들과의 마주침이 모든 것을 꿰뚫고 망가뜨리도록, 존재를 침식시키도록 만들어야 하고, 존재가 동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다/있다(EST)를 그리고(ET)로 대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A 그리고 B. 그리고는 특별한 관계도, 특별한 접속사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들, 모든 관계들의 길을 [수학에서 호의 양끝을 잇듯] 연결하는 것이죠. 관계들이 그 항들의 바깥, 그 항들 집합의 바깥, 존재나 일자나 전체로 결정될 수 있을 모든 것의 바깥에서 질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상은 마음에서 온다. 도덕적으로 너 자신을 완성하라, 그리하면 너 아름다운 시구를 지으리라. 도덕과 수사학은 지혜를 향한 야심과 욕망 속에서 만나는 법이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달팽이는 신성한가? 제 천성에 정확히 복종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니 우선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여라. 네 악덕들과 일치하라. 네 절도에 비례하라.
그렇다면 인간 고유의 개념은 무엇인가? 언어와 도덕이다. 인본주의다.
9일
나비
날아다니는 성냥개비, 그것의 불꽃은 옮겨 붙지 않는다. 뒤늦게 도착하여 피어난 꽃들을 확인할 뿐이다. 아무렴 어떠한가, 나비는 점등원을 자처하며 등불마다 기름 잔량을 확인한다. 꽃의 정상에다가 자신이 짊어진 넝마를 오므리는데, 그렇게 해서 나비는 애벌레 시절 줄기 발치에서 겪었던 기나긴 무정형의 굴욕을 되갚는다.
해안가
인간은 자신을 숨 막히게 만드는 광막함에 앙심을 품고, 그 거대한 것의 가장자리나 교차점으로 돌진하여 그것을 정의 내리려 한다.
대기는 온도 변화 때문에, 혹은 사물에 직접 영향을 받아야 한다든다 그로부터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는 비극적 필요에 의해 그저 피상적인 방식으로 한 권의 두꺼운 바다를 넘겨보거나 모서리를 접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보다 안정적인 부분은 그 깊이에 도사린 대지의 널찍한 칼들로, 암석으로 이루어진 그 날밑으로 비스듬히 잠겨 든다. 가끔은 원기 왕성한 힘살과의 조우로 칼날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해변이라 부르기도 한다.
넵투누스의 오랜 드레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흡사 유기체와도 같은 그것은 세상의 사분지 삼은 되는 면적에 널리 포개어져 있다. 암석의 눈먼 비수에 의해서도, 종이 뭉텅이를 단박에 뒤엎을 정도로 무섭게 파고드는 돌풍에 의해서도, 다른 어느 쪽으로도 배출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고를 마다 않는 누군가에 의해서도, 거머쥐려고 내려온 손에 의해서도 심하게 요동만 칠 뿐 이 책은 여태껏 깊게 읽힌 바가 없다.
판사는 경찰기록에서 부랑아들의 전술까지 모든 자료를 모아서 모오스브루거의 유죄를 증명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 자료들은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완전히 개별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각각의 사건은 모오스브루거의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원인을 가지고 있었다. 판사의 눈에 살인은 그가 저지른 것으로 보였으며, 모오스브루거의 눈에 판사들은 주변을 지나치다 그에게 날아온 새처럼 보였다. 판사에게 모오스브루거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모오스브루거 자체가 하나의 세계였으며 그 세계에 대해 뭔가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두 개의 전략이, 두 개의 자아와 두 개의 일관성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모든 다른 삶들이 수백 가지로 존재하는 데 비해—이는 그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인식될 뿐 아니라 그 삶을 확인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러한데—그의 진정한 삶은 오로지 자신 하나만을 위해 존재했다. 그것은 언제나 모양을 잃어버리고 변하는 수증기였다.
“내가 미친놈이라고 고백해야 하긴 하지만, 나는 이 결정에 만족합니다!”
그건 하나의 모순이었지만 울리히는 숨을 몰아쉬며 앉아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광기였고 각각의 존재의 요소들이 어긋난 것에 다름아니었다. 그것은 갈라지고 희미해졌다.
모오스브루거
단지 나는 삶에서 고된 노동을 해본 체험 때문에, 인간이 홀로 자립한다는 것, 그리고 한 개인을 지원해주고 그것을 통해 그를 풍부하고 유익한 전체에 속하도록 이끌어준 학문적이고 사회적인 관련들을 무시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훈계의 편지, 그리고 특성을 얻을 기회. 두 왕위 계승자의 싸움
하나의 사건이 위대함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이 서로 일치해야 한다. 하나는 사건을 실행한 이들의 위대한 감각이며, 다른 하나는 사건을 체험한 이들의 위대한 감각이다. 설혹 별자리가 사라지고 민족들이 몰락하고 광대한 국가가 건설되고 엄청난 국력의 손실을 초래하는 전쟁이 수행될지라도, 수많은 사건은 그 자체로 위대함을 얻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어떤 사건이 다가오는 것을 목도하는 이들은 근심을 갖게 된다. 즉 사건을 체험하는 이들이 과연 그 사건을 적절하게 평가할 것인지 하는 근심 말이다. 작은 일에서나 큰 일에서나 행동할 경우 우리는 행위와 수용 간의 상응성을 염두에 두고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자는 그 증여의 의미를 만족시키는 수취인을 발견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0일
이렇게 봄날은 간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어머니도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몇 차례 자해 소동도 있었고, 치매로 돌아가시기 전엔 면도칼로 당신 팔 혈관을 그어 피를 흘리며 작은 방에 누워 계신 적도 있었다. 비 내리던 여름 오후 방바닥을 흥건히 적신 피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마당에 앉아 빨래를 하던 어머니를 보면 "아 어머니가 계시는구나."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 이런 불안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동안 시를 쓰고 책을 내고 되지도 않는 많은 글을 쓴 건 이놈의 불안, 우울증, 강박증을 견디기 위한 방편인지 모른다. 해 질 무렵 알콜 중독자가 된 것도 그렇다 이렇게 봄날은 간다.
11일
액체란 정의상 자기 형태를 유지하기보다는 중력에 복종하려는 것이요, 중력에 복종하고자 모든 형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액체는 이와 같은 자신의 고정관념 때문에, 병적인 세심함 때문에 모든 매무새를 잃는다. 이러한 악덕으로 인해 물은 빨라지고 급해지고 정체된다. 형태를 잃거나 사나워진다. 형태를 잃으며 사나워진다. 찌르는 듯이 사나워진다. 교활해지고 거르고 에두르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가 있다. 물을 관으로 몰아 수직으로 치솟게 하고, 종국에는 제 방식대로 비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즐길 수 있으니, 이야말로 진정한 노예가 아니겠는가.
물
루시언 프로이드의 마지막 그림은 구상 미술과 그 실천에 골몰했던 젊은 시절 그의 예술가적 입장에 그대로 맞닿아있기도 했다. 그는 추상, 표현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개념미술 등 20세기의 사조에 괘념치 않았으며 그러한 조류를 경멸했다. 그는 인간 형상을 오래도록 진지하게 관찰하는 것이 예술가의 핵심적인 목표라고 확신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표현주의와 추상미술 등 전위적인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뒤처진 존재로 여겨졌다. 프로이드는 인물 초상 탐구에 확신을 갖고 매우 도발적인 인물 초상화를 만들어냈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 하나였어. 그림을 그릴 것, 무언가 좋은 것을 만들 것, 이전보다 나은 것을 만들 것, 포기하지 말 것, 맞서 싸울 것, 야심을 가질 것.”
문학은 어떤 의미로는 믿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이와는 달리 사실 모든 추측 능력을 넘어서는 곳에서 전개된다. 그래서 사회문학은 인습적인 것(conventional)인데 반해, 역사는 모든 상식적인 한계를 뛰어넘는다.
독단론적인 최종성의 오류:
우주는 광대무변하다. 인류다 역사의 각 시대에 현존하는 지식의 양태를 최종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환상에 젖는, 자기 만족하는 독단만큼 기묘한 것도 없다.
휘트먼은 일찍이 그 이전에는 없었던 것을 그의 시 속에 끌어들인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는 많은 것들이 대단히 새롭고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조차도 새롭게 발명해야 할 정도였지요.
위대한 작가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사물에 대한 한없는 감수성입니다. 옛날 문명의 위기는 지나치게 잘된 교육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그들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은 잘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신선미가 떨어집니다.
예술의 융성기에 이어 기운이 쇠잔해지고 훈고주석이나 현학적인 것으로 빠져들어 생활 속에서 예술이 상실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몇 세기에 걸쳐 고전을 가르친 데 비하여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몇 세기 동안 실질적 문학교육은 거부하고 수학을 가르쳤지만, 옥스퍼드보다 두 배 이상의 많은 시인이 이곳에서 배출되었지요.
“대변동이 일어나는 격동기가 창조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대변동기가 지나치게 길거나 격렬하지 않다면 그렇다고 봅니다.”
인물은 한 시대의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위험은 큰 주제가 완벽하게 잘 달성되었을 때 일어나기 쉽고, 그 이후의 작가들은 2차적인 주제라든지, 세련미나 미묘함 같은 것을 달성하긴 하지만 예술이나 사상은 후퇴하여 천박해지고 맙니다.
만일 위대한 몇몇 시인들이 현대에 살았다면 그들은 시인이 아닌 과학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셸리의 경우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충분히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개체들은 일관성의 판 위에 놓인 것처럼 자연 안에 있으며, 이 일관성의 판으로 전체적인 형상을 만드는데 이 형상은 매 순간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 개체를 구성하는 관계가 역량의 정도, 변용될 수 있는 힘을 형성하는 한에서, 개체들은 서로서로를 변용합니다. 모든 것은 우주 안의 마주침, 좋거나 나쁜 마주침일 뿐입니다.
변용태/정동은 생성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행위 역량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관계들을 분해하는 한에서(슬픔)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의 역량을 증대시키고 우리를 보다 크고 우월한 개체 속으로 진입시키는 한에서(기쁨)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요.
12일
디오티마는 아무런 구체적인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것을 말하는 사람 중 그 누구도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말하진 않는다. 도대체 세상의 어떤 것이 그런 이상과 맞먹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더 위대하고 더 중요한, 또는 더 아름답고 슬픈 것들을 다 합쳐놓은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분명히 종말이나 완벽을 암시하는, 가치와 상대적인 것들의 위계가 아닌가? 그러나 누군가 바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일을 말하는 사람에게 이 점을 지적한다면, 그는 감정이나 이상이 없는 사람으로 의심받을지 모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결하고 영향력 있는 부인의 평행운동은 울리히를 괴롭힐 준비가 돼 있다, 특성 없는 남자
완벽하게 통제된 강력한 사회는 근본적으로 굉장히 변화가 많은 인간행위를 지배할 수 있는 단일함을 자극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자본과 문화. 라인스도르프 백작, 그리고 영혼을 저명한 손님과 연결시킨 관리와 디오티마의 우정, 특성 없는 남자
“그림을 그리는 처음부터 내가 쥐를 쥐고 있는 게 꼭 필요할까요? 쥐는 나중에 들어와도 되지 않을까요?”
“그건 안 되네. 중요한 건 전체적인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야. 쥐와 함께 있는 것이 전체 초상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네. 쥐가 없다면 자네 마음도 아주 다르게 움직일 거야.”
“누군가 내게 무엇을 하라고 하면 나는 그 반대로 하고 싶어진다네. 그리고 대개 그렇게 했지. (...) 한 운전기사가 나를 어떤 극장 앞에 내려놓고 간다면, 아마도 나는 다른 택시를 집어타고 다른 극장으로 가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게 할 거야. 나는 사적인 자유가 좋거든.” 언젠가 그는 한 해 동안 전화번호를 네 번이나 바꾼 적이 있었다.
13일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믿고 있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것은 중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극도로 단조로운 힘이기 때문이다. 하늘 깊숙한 곳에서 비운의 손이 물레를 돌리는.
R. C. Seine n’
인류의 건축이란 인간이나 다른 무언가의 뼈대를, 살점이 떨어져 나간 커다란 뼈다귀들을 닮은 모습이기에, 그 크기에 알맞은 거주자를 떠올리기란 불가하다. 제아무리 거대한 성당이라도 형태가 일정치 않은 개미 떼를 배출해낼 따름이고,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제아무리 호화로운 저택이나 성도 여전히 조개껍질보다는 여러 칸막이로 나뉜 벌집이나 개미집 따위와 비견될 만하다. 성주가 자신의 거처를 벗어날 때 풍기는 인상이라고 해봤자 소라게가 자신이 투숙하는 장려한 원뿔 입구에서 드러내 보이는 괴물 같은 집게보다 강렬하지는 못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상상력이나 신체에서 비롯한 (또는 자기가 속한 사회나 지역의 상스러운 풍습에서 비롯한) 기괴한 불균형만을 입증할 거대한 구조물이라든지, 또는 제 키만 하거나 조금 더 큰 조상(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등의 단순한 재현을 대신하여 둥지 같은 것을, 덩치에 맞는 조개껍질을, 연체동물의 것과는 형태가 매우 다르더라도 균형 잡힌 것(이런 관점에서 흑인들의 오두막집은 충분히 만족스럽다)을 짓기를, 인간이 뭇 세대를 위해 제 신체보다 그리 크지 않은 거처를 만드는 데 정성을 기울이기를, 모든 상상력과 이성이 그에 들어 있기를, 자신의 천재를 불균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조정을 위해 사용하기를, 아니면 적어도 그 천부적 재능으로 그 자신을 지탱하는 몸의 한계를 인지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바흐나 라모, 말레르브나 호라티우스나 말라르메와 같은 몇몇 절도 있는 작가나 작곡가들에게 감탄하는 바, 이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우위에 선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든 기념물이란 인간-연체동물이 배출한 진짜 분비물이자, 제 몸뚱어리에 가장 적합하고 균형을 이루었으며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형태와 가장 동떨어진 것, 바야흐로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조개껍질 비망록
“1. 방향이 정해진 시간에는 언제나 죽음이 뒤따르는 법이다. — 2. 갈색, 탄화의 길을 걸어가는 초록색과 검은색의 중간이 갈색이므로, 나무의 운명은 또한—적어도 최소한—하나의 행적을, 즉 실책을, 잘못된 행보를, 모든 오해 가능성을 포함한다.”
상점 셋
더 안 좋은 것은 오히려,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그닥 엄청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표출하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수십만 번 매한가지의 표현을, 매한가지의 잎사귀만을 거듭해 틔우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움츠려 있기를 견디다 못해 진력이 난 그들은 하나의 급류를, 녹색의 구토를 쏟아내고서, 자신이 다른 방식으로 찬가를 부를 수 있다고, 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온 자연으로 뻗어 나와 그 자연을 껴안을 수 있다고 믿지만, 여전히 수천 부의 사본만을, 매한가지의 음표를, 매한가지의 단어를, 매한가지의 잎사귀만을 이루어낼 뿐이다.
식물은 행동하는 해석학이자 공간 속의 독특한 변증법이다. 앞선 행위의 분기에서 비롯한 발전이다. (...) 그러나 식물이라고 무한히 분기할 수는 없다는 말을 보태야만 하겠다. 한계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법이니.
식물 존재가 윤곽과 형태를 통해 규정되기를 바라기는 하나, 나는 우선 그것의 실체에서 비롯한 덕목을 기리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식물이 저를 둘러싼 무기물만을 희생시켜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는 하나의 광산으로, 진귀한 녹색 광맥은 공중에서는 잎이 광합성을 하고 또 땅에서는 뿌리가 무기염류를 흡수하여 자신의 원형질을 계속해서 생성해내고자 한다. 이 존재의 본질적 자질이 그 안에 있다. 양분이 되는 원천이 주변에 넘쳐나고, 온갖 거주지와 끼니 걱정으로부터 해방된 존재에게만 허락된 것이 있으니, ‘부동’이다.
동물과 식물
왜냐하면 평범한 사상과—심지어는 너무나도 평범해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위대하고 마음을 뒤흔드는 사상을 구별하는 것은 자아가 영원한 확장으로 들어가는, 혹은 반대로 우주의 확장이 자아로 들어오는 어떤 융합된 상태에 존재하며 그 때문에 무엇이 자아에 속하고 무엇이 영원에 속하는지를 구별하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하고 흥분되는 사상이 단단하지맘 깨지기 쉬운 인간의 육체로, 또한 의미를 구성하지만 명료하지는 않으며 냉철한 언어로 그것을 붙잡으려 할 때마다 무로 사라져버리는 불멸의 영혼으로 구성되는 이유이다.
위대한 이상의 본질과 실체, 특성 없는 남자
사실상 예상 밖의 통찰이란 알고 보면 예상 속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 통찰들은 훌륭한 성격이나 안정된 감정, 지칠 줄 모르는 야심, 꾸준한 작업에서 나온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한 성실함이란 얼마나 지루한 것인가!
사유란 무엇인가? 세계 안의 것이고 세계 밖의 것이다. 머릿속으로 떨어진 세계의 측면들이다.
생각을 업으로 삼는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건너뛰어도 좋은 장, 특성 없는 남자
몸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당신이 모르는, 즉 당신의 인식을 넘어서는 몸체에 많은 것들이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영혼에는 당신의 의식을 넘어서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몸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떤 변용태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질문입니다. 실험하세요.
몸체만큼이나 영혼도 병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경증과 불안, 애지중지하는 거세, 삶에 대한 원한, 불결한 병균을 우리에게 전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놓아줄 것입니다. 흡혈귀들처럼 말이죠. 모든 것은 피의 문제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역병을 피하고, 마주침들을 조직하고, 행위 역량을 증가시키고, 기쁨을 변용하고, 긍정의 최대치를 표현하거나 감싸는 변용태/정동들을 다양화하기란 쉽지가 않아요.
스피노자. 그 역시 병들 수도,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이 목적지도 결말도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는커녕 죽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임을 알지요. 로렌스가 휘트먼을 두고 한 말은 어느 정도까지는 스피노자에게도 잘 들어맞는데, 그것은 바로 지속되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영혼 그리고 몸체. 영혼은 위에 있지도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와 함께 더불어’ 있지요. 영혼은 모든 접촉들, 마주침들을 향한 채 길 위에 있습니다. 같은 길을 따르는 이들, 즉 “그들과 함께 느끼고, 그들이 지나갈 때 그들 영혼과 살의 진동을 포착하는” 이들과 동행하면서 말입니다. 이 길은 구원의 도덕과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영혼에게 제 삶을 구원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질들 또한 몸체들이고, 숨결과 영혼도 몸체들이고, 능동/작용과 수동/정념들도 몸체들이지요. 모든 것이 몸체들의 혼합물입니다. 몸체들은 서로 침투하고, 서로 강요하고, 서로 중독시키고, 서로 간섭하고, 서로 빼내고, 서로 강화시키고, 서로 파괴합니다. 마치 불이 쇠에 침투하여 쇠를 벌겋게 달구는 것처럼, 마치 포식자가 먹이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것처럼,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 속으로 깊숙이 파묻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빵 속에 살이 있고, 식물 속에 빵이 있습니다. 이러한 몸체들과 그밖의 다른 많은 몸체들은 숨겨진 관들을 통해서 모든 몸체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 함께 증발하지요...”
우리의 몸 안에서 자라나는 그토록 많은 몸체들. 어떤 혼합물이 좋거나 나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공감하는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좋고, 서로 마주치고 침투하는 ‘부분들’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위험한 것이니까요.
스토아학파의 힘은, 더 이상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 사이 혹은 영혼과 몸체 사이가 아니라, 이전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곳인 물리적 심층과 형이상학적 표면 사이로 분리선이 지나가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물들과 사건들 사이로, 즉 사물들의 상태 혹은 혼합물들, 원인들, 영혼과 몸체들, 능동/작용과 수동/정념들, 질들과 실체들을 한편에 두고, 다른 한편에는 사건들 혹은 비몸체적이고 무감각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질화될 수 없는 효과들, 앞서의 혼합물들에서 생겨나고, 사물들의 상태에 귀속되며, 명제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부정사들을 두어, 이 양편의 사이로 분리선이 지나가게 하는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이다/있다(EST)를 없애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즉 속성은 더 이상 직설법 동사 ‘이다’로 인해 주체와 연결되는 질이 아니라, 사물들의 상태에서 나와 그 위를 훑고 지나가는 임의의 부정법 동사인 것이죠. 부정법 동사들은 무한한 생성들입니다.
사건이라는 것은 작은 물방울들로 이루어진 안개입니다. 만약 ‘죽다’, ‘사랑하다’, ‘움직이다’, ‘웃다’ 등의 부정사들이 사건이라면, 이는 이 부정사들 속에 그것들이 충분히 실현시키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 계속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선행하는 그 자체로서의 생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작은 것일 망정 세상에서 가장 미묘한 것인 사건을 만드는 일은 드라마나 역사/이야기를 만드는 일과는 정반대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방에 들어설 때, 인격이나 성격, 주체로서가 아니라 분위기의 변화, 색조의 변화, 지각 불가능한 분자, 이산적(서로 단절되는, 연속되지 않는) 군, 물안개로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공리계는 스스로가 적용하는 가변 요소들을 동질화하거나 동족화하는 구조를 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재코드화를 조작하고 과학에서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었죠. 왜냐하면 과학은 끊임없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언제나 멀리 더 멀리로 뻗어 나가면서 완전히 탈코드화된 인식과 대상의 흐름이 도주선을 따라 지나가게 만들어 왔으니까요. 그리하여 이러한 선들을 봉쇄하고 질서를 확립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학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학자들은 특이한 사건들, 비몸체적인 본성에 점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몸체들, 몸체의 상태들, 이들 사이에서 완전히 이질적인 배치들 안에서 효과화됩니다. (...) 더 이상 동형적인 영역들을 틀짓는 구조가 아니라 환원 불가능한 영역들을 가로지르는 사건인 것입니다. 가령 수학자 르네 톰이 연구한 것과 같은 ‘카타스트로피’ 사건이 그 예입니다. 아니면 젤라틴, 전염병, 정보에서 효과화되는 ‘증식하기’, 즉 증식-사건이 그 예이죠. 아니면 시내에서 택시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거나 무리에서 한 마리 파리의 진로를 변용시킬 수 있는 자리 옮겨 이동하기가 그 예입니다. 이것은 공리가 아니라 질화된 집합들 사이에서 죽 늘어나는 사건이죠.
아이러니를 쓰는 사람은 원리에 대해 논하는 사람이죠. 그는 통상 일차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차적인 제1원리를 찾거든요. 그는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일차적인 원인을 찾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올라가고 또 올라갑니다. 이는 바로 그가 질문의 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담과 대화의 인간으로, 언제나 시니피앙의 어조인 특정한 어조를 지닙니다. 유머는 정반대입니다. 유머에서 원리들은 거의 중요하지 않고, 모든 것은 글자 그대로 취해지며, 당신에게서 결과를 기대하게 됩니다.(바로 이 때문에 유머는 말장난, 동음이의어로 부리는 익살로 통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말장난은 시니피앙에서 유래하고, 원리 속의 원리와 같은 것이거든요.)
유머는 배반이고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유머는 무조적(atonal)이고 전적으로 지각 불가능하며 무엇인가가 실 풀리듯 풀려 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유머란 효과들을 위해서 원리들, 원인들의 작용을, 사건을 위해서 표상의 작용을, 다양체를 위해서 개별화 혹은 주체화의 작용을 끊임없이 해체하는 것이니까요.
배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이질적인 항들을 허용하고, 상이한 본성들, 즉 시대, 성(sex), 계들을 가로질러 그 항들간의 연결들 및 관계들을 수립하는 하나의 다양체입니다. 그래서 배치의 유일한 통일성은 공동-작동에서 오는 것이죠. (...) 중요한 것은 혈연 관계가 아니라 결연 관계, 혼합 관계입니다. 유전, 혈통이 아니라 감염, 전염, 바람이 중요한 것이죠.
도구는 언제나 기계를 전제하는데, 기계는 기술적이기 이전에 언제나 사회적입니다. 사용되는 기술적 요소들을 선별 내지 할당하는 사회적 기계가 언제나 있습니다. 사회적 기계가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떤 도구를 그것의 ‘문(phylum)’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집합적 배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 도구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채 주변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등자의 경우, 새로운 기병대를 부과하고, 봉건제라는 복합적 배치 속에 [등자라는] 도구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바로 토지 증여입니다. 이 토지 증여는 수령자가 말을 타고 봉사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이 되는데, 오직 동물이 소리, 색, 선이 될 때에만 그러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비대칭적인 생성의 블록이죠. 두 항이 서로 교환돠기 때문이 아닙니다. 두 항들은 절대 서로 교환되지 않지요. 그래서가 아니라 한 항이 다른 한 항으로 되는 것은 오직 다른 항이 또 다른 항으로 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항들이 서로 지워질 때에만 한 항은 다른 한 항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 캐럴이 말하듯, 인간이 웃는 순간에 실제로 고양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양이 없이 웃음지을 때입니다. 이는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되는 인간, 정확히 말해서 동물이 음악적으로, 순수한 색으로, 놀랍도록 단순한 선으로 되는 바로 그 순간에 동물이 되는 인간입니다. 모차르트의 새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인간은 새가 되는데, 이는 새가 음악적으로 되기 때문이지요.
“충분히 집중하여 관찰하면 관찰 그 자체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 시장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일부러 꽤 오랫동안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는데, 한 가지 방법은 그림을 훔쳐서 없애버리는 것이었지.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림이 있는 곳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고, 그림을 없애기 위해서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네. 나는 전문적인 도둑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을 시켜서 내 그림을 훔치게 하기도 했으니까.”
14일
모든 개인들은 내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만약 그 크기가 한 개인에게 운명지어져 있다면, 크기들엔 서로 다른 여러 벌의 옷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간의 진행 속에서 습관적이고 몰지성적인 것들이 스스로를 점점 강화시키고, 특이한 것들을 점점 잃어간다면, 그래서 어떤 기계적인 관계를 확신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점점 평균적이 돼간다면, 그것은 정말 왜 우리가 수천 갈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보통의 인간이 되고 마는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의식상태의 해명과 중단, 특성 없는 남자
15일
산소의 독
산소는 원래 생물에게 해로운 것이다. 여러분은 상처가 나면 소독제로 옥시풀을 상처에 바를 것이다. 옥시풀은 과산화수소를 물에 녹인 것인데, 이것이 상처의 분해효소(카탈라제)에 의해 분해되면 활발하게 산소의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산소는 상처에 침입한 세균을 죽이므로 바로 이것이 옥시풀 소독법인 것이다. 오늘날의 공기에는 산소가 20% 가량 포함되어 있는데, 그 이상의 농도가 되면 인간뿐만 아니라 대개의 생물들도 위험하게 된다. 아득한 옛날, 대기에 아직 산소가 함유되어 있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생물의 자손들은 지금도 깊은 물 속이나 흙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들은 공기에 드러나면 죽어버린다.
산소호흡
생물은 만만찮은 존재이다. 이번에는 독물인 산소를 에너지대사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산소호흡대사이다. 호흡대사에서는 당을 철저하게 분해하여 이산화 탄소와 물로 만든다. 이때 대량의 에너지와 더불어 전자가 방출된다. 거기서 이 전자를 버리는 장치로 산소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와 수소이온과 산소를 화합시켜 해가 없는 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대입 경쟁과 사교육의 원인은 대체로 구조적 요인, 즉 대학 서열(대학 간 격차)과 노동시장(일자리 격차)에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자세히 분석할 것이다. 그런데 구조적 요인 이외에 선발제도의 영향도 분명히 작용한다. 특히 지원자가 경험하는 대입 전형요소의 ‘난이도’와 ‘복잡성’이 부담 정도와 사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논술이든 간에 난이도를 높이면 사교육이 늘고 난이도를 낮추면 사교육이 줄어든다. 이것은 사교육업계에서 매우 뚜렷하게 경험된다. 심지어 수능 수학이 유난히 어려우면 다음 해 사교육 수능 강의의 수학 수강생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교육과정의 난이도’와 ‘평가의 난이도’를 구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담 정도와 사교육에 영향을 주는 것은 주로 ‘평가의 난이도’다.
한국에서 대입 경쟁이 치열한 것은 구조적 요인(대학 서열, 노동시장)과 선발 방식(난이도, 복잡성)이 함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구조적 요인이 더 중요한 이유지만 선발 방식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풍선 효과’라는 통념을 경계해야 한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특정한 영역에서 규제를 통해 사교육을 절감하고자 하면 다른 영역의 사교육이 증가해 결국 상쇄된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정부 시절 외고 입시에서 중학교 내신 성적 가운데 영어만 반영하도록 제한했을 때, 그리고 박근혜정부 시절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등급제)로 변경했을 때, 풍선 효과 때문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실제 경험과 다르다. 풍선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효과와(+)효과가 완전히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선발 방식의 변화는 구조적 요인(대학 서열, 노동시장)보다 그 정도는 작을지언정 분명히 학생·학부모의 부담 정도와 사교육비에 영향을 준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2012년에는 사교육비가 감소했고, 박근혜정부로 넘어간 2013~2015년에도 사교육비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난이도(평가의 난이도)와 복잡성(전형요소의 복합성)을 통제함으로써 가능했다.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는 역대 정부들 중 교육정책을 가장 치밀하게 편 것이 이명박정부였다는 평가가 있다. 그 이면에는 자사고와 일제고사를 밀어붙인 ‘강경파’뿐만 아니라 세심하게 선발제도 개선안을 마련한 ‘현실파’가 있었다. 나는 당시 정치인·관료·교수들로 구성된 현실파 그룹의 요청으로 이들과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 이들은 선발제도가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상세한 조사와 학습을 진행해놓고 있었다. 이후 이들이 내놓은 정책은 앞에서 본 것처럼 매우 꼼꼼했다.
학생 입장에서 ‘철인 5종경기’보다 ‘철인 10종경기’가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미국식 대입제도 자체에 수반된 문제점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복합적인 전형요소를 요구하는) 대입제도를 가지고 있다. 내신 성적도 반영하고 입시(SAT나 ACT)도 반영하고 비교과도 반영한다. 이게 좋은 줄 알고 들여와서 탈이 난 것이다.
흔히 대입제도가 자주 바뀐다고 개탄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든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더하는 ‘더하기 개혁’은 싫어하지만, 이명박정부처럼 ‘빼기 개혁’을 하면 부담과 불안감이 오히려 감소한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해체한 것은 ‘빼기 개혁’의 대표적 사례였다. 비교과 비중을 낮추거나 배제하는 것도 일종의 ‘빼기 개혁’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복잡한 대입제도가 제안되는 걸 보면 의아해진다. 왜 이럴까?? 이들이 ‘대학 자율’을 내면화하고 ‘입시 위주 교육’을 관성적으로 비판하는 자신들만의 교육학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경쟁의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학벌 경쟁’에 빠져 있다며 백안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을 ‘갈라파고스 교육학’이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 교육학을 믿는 사람들은 종종 ‘학종은 좋은 제도인데 계층 상승 욕망에 사로잡힌 대중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주장한다. 한심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경쟁의 원인인 ‘대학 서열’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 한국에서는 의대에 가려는 또는 공무원이 되려는 경쟁이 치열한가?? 의사 또는 공무원이 되느냐 못 되느냐에 따른 결과의 격차(생애소득과 안정성)가 크기 때문이다. 즉 경쟁은 시험이나 변별이나 학생 서열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을 완화하려면 ‘결과의 격차’를 축소해야 한다. 금메달은 10만 원, 은메달은 3만 원, 동메달은 1만 원을 받게 된다면 경쟁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반면 금메달은 10만 원, 은메달은 8만 원, 동메달은 6만 원을 받게 된다면 경쟁 강도가 완화되고 사회적 비용과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이다. 시장 경쟁은 격렬해서 나쁠 것이 없지만(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교육 경쟁이 격렬해지면 청소년기 정신건강과 부모의 노후 준비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에서 교육 경쟁은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힐 정도다. 따라서 반드시 교육 경쟁의 강도를 낮춰야 한다.
한국의 대학 서열 원인
① 교육 여건: 학생 1인당 투입 교육비, 학생 대 교수 비율, 교육 프로그램의 질과 수준 등
② 후광효과(halo effect):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대학의 사회적 평판에 의한 영향
③ 네트워크효과(network effect): 동문 인맥으로 인한 사회적 유·불리
④ 지리적 위치(인서울효과): 서울에 소재한 이른바 인서울(in서울) 대학이 선호됨
⑤ 동료효과(peer effect): 재학 중 소속 집단에 의한 영향. ‘또래효과’라고도 함
①~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연코 ① 교육 여건이다. 그리고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학생 1인당 교육비’ 통계다. 교육 여건을 충실히 확보해 대학을 설립하자마자 최상위 대학이 된 사례들이 있다. 1980년대의 포항공대(포스텍)와 1990년대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대표적이다.
대학 서열의 원인이 학벌주의와 같은 사람들의 ‘의식’이나 ‘믿음’ 때문이라는 시각은 대중의 의식을 개혁하면 경쟁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그릇된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결국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의식개혁론’으로 경도되거나, 대중의 명문대 선호와 계층 상승 욕망을 비난하는 도덕주의로 귀결된다. 물론 의식개혁론이나 도덕주의의 귀결은 대중과의 불화 그리고 좌절과 무력감이다. 원인 진단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매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체의 이해라는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책 제목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때마다의 지배적인 정보기술이 모든 이해를 원격조종하면서 자신에 대한 환상을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관되게 역사를 실체로 삼는 사고방식과 대결했다. 그는 과거를 이미 주어진 갑갑한 대상이 아니라 늘 분해 가능한 구축물로 대한다는 시좌를 지녔으며, {학자의 책임에 대하여}라는 논문에 적었던 그 테제는 다케우치 생애의 작업을 관통하게 되었다.
그는 부정된 대상 속으로 들어가 부정된 것으로부터 분해 가능한 요소를 연마해 과거를 생산적 방향으로 재구축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흑과 백처럼 쉽게 가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늘 위태롭다는 비판이 따른다. 결국 진보적 지식인들의 진정한 협력을 얻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 끝에 허공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대표적 논문 {근대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발상을 내놓았다. 루쉰의 출현은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즉 루쉰으로 인해 과거를 다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에서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의식은 “언제나 역사적인 한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자각할 수 있다. 즉 역사 현상은 그 역사의 시기가 지나야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역사를 고쳐 쓰는 일은 역사를 개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자각이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생긴다는 뜻이다.
그는 네이션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다양하게 모순하는 요소의 결합으로 다룸으로써, 거기서 다양한 가능성을 추출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한 집합체를 그는 분해 가능한 구축물이라 명명한것이다.
독립, 진보, 민주 등 절대로 긍정적이라 여겨지던 가치가 역사 상황이라는 힘 관계의 유동적 또는 불가시적 집합체 속에 놓여 비로소 즉물적이 되고, 그 순간 이 일련의 가치에 구체적 조건절이 따라붙어, 근대가 일본 사회 속에 깊게 뿌리를 내렸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문제로서 문제화되었다. 그 결과 이런 일련의 가치는 사물을 판단하는 전제가 아니라 오히려 검토되어 마땅한 대상이 되었다.
그의 지적 생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 즉 일본의 사상전통에 대한 가치전도도, 중국에 대한 가치전도와 마찬가지로 어떤 자각에 기초했다. 그 자각이란 일본 근대 사상의 내부에 잠재한 자기 자신의 요구로서의 근대를 바깥에서 주어진 무른 근대에 대항할 수 있는 요소로 발굴하겠다는 것이었다.
“메이지의 자유 민권은 귀중한 혁명유산이다. 나는 어떡하든지 그 유산을 발굴하고 싶다. 발굴하는 일에 학문으로 협력하고 싶다. 그러나 자유민권이 이미 그 체내에 대륙 침략의 맹아를 품었었다는 사실을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연대와 침략이라는 이분법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오히려 연대와 침략을 조합하는 유형이야말로 역사의 복잡함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사실 수학은 비논리적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비논리적 발전 과정에는 잘못된 증명, 추론의 오류, 부주의로 인한 실수 등, 주의를 좀 더 기울이면 피할 수 있는 것만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비논리적 발전 과정에는 개념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 필요한 논리학 원칙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잘못, 그리고 엄밀성이 불충분한 증명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직관, 물리적 논증, 기하학적 도형의 사용 등이 논리적 증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수학이 처한 난국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수학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자기 학파의 이론으로는 대립되는 학파의 추종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16일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다소 ‘삶의 방향’으로 정향돼 있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조금만 벗어난 것이라도 매우 곤란하고 놀라운 일이 된다. 이것은 걷는 일 같은 작은 일에도 적용된다. 몸의 무게 중심을 들어올려 앞으로 내뻗은 후 다시 떨어뜨린다. 아주 사소한 변화도—이렇게 스스로를 미래로 내딛는 변화나 혹은 그것에 회의를 품고 멈칫하는 행위조차도—인간을 더 이상 똑바로 설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인간은 행위를 심사숙고해서는 안 된다.
젊은 시절에 삶은 마치 다함이 없는 아침처런, 모든 면에서 가능성과 빈 공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오가 되면 그들 자신의 삶을 주장하는 무엇인가가 갑자기 등장하는데, 그것의 형체는 마치 20년 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전혀 엉뚱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과 마주치게 된 것처럼 놀라운 것이게 마련이다. 그것보다 더 기묘한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자를 받아들인다. 그의 삶은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가고 그의 체험은 그들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의 운명은 그들 자신의 행운이나 불행이 되어버린다.
이 삶의 혁명에 대한 열정을 영구적인 움직임으로 만든 것은 다름아니라 자신의 안개 같은 자아와 외계 사이의 침입이며 이미 돌같이 딱딱해진 자아—이전 사람들, 또는 가짜 자아에 의해 느슨하게 끼워진 한 무리의 영혼에 의해서—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사람들은 최근의 미래에서 다가오는 옛 시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유란 그러니까 전성기를 지나 뼈에 살이 좀더 붙은 채로 서른살을 더 먹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지나가는 소녀의 빛나는 외모에서 그 어머니의 빼어난 외모를 힐끔 떠올리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뜨거운 빛과 차가운 벽들
산다는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제 느낀 것을 오늘도 느낄 수는 없다. 어제 느낀 것을 오늘도 느낀다면, 그건 어제를 기억하는 것이지 느끼는 게 아니다. 어제 이미 살았고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오늘 살고 있는 시체일 뿐이다.
하루가 다음날로 넘어갈 때 전날 있었던 일들을 칠판에서 모두 지우고 감정의 처녀성의 영원한 부활을 경험하며 새벽마다 새사람이 되는 것, 바로 이것만이, 불완전하더라도 지금의 우리인 존재가 되기 위해 해볼 만한 일이고 될 만한 일이다.
대기 질소의 동화
현재 지구 상의 식물의 번성은 토양 속의 암모니아 등 질소영양의 양에 크게 지배되고 있다. 만약 모든 식물에 대기질소를 이용하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지구 환경은 훨씬 더 풍요로와졌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진짜 욕망과 거짓 욕망을 나누는 진부한 구별을 다시 하기 위해서 거기에 딱 맞는 완벽한 격자를 칩니다. 그러니까 욕망의 진정한 내용은 부분 충동이나 부분 대상이고, 욕망의 진정한 표현은 전체를 구조화하기 위한 하나의 심급,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거세, 또는 죽음이라는 가설을 세워서 말입니다. 욕망이 어떤 바깥, 생성과 관련하여 무엇인가를 배치하자마자, 사람들은 그 배치를 허물어 버립니다.
무의식은 억압된 추억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환상과도 아무 상관이 없지요.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늘 현재적인 어린 시절의 블록들을 가지고 어린아이-되기라는 블록들을 생산합니다. 저마다 자신과 동시대적인 숨겨 두었던 태반 조각을 실험 재료로 삼아 제조하거나 배치하는 것이지, 자신이 깨고 나온 알이나, 그 알을 낳은 부모나, 자신이 부모에게서 끌어낸 이미지들이나, 생식 구조 따위를 재료로 삼아 그리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을 만드세요. (...) 그것은 제조하여 흐르도록 해야 할 하나의 실체이고 정복해야 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한 공간입니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욕망의 주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발화 행위의 주체 역시 존재하지 않죠. 욕망 그 자체의 객관성은 흐름들에 의해서만 나타납니다.
욕망은 기성 구조들을 문제삼지 않고서는 핵가족이든 동네 학교든 그 어떤 곳에서도 부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언제나 더 많은 연결접속과 배치를 원하기 때문에 혁명적입니다.
발화 행위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니 어떤 주체를 표상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배치의 프로그램을 짭시다.
정신분석학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부정 관사나 부정 대명사 등을 아우르는] 부정사들 이면에 숨겨진 한정사, 소유사, 인칭이 있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사실 주어진 한 배치(건물-거리-인접한 창고-마차의 말-말 한 마리가 넘어진다-말 한 마리가 채찍을 맞는다!)에서 한 부분만을 발췌하거나 한 순간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욕망 전체와 진행중에 있는 생성을 허물어 버릴 수 있고, 지나치게 상상적인 유사(내 아빠인-한 마리의 말)나 지나치게 상징적인 관계의 유비(말이 뒷발질하다=사랑을 나누다)가 그 배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실재적인-욕망은 이미 전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욕망의 실재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의 코드를, 발화체들의 상징적 덧코드화를, 환자들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는 발화 행위의 허구적 주체를 위치시킵니다.
17일
나에게 흘러가는 삶을 보는 일은 무언가를 꿈꾸는 일과 마찬가지다.
정말 현명한 사람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사실들보다는 자기에게 가까운 현실이라는 갑옷을 걸친다. 그리고 사실들이 갑옷을 통과할 때 자신의 현실에 맞게 변형시켜 자신에게 이르게 한다.
사실 성실하고 실제적인 현실인간은 현실을 철저하게 사랑하지 않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아이였을 때 그들은 부모가 방에 없기만 하면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 간단하고도 기발한 속임수로 모험을 만든다. 유년이 되면 그들은 시계를 찾고, 금시계를 찬 청년이 되면 그에 어울리는 여자를 쫓아다닌다. 여자와 시계를 마련한 성인 남자는 높은 지위를 꿈꾼다. 그리고 그가 이 욕망의 소박한 과정들을 무사히 마치고 마치 시계추처럼 조용히 그 안에서 흔들릴 때, 아마도 만족되지 못한 꿈들은 하나도 줄어든 것 같지 않게 보일 것이다.
한 기자가 ‘오스트리아 해’라는 구호를 발명해냄으로써 라인스도르프 백작을 어려움에 빠지게 한다. 그는 자주 울리히를 찾는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그가 한 일이나 그에게 벌어진 일들을 실재보다 더 보편적이거나 더 개인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은 펀치 한방을 모욕이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고 그때의 펀치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각해진다. 그어나 다른 사람은 그것을 스포츠 같은 것으로, 다시 말해 그것에 자신이 친숙해져야 할지 아니면 맹목적으로 화를 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장애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그런 상태는 종종 그 차이를 아예 인식조차 못한 채 넘어가기도 한다.
오늘날 책임감의 무게중심은 사람들이 아니라 상황들에 넘어갔다. 만약 인간이 자신들의 경험이 인간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극장으로 달려가거나, 책으로, 통계연구원의 보고서로, 탐사여행으로, 이데올로기나 종교집단으로, 그렇듯 마치 사회적인 실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지불하는 대가로 독특한 방식의 체험들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달려가고 그 체험이 곧바로 실현되지 않는 한, 그것은 허공에 뜬 채로 남겨질 뿐이다.
오늘날 누가 과연 자신의 분노가 자신의 분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분노에 대해 말하고 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사람 없는 특성들의 세계, 체험하지도 않은 체험들의 세계였고 마치 이상적인 인간 경험은 더이상 개인적으로는 체험될 수 없고, 개인적인 책임감이라는 그 친근한 부담감은 가능성 있는 의미라는 형식의 체계 속으로 녹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됐지만, 이미 지난 한세기 전부터 인간중심적인 태도는 사라져버린 듯했고, 결국 그것은 ‘나’ 자신이란 것에 머물고 말았다. 왜냐하면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실제적인 경험이라든가,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실제의 행위라는 믿음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치하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성 없는 남자는 사람 없는 특성들로 돼 있다
정신은 누군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을 통과해 지나가며 그에게는 단지 아주 적은 전율만을 남겨둘 뿐이다. 우리가 이 모든 정신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수세기 동안 정신은 악덕이 덕이 될 수도, 반대로 덕이 악덕이 될 수도 있다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한 범죄자가 일생을 통해 유용한 인간으로 변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근본적으로 오직 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정신은 어떤 것도 허용되거나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언젠가 위대하고 새로운 상황의 일부가 될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은 마치 모든 이의 죽음같이 영원한 체하는 것, 위대한 이상과 법, 그리고 거기서 화석화된 인쇄물들, 조화로운 성격 같은 것들을 비밀스럽게 혐오한다. 정신은 어떤 것도, 나도, 질서도 확고하지 않다고 여긴다. 우리의 인식이 매일 다르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은 어떤 속박도 믿지 않으며, 마치 우리가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이 바뀌는 것처럼 모든 것은 단지 그 다음 창조의 행동까지만 유효한 가치를 가질 뿐이다.
정신적으로 잘 훈련된 사람은 마침내 자신을 전문성 안에 가두고 나머지 삶 동안 ‘전체로서의 삶은 아마 달랐어야 하지만 그것을 숙고할 아무 이유도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모든 특성을 지닌 사람은, 그러나 특성과는 상관이 없었다. 정신의 영주는 체포되었고, 평행운동은 명예서기를 얻었다
나의 작품 경향은 언제나 우리 민족 미술을 새로운 표현으로 국제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작품은 외부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부적인 것입니다. 한복만 입었다고 다 한국인이 아니듯이...
빛은 파장이 짧아질수록 지니고 있는 에너지가 많아진다.
18일
19일
20일
21일
젊은 시절에 흔히 그러했듯이 우리에게 믿음의 회의가 찾아오면 우리는 곧장 무신론자들을 따라다니며, 사랑의 혼란이 찾아오면 재빨리 사랑을 버리고 결혼해버린다. 그리고 어떤 영감에 압도될 때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게 어차피 불가능한 만큼 그곳을 떠나게 되고, 떠난 후에는 결국 그 불길을 갈망하며 사는 삶이 시작된다.
이상과 도덕은 영혼이라 불리는 거대한 구멍을 채우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
인생을 다 바쳐서 학문을 연마했다고 해서, 가령 신장 연구에 평생을 공헌한 사람에게도 인간적인 순간이, 그러니까 신장과 나라 전체의 관계를 고민하는 그런 순간은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독일에서 괴테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아른하임이 명성을 얻은 세가지 이유와 전체성의 비밀
22일
23일
저녁 약국
강남역 지하엔 동화서적이 있고 작은 약국도 있다 난 강의가 없는 오전이면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그 약국에 들르곤 했지 모자를 쓰고 낡은 파카를 걸치고 그러나 오늘은 오후 여섯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다 오버를 입고 가방을 들고 판피린을 산다 입구엔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약사가 앉아 있고 그 옆은 진열장이고 진열장 뒤에 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그러나 진열장 뒤에 있으므로 난 그녀를 볼 수 없고 그녀는 나를 볼 수 있다 약을 가방에 넣고 나올 때 그녀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저녁에 오셨네요 코에서 피가 나오던 봄날 저녁
24일
우리의 몸을 형성하고 있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방법은 모조리 우리의 유전자가 결정하고 있다. 설사 우리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몸의 세포 속에서는 우리 자신의 살(단백질)로 변해 있을 것이다. 어떤 고기라도 입으로 들어간 단백질은 모두 아미노산으로 분해되고, 혈액을 통해 각 세포로 운반되어, 우리의 유전자의 지배하에 개조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체 우리가 온힘을 기울여야 할 만큼 아주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 있을까요?”
“지금 시대의 현상은 좀더 건강했던 시대의 그 내적인 확실성을 상실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른하임이 대답했다. “그래서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것을 뽑아내기가 어려운 것이죠.”
우리는 요즘의 그림이 보여주는 세계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것 할 것 없이 파편화돼 있어요. 종합적인 것은 없고 극단적이기만 하죠.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가 새롭고 기계화된 사회와 내면을 만들어내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 스트린드베리,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폭로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현대인들은 우리를 위해 할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지요.
문명의 문제는 마음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출현과 내적인 변화, 그리고 순수한 의지로 풀어야 합니다. 이성은 그 위대한 과거를 자유주의로 축소하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넓게 보지 못하고, 너무 작은 잣대로 세상을 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순간은 세계 변화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구외교와 신외교 사이의 대립이 시작되다
이오니아 인들의 자연철학은 포괄적이고 면밀한 과학 연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대담한 발상, 예리한 추정, 뛰어난 직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오니아 인들은 전체를 총체적으로 조감하려는 열의가 다소 지나친 나머지 성급하게 결론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들은 우주의 짜임새와 그 움직임에 대한 종래의 신화적 설명을 피하고 그 대신에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을 가했다.
자연이란 혼돈이 지배하는 곳이며, 인간의 지력이 결코 꿰뚫을 수 없는 신비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배격하고 이해 가능한 패턴을 지닌 대상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는 데에는 수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의 추상화는 후대의 산물로 피타고라스 학파가 활약하던 시기에는 수를 추상적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수를 점이나 입자로 파악했다. 삼각수나 사각수 또는 오각수를 언급할 때, 그들은 점이나 조약돌 또는 그와 유사한 물체가 그에 상응하는 형태로 모여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천문학과 음악을 수치로 ‘환원’했기 때문에 음악과 천문학은 산술 및 기하학과 관련을 맺게 되었고 따라서 이 네 가지 분야들은 모두 수리 이론으로 여겨졌다. 이 네 분야는 학교 교과 과목으로 채택되었고, 중세 시기까지 4학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수학으로 자연을 이해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자체를 수학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는 물질 세계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으로도 기본적 진리를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어떤 도움도 없이 이성만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때부터는 오직 수학만이 있을 따름이다. 이제 수학이 물리적 연구를 대체하게 된다.
그리스 수학을 만들어 낸 철학자들에게 진리라는 말 자체는 영원불변의 실체와의 관계를 의미했다.
플라톤은 객관적인 진리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영혼은 지상으로 오기 전에 피안의 세계에서 진리를 체험했다. 따라서 기하학의 공리가 참임을 알기 위해서는 단지 과거의 경험을 ‘상기’하도록 자극하기만 하면 된다. 지상에서의 경험은 필요하지 않다.
공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해 가능한 원리이다.
공리 가운데서 그[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 개념과 공준을 구별했다. 보편 개념은 사고의 모든 영역에서 참인 성질을 갖는다. (...) 공준은 기하학 같은 특정 분야에서 사용된다. “두 점은 유일한 직선을 결정한다” 라는 명제가 이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준은 자명할 필요는 없지만 그 공준에서 유도되어 나오는 결과를 통해 그 타당성이 뒷받침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자명함을 요구했다.
결과는 공리에서 논증을 거쳐 끄집어 내야 했다. 논증에는 여러 형태, 예를 들어 귀납, 유추, 연역이 있다. 이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결론의 올바름을 보증해 준다. 빨간 사과 1000개를 보고서 모든 사과는 빨갛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귀납법으로, 이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같은 능력을 유전으로 받은 존의 형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존 역시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유추인데, 이것 역시 신뢰할 수 없는 논증이다. 그 반면에 연역은 여러 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결론을 확실하게 보증해 준다. 만일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과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모순율: 명제가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일 수 없다는 법칙
배중률: 명제는 반드시 참과 거짓 가운데 하나라는 법칙
{테아테토스}에서 플라톤이 사용한 비유를 쓰자면, 정리는 새장 속의 새와 같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며, 잡고 싶으면 손을 뻗기만 하면 된다. 학습이란 상기해 내는 과정일 따름이다.
당시 사람들의 진정한 목표는 자연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물질 세계의 탐구라는 전제에서 기하학의 진리는 의미를 지녔다. 그리스인들은 기하학적 원리가 우주 구조 전체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우주의 구조 가운데 공간이 주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따라서 공간과 공간 안의 도형에 대한 연구는 물질 세계에 대한 탐구에 핵심적인 도움을 준다. 기하학은 사실은 우주론이라는 더욱 광범위한 연구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예컨대 구면 기하학은 플라톤 시대에 천문학이 수학적 체계를 갖추면서 시작되었다. 실은, 구에 해당하는 그리스 어는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천문학을 의미했다.
그[에우독소스]가 다룬 구는 실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그는 또한 구의 회전을 기술하면서 구를 회전하도록 만드는 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오늘날 과학의 목표는 물리적 설명이 아니라 수학적 기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에우독소스의 이론은 매우 현대적이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진리 추구는 공간과 천체에 관한 수학으로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리스 인들은 역학도 만들어 냈다. 역학은 입자의 운동과 물체의 운동 그리고 이 운동을 낳는 힘 등을 다룬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자연의 수학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 곧 진리 탐구였다. 수학 법칙이 자연에 관한 진리라는 믿음은 가장 심오하고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을 수학 연구로 이끌었다.
수학의 창세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보다는 사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그 사물에 어울리는 수사학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학습을 이렇게 기술하는 사람은—나는 이렇게 믿고 싶은데一우선 책상, 의자, 빵과 같은 명사들과 사람 이름들을 그리고 두 번째에야 비로소 어떤 활동들과 성질들의 이름들을, 그리고 그 밖의 종류의 낱말들을 발견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생각하고 있다.
막대를 지레와 결합함으로써 나는 브레이크를 걸었다:一 그렇다. 나머지 메커니즘 전체가 주어져 있다면. 오직 이것과 더불어서만 그것은 브레이크 페달이다. 그리고 그것을 떠받쳐 주는 것으로부터 분리되면 그것은 지레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모든 것이 될 수 있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25일
오늘날 금융의 역할이란 그가 보기에 가톨릭교회의 역할과 비슷했다.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배권력에 순종했다 반항했다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태의 진전. 투치 국장은 아른하임을 더 알아가기로 결심했다
일반 사회에서는 당연히 개체의 죽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최후라고 말하게 되는데, 생물학이나 이식의학 분야에서는 오히려 세포라든가 기관의 레벨에다 생사의 기준을 두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나의 목표는 실재감을 강화시키는 데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는 화가가 자신이 선택한 대상과 사물을 얼마나 강렬하게 이해하고 느끼는지에 달려있다.
삶의 재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자신의 언어를 순수하게 추상적인 형태로 한정하는 화가들은 미학적인 정서 이상의 것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스스로 제거해버린다.
대상은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밤낮으로 대상을 관찰했다면,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혹은 사물이든, 마침내 그것이 아니면 모델로 선택되지 않았을 바로 그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점은 대상의 삶을 이루는 어떤 단면 혹은 모든 단면을 통해 드러난다. 움직임과 태도를 통해서,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모든 변이를 통해서, 그점이 드러난다.
화가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그 자신의 쓰임과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본성에 따르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는 오직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림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려면 그림이 우리에게 삶을 일깨우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 자체의 생명력을 확보하여 삶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하기에, 예술의 독립은 필수적이다.
그림이 잘 될 때는 전체적으로 그리지. ‘저쪽은 다시 손대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쪽을 바꾸고 싶어져. 그것이 예술의 요소거든. 예술의 요소는 화가가 느끼는 것이고 하지 않으려는 거야. 그림은 종국에는 일종의 물감 그 자체가 된다네. 더 이상 손댈 게 없는 순간이 오지. 충분히 했다는 거야.
나의 주제는 전적으로 자전적이라네. 내가 좋아하고 나의 흥미를 끄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거든.
나는 일종의 생물학자라네. 그림의 주제가 되는 인간에 대한 나의 관심은 관찰자, 실험자, 관측자의 태도에서 비롯되지. 나는 이런 식으로 말 그림을 많이 그린 거야.
한국·대만·일본에서 강력한 농지개혁이 이뤄져 자산(땅)이 비교적 고르게 분배되었고 이로써 교육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 모든 것은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 공산주의 혁명에서 시작된다. 마오쩌둥은 도시 노동자층보다 농촌 소작농들의 지지에 힘입어 혁명을 성공시켰다. 소작농이 지주에게 납부하는 소작료는 심지어 소출의 80%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산당은 이들에게 농지개혁, 즉 지주가 소유한 땅을 나눠줄 것을 약속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중국 내전이 재발하고 1947년이 되면 공산군이 국민당군을 몰아붙여 승기를 잡는다. 미국 정부는 혁명의 여파가 주변 국가들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과 인접한 한국, 대만, 일본에 강력한 농지개혁을 지시했다. 일본은 미국의 군정 치하였으므로 군정사령관 맥아더가 직접 농지개혁을 단행했고 한국은 이승만, 대만은 장제스가 책임을 맡았다.
‘논을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팔 논이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은 논을 팔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는 자영농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나라였다. 어린 자녀가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면 가지고 있는 자산(농지)을 처분해서 아이를 대학까지 보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평등하게 분배된 자산은 교육열의 강력한 원천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한국·대만·일본에서 대입 경쟁이 치열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등한 자영농의 사회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한국 사람들이 남들과 비교를 잘하고 질투가 강한 편인 것은 비교적 평등했던 과거의 유산일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심리는 격차가 작은 사회에서 가능한 멘탈리티다. 사촌이 대지주라면 그가 땅을 늘린다고 해서 배가 아플 리 없다. 격차가 크면 부러워할지언정 질투심을 갖지는 않는다. 질투심은 비교적 차이가 적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생각도 전형적인 자영농의 사고방식이다. 자영농은 자기 땅을 잘 경영하고 열심히 일하면 소득을 늘릴 수 있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한국의 교육열이 유난히 높고 교육 경쟁이 심했던 이유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공부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과거제도는 시험을 치러 고위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인데, 한국에서는 고려 광종 때인 958년부터 1894년 갑오개혁까지 900년 넘게 유지되었다. 이로써 공부가 중요하다는 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문화적 전통이 결정적 요인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 말기 문맹률은 90%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는 물론이고 한글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해방 직후에도 문맹률은 80%가량이었다. 대다수가 한자, 가나, 한글 모두 읽지 못했다. 즉 예전에는 교육열이 소수 계층의 문화였을 뿐이다. 교육열을 문화로 설명할 때 부딪치는 또 하나의 의문은 일본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무신계급이 지배했고 과거제도는 불과 몇 년간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본에서도 20세기 중반 한국·대만과 마찬가지로 대입 경쟁이 심하게 나타났다.
나는 문화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전의 높은 문맹률이나 일본의 사례 등을 고려해볼 때, 문화가 교육열의 결정적 요인인지는 의문이다. 공부를 중시하는 문화가 불씨 역할을 하긴 했지만 교육열과 대입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그 불씨에 농지개혁이라는 기름이 끼얹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둘째,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산 소유자가 많았다. 농지개혁 이후 자영농으로 대표되는 소(小)자산가 비율이 매우 높았고 이들은 자산(땅)을 활용해 교육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100m 달리기에 비유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출발선에 10명이 서 있는데 한국·대만·일본에서는 20명이나 30명이 서 있는 셈이니 자연히 경쟁이 격렬했다.
교육열의 원천은 가난이 아니라 ‘평등’이었다. 프롤레타리아의 평등이 아니라 프티부르주아(소자산가)의 평등, 논을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의 평등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천에서 나는 용에만 주목해서야 되겠느냐’고 일갈한다. 그런데 한국의 개천은 애초에 썩은 물이 흐르는 시궁창이 아니라 꽤 살 만한 곳이었고, 무엇보다 개천이 다른 나라보다 많았다. 물이 맑고 먹이가 풍부한 개천이 그리 많으니 당연히 용이 많이 나올 것 아닌가??
교육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시작되면서 계속 증가했다. 자영농들이 ‘자산’을 이용해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면, 경제성장으로 실질소득이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이 ‘소득’을 이용해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것도 점차 가능해졌다. 농지개혁으로 불붙은 교육 경쟁이 경제성장으로 가속화된 것이다.
셋째, 대학 서열(대학 간 격차)이 심했다. ‘출발선’에서 경쟁 참여자가 많아도 ‘결승선’에서 대학들 간의 격차가 작으면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격렬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대만은 처음부터 매우 일극화된 대학 서열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일본에는 제국대학이 9개 있었는데 그중 두 개가 식민지에 세운 경성제국대(현재 국립 서울대)와 타이페이제국대(현재 국립 대만대)다. 이 두 대학이 독립 이후 한국과 대만의 원톱 대학이 되었다.
과거 제국대학들 가운데 일본에 남아 있는 7개는 현재 거점 국립대로서 상당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도쿄대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교토대다.
사립대는 오래될수록 재정과 교육 여건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육 경쟁이 일자리 경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1980~1990년대 한국에서는 취업이 잘되었음에도 대입 경쟁이 치열했다. 요새 청년들은 “그땐 취업이 잘되었다면서 왜 그렇게 대입 경쟁이 치열했나요??”라고 묻는다. 교육 경쟁에 일자리나 소득보다 ‘대학 간 격차’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대학 서열은 미국에도 있지만 일본이 미국보다 심하고, 특히 한국과 대만의 서열은 일본보다 한층 더 일극화되어 있다. 이로써 대입 경쟁의 치열함은 대략 한국≒대만>일본>미국 정도로 도식화해볼 수 있다.
경쟁은 무엇인가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이기도 하다. 교육 경쟁은 학업부담과 사교육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계층 상승 욕구와 사회적 활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하고 칭송한 것도 따지고 보면 ‘경쟁에 참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미국의 저소득층·소수인종 밀집 지역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다.
진보 교육 진영은 교육 경쟁을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대입 자율화와 고교평준화 해체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교육정책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미국·영국을 기준으로 봐도 적어도 1970년대 후반 이후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한국의 교육 경쟁을 신자유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의 교육 경쟁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경쟁 참여자가 많았다는 ‘스타트 라인 요인’과 아울러 대학 서열(대학 간 격차)이 심했다는 ‘피니시 라인 요인’이 함께 작용한 탓이다. 이것은 진보 진영의 전형적인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인지된다. 특히 한국의 농지개혁(유상분배)을 북한의 농지개혁(무상분배)에 비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에서 벗어나 분배된 농지의 ‘자산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고도 경제성장기 빈부격차를 강조하는 상투적 해석에서 벗어나 한국의 소득분배가 양호한 편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우파 중에는 농지개혁을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농지개혁의 추진력은 이승만 대통령에서 유래했다기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나온 것이고, 북한이 일찌감치 1946년에 농지개혁을 했기 때문에 ‘농지개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한국에 퍼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연쇄반응에 방아쇠를 당긴 것은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역사의 간지(奸智)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가톨릭의 가르침에는 자연이 수학적으로 짜여 있다는 그리스의 교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창조한 우주를 이해하려는 것과 자연이 지닌 수학적 법칙을 탐구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그 해답은 새로운 교리, 즉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우주를 수학적으로 창조했다’는 교리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 16세기와 17세기, 그리고 18세기 수학자들의 업적은 종교적 진리를 얻으려는 방편이었다. (...) 수학 지식은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우주의 구조에 관한 진리로서 성서 구절만큼이나 성스러운 것이었다.
그리스 저작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여러 그리스 학자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태양은 고정되어 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동시에 축을 중심으로 자전한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을 접했다.
그[케플러]는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화롭게 설계되었다고 믿었다. 이 음악은 하모니를 이루는데 실제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행성 운동에 관한 여러 사실들을 각기 음표로 전환했을 때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는 신앙심이 매우 깊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 한 가지를 부정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며 하느님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존재라는 교리이다. 반면에 태양 중심설은 우주의 중심에 태양을 놓음으로써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교회의 교리에 치명타를 안겨 주었다. 인간은 차가운 우주를 목적 없이 방랑하는 무리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축복 속에 태어나 영광된 삶을 살다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존재로 볼 수 없어졌다. 더더욱 하느님의 인도와 보살핌을 받는 존재라고 보기 어려웠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는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에 중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면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교회의 주장을 공격했다.
“제가 판단하는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고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며 당신의 뜻을 바꾸시지 않는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세우신 법칙 역시 영원한 법칙이며 불변하는 법칙입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하느님이 세계의 작동에 끊임없이 관여한다는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물체의 기본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는 속성은 형태, 연장성, 시간 및 공간 안에서의 운동이며, 이 속성들은 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형태는 연장성으로 환원되므로 데카르트는 “연장성과 운동이 주어지면 나는 거기에서 우주를 구성해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데카르트는 모든 물리적 현상들은 분자들의 물리적 작용이 낳은 결과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분자를 운동하게 하는 힘 역시 불변하는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갈릴레오는 수학 교수였고 궁정 수학자였지만 그의 주된 업적은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혁신적으로 바꾼 일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물리학적 설명을 포기한 대신에 수학적 기술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는 우리가 찾아야 할 지식은 현상의 기술에 머물러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새로운 두 과학}에서 “낙하하는 물체에 가속도가 생기는 원인이 연구의 필수적 부분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단지 운동의 성질만을 기술하겠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과학적 탐구는 궁극적 원인을 찾는 형이상학과 분리되어야 하며, 물리적 원인에 대한 사변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과학자의 임무는 원인을 캐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수량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바른 기본 원리를 얻는 방법은 마음이 선호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미 상정해 놓은 생각에 합치되는 자연 법칙을 받아들이는 과학자와 철학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자연이 먼저 인간의 두뇌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인간의 지능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자연 스스로를 구성해 내지는 않았다고 갈릴레오는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결과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중세 학자를 향해 갈릴레오는 지식은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지 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 그런 사람을 갈릴레오는 서책 과학자라고 불렀다.
갈릴레오는 “자연의 올바른 법칙을 찾아내면 [이전의] 권위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갈릴레오는 실험에서 잘못된 원리를 이끌어 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잘못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본 원리를 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추론을 통해 얻어 낸 결론도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볼 것을 제안했다.
만일 과학의 기본 원리가 실험에서 나와야 한다면, 왜 수학의 공리는 그렇지 않은가?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갈릴레오의 철학과 과학 방법론은 뉴턴의 성과를 이끌어 낸 선구적 업적이었다. 뉴턴은 바로 갈릴레오가 사망한 해에 태어났다.
26일
그 당시 클레멘티네와 레오는 관습과 문학에 의해 길들여진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열정이나 인격, 운명과 실천을 통해 서로 의지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의 반 이상은 행동이 아니라 논문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견해로, 한편으론 이렇고 다른 편으론 저런 것으로, 그리고 들어서 알게 된, 산더미처럼 쌓인 비인간적인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이 부부의 운명은 거의 대부분 그들 자신이 아니라 공적인 견해에 속한 그 불투명하고 완강한데다 무질서한 생각의 층에 달려 있었고, 그런 생각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채 그것에 끌려다닐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의존성에 비할 때 그 둘의 인간적인 의존성이란 그저 눈곱만한 일부, 또는 엉뚱하게 과대평가된 낙후함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에게도 개인적인 삶이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서로의 성격과 의지에 질문을 던지는 동안, 온갖 가능한 불쾌함으로 뒤덮인 그들의 비현실적인 충돌 사이로 고통스러운 난관이 끼어들었다.
피셀의 집
그는 볼테르의 말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생각을 감추기 위해서만 말을 사용하며, 자신의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만 생각을 사용한다.’
투치 국장은 자기 부서업무에서 한가지 결점을 찾아낸다
옷은 언제나 중요했고 루시언의 관심을 끌었지만, 루시언 프로이드는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이 “저 모피 코트를 입은 사람은 누구야?”라고 묻기보다는 “저 사람은 누구야?”라고 묻기를 바랐다. 루시언은 두 가지 반응이 명백하게 다른 반응이라는 것을 매우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잘 진화해 온 생물일수록 적응력은 낮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등한 생물일수록 보다 긴 진화의 역사 가운데서 보다 널리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세균들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한 적응력을 갖고 있어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살고 있다.
우리가 보통 난방이나 냉방의 신세를 지지 않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온도는 봄이나 가을의 15도에서 25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온천에 사는 호열성 세균들은 50도에서 90도에서 쾌적하게 생활하고 있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태평양의 해저화산 부근에는 120도에서 생육하는 세균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화상을 입고 세포의 단백질이 열에 의해 변성해 버릴 온도이다. (...) 세균의 무리에는 또 호냉성인 것도 있다. 그들은 전적으로 북극이나 남극에 살며 또는 냉동식품에 붙어 생활하고 있다. 그중에는 -10도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포화에 가까운 소금물 속에서도 일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호염균이 있다. (...) 여러분은 활유(괄태충)에 소금을 뿌리면 오므라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세포 속보다 외부의 삼투압(염농도)이 높아서 내부의 수분이 바깥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호염균도 마찬가지여서 세포 밖의 삼투압이 높으면 탈수되어 세포가 수축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위축하지도 않고 힘차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세포 속과 바깥이 같은 삼투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깥 액인 나트륨(식염)의 농도와 맞먹을 만한 칼륨 농도를 세포 속에 저장하여 삼투압의 균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염균은 설탕절임에도 강하다.
수천 미터의 심해가 되면 생물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해저에도 세균들은 살고 있다. 호압성 세균이다. 5840미터의 심해 퇴적물로부터 600기압에서 가장 잘 성장하는 세균이 발견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로는 해면 위로 끌어 올렸을 때 기압의 감소 때문에 죽어 버리는 것도 있지만, 태연하게 성장하는 것도 있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극한이라고 할 이상환경 아래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은 모든 경우 세균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원시적인 생물이 생명의 구조를 바꾸기 쉽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스승인 아이작 배로의 영향을 받은 뉴턴은 갈릴레오의 철학에 따라 물리적 가설 대신에 수학적 전제들을 채택함으로써 과학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또 그 결과, 베이컨이 요구했던 수준의 확실성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수학적 전제들을 실험과 관찰에서 얻어 냈다.
뉴턴은 더욱 폭넓은 문제와 씨름했다. 그 문제는 1650년경 과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중요한 화두였다. 지상의 운동에 관한 갈릴레오의 법칙과 천체의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을 연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여러 운동 현상들 모두가 일군의 원리들을 따른다는 생각은 다소 무리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신앙심 깊은 17세기 수학자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하느님이 우주를 설계했고 따라서 모든 자연 현상은 하나의 종합적인 기본 계획을 따라야 한다.
보편 법칙을 찾는 과정에서 뉴턴은 대수학과 기하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무엇보다도 미적분학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런 성과들은 자신의 과학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도우미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뉴턴은 수학 자체는 무의미하고 쓸모없으며 단지 자연 법칙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는 지상의 운동과 천체의 운동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과학적 기본 원리를 찾는 일에 매진했다.
천체 운동에서 뉴턴이 이룬 최대의 업적은 케플러가 오랜 기간 관측과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 낸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이 중력 법칙과 세 가지 운동 법칙(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에서 수학적으로 연역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 더욱이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은 관측 결과와 합치되고 있으므로 케플러 법칙이 중력 법칙으로부터 연역되어 나온다는 사실은 중력 법칙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을 적용하여 그 전까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현상, 즉 조수 현상을 설명했다. 조수 현상은 바닷물에 미치는 달의 인력 및 그보다는 훨씬 미약한 태양의 인력 때문에 생긴다.
뉴턴은 다른 학자들과 함께 혜성의 궤도가 중력의 법칙과 합치된다는 점을 입증했다. 따라서 혜성 역시 역학 법칙을 따르는 태양계의 일원으로 인식되면서 더 이상 돌발적인 사태나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불길한 전조로 보지 않게 되었다.
또 뉴턴은 지구 적도의 불룩한 부분에 작용하는 달과 태양의 인력으로 지구 자전축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2만 6천년의 주기로 원뿔을 그리며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전축의 이러한 주기적 변화로 인해 해마다 춘분과 추분이 미세하게 변화되는데(세차 운동), 1800년 전에 이미 히파르코스가 이 사실을 관측한 바 있다.
끝으로 뉴턴은 근삿값을 이용하여 달의 운동과 관련된 다수의 문제를 해결했다. 예컨대, 달이 움직이는 평면은 지구가 움직이는 평면에 다소 기울어져 있는데, 이 현상은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 사이의 인력으로 설명해 낼 수 있었다.
뉴턴과 그의 뒤를 잇는 과학자들은 행성, 혜성, 달, 바다의 운동과 같은 수많은 중요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그들의 업적은 그 후 200년 동안 ‘세계 체계의 완전한 해명’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모든 연구에서 뉴턴은 물리학적 설명보다는 수학적 기술을 추구해야 한다는 갈릴레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뉴턴에게는 물리학적 설명 대신에 수량적 수학 법칙을 강조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천체 역학에서 중심적 물리 개념이 중력이었고 중력 작용은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 역학적 설명을 고집하던 뉴턴 당대의 사람들은 힘을 두 물체가 서로 접촉하여 밀어 내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중력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 하지만 뉴턴의 놀랄 만한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물리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수학적 기술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인력의 물리적 실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중력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과학적 허구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 법칙을 가지고 여러 사실들을 수학적으로 연역해 낼 수 있기 때문에 핵심적인 물리학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과학이 이루어 놓은 것은 물리학적 이해를 희생하는 대신에 수학적 서술과 수학적 예측을 획득한 것이다.
17세기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이전 학자들이 운동을 설명하면서 가정했던 속성의 다중성을 부인하고 그 대신에 힘을 물질적이고 또 명확하게 관찰되는 것, 즉 무게 또는 물체를 던지는 데 들어가는 힘으로 국한해 놓았다. (...) 수학은 서술할 따름이지 근본 원리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뉴턴 역학과 그 이전 역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수학을 도입했다는 점이 아니다. (...)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수학이 근본적인 개념을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인력이란 이름은 단지 수학적 기호를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에서 볼 수 있듯이 힘은 질량에 가속도를 일으키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힘의 본질 자체는 물리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뉴턴은 구심력이나 원심력의 원리를 몰랐으면서도 그 개념을 사용했던 것이다.
질량이라는 개념도 뉴턴 역학에서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 뉴턴에게 질량의 주된 속성은 그 관성이었다. (...) 즉 아무런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본래 정지해 있던 질량은 그대로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질량은 직선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실, 갈릴레오는 관성 운동은 원운동이라고 믿었다. (...) 관성이라는 개념은 가공의 개념이지 실험으로 얻어 낸 사실은 아니다. 어떤 힘도 가해지지 않은 물체은 이 세상에 없다. 뉴턴의 운동 법칙에 나오는 개념들 가운데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은 오로지 가속도뿐이다. 물체의 가속도는 관측과 측정이 가능하다.
뉴턴의 기념비적 업적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 질서을 제시해 주었다. 우주는 이제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몇 가지 물리학적 원리에 따라 지배된다. (...) 18세기 내내 수학자들은 뉴턴의 생각을 좇았다. 당시 수학자들은 또 당시의 과학자이기도 했다.
뉴턴, 광학:
자연철학의 주요 임무는 가설을 꾸며 내지 않고서 현상에서 논의를 이끌어 내고, 또 결과에서 원인을 연역해 내는 일이다. 원인의 최초의 단계까지 파악해 들어가는데, 이때 얻는 최초의 원인은 분명코 역학적인 것은 아니다.
과학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설계를 드러내야 한다. (...) 뉴턴의 종교적 관심이 그의 수학 연구와 과학 연구를 이끌어 낸 진정한 힘이었다. (...) 젊은 시절부터 뉴턴은 종교 저작을 연구하고 해석했으며, 말년에는 신학 공부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 신비적 힘이나 초자연적 힘을 배제하기는 했지만 당시 과학은 하느님을 향항 일종의 예배 행위였다. (...) 종종 그는 어렵고 지루한 연구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이 세운 우주의 질서를 드러냄으로써 종교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과학 연구은 성서 연구만큼이나 경건한 작업이었다. 우주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하느님의 지혜를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은 모든 사태의 근원이다. 따라서 기적이란 일상적인 우주의 작동에 간혹 개입하는 사태를 가리킨다. 시계 수리공이 시계를 고치듯, 하느님은 때때로 개입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이것이 뉴턴의 생각이었다.
하느님이 우주를 설계했으며 수학과 과학의 역할은 하느님의 설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하게 강화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1646-1716)이다. (...) 참다운 지식은 우리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다. 감각으로부터는 하느님의 존재성이나 모든 직각의 상등성 같은 필연적 진리를 얻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수학의 공리는 내재적 진리이다. 그리고 역학 및 광학과 같은 연역 과학의 기본 원리도 역시 내재적 진리이다.
라이프니츠는 새로운 자연 법칙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업적은 그의 과학철학이었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수학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18세기) 수학 연구가 겨냥한 목표는 더 많은 자연 법칙을 얻는 것, 자연의 설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얻는 것이었다. 오일러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분야가 천문학이었다.
섭동: 행성의 궤도가 다른 천체의 힘에 의해 정상적인 타원을 벗어나는 현상이다. 이론적으로 다른 행성의 힘을 무시하고 타원방정식을 구한 뒤, 섭동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 지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라플라스는 천문학 연구에 전 인생을 바쳤고 그의 수학 연구은 순전히 천문학 응용을 위한 것이었다. (...) 라플라스는 자신의 책에서 어려운 수학 과정을 생략하고 그 자리에 “그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쓰는 일이 많았다. 이 사실은 그가 수학적 세부 내용에는 신경 쓰기를 꺼렸고 그 응용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18세기에 몇 가지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었고 적어도 부분적인 성과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성과 가운데 첫 번째가 음악 소리에 대한 수학적 기술 및 분석이었다. (...) 이 분야는 진동하는 줄의 소리를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다니엘 베르누이, 달랑베르, 오일러 그리고 라그랑주는 각기 이 분야에 업적을 남겼지만 소리의 수학적 분석에서는 날카롭게 대립했다. (...) 18세기 위대한 학자들은, 모든 음악 소리는 기본음이 있고 배음, 즉 주파수가 그 기본음의 정수배인 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현재의 이론을 확립했다. 이 사실은 전화기, 축음기,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녹음 기기나 음성 송신 기기를 만드는 데 기초적 지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18세기에 시작된 수리물리학 분야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유체(액체 및 기체)의 흐름과 유체 속에서의 물체 운동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 이 분야의 기초를 다진 고전은 다니엘 베르누이의 {유체역학}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우연히 인체의 동맥과 정맥에서 혈액의 흐름을 기술하는 데 이 이론이 활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세기 사람들은 완벽한 우주는 낭비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은 최소한의 노력만을 기울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에 따라 일반 원리를 찾고자 했다.
베니스비엔날레 “The Milk of Dreams”의 청년 작가들
1995년생
Simnikiwe Buhlungu
1993년생
Ambra Castagnetti
Andro Eradze
Jadé Fadojutimi
Kudzanai-Violet Hwami
Bronwyn Katz
Tau Lewis
Precious Okoyomon
1991년생
Hannah Levy
1990년생
Jes Fan
Shuang Li
1989년생
Chiara Enzo
Sandra Mujinga
Elle Pérez
1988년생
Giulia Cenci
Mire Lee
Zhenya Machneva
Raphaela Vogel
1987년생
Felipe Baeza
Jamian Juliano-Villani
Carolyn Lazard
Thao Nguyen Phan
P. Staff
1986년생
Noor Abuarafeh
Marguerite Humeau
Prabhakar Pachpute
Sondra Perry
Marianna Simnett
Sable Elyse Smith
1985년생
Elaine Cameron-Weir
Gabriel Chaile
Diego Marcon
Julia Phillips
Joanna Piotrowska
Christina Quarles
Teresa Solar
Müge Yilmaz
Portia Zvavahera
1984년생
LuYang
Akosua Adoma Owusu
Janis Rafa
Dora Budor
1983년생
Noah Davis
Tourmaline
Monira Al Qadiri
Sophia Al-Maria
1982년생
Igshaan Adams
June Crespo
Jana Euler
Alexandra Pirici
Wu Tsang
1981년생
Firelei Báez
Eglė Budvytytė
Saodat Ismailova
Sidsel Meineche Hansen
1980년생
Geumhyung Jeong
Allison Katz
Aki Sasamoto
27일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신앙심이 가장 깊은 사람들도 우주 설계에서 하느님의 역할을 배제하는 결과가 빚어질 연구 결과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 실제로 갈릴레오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경우에는 성서에 관한 어떤 논의도 결코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양식을 지닌 천문학자나 과학자가 그러한 논의에 연연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 갈릴레오는 하느님이 수학적으로 세계를 창조했다고 굳게 믿었다. 이 글에서 그가 의도했던 것은 신화적 힘이나 초자연적 힘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뉴턴도 변하지 않는 질서를 믿었지만 세계가 하느님 계획에 맞게 움직여 나가게 하려면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 한 행성의 궤도는 다른 행성의 간섭으로 인해 완벽한 타원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현상이 다른 행성의 인력 때문이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따라서 하느님이 계속 유지되어 가도록 끊임없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태양계의 안정성은 곧 깨어져 버릴 것이라고 여겼다.
하느님이 자연을 수학적으로 설계했다는 믿음은 바로 수학자들의 연구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인간 이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바로 그 증거는 수학자들의 성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다. (...) 종교적 신념의 근원에 이성을 적용하자 많은 전통 신조들은 그 뿌리부터 뒤흔들리게 되었다. 정통 교리에서 벗어나 이성적 초자연주의, 이신론, 불가지론, 또 노골적인 무신론 등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이러한 믿음이 약화되자 자연의 수학적 법칙이 왜 반드시 진리인가 하는 문제가 곧 제기되었다. (...) 디드로는 {자연의 해석에 대한 고찰}에서 수학자들은 마치 노름꾼과 같다고 말했다. 노름꾼이나 수학자나 모두 스스로 만들어 놓은 현실과 유리된 규칙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주제는 약속으로 정한 대상으로 현실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흄:
인간 자신은 지각들, 즉 감각 및 관념으로 이루어진 고립된 집합체일 따름이다. 자아는 여러 상이한 지각들의 다발이다. 자기 자신을 인지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지각만을 낳을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실재한다고 추정하는 외부 세계는 한 사람의 지각일 뿐으로, 실제로 그런 대상물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영원하고 객관적인 물질 세계에 관한 과학 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법칙은 단지 감각을 편의에 따라 정리해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인과 관계라는 관념은 과학적 증명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흔하게 접하는 여러 ‘사태들’의 순서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습관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인지된 사건 순서가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렇게 해서 흄은 자연 법칙의 불가피성과 영속성, 그리고 불가침성을 허물어 버렸다.
흄은 공리를 배격하지는 않았지만 공리와 그로부터 연역되는 결과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공리는 물질 세계에 관한 감각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물질 세계의 존재성은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 정리는 공리의 필연적 결과이기는 하지만 공리를 좀 더 번지르르한 모습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에 그친다. 정리는 연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연역되는 명제는 이미 공리 안에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정리란 동어반복이다. 따라서 공리나 정리에는 진리가 담겨 있지 않다.
이 질문은 수학이란 학문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좀 더 폭넓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공간과 시간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칸트의 답이었다. (...) 칸트는 그것을 직관이라 명명했은데, 이러한 직관으로 경험을 파악한다. 우리는 이러한 심적 형식에 따라 경험을 지각하고 조직하고 이해한다. 마치 반죽이 틀에 들어가 모습을 갖추듯, 경험은 이러한 형식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갖춘다. 마음은 들어온 감각적 인상에 형식을 부여하여 이미 짜 맞춰져 있는 패턴으로 분류해 놓는다. (...) 두 점 사이의 최단 경로는 직선이라거나 세 점이 평면을 결정한다거나 하는 진리, 또 유클리드의 공리 등과 같은 원리를 칸트는 선험적 종합 진리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원리는 우리 정신 속에 본래부터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 정신에 내재되어 있는 ‘공간 구조’로 경험을 파악한다는 사실은 곧 경험이 기본 원리 및 정리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 세계에서 우리가 지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질서와 합리성은 우리 정신과 사고의 형식에 의해 세계에 부여된 것이다. (...) 따라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법칙들은 우주 안에 본래 내재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우주가 하느님에 의해 설계된 것도 아니다. 그러한 법칙들은 자신의 감각을 조직화하고 또 합리화하기 위한 인간의 기제이다.
칸트의 철학은 인간 이성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칸트가 이성에 부여한 역할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서 오는 감각은 정신이 조직해 내는 재료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경험은 지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합당한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수학은 정신의 필연적 법칙을 밝혀내는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클뤼겔은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사람들은 평행선 공리를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확실성의 근거를 경험에 두고 있다”라는 주목할 만한 주장을 폈다. 자명함보다는 경험에 의해 공리가 실증된다는 생각을 클뤼겔이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두 사람이 로바체프스키와 (퍼르커시의 아들, 야노시) 보여이이다. 실제로 그들의 업적은 이전에 이미 나왔던 혁신적 아이디어를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완성한 것이었지만 연구 내용을 연역적 방식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출간했기 때문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수학의 중요한 분야, 아니 중요한 결과를 혼자 이루어 낸 예는 없다. 기껏해야 결정적인 단계나 주장 정도만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야 발전을 이룬다는 명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만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유클리드 평행선 공리를 대체하는 공리로부터 전개된 여러 결과물을 가리킨다면 대부분의 공은 마땅히 사케리에게 돌려져야 한다. (...) 만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안이 유클리드 기하학 이외에 다른 기하학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면 그 창안자는 클뤼겔과 람베르트가 될 것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물리 공간의 속성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기하학이 실제의 물리 공간과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가우스의 연구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이 문제는 또 다른 기하학의 탄생을 가져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새로운 기하학으로 인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물리 공간을 올바르게 기술하는 기하학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새로운 기하학을 만들어 낸 사람이 가우스의 제자로 후일 괴팅겐 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된 게오르크 베른하르트 리만이다.
리만은 공간 구조의 문제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살폈다. 먼저 그는 물리 공간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경험으로부터 물리 공간의 성질을 결정하기 전에 우선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어떤 조건이나 사실을 미리 상정하고 있는가? 그는 그런 조건 또는 사실을 공리로 취급하여 그로부터 추가의 다른 속성을 이끌어 낼 계획이었다. 공리와 그로부터 연역되어 나오는 논리적 결과들은 선험적인 진리인 동시에 필연적 진리가 될 터였다. (...) 리만의 목표 중 하나는 유클리드의 공리가 자명한 진리라기보다는 경험적 진리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해석학적 방법(미적분학 밑 미적분학을 확대한 이론)을 채택했다. 왜냐하면 기하학적 증명에서는 공간에 관한 우리의 기존 관념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특정 사실을 가정하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한하지 않은 공간이면서 경계가 없을 수 있다는 리만의 생각은 또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립을 가져왔는데, 이 기하학은 현재 이중타원기하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가우스는 수학에 전혀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이 보인다. (...) “복소함수도 모든 수학 구성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네. 그리고 제시한 정의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에 그 정의가 합당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정해야 좋은지 물어야 하네.”
“공간에 관한 이론은 지식 체계에서 순수 수학(수를 기초로 세워진 수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는 전적으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네. 순수 수학이 담보하고 있는 절대적 확실성을 기하학은 결여하고 있지. 만일 수가 순전히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면 공간은 우리 정신 밖에 존재하는 실체이고 따라서 그 법칙을 완벽하게 기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가우스는 산술의 참됨은 인간 정신에 자명하기 때문에 산술은 진리를 담고 있고 따라서 산술을 기초로 세워진 대수학과 해석학이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칸토어는 무지 보존의 법칙을 언급했다. 잘못된 결론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나면 사람들 생각에서 이를 제거해 내기 어려우며, 또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면 불충분할수록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로바체프스키와 보여이의 연구가 출간되고 3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소수의 수학자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무시했다.
불행히도 수학자들은 하느님을 이미 저버렸고, 그래서 하늘에 계신 신성한 기하학자도 여러 가지 기하학 가운데 어느 것을 사용해 우주를 설계했는지 계시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 큰 충격은 어떤 기하학이 참된 진리인지 또는 참된 기하학이 대체 있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수학자들이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한 공리를 채택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를 자명한 진리로 잘못 생각해 왔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기하학의 참됨과 관련하여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갖는 의미를 점차 수학자들이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 이유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막스 플랑크의 말: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반대자를 설득하여 진리의 빛을 보게끔 하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득세하는 이유는 반대자들이 결국에는 죽게 되고, 이 새로운 진리에 익숙한 새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벡터는 힘, 속도 등과 같이 방향과 크기 모두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물리량의 표시에 사용된다.
그들은 복소수가 평면 위의 벡터를 표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소수를 사용해 벡터의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의 연산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즉 자연수 및 분수가 상업 거래를 기록하는 데 쓰이듯, 복소수는 벡터의 대수로 사용되는 것이다.
새로운 대수의 등장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던 산술과 대수의 참됨에 대해 회의의 눈길을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마치 외국의 생소한 문화 관습을 접하고 나면 자신의 문화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 헬름홀츠는 산술 법칙 가운데 어떤 것이 적용 가능한지 경험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정 상황에서 산술 법칙이 적용 가능한지는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지식이란 하나의 행동양식이며 욕망인 것이지. 근본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욕망인데, 왜냐하면 마시고자 하는 욕망이나 성욕, 권력욕처럼 알아야겠다는 욕망 역시 균형을 잃어버린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지. 연구자가 진리를 추구한다거나 진리가 연구자를 떠받든다는 말은 다 사실이 아니야. 연구자는 진리에서 고통을 느낄 뿐이지. 진실한 것은 진실한 채로 있고, 사건은 연구자와는 상관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니 말이야.
“뭔가 전체적인 것을 얻으려는 노력을 여전히 하고 있다면, 그건 평가받을 만한 것이지.” 발터가 말했다.
“그런 건 이제 없어.” 울리히가 반박했다. “그건 신문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신문은 말할 수 없이 불투명한 것들로 가득차 있거든. 거기에는 하도 많은 일들이 언급돼 있어서, 라이프니츠의 사고능력을 뛰어넘을 정도야. 하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변했다는 사실이야. 이제 더이상 전체적인 세계에 대면하는 전체적인 인간은 없어. 다만 어떤 인간적인 것들이 일반적인 유동매체 속을 떠다닐 뿐이지.”
울리히는 대화에서 발터, 클라리세에게 반발했다
유전자인 DNA로부터 전사된 mRNA로 유전정보가 흘러 간다. 이어서 이 정보에 따라 단백질이 형성되는데, 대개의 경우 이 단백질은 효소이다. 그렇게 되면 이 효소는 화학반응을 통해 특색있는 물질을 생산한다. 세포에서는 이와 같은 효소에 의한 화학 반응의 산물이 매우 많이 모여들어 그것들이 역할을 분담해서 생명의 복잡한 구조를 움직이고 있다. 생물체에 나타나는 단 한 가지 형질이라도 수많은 효소반응, 따라서 많은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한 개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효소의 성질이 바뀌어지거나 또는 효소를 만들지 않게 되거나 하면, 마치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고나 또는 결근을 한 것과 같은 상황이 되므로 당연히 전체 활동에 영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유전자에는 물질을 생산하는 데 작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이 생산공장의 통제를 위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있다. 즉 후자인 유전자는 전자인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세포 또는 몸 전체가 균형 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신체를 만들고 있는 물질은 일반적으로 매우 빠르게 분해되고 또 매우 신속하게 합성되고 있다. 생물은 그 분해와 합성의 균형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분해 쪽이 더 진행되는 사람은 야위고, 합성이 더 많이 진행되는 사람은 뚱뚱해진다. 체중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분해계와 합성계가 평행상태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생물의 몸은 오토메이션화되어 자기조절을 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잘 안 되면 병에 걸리거나 죽음이 찾아 오거나 한다.
아미노산을 합성하는데 필요한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부로부터 아미노산을 주게 되면 그 유전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쉰 채로 있다.
학벌이란 말은 단순히 ‘출신 대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서울대로 대표되는 명문대 졸업자 집단 혹은 이 집단이 사회적 영향력을 독과점하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에는 고시제도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미국 편향적 생각이다. 미국을 제외한 많은 선진국에서 고급 공무원을 시험으로 선발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영국에서 매년 엘리트 공무원 300~500명을 시험을 거쳐 선발하는 속진임용제(Fast Stream), 독일에서 연방정부 부처별로 실시하는 고위직 공무원 선발시험, 프랑스에서 매년 엘리트 공무원 80여 명을 배출하는 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ENA) 입학시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본도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서 2013년 ‘종합직 시험’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한국의 행정고시·외무고시·기술고시에 해당하는 시험을 유지하고 있다.
능력주의, 특히 시험에 의존해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에는 늘 의문이 따른다. 하지만 고시제도와 같은 강력한 능력주의 선발 시스템이 없었다면 한국의 고위공직은 혈연이나 지연으로 얽힌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차지했을 것이다. 고시의 내용과 방식, 즉 구체적인 시험과목이나 문항 유형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고시제도-능력주의 자체를 비판하면 대안을 찾기 어려워진다. 또한 정부의 학벌은 고시제도 자체의 산물이 아니라 고시제도와 대학 서열화가 결합한 산물이다. 따라서 고시제도 때문에 학벌이 형성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오류다.
민간 학벌이 약화된 것은 정부 주도 경제의 종결로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경영진 가운데 이공계 비중이 높아진 것도 학벌 약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공계에서는 학벌주의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서울대 학벌이 약화된 것은 수치로 확인된다. 100대 기업 CEO 가운데 서울대 출신 비율을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절반이 넘었는데 2017년에는 24.6%로 낮아진다. 1000대 기업 CEO 가운데 SKY 출신 비율 또한 2007년 59.7%, 2013년 39.5%, 2019년 29.4%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정기채용은 그전부터 있었는데 왜 ‘스펙’은 2000년대에야 등장했을까?? 1980~1990년대 한국 경제는 고속으로 성장했고 대졸자 수요에 비해 대학 정원은 적었으므로 대학을 졸업하면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이 여러 가지 까다로운 스펙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직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기업은 점차 까다로운 선발 요건을 제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토익 점수를 요구하더니 이후 차츰 요구하는 종목이 늘어났고, 이것들을 누군가가 통칭 ‘스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 기업은 점차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교육·훈련이 생략되는 만큼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정규직 신입사원 1명의 교육·훈련에 투입하는 비용이 2억 원가량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은 상당히 높아서 일본의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을 능가한 지 오래되었다. 교육·훈련 기간 급여액만 해도 상당하다. 게다가 교육·훈련에 운용비가 들고, 부서에 배치된 이후에도 일정 기간 교육·훈련이 이어진다.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면 이 비용이 절감되는 것이다.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일본식 종신고용이 해체되면서 ‘직무 중심 고용’ 구조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채용이 아직 ‘대세’는 아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채용방식을 보면 아직 정기채용이 우세하다. 2020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상황이므로 2019년까지 추세를 보면, 2019년 신입사원 채용 계획에서 대기업의 수시채용 비율은 21.6%이고, 중견기업의 수시채용 비율은 33.3%이다.(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 그런데 2019년 1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앞으로 정기채용을 없애고 100%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7월에는 SK그룹에서 향후 2~3년에 걸쳐 정기채용을 수시채용으로 모두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행권에서는 최초로 하나은행이 2020년부터 신입사원 채용을 수시채용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6월에는 LG그룹이 하반기부터 정기채용을 폐지하고 전면 수시채용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수시채용으로 변화하면 기업이 감당하던 교육·훈련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된다. 하지만 취업준비자로서는 어차피 ‘스펙’을 준비할 때도 그 비용을 본인이 감당했기 때문에 ‘전문성’을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본인이 감당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다만 스펙 전략과 전문성 전략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능력들을 조합해내는 데는 상당한 수준의 자기주도학습능력을 요구한다. 한국에서 자기주도학습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라 자기관리학습이다. 물론 자기관리(self-managed)는 엄마관리나 학원관리보다는 좋지만 이것을 진정한 자기주도(self-directed)와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자기주도학습의 본래 의미는 ‘목표설정-수단선택-실행-평가’의 네 단계를 모두 자기가 주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표가 ‘기말고사나 수능에서 국영수 고득점’이라는 식으로 획일화된 학습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다. ‘목표설정’을 자신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은 본디 성인교육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사춘기 이전 아동은 메타인지능력이 뒤떨어져 ‘자기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잘 모른다. 따라서 자기주도학습이 애초에 어렵다. 자기주도학습 개념을 무리하게 아동에게 적용하려는 시도는 친절하고 재미있게 공부로 이끌어야 할 공교육의 책임을 가리고 문제를 ‘학생 책임’으로 전가하는 효과를 낸다. 더구나 학생들에게 ‘무엇을 배울지’ 선택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자기주도학습능력을 키우는 데 최악이다. 코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명분은 4차 산업혁명이지만, 검정교과서부터 만들어 내려 보내는 이 방식은 1차나 2차 산업혁명에나 걸맞은 것 아닌가?? 한국 교육은 ‘핀란드’, ‘자기주도학습’, ‘4차 산업혁명’ 등을 이미지로만 소비해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꿈을 정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하는 학생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게 된다. 꿈을 빨리 정하려고 조바심내기보다 차라리 기초 역량을 꾸준히 키워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예를 들어 장사를 해보면 알바를 할 때와 상당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비즈니스를 총체적 시야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직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능력(skill)이나 역량(competence)을 갖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코딩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관련된 능력이다. 1990년대 ‘중국어가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대략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 ‘코딩 및 ICT 능력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임과 ‘갈수록 많은 직무(job)들이 코딩 및 ICT 능력을 요구하게 될 것’임을 대략 예측할 수 있다.
사방에서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한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에 초점을 맞춰보면 ‘4차 산업혁명’보다 ‘직무 기반 고용’이 중요한 변화다. 물론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한국의 학부모들이 경쟁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을 것이다. 양극화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적성과 자기주도학습능력을 중시하는 양육 태도가 좀더 설득력을 얻게 되리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28일
슈뢰딩거는 그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 현상은 무생물에 비하면 표면상 너무도 특수하므로, 생명의 세계에는 어떤 “다른 물리(화학) 법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의견은 많은 물리학자와 화학자를 자극하여 이 “다른 법칙”이라는 광맥을 캐내려고 속속 생명과학의 광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캐 봐도 광맥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40년 이상이 지난 현재에도 그것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들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캐내어진 지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것이 새로운 생명과학이라 일컬어지는 분자생물학이라는 학문이다. 어쨌든간에 생명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법칙은 없는 듯하며, 생명 또한 보편적인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의 상식이다.
생물의 집단 가운데는 평상시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별난 종이 여러가지 섞여 있다. 그러다가 이 집단이 새로운 환경에 옮겨지면 그 환경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것만이 부쩍부쩍 성장한다.
일반적으로는, 생물의 집단이 균일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갖가지 변종의 혼합 집단이랄 수 있다. 그러나 이 속에 어떤 능력을 가진 것이 섞여 있는지는 그 능력이 시험될 만한 환경이 주어지기까지는 알 수 없다.
It is only a rectangle of white light. But it is all films. We can never see more within our rectangle, only less.
Our white rectangle is not “nothing at all.” In fact it is, in the end, all we have. That is one of the limits of the art of film.
우리 선입견과 달리 임금이나 소득지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악화된 것이 아니다. 소득 격차가 커지고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보다 훨씬 이전으로 1980년대 후반 내지 1990년대 초반부터다. 이때 시작된 한국사회의 양극화 원인으로 크게 네 가지를 꼽아볼 수 있다.
① 경제의 글로벌화. 특히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진입하면서 전 세계 평균 인건비가 반토막 난 것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Global inequality, 2017)에서 이른바 ‘코끼리 곡선’을 제시하며 지적한 요인이다. 특히 한국은 1980년대 말부터 수도권, 부산, 대구 등지의 수많은 섬유, 신발 등 경공업 업체들이 폐업하거나 중국으로 옮겨갔다. 통계상으로도 1990년대부터 경공업 근로자 비율이 낮아진다. 1980년대 낮아지던 자영업자 비율이 1990년대 들어 다시 높아진 것도 이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② 노조의 분포와 전략. 노조 조직률이 11.8%밖에 안 되는데(2018년 기준) 그나마 그 분포가 매우 불균등하여 임금 지불 여력이 높은 대기업·공기업 위주로 노조가 존재한다. 게다가 독일·스웨덴·일본 등지의 사민주의적 노동운동이 임금 평준화 전략(특히 ‘동일 노동 동일 임금’으로 대표되는 연대임금 전략)을 구사한 데 반해, 한국에서는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임금 극대화 전략을 구사했다. 자연히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해질수록 경영진은 외주화와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 결과적으로 임금 격차가 심해졌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진 시점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③ 기업 간 위계와 갑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에 나타나는 종속적 관계와 불공정 행위(각종 갑질 등)가 심해질수록 대기업·원청업체가 부당한 이익을 흡수해 임금 격차가 심해진다. 흔히 거론되는 ‘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빼앗기)’뿐만 아니라 하청업체가 다른 원청업체에 납품하면 계약을 끊는 ‘독점 거래 요구’ 등 잘 드러나지 않는 불공정 행위가 적지 않다.
④ 일부 기업의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경쟁력.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화학,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대표적 대기업들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경쟁력과 순익을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③)만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기업들은 압도적인 연구개발-상품화-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 또한 양극화를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제이 맥이너니: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의 어떤 참여를 요구하는 것에서 모두 벗어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의 급진적인 학생들과는 달리 그들은 개인의 일에 치중하는 모습이죠. 그들은 사회의 어떤 문제에 따라 일상이나 환경이 뒤집어 지며 요동치는 것을 원치않죠. 그들은 장식용 술 처럼 별탈 없이 흘러가길 원할 뿐입니다.
이렇게 사회의 그룹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의 일본 독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대로 이런 주인공들의 태도가 모든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죠. 그런데 분명한 것은, 무라카미씨 이전의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지루한 탐미주의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뻣뻣한 귀족주의의 다니자키 준이치로, 고통스러운 젊은 남자 미시마 유키오에 둘러쌓여있다가 일종의 휴식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주는 느낌도 듭니다.
하루키: 일본에는 시대를 앞서나가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던 작가가 3명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미시마 유키오, 아베 고보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입니다. 이 3명의 작가들 중 아베 고보를 최고라고 생각하고요, 미시마는 그 반대에 있습니다.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겉에 둘러쌓인 것들을 하나 둘 벗겨내고 난 뒤 일본인의 본성이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모든 부분이 '일본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가 <양을 쫓는 모험>을 쓰기 위해서는 챈들러의 문체를 빌려와야만 했어요. 물론 챈들러의 스타일을 일본어로 변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문화적인 시작점 부터 영어와 일본어는 확연히 다르죠. 그러나 전 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언어를 변환해가는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제 아이디어를 갱신했습니다.
제 동시대 속에서 저는 일본어의 새로운 한 종류를 창조해 내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당신이 새로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내야만 해요.
일본 문학계는 여러 세대간의 다툼이 있습니다. 네, 옛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다툼이겠죠. 그들은 마치 동유럽의 공산국가의 지도자들 같아요. 일본 문학계는 상당히 강한 계급 구조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죠. 당신이 얘기한 것 처럼 밑바닥에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층을 잘 따라가 어느 순간 문학계의 최고봉에 올랐을 때는 다른 작가들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그들 문학계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문학상을 안겨주죠. 그러나 정상에 있는 작가는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그들은 일본 문학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고 한탄했죠. 하지만 당시 일본 문학은 쇠퇴기가 아니라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죠. 이전 세대의 작가들은 매우 폐쇄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각각의 산술는 물질 세계의 특정 현상을 나타내도록 고안되어 있다. (...) 주어진 상황에 보통의 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경험에만 의존하여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술을 자연 현상에 필연적으로 적용되는 진리들의 집합체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학자들로서는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서 진리라고 함은 실제 세계의 법칙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산술과 기하학의 기본 구조를 구성하는 공리는 경험에 의거해 채택되므로 그 구조가 갖는 적용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 적용 가능한가는 오직 경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자명한 진리로부터 출발한 연역적 증명만으로 수학의 참됨을 담보하려던 그리스인들의 시도는 부질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학이 진리의 집합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사려 깊은 수많은 수학자들이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마치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 여러 개의 언어를 쓰게 하여 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하느님이 여러 개의 기하와 여러 개의 대수로 수학자들에게 혼란을 안겨 주려는 듯 보였다.
특정 영역의 경험은 특정한 공리들을 채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리들과 그 공리들의 논리적 귀결은 그 영역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 영역이 확대되면 적용 가능성은 소멸될 수도 있다. 물질 세계의 연구에서 수학은 이론이나 모델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보다 현상을 더 적합하게 기술한다는 사실이 경험이나 실험으로 입증되면 기존 이론은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다.
아인슈타인:
수학 명제들이 현실을 기술하는 한에서는 그 확실성을 담보받지 못한다. 명제들이 확실성을 담보받는 한에서는 그 명제들은 현실을 기술하지 않는다. (...) 그러나 수학, 특히 그중에서도 기하학은 실제 대상물의 속성을 알려는 우리의 욕구에서 생겨났다는 점은 확실하다.
수학자들은 하느님을 저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길은 인간을 받아들이는 길뿐이었다. (...) 수학의 생명을 유지해 주었던 것은 수학 자체가 조제해 낸 강력한 묘약—천체역학, 음향학, 유체역학, 광학, 전자기학, 공학 등에서 이룬 엄청난 성과—과 놀라울 만큼 정밀한 예측 능력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진리를 발견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은 수학에 진리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정치학, 윤리학, 종교학, 경제학 등에서 진리를 얻어 낼 수 있다는 희망 또는 신념이 지금도 사람들 마음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희망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던 지지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수학은 인류가 진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곧 그 증명을 파기하고 말았다. 이런 지적 재앙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이성의 기념비적 승리라고 할 수 있는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사원수이다.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 “인간의 지적 생활이란 거의 전적으로 경험의 근원이 되는 지각 질서를 개념 질서로 바꿔 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개념적 질서가 지각질서를 온전히 담아 내지는 못한다.
에바리스트 갈루아:
수학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 정신은 진리를 그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세네카:
자연은 그 모든 신비를 한 번에 모두 드러내지 않는다.
3월
1일
그리스 시대 대수학 책은 일상 용어로 씌어 있다. 기호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또 과정에 대한 증명도 없었다. 헤론 이후로 방정식으로 귀결되는 문제들은 수수께끼 형태로 씌어 있었다.
그리스 인들은 서로 상이한 두 가지 수학 분야를 후세에 남겨 놓았다. 한쪽에는 다소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연역적이고 조직적인 기하학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경험적인 산술과 그것을 확장하여 얻은 대수학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이 수학적 결과는 명백한 공리에서 연역적 방법으로 얻어 내야 한다고 여겼던 사정을 생각해 볼 때, 논리적 구조를 지니지 않은 독립된 산술과 대수학의 출현은 수학 역사상 가장 큰 이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인도인들은 연역적 방식보다는 산술과 계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로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인도 말로 수학을 가니타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계산 과학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훌륭한 계산 방법이나 풀이 기법을 개발해 낸 인도인들이 증명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법칙이 있었지만 논리적 섬세함은 볼 수 없다. 더욱이 수학 전 분야를 통틀어도 일반적 방법이나 새로운 관점을 얻어 낸 경우는 전혀 없다.
비에트는 자신의 새로운 대수학을 수치 계산에 대비하여 유형 계산이라고 불렀다. 일반적인 2차 방정식 ax2+bx+c=0을 연구하는 것은 곧 모든 2차 방정식을 다루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에 대한 연구는 무한히 많은 수의 특수한 경우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 대수학은 대상물의 종류나 유형을 조작하는 방식이며, 그것이 바로 유형 계산이다. 산술과 계수가 수치로 주어진 방정식을 다루는 것이 바로 수치 계산이다.
사람들은 대수학이 지닌 힘을 17세기까지 깨닫지 못했다. 대수학 분야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사람은 데카르트와 페르마였다. 바로 이들은 해석기하학을 창안해 냈다. 해석기하학의 기본 아이디어는 곡선을 방정식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750년대가 되자 대수학 사용을 꺼림칙하게 여기던 태도가 극복되었다. 이제 대수학은 다 자란 나무가 되어 수많은 가지를 뻗고 있었다. 하지만 뿌리가 없었다.
(17세기) 수학자들이 논리적으로 까다롭게 따지기보다는 쉽게 믿고 또 소박하기까지 했던 점은 수학사의 행운으로 작용했다. 형식화와 논리적 기초 건설에 앞서서 먼저 자유로운 창조 행위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적 창조의 위대한 시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기분이 나쁠 때는 한 사람의 얼굴을 스치듯 보고서도 그 얼굴의 주인공이 항상 싸움을 몰고오는 바로 그 사람임을—아무리 변장을 했다 하더라도—알아차렸다. (...) 우리는 언제나 똑같은 사람과 싸운다. 만약 우리가 바보처럼 집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해보면, 분명히 그는 우리가 열쇠를 쥐고 있는 자물쇠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인생은 겉으로는 마땅히 흘러가야 할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뭔가가 충돌하며 끓어오르고 있다.
모오스브루거는 깊이 생각한다
자연은 함부로 도약하지 않는 것이다. 곧 자연은 건너뛰지 않고 점진적인 이행을 좋아하며 거대한 흐름에서 보더라도 세계를 백치 상태에서 분별력 있는 상태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유지시킨다. 그러나 법학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법학은 말하길 인간은 법을 지킬 수 있든지 아니면 그럴 수 없든지 둘 중의 하나다. 이 상태 이외의 제3의, 혹은 중간의 것은 법학에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영토로 떠나는 소풍
종종 헬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에는 더 어렵게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헬조선의 실체를 오해한 까닭이다. 헬조선은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나빠져서 생긴 말이 아니라 ‘미래에는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과거에 비해 위로 올라갈 사다리가 매우 좁아진 것이다.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소득 상층을 제외하면 결혼율이 뚝 떨어졌고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가 되었다.
사람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탈스펙’과 ‘양극화’라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시그널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명문대 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지고 스펙이 덜 중요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들은 헬조선이라며 아우성이고 출산율은 세계 꼴찌다.
‘탈스펙’과 ‘양극화’라는 두 가지 시그널은 그 원인과 차원이 전혀 다르다. 탈스펙, 즉 학벌 가치가 떨어지고 ‘스펙’에서 ‘전문성’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 25%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사회의 교육 경쟁은 한마디로 ‘출세경쟁’, 즉 ‘더 잘되기 위한’ 경쟁이었다. 취업이 잘되어도 ‘SKY’를 향한 경쟁은 치열했다. 그 이유로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농지개혁 및 경제성장을 통해 자산과 소득이 비교적 고르게 분배되어 경쟁 참여자가 많았다는 것, 그리고 정부의 대학 정책이 안이했던 탓에 ‘대학 서열화가 심했다’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교육 경쟁은 양극화로 변화를 겪는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던 한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극화가 일어난다. 이 때문에 공포에서 멀어지기 위한 경쟁, 즉 ‘공포경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25%가 좋아서라기보다 75%가 공포스럽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쟁이다. 출세를 하면 좋지만 못 해도 어쩔 수 없다 치고, 무엇보다도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기반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커진 것이다.
충분히 집중해, 강렬한 관찰 그 하나로 삶을 그림에 옮겨놓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발산하는 아우라는 그들의 육신만큼이나 중요한 그들의 일부다. (...) 그들이 공간 속에서 만들어내는 인상은 그들의 색채나 냄새와 마찬가지로 그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두 명의 각각 다른 인물이 공간 속에서 만들어내는 인상은 촛불과 전구의 인상만큼이나 다를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겼음에도 어떻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그린다네.
2일
누구나 어떤 방향으로든 우선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시작은 항상 불완전하며 또 실패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다. 꼭꼭 숨겨져 있어 모든 길을 다 가 본 후에야 최선의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진리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반드시 잘못된 길로 들어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오류를 경험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운동에서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땅으로 떨어지는 물체, 총에서 발사된 발사체,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등의 속도는 끊임없이 변한다.
라이프니츠는 이론의 궁극적 정당성은 그 효율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과정 또는 연산 규칙으로서의 가치를 강조했다. 만약에 연산 규칙을 분명하게 정해 놓는다면, 그리고 이 규칙들을 적절히 적용한다면 그 개념이 다소 모호하다고 해도 합리적이고 올바른 결과를 얻게 된다고 확신했다. 그는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넓은 시야로 사고하는 사상가였다. 새로운 개념이 지니는 의의를 멀리까지 내다보았으며, 새로운 과학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주저 없이 선언했다.
버클리: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까다로운 수학자들이 과연 자신들의 학문에서도 그런 엄밀함을 유지하는가? 그들 역시 권위에 굴복해 따져 보지도 않고 받아들이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덮어 놓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에게는 과연 미몽이 없으며 자가당착과 모순은 없는가?
거의 모든 18세기 수학자들이 미적분학의 기초를 확립하고자 노력했거나 최소한 그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고, 또 한두 사람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까다로운 문제들은 무시되고나 간과되었다. 매우 큰 수와 무한한 수 사이의 구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볼테르는 미적분학을 두고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도 없으면서도 그것을 셈하고 측정하는 기법”이라고 했다.
18세기 사상가들의 논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별난 점 가운데 하나는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들먹인다는 사실이다. 수학 영역 밖에 존재하는 진리들이 있고 이 진리들을 언제든지 끄집어 내어 자신들의 연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런 진리가 어떤 것들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형이상학에 의지했던 것은 이성으로는 입증할 수 없는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람들은 정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을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아마도 인생의 업적이랑 세 편의 시나 논문, 또는 행동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안에서 개인의 성취 능력은 최고에 달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것은 대략 아래와 같이 요약되는데, 말할 것이 없을 때는 침묵하기,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는 필요한 일만 하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팔을 넓게 벌려 창조의 물결에 높이 고양될 만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무덤덤하기이다.
세 가지 논문의 이상 또는 정확한 삶의 유토피아
나는 동물로서 사람들에 정말로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벗은 모습으로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 이유 때문입니다. 한층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드러난 피부를 통해서 그 사람의 기질과 성질, 혈관의 점들까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루시언은 내게 그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사이가 틀어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루시언이 프랜시스 베이컨을 공격한 베이컨의 남자친구를 두들겨 팼는데, 그 일로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졌답니다.
더 이상 도박에 흥미가 없네. 돈을 잃어도 그다지 상처받지 않을 만큼 충분히 돈이 있기 때문이야. 도박의 유일한 관건은 돈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거든. 잃었다는 것이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는 것을 의미할 때 필시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지.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다 걸었지. 경마가 스포츠라는 생각은 내가 보기엔 잘못된 것 같네. 내가 좋아한 것은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이었어.
도박 같은 것은 다시 없어.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그것은 완전히 거덜이 나거나 짜릿한 승리를 가져오거나 둘 중 하나지. (...) 그것은 불길을 뚫고 달려 나가는 것과 비슷해서, 일종의 사리분별을 넘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네.
3일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란다. 자유 의지라는 것은 없단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단다.
세계역사는 낙관적이어서, 열광적으로 한쪽을 지지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그 반대편을 지지한다.
버클리:
오래되고 뿌리 깊은 편견이 원리로 통용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주장들과 명제들은 어떤 검토나 이의제기로부터 면제된다.
19세기 초기에는 어떤 수학 분야도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 실수 체계, 대수학, 유클리드 기하학과 새로운 비유클리드 기하학 그리고 사영기하학 등은 그 논리적 기초가 부적당하거나 아예 아무런 기초저차 없었다. 해석학은 논리적 기초가 결여되어 있는 실수와 대수학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논리적 부실함을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미적분학의 고유 개념들, 즉 도함수, 적분, 무한 급수 등은 명확한 개념을 결여하고 있었다.
18세기에 해석학의 애매모호함이 분명하게 드러나자 일부 수학자들은 이 분야에서 엄밀함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 다른 사람들은 더욱 심하게 마치 손에 닿지 못하는 포도를 두고 신 포도라고 폄하하는 여우처럼 그리스 인들의 엄밀성을 공공연히 비웃었다.
1500년까지 수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은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추상화한 것이었다. (...) 1700년 이후로 자연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서 솟아난 개념들이 수학 영역으로 들어왔고, 또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 개념들이 받아들여졌다. 수학자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날개를 달고 단단한 대지로부터 유리된 위치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바라다보게 된 것이다.
수학사에서 18세기는 영웅 시대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수학자들이 부실한 논리적 무기를 가지고 위대한 과학적 성과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진리를 확보하려는 열망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논리적 기초 없이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논리 면에서 17, 18, 19세기의 연구는 분명히 조악했다. 그러나 동시에 뛰어난 창조성도 보였다.
진보 교육 진영에서는 예전부터 입시(수능과 같은 외부 시험)를 없애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왔다. 심지어 대입에 추첨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례성 기준으로 본다면 이것은 매우 불공정한 주장이다. 서울대에 가면 1년에 4,475만 원어치 서비스를 제공받고 중앙대에 가면 1년에 1,584만 원어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학생 1인당 투입 교육비) 이렇듯 엄청나게 차이 나는 기회를 배분하는데, 가장 비례성과 객관성이 높은 방식(입시)을 폐기하거나 심지어 로또처럼 추첨하자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까??
한국 대입에서 유난히 ‘변별력’이 중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 차이가 크다. 의대에 합격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생애소득과 안정성에 큰 격차가 난다. 따라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합격/불합격 기준을 원하게 된다. ‘결과의 격차’가 큰 만큼 객관적인 변별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대입제도는 반대로 진화했다. 노무현정부의 수능 등급제(2008학년도 대입),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던 수능 절대평가(등급제), 이명박정부가 본격 도입한 입학사정관제와 이를 계승한 학종은 모두 변별력을 무디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인노동자 유입에 반대하는 것을 외국인노동자 ‘혐오’로 환원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는 311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가 넘는다.(2018년 기준) 즉 한국의 하층 노동시장에서 임금은 최저임금제가 아니라 수요-공급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에서 노동이 공급되면 임금 상승이 억제되는데, 국내 체류 외국인은 최근 10년간 2배가량 급증했고 취업비자 체류자로 한정해도 10년간 2배 가까이 늘었다.(체류 외국인 2008년 115만8,000명, 2018년 236만7,000명. 취업비자 체류자 2008년 57만3,000명, 2018년 101만8,000명)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반대를 혐오나 차별로 단정하는 것은 물질적 갈등을 도덕적 문제로 환원하는 그릇된 태도다.
기성세대의 진보 지식인들은 지금의 교육 경쟁을 전통적인 출세경쟁으로 간주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최근 청년층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출세경쟁’만이 아니라 ‘공포경쟁’을 이해해야 한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평등했던 한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양극화가 진행되었고, 중소기업-비정규직에 취업하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졌다.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의 이면에는 공포로부터 멀어지고픈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서 가장 부유한 곳은 대치동이 아니라 압구정동·청담동 지역이다. 대치동이 테헤란로 남쪽에 있어 ‘테남’으로 불리는 반면, 압구정동·청담동은 테헤란로 북쪽에 위치해 ‘테북’이라고 불린다. 테북과 테남, 압구정동과 대치동은 애초 원주민 구성부터 차이가 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1976년 첫 입주 때부터 고급 아파트였다. 당시 현대그룹에서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에게 특혜 분양을 했다가 적발되어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만큼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소유욕을 자극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반면 1979년 입주를 시작한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교통도 불편했고 주변에 비포장도로도 있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묘사된 시절이 바로 이때다.
대치동 초기 입주민들은 부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한국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부와 사회적 지위를 높여가던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1980년대 서초동에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서고 주요 대학들과 대치동을 잇는 지하철 2·3호선이 개통됨에 따라 법조인과 대학교수 등 전문직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 압구정동은 윗세대부터 부자인 집안과 사업가 비율이 높은 많은 반면, 대치동 일대는 당대에 성공한 자수성가형 전문직 비율이 높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이로 압구정동 부모와 대치동 부모의 교육관은 처음부터 상당히 달랐다. 압구정동 학부모들도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지만 대치동만큼 경쟁의식이 높지는 않다. 부의 규모가 크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력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진다. 상속을 통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원 쇼핑’은 압구정동에서는 드문 일로, 학원들의 평판을 확인하고 한두 번 상담하고 나서 바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압구정동·청담동은 해외유학 비율이 높은데, 이것은 풍족한 자산과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liberal) 양육관의 산물이다.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들의 자산과 소득은 대한민국 평균보다는 훨씬 높지만, 상속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물려주기는 어려운 규모다. 이런 대치동 학부모들은 본인의 성공 도식, 즉 ‘공부를 통한 성공’을 자녀가 밟아가도록 한다.
서구 역사를 살펴보면 교육에 가장 힘쓴 계층은 귀족이 아니라 중간계급이었다. 중간계급(middle class)이라는 말은 지금은 소득 중간층(중산층)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원래는 귀족과 하층민의 중간에(middle) 있는 계층으로서 의사, 변호사, 회계사, 튜터 등 주로 전문적인 지적 노동을 해준 대가(fee)를 수입원으로 삼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근대 초까지 농민·노동자 등 하층민은 교육을 아예 받을 수 없었고, 귀족은 교육을 받긴 했지만 탁월할 필요는 없었고 ‘아마추어’로 족했다.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지적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들, 이런 근대 유럽적 의미의 ‘중간계급’이 현대 한국에 유난히 많이 모인 곳이 대치동이다.
1994학년도부터 대입학력고사가 대입수학능력평가(수능)로 바뀜과 동시에 1994~1996학년도 3년간 ‘수능+내신+본고사’라는 복잡한 대입제도가 시행되면서 사교육이 부쩍 성장했다.
2000년 메가스터디가 설립된 이후 대입 사교육 시장의 무게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변화는 사교육업계 전체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 강의에 대응하기 위해 대치동 오프라인 학원들은 다음의 두 가지 전략을 구사했고, 이것이 전국에 확산되었다.
인터넷 강의에 대한 오프라인 학원의 첫 번째 대응은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강의의 질’을 기준으로 보면 오프라인 학원이 온라인 스타강사의 강의 능력을 당해내기 어렵다. 하지만 오프라인 학원은 숙제를 내주고 세심하게 관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약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특히 내신성적이 중시되면 오프라인 학원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인터넷 강의로는 내신을 대비하는 사교육 상품을 최적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별로 서로 다른 교과서, 시험 범위, 출제경향 등에 최적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관리하는 데는 아무래도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학원이 유리하다.
인터넷 강의에 대한 오프라인 학원의 두 번째 대응은 저학년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강의는 아무래도 고3 수험생 위주였다. 수험생 시장이 인터넷 강의에 잠식되자 오프라인 학원들은 그 영역을 중학생·초등학생으로 적극 확장했다. 이를 통해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부모와 사교육에 의해 관리되어 자란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대치동의 전국화는 상향식으로도 이뤄지는데 이것이 곧 ‘대전족’, 즉 ‘대치동 전세족’ 현상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도중에 대치동에 전세로 진입해서 막내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 빠져나가는 것이다. 대략 2000년 전후부터 시작된 대전족 현상의 결과 대치동 지역의 초등학교들은 1학년 학생 수보다 6학년 학생 수가 훨씬 많고 심한 경우 2배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은마아파트의 전세 비율은 70%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고 대치동에 인접한 도곡동 타워팰리스도 전세 비율이 절반 정도에 달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치동은 너무 특수하고 극단적인 지역이며 따라서 한국의 교육을 바라볼 때 대치동에 눈높이를 맞추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대치동을 단순히 ‘예외적 지역’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국에서 가장 강한 교육열과 경제력을 겸비한 가족들이 대치동으로 모여들고, 대치동에서 시작된 트렌드는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된다.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장차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미래 세대가 자라난다. 따라서 좋든 싫든 대치동의 상황과 트렌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보와 보수는 사교육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진보는 사교육의 원인이 ‘경쟁’이라고 보고, 경쟁을 유발하는 서열화와 학벌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사교육의 원인이 ‘공교육 부실’이라고 보고, 대안으로 공교육 강화 또는 내실화를 제시한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맞는 얘기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경쟁적 사교육’과 공교육 부실로 인한 ‘보완적 사교육’이 모두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자녀 교육은 엄마 책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30~40대 여성들은 공교육 부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를 잘 모르는 50~60대 남성들이 교육부와 교육청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공기가 바뀌게 되면 몸의 조성도 바뀌게 마련이죠. 다만 그 변화에 의해 어떤 작품이 실제로 쓰여질까에 대해서는 써보지 않고서는 모른다고 생각해요. 이럴 때, 작가로서의 대처법은 2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런 변화의 그 자체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이번의 경우라면, 코로나로 인해 바뀐 무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써나가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일단 일어난 일을 의식 속에 가라앉히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보고 정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시간도 꽤 걸리고 어떤 식으로 발현되게 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죠.
어느 쪽의 방법이든 저에겐 소중합니다만, 조금 더 선호하는 방법은 후자입니다. 의식적으로 이렇게 바꾸어 보자라고 하는 것 보다는, 무의식 즉 의식의 밑바닥으로 부터 서서히 움직여 나타나게 하는 것에 더 흥미가 있답니다.
4일
정신의학은 큰 기쁨으로 고무되는 것을 경조성 장애라고 부르며—그 말은 마치 즐거운 고통이랑 말처럼 들린다—모든 극단적인 상태들, 가령 순결이나 육욕, 꼼꼼함이나 부주의함, 잔인함이나 연민을 모두 질병으로 의심한다. 오로지 그 극단적인 양극의 중간에 있어야만 건강한 삶이라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정신의학의 목표가 사실은 그 목표의 과장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이런 인식 덕분에 우리는 도덕적 규범이 더이상 정적인 명령이 아니라 매순간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동적인 균형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점점 더 알아채기 어려워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획득한 반복의 습관을 인간의 특성 탓으로 돌리고, 반대로 그 특성은 반복 탓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내부와 외부 사이의 상호작용을 깨달았고, 그것은 정확히 비인간적인 요소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는데, 그 요소들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면모들, 행위의 간단한 패턴들, 마치 둥지를 짓는 새처럼 여러 물질에서 본능적으로 자아를 건축하는 기술을 이용한 자아건축 본능 같은 새로운 힌트들을 던져주었다. 우리는 이미 특정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마치 급류를 조절하듯 여러 종류의 병적인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자를 제때에 대천사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사회적 책임감이 모자란 결과 아니면 일을 다소 서투르게 오래 끈 결과밖에 안 된다.
철학자들은 명령할 군대가 없는 폭군들이어서, 세계를 하나의 체계 속에 가둠으로써 자신들에게 복종시킨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폭군의 시대에 위대한 철학자가 나왔고, 진보적인 문명과 민주주의의 시대엔 뛰어난 철학자가 나오지 못했을—적어도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을 들어보면 그 실망감을 알 수 있는데—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엄청나게 많은 철학이 조각난 상태로 존재하여 구멍가게만이 세계관 없이 뭔가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그런 반면 그야말로 큰 규모의 철학에 대해서 사람들은 뚜렷한 불신을 드러낸다. 그런 철학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며 울리히조차도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영감을 받지 못한 자의 논리는 영감받은 자의 가르침을 부스러뜨려서 가루나 모순, 엉터리로 만들어버리지만 우리에겐 그런 가르침이 연약하다거나 실행 불가능하다고 여길 권리는 없는데, 그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곳에서 코끼리가 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연약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과학적인 태도는 원래부터 미학적인 것이기보다는 신앙적인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적 태도가 ‘신’을 깨닫는 일이라 전제돼 있을 때만 신은 모습을 드러내고 과학은 그 모습에 무조건 무릎을 꿇는다. 반면, 신의 현현 앞에 선 탐미주의자들은 시의 재능이 그리 독창적이지 않고, 신의 세계관 역시 정말 신이 선사한 재능이라고 하기엔 지적으로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지구는 물론이지만, 특히 울리히가 에세이즘의 유토피아에 경의를 표한다
달랑베르, 백과전서 중 극한 개념:
어느 한 양이 다른 양의 극한이라 함은 전자가 후자를 넘어서지는 못하더라도 임의로 작은 양을 택했을 때 그보다 더 가까이 전자가 후자에 근접할 수 있을 경우를 말한다. 극한 이론은 미분학의 참된 형이상학의 기초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코시는 엄밀성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자신은 그에 구애받지 않았다. 엄밀성 확립을 목표로 한 책을 세 권(1821, 1823, 1829년)이나 썼지만, 엄밀성을 무시하는 연구 논문을 계속해서 써 나갔다. (...) 해석학의 엄밀화에 기여한 수많은 업적들은 코시의 연구 성과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주된 공은 또 다른 위대한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1815-1897)에게 있다. 그의 작업으로 해석학 기초의 엄밀화 작업은 완료되었다. (...) 바이어슈트라스의 성과 덕택에 해석학은 물리적 운동, 직관적 이해, 그리고 당시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던 기하학적 개념 등에 의존했으나 이러한 의존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떤 점에서 바이어슈트라스의 예가 늦은 시기에 나온 것이 미적분학의 발전에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905년 에밀 피카르가 말했듯이, “연속 함수가 반드시 도함수를 갖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만약에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알았더라면 미분학은 절대 태어나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엄밀한 사고는 창조 행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애초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직선은 보통의 뜻을 지닌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의도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대상에 적용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자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 (...) 그것은 공리적 전개에서 무정의 술어가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일러 모델이라고 부른다. 정리하자면, 한 가지 물리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만든 분야가 완전히 다른 물리적 상황이나 수학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논리 법칙을 확장하여 모든 사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추론의 보편 과학, 즉 추론의 보편적 계산법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들은 대수학처럼 기호를 사용하여 추론 법칙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적용하려는 생각을 해냈다.
보편 논리학을 구성하려는 라이프니츠의 계획은 데카르트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보편 논리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주요 요소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째는 보편 언어가 있어야 한다. 즉 일부 또는 대부분이 기호로 이루어진 보편적 과학 언어로서 추론을 통해 도출되는 모든 진리에 적용되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추론의 논리적 형태를 집대성한 추론 계산학이 있어야 한다. 이를 이용해 기본 원리에서 모든 가능한 연역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합성법이다. 기본 개념들의 집합체로 다른 모든 개념들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하며, 사고의 알파벳이 되어 단순 관념 각각에 기호를 부여하고, 또 이러한 기호들을 결합하고 연산함으로써 더욱더 복잡한 개념들을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일
소위 식자들에게 이제 민족과 민족주의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국가가 주입해 공동체 구성원들을 광신에 젖게 만들고, 민족의 이름 아래 다양성을 말살하고 타자를 배척하게 하는 통치의 도구이자 적극적으로 배격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로 취급받게 되었다. 민족과 민족주의를 여러 현란한 개념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신은 그런 허구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쿨하다는 것’을 한 번쯤은 피력하는 것은, 조금 과장하자면 한때 글 쓰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통과의례나 다름없었다. 이런 논의와는 거리가 있는 대중 차원에서도 민족과 민족주의는 2010년대의 어느 순간 급속도로 인기를 상실하며 ‘국뽕’이라는 조롱을 받기 시작했다.
“누구나 원래부터 총체적인 삶을 고민하는 법이지.”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더 정확히 고민하면 할수록 그 범위는 점점 좁아지거든.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그는 두 다스 정도의 사람을 빼고는 어떤 특정한 사방 1밀리미터를 세계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겠지. 누군가 그의 일에 대해 안다고 끼어든다면 바보가 될 거야. 하지만 그 자리에서 1밀리미터만 벗어나면 헛소리를 할 게 분명하니까 그 역시 함부로 자리를 뜨지는 못하지.”
보나데아가 비전을 품는다
삶은 신비로 가득 차 있죠. 모든 이성을 꼼짝 못하게 할 어떤 것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아른하임과 디오티마의 대화에서
만일 p와 q가 명제이고 p가 참일 때 “p이면 q이다”라는 함의는 q가 참임을 뜻한다. 하지만 실질 함의에서는 p가 거짓이면 q가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p이면 q이다”라는 함의는 참이다. 오직 p가 참이고 q가 거짓일 때만 함의는 거짓이 된다. 이러한 함의의 의미는 일상적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 “해럴드가 오늘 급여를 받으면 그는 식료품을 구입할 것이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여기서 p는 “해럴드가 오늘 급여를 받는다”이고, q는 “해럴드는 식료품을 구입할 것이다”이다. 그런데 오늘 급여를 받지 못해도 식료품을 살 가능성은 있다. 따라서 p가 거짓이고 q가 참임 경우도 옳은 함의로 포함시켜야 한다.
기호논리학을 사용하여 수학의 엄밀성을 높이고자 했던 또 다른 중요 인물이 페아노였다. 데데킨트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기존의 엄밀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논리적 기초를 개선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기호논리학을 논리학 원리뿐만 아니라 수학 공리를 표현하고 정리를 연역하는 데에도 적용했다. 그는 기호논리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기호로 표현된 공리를 다루었다. 그는 직관을 버려야만 한다고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직관을 버리려면 기호를 사용하여 수학에 언어적 의미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호를 사용하면 일상 언어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에 얽매일 위험성이 제거된다.
연역 체계에는 반드시 무정의 술어가 포함되어 있고, 또 공리를 만족하는 한, 무정의 술어를 여하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학을 새로운 수준의 추상화 단계로 진입시켰다. 이 점을 일찍이 그라스만이 인식했다. 그는 {선형 확장 이론}에서 기하학은 물리 공간 연구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하학은 물리 공간에 응용할 수 있는 순수 수학 이론이지만 반드시 그런 해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수학의 무모순성 문제는 그리스 시대에도 이미 다루어졌다. 그런데 왜 19세기 후반에 그 문제가 전면으로 떠오른 것일까?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수학이 인간의 창조물이며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근사적으로만 기술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데에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주의 내적 구조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리라고 할 수 없었고, 따라서 반드시 무모순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의 공리화 운동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실제 세계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새로운 공리적 구조와 엄밀화로 거둔 성과는 수학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증해 주는 것뿐이었다. 실은, 공리는 상이한 정리가 아니라 기존 정리들을 내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 정리들이 전반적으로 올바른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학이 논리가 아니라 건전한 직관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했다. 자크 살로몽 아다마르가 지적했듯이, 엄밀성은 직관이 정복해 놓은 것을 사후 승인할 따름이다. 또 헤르만 바일이 말했듯이, 논리란 자신의 아이디어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수학자들의 개인 위생법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떼고 오는 학생들이 많다면,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합리적 태도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 대안은 한글 읽기 교육과정을 누리과정(어린이집-유치원)에 배치하는 것이다.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므로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겠지만,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다. 두 번째 대안은 ‘한글 읽기를 1학년 때 충실히 가르칠 테니 선행학습할 필요가 없다’고 널리 공지하고, 초등학교 1학년에서 한글 읽기를 4주가 아니라 이를테면 4개월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공교육은 이런 합리적 대안은 외면하고 한글 읽기에 4주만 할애하며 겉핥기로 넘어가는 ‘이중 플레이’를 해왔다.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수십 년간 이러한 이중 플레이에 적응했고 ‘신기한 한글나라’와 같은 사교육이 돈을 벌어왔다. 한글을 떼지 않은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가는 교사에게 구박당한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모국어 문자 해독능력을 부모 책임으로 넘기는 나라. 이것이 한국 공교육의 현주소다. 나는 2010년 무렵부터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국어 문자 읽기 교육을 공교육이 책임지지 않는 나라일 것이다”라고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모든 걱정과 아픔 아래에는 낙담한 영혼이 있다. 인간적인 걱정과 아픔을 교묘히 피하고 자신의 권태마저 비켜갈 수 있는 이들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은 이들에게는, 어느 순간 의식 속에서 갑옷 전체가 갑자기 무거운 짐이 되고 인생은 전도된걱정과 잃어버린 아픔이 되는 일이 별로 놀랍지 않다.
산다는 것은 물질의 형이상학적 실수 같고, 무기력이 저지르는 실수 같다. 나는 하루가 어떤 날인지, 나의 관심을 돌릴 만한 무엇이 그 안에 있는지 보려 들지 않는다.
미래는 모든 것의 가능성이라서 부담스럽고,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라 부담스럽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없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너무나 자주, 아주 철저히, 내가 원했던 바와는 정반대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내가, 내일의 인생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테고,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생길 테고, 외부에서 시작된 어떤 일들이 내 의지를 통해 일어날 것이다. 이외에 무엇을 추측할 수 있단말인가?
인생이란 우리가 인생에 대해 품는 생각이다. 자신이 소유한 경작지가 전부라고 여기는 농부에게 그 땅은 제국이다. 자신이 소유한 제국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황제에게 그 제국은 한 조각의 땅에 불과하다. 가난한 자는 제국을 소유하고, 제왕은 땅 한 쪽을 갖는다. 우리가 정말로 가진 것은 우리의 감각뿐이다. 그러니 감각이 포착한 대상 안이 아니라 감각의 내면에 우리 삶의 현실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지적인 사상이 일반적으로 허용되려면 어느 정도의 어리석음이 섞여들어가야 한다. 집단적인 사고는 집단적이기에 어리석다. 한 사상이 집단적인 사고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려면 통행세를 내듯 원래 있던 지성의 대부분을 밖에 두고 가야 한다.
젊은 시절 우리에게는, 본래 타고난 꽤 훌륭한 지성과 경험 부족에서 오는 어리석음으로 수준이 좀 떨어지는 지성, 이렇게 두 개의 지성이 공존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두 지성이 합쳐진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항상 실수를 한다.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합쳐지지 않은 두 지성 때문에 그렇다.
6일
진핵세포는 원핵세포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세포의 구조나 그 구조의 기능이 원핵과 진핵세포 사이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는 서서히 이루어졌고, 그 중간 단계의 생물이 오늘날에도 모조리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니므로 겉보기로는 불연속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세포 내부의 미묘한 미세구조는 화석으로도 남겨지지 않으므로 진화의 연속적인 흐름에서 생긴 틈새를 메울 수는 없게 마련이다.
진핵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라고 하는, 그 단면이 짚신과 비슷한 소기관이 있다. 이것이 19세기 후반에 들어 광학현미경으로 관찰된 막대모양의 세균과 그 크기와 형태가 흡사하였으므로, 태고적에 세포에 기생하게 된 세균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나왔다. (...)
한편 식물세포의 엽록체도 남조가 기생하다 변형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
이렇게 되면, 진핵세포는 적어도 몇 마리의 미생물이 모여서 모자이크 모양으로 집합체를 이룬 셈이 된다.
진핵세포의 모자이크 집합설은 그림으로 그리기도 쉽고 단순하여 이해하기 쉽지만, 필자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세포의 구조는 끼워맞추기 세공과 같은 이질체의 집합은 결코 아니며, 소기관 사이에는 그 기원에서부터 복잡한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진핵세포의 소기관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과 같은 미묘하고 동적인 관계가 성립될 턱이 없다. 게다가 지금의 설명으로도 알 수 있듯이, 중요한 점에서의 가정이 지나치게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모자이크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1900년이 되기 전에, 이미 수학자들은 더 이상 물리적 사실이 무모순성을 보장해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예전에 유클리드 기하학이 물리 공간의 기하학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정리를 계속 연역해 나가면 나중에는 모순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나 1900년이 되기 전에, 유클리드 기하학은 인간이 만든 20여개의 공리 위에 세워진 논리적 구조에 지나지 않으며 또 모순되는 정리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수학자들은 실제 무한과 잠재 무한을 구별해 왔다. 예를 들어 지구의 나이를 생각해 보자. 만일 지구가 특정 시점에서 생성되었다면 지구 나이는 잠재 무한이다. 즉 어느 시점에서나 그 나이는 유한이지만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연수의 집합도 잠재적으로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만일 100만에서 멈췄다면 그보다 하나 더 큰 수, 둘 더 큰 수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지구가 과거에 항상 존재했다면 지구 나이는 실제 무한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수 집합을 하나의 총체적 존재로 파악하면 자연수 집합은 실제 무한이다.
칸토어는 일대일 대응을 무한 집합에도 적용했다. (...) 각 자연수는 두 배를 하여 짝수에 대응시키고 짝수는 절반을 하여 자연수에 대응시킨다. 따라서 칸토어는 두 집합이 동일한 수의 원소를 갖는다고 결론지었다. 자연수 집합 자체가 그 집합의 일부분과 일대일 대응을 이룬다는 사실을 기성 수학자들은 너무도 불합리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무한 집합에 관한 논의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칸토어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사원수가 실수에 대해서는 성립하지 않는 새로운 법칙을 만족시키듯이 무한 집합은 유한 집합에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법칙을 만족시킨다고 보았다. 사실 칸토어는 무한 집합을 그 집합 자신과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진부분 집합이 존재하는 집합으로 정의했다.
칸토어는 임의의 주어진 집합에 대해 항상 그보다 더 큰 집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주어진 집합의 부분 집합들로 집합을 만들면 그 집합은 본래 집합보다 크다. (...) 예를 들어 네 개의 원소로 된 집합이 있을 때, 한 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부분 집합은 네 개가 있고, 두 개의 원소로 된 부분 집합은 여섯 개, 세 개의 원소로 된 부분 집합은 네 개, 네 개의 원소로 된 부분 집합은 한 개가 있다. 여기에 공집합을 더하면 부분 집합의 개수는 2의 4승이며 이 수는 4보다 크다.
칸토어가 무한 집합을 연구하던 1870년대와 그 후 얼마간의 기간 동안, 이 이론은 지엽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었다. 그가 증명한 삼각 급수에 관한 정리들은 수학 기초론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00년 이전에 이미 칸토어의 집합론은 다른 여러 수학 분야에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또 수학자들은 칸토어와 데데킨트의 집합론이 자연수 이론을 세우고 곡선 및 차원의 개념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심지어 모든 수학 분야의 기초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95년에 칸토어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에 대해 생각했다. 그 집합의 원소 개수는 존재하는 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칸토어는 주어진 집합의 부분 집합으로 이루어진 집합의 초한수가 본래 집합의 초한수보다 크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따라서 최대 초한수보다 더 큰 초한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칸토어는 이 난점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무모순 집합과 모순 집합을 구분했다. 그리고 1899년에 데데킨트에게 보낸 편지에 그 내용을 썼다. 즉 모든 집합의 집합이나 그 원소 개수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칸토어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옹호했다. 그는 자신이 플라톤주의자이며 인간과 독립된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 실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단지 그 이데아만을 상기하면 될 따름이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비판에 맞서 칸토어는 형이상학과 심지어 하느님까지 내세웠다.
집합론이 논란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펠릭스 하우스도르프는 자신의 책 {집합론의 기초}에서 다소 재치 있게 묘사했다. (...) “이 분야에서는 어떤 것도 자명해 보이지 않는다. 참된 명제가 때때로 역설적으로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명제가 실은 그릇된 명제가 되는 분야가 바로 집합론이다.”
수학에 속하지 않는 역설의 예는 다음과 같다.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 이 명제 역시 규칙이며 따라서 예외가 있어야 한다. 즉 예외가 없는 규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는 그 명제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되며 동시에 자신을 부정한다.
괴델은 다소 다른 형태의 모순을 예로 들었다. 1934년 5월 4일에 A라는 사람이 오로지 다음과 같은 문장만을 말하고 입을 닫았다고 하자. “1934년 5월 4일 A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이 문장은 참일 수 없는데, 그날 언급한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이 문장은 거짓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거짓이라면 A가 참인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A는 그날 오직 한 문장만을 말했다.
러셀은 1918년에 이율배반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해 냈는데, 이는 ‘이발사의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마을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면도를 해 주지 않지만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면도를 해 준다. 그 마을에 이발사는 오직 그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만일 자신이 스스로 면도를 하려 한다면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에게는 면도를 해 주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규칙을 깨는 게 된다. 그러나 만일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게 면도를 해주겠다고 했으므로 면도를 해야 한다. 이발사는 논리적 곤경에 빠진 것이다.
형용사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로 short와 English처럼 자기 자신에도 적용되는 형용사(즉 short란 단어는 짧고 English란 단어는 영어이다)와, 둘째로 long과 French처럼 자기 자신에는 적용되지 않는 형용사가 있다. (...) 자기 자신이게도 적용되는 형용사를 재귀적(autological), 그렇지 않은 형용사를 이종적(heterological)이라고 부르자. 이제 heterological이란 말을 생각해 보자. 만일 heterological이 heterological이라면 그 형용하는 뜻이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므로 autological이 된다. 그리고 heterological이 autological이라면 heterological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heterological이란 말이 autological이라면 의 정의에 따라 자기 자신에 적용되므로 heterological은 heterological이다. 따라서 어떤 가정을 하더라도 모순이 생긴다. 기호로 이 역설을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x가 x가 아니라면 x는 heterological이다.”
모순의 주요 요인은 명확해 보였지만 그런 모순들을 없애기 위해서 수학을 어떻게 건설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또 새로운 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왜 무모순성 문제가 1900년 초에 초미의 현안이 되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수학자들은 모순을 집합론의 역설로 돌렸다. 하지만 집합론에서의 연구 성과 덕분에 그들은 기존 수학에서도 모순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집합이 정렬되어 있다는 것은 그 집합의 부분 집합을 임의로 택해도 그 부분 집합은 첫 번째 원소를 항상 갖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순서가 주어진 자연수들의 집합은 정렬 집합이다. 실수들의 집합은 순서 집합이지만 정렬 집합은 아니다. 왜냐하면 0보다 큰 원소들로 이루어진 부분 집합은 첫 번째 원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다수 있었지만, 수학자들은 공리를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다가 훨씬 뒤에야 그 사용 사실을 깨닫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그 공리의 근거를 마련하는 일로 골머리를 앓고는 한다.
선택 공리와 관련한 핵심 쟁점은 수학자들이 말하는 존재의 의미였다. 존재한다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예컨대 넓이가 무한대인 폐곡면처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유용한 관념적 개념이면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개념을 명확하고 분명한 실례로 구체화하는 것, 그래서 누구나 명확히 지시하거나 최소한 묘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단순한 선택 가능성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20세기 초 수학자들은 여러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미 발견된 모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또 더욱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모순이 생겨나지 않도록 모든 수학 분야의 무모순성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선택 공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수학자들이 상당수 있었고, 따라서 그 공리에 의존한 수많은 정리들이 의문시되었다. 이 정리들을 더욱 수용할 만한 공리를 이용해 증명할 수는 없을까? 즉 선택 공리를 아예 없애 버릴 수는 없을까? 또 연속체 가설은 이론의 발전과 더불어 그 중요성이 더욱더 분명해지면서 옳다고 증명을 하거나 아니면 거짓 명제임을 증명해야 했다.
칸토어 같은 수학자들은 더욱더 많은 개념들을 도입했는데 이 개념들이 삼각형의 개념만큼이나 확실한 실체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개념이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초 위에는 어떤 것도 견고하게 세울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개념들은 과연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대상물에 대응하거나 그것을 관념화해야만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를 다루었고 그를 비롯해 대다수 그리스 인들은 실재하는 대상물에 대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 집합이나 정칠각형을 하나의 총체적 대상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플라톤주의자들은—칸토어도 그중 한 사람이다—관념을 인간과는 무관한 어떤 객관적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인간이 이러한 관념을 발견했거나,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면, 그 관념들을 상기해 냈다고 주장했다.
존재 문제의 다른 측면은 존재 증명의 가치였다. (...) 칸토어는 실수의 개수가 대수적 수(다항 방정식의 근이 되는 수)의 개수보다 많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따라서 초월 무리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존재성을 증명했지만 계산은 고사하고 단 하나의 초월수를 예로 들지 못했다. 보렐, 베르 그리고 르베그 등 일부 20세기 초 수학자들은 존재성만을 증명하는 것은 쓸모없다고 보았다.
공리화는 명확한 정의와 공리를 요구했으며 또 직관적으로 너무도 자명해 직관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도 증명을 요구했다. (...) 크로네커를 필두로 하여 여러 수학자들은 논리적 방식으로는 직관적으로 옳다고 판단되는 것을 더욱 확고하게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수리논리학의 발달로 수학자들은 논리학 원리들을 더 이상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아노와 프레게의 연구 결과로 수학자들은 집합에 속해 있는 원소와 다른 집합에 포함되어 있는 집합을 구별해야 하는 등, 추론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러한 구분은 현학적이며,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었다.
“아주 자명한 이유로 모든 세대는 겉으로 드러난 인생을 확고하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죠. 그래서 단지 몇가지 변화만이 주목받곤 합니다. 그건 편리하긴 하지만 잘못된 일이에요. 세계는 어느 순간에나 어떤 방향으로도 변할 수 있으며, 적어도 어떤 선택을 하든 무방하지요. 그건 세계의 본성에 속하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발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버튼 몇 개만 누르면 그만인 규정된 세계에서 규정된 인간으로 사는 게 아니라 변화를 위해 창조된 세계에서 변화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러니까 마치 구름 속의 물방울처럼 사는 게 독창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모호한 말을 한다고 화가 난 것은 아니죠?”
“화가 나진 않았어요. 하지만 잘 이해할 수는 없군요.”
울리히와 아른하임 사이에서 몇 가지 문제가 생기다
이상하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우연한 환경에서 만들어지거나 일그러진, 자신의 정신이나 존재와는 거의 상관없어 보이는 퇴락한 육체 아니면 스스로에게서 떠나온 휴가 같은 시간을 선사하는, 스포츠로 위장한 육체를 소유했다. 그 시간은 보통 똑똑하고 위대한 세상의 잡지들에서 뽑아낸 외모의 꿈이 연장된 그런 시간이다. 그 모든 그을린 근육질의 테니스 선수, 기수, 레이서들은 세계기록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만그만한 선수들일 뿐이다. 옷을 잘 차려입었거나 홀딱 벗은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백일몽을 꾸는 사람들인데 일반 사람들의 꿈과 다른 것은 그들의 꿈이 머릿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대중의 영혼이 투사되듯이 육체적이고, 극적이며, 이념과 상관없이—기이한 것을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으레 그랬듯이—공적 공간으로 자유롭게 쏟아져나온다는 점이다.
하나의 여담: 인간은 육체와 일치해야만 하는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방랑하는 유목민이다. 나의 내면의 풍요로움은 처음 들판에 나가자마자 달아나버린 양떼처럼 흩어져버렸다.
모든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다. 문제라는 것의 핵심은 해결책이 없다는 데 있다. 사실을 찾아나서는 것은 그 사실이 없음을 의미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은 기독교의 영향이 여러 세기 지속된 결과 발생한 극단적인 형태다.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의 본질과 전개 과정을 설명하자면, 낭만적 사랑이란 영혼과 상상력이 만든 옷이며 우연히 나타난 사람에게 입혀놓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옷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옷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우리가 만든 이상적인 의상이 해어지고, 그 아래로 우리가 옷을 입힌 사람의 진짜 육신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낭만적인 사랑이란 환멸에 이르는 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처음부터 환멸을 인정하고, 이상형을 끊임없이 변경해가며, 영혼의 공작소에서 새 옷을 계속 지어내 그 옷을 입는 사람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바꿔갈 때뿐이다.
7일
정신의 활동력이 왕성한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 나는 한곳에 고정된 삶에 대해 태생적이고 운명적인 애착을 갖고 있다. 새로운 삶과 낯선 장소는 질색이다.
일반인들은 대개 전교조가 정치적 투쟁에 열중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에는 다양한 경향과 세력이 섞여 있다. 특히 전교조 내부에 ‘참교육’으로 대표되는 현장실천의 전통을 이어온 흐름이 일종의 비주류로 이어져왔다. 이들은 일상적 활동공간인 학교에서의 제도 및 문화 개선, 수업과 평가방식의 개혁에 일차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경향은 ‘교과별 교사모임’과 ‘작은/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이라는 두 줄기를 형성했다. ‘전국 국어교사모임’, ‘전국 영어교사모임’, ‘전국 역사교사모임’ 등의 교과별 교사모임은 1980년대 전교조 설립 당시 전교조 산하 조직으로 출범했다가 사단법인 형태로 독립해 한국의 대표적 교사연구단체들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전통적인 주입식 수업에서 벗어난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평가 모델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또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 충남 홍동중학교 등의 학교개혁 실험을 계기로 시작된 ‘작은 학교 운동’과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은 한국 공교육 토양에서도 새로운 학교 운영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전교조 교육운동 최고의 역사적 의미는 서구 선진국에서 꽤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교육방식을 한국의 척박한 토양에서 꾸준히 연구·발전시켜왔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초중고 교육을 일본적 방향이 아니라 서구적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셈이다. 비록 이것이 전교조의 의도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혁신학교는 상대적으로 평균소득이 낮은 지역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지정한 경우가 많았다. 즉 지역 특성상 처음부터 평균 학력이 낮았던 것이지, 혁신학교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학력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혁신학교가 학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하려면 혁신학교 지정 ‘이전’에 비해 지정 ‘이후’의 학력 수준이 낮아지거나, 지역 특성이 비슷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를 비교했을 때 혁신학교의 학력 수준이 낮다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여러 연구를 보면 이러한 결론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학력 저하’를 주장하려면 통시적 비교가 필수적인데 공시적 비교만 하고서 ‘학력 저하’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누군가 평생을 걸쳐 애타게 바라던 일이 갑자기 이뤄진다면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가령 갑자기 가톨릭 교도들에게 하나님나라가 찾아오고, 사회주의자들에게 미래국가가 도래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나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요구하는 일에 익숙하지만 그 일이 실현되는 것에는 큰 기대를 품지 않죠.
당신은 아주 위험한 일을 시작한 거예요, 위대한 사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을 때라야 큰 기쁨을 느끼거든요.
우리는 과도하게 현재를, 현재의 느낌을, 그러니까 여기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죠. 내 말은, 당신이 나와 함께 이 골짜기에 와 있는 것조차 바구니에 담아놓고 현재라는 마개를 그 위에 씌워놓은 것처럼 본다는 것이죠.
디오티마와 울리히, 이어서
라이프니츠는 이성 진리(또는 필연적 진리)와 사실 진리(또는 경험 진리)를 구별했다. (...) 어떤 명제의 부정 명제를 가정하면 모순이 나올 때 그 명제를 필연적 진리라 하고, 진리이지만 필연적이 아닐 때 경험 진리라고 부른다. 하느님이 존재한다거나 모든 직각은 동일하다거나 하는 명제는 필연적 진리이다. 그러나 내 자신이 존재한다거나 하는 것은 경험 진리이다. 경험 진리는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우주가 다른 식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느님이 무한히 많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서 가장 최고라고 판단한 것을 골라낸 것이다. 수학적 진리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논리학으로부터 도출이 된다. 그리고 논리학의 원리 역시 필연적 진리이며 어떤 경우이든 항상 참이다.
여러 해 동안 러셀은 논리학 원리와 수학 지식의 대상물은 인간 정신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단지 인간 정신은 독립적으로 존재라는 그 원리와 대상물을 인지할 따름이라는 주장을 견지했다.
세 개의 공리, 즉 환원 공리, 무한 공리, 선택 공리의 사용이 가진 문제는 모든 수학을 논리학으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다는 논리학파의 기본 주장에 타격을 가했다. 논리학과 수학의 경계선을 어디에 긋는가? 논리학파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학 원리}에서 사용된 논리학은 ‘순수 논리’ 또는 ‘순수화된 논리’라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세 가지 공리를 염두에 두고서,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채택한 논리학의 순수함에 문제를 제기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계획이 수학 전체뿐만 아니라 수학의 주요한 분야 중 어떤 분야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이 공리들이 포함되도록 논리학이란 용어의 의미를 기꺼이 확대하고자 했다.
{수학의 원리} 제2판(1937년)에서 러셀은 더욱 뒤로 후퇴했다. (...) “논리학의 원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위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또 무한 공리와 선택 공리에 대해서는 “이 공리들은 경험적 증거로만 증명되거나 논박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논리학과 수학이 한 몸이라고 주장했다.
논리학파의 입장에 대한 심각한 철학적 비판은, 만일 논리학파의 견해가 옳다면 수학 전체가 순수하게 형식화된 논리적 연역 과학이 되어 모든 정리는 사고 법칙으로부터 도출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어떻게 사고 법칙에서 광범위한 자연 현상, 수의 사용, 공간의 기하학, 음향학, 전자기학, 역학 등이 도출되어 나오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렇게 비판하면서 바일은 무(nothing)에서는 무만 나온다고 말했다.
푸앵카레:
수학의 목적은 오로지 수학 자체의 내부만을 영원히 응시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은 자연을 더듬거리며 만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연과 깊은 접촉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순전히 언어로 표현된 정의를 포기해야 하며 더 이상 공허한 말로 바보짓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논리학파의 계획안에 대한 또 다른 심각한 비판은, 수학을 구성하는 것은 지각적이거나 상상적 직관 경험에서 도출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새로운 개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새로운 지식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수학 원리}에서 모든 개념은 논리적 개념으로 환원될 뿐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 분명코 형식화는 수학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다. 형식화는 쭉정이일 뿐 알맹이가 아니다.
러셀이 20세기 초에 연구를 시작할 때 그는 논리학의 공리가 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1937년판 {수학 원리}에서 그는 이 견해를 버렸다. 그는 논리학의 원리가 선험적 지식이라는 확신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 그리고 수학은 논리학으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에 수학도 선험적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성과는 다른 방면으로도 공헌을 했다. 논리학의 수학화는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온전히 기호만을 사용하여 논리학의 완전한 공리화를 추진해 나갔고, 그 결과로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큰 진보가 이루어졌다.
러셀: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을 원하는 것처럼 나는 확실성을 원했다. 나는 다른 어디에서보다 수학에서 확실성을 발견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스승들이 내게 가르쳐 준 수학 증명들이 오류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수학에서 확실성을 찾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견고한 기초를 지닌 새로운 수학 분야를 세워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20여년 간의 신고를 겪고 난 후에, 수학 지식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수학은 우주의 구조에 내재되어 있는 법칙을 표현해 낸다는 점에서 진리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직관주의자는 인간 마음에 호소함으로써 수학의 참됨을 확보하고자 했다.
파스칼:
“마음은 이성이 지니고 있지 못하는 자체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이성이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선택하는 비효율적이고 왜곡된 방법이다.”
현대 직관주의의 직접적인 선구자는 크로네커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하느님이 정수를 만들었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작품이다.” (...) 그는 정수는 직관적으로 명료하며, 따라서 더 이상의 기초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정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수학의 구성물들은 명료한 의미를 지니는 용어로 건설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크로네커는 정수를 바탕으로 하여 실수 체계를 구성해야 하며, 단지 존재 정리만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수를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그는 무리수가 어느 다항 방정식의 근이고 또 방정식에서 그 근을 계산해 낼 수 있을 경우에만 그 무리수를 수로 받아들였다.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에 혼자 있더라도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통제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의식하고 있고 기억하고 어떤 특정한 존재이고자 한다. 자연스러운 건 상대적이다. 나는 완전히 자연스러운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촬영할 때 작고 세밀한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작고 세밀한 것은 내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 때문에 비교적 자연스러운 배경이 필요하다.
8일
감자와 토마토의 알몸 세포를 융합시켜 트기 세포를 만들었다. (...) 포테토와 토마토의 트기라는 의미에서 이 식물을 포마토라 명명했다. 그런데 지상의 줄기에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지하에는 감자가 주렁주렁 생겼을까? 유감스럽게도 토마토도 달리지 않고 감자도 알이 작은 것이 달렸을 정도로 전혀 실용적이 못 되었다. 이 결과는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을까? 그것은 트기 세포에는 확실히 감자의 유전자와 토마토의 유전자 쌍방이 들어갔지만, 그들 유전자는 서로 간섭한다는 사실이다. 트기 세포 속에서는 감자의 유전자도 토마토의 유전자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계가 먼 세포를 융합하면 여태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어떤 곤란이 생기게 된다.
세포 융합이라는 것은 목적하는 유전자만을 넣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은 유전자도 동시에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그 트기 세포의 유전자 발현은 매우 복잡하다. 이 방면의 깊이 있는 연구는 아직 충분한 수준까지 발전하지 못했으므로 예상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상대하는 유전자 사이에서 어떤 힘겨루기가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
브라우베르는 수학과 언어의 관계를 탐구했다. 수학은 온전히 자율적이고 자족적인 행위이다. 수학은 언어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말은 오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수학적 개념은 언어보다는 인간 마음속에 더 깊이 새겨져 있다. 수학적 직관의 세계는 지각의 세계와 대비된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언어가 속하며, 언어는 일상적 관계의 이해에 사용된다. 언어는 기호와 소리로 인간 마음속에 있는 관념들의 모사를 되살려 낸다. 이러한 차이는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그 행위를 말로 묘사하는 것 사이의 차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수학적 관념은 언어라는 옷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사실은 언어보다 더욱 풍성하다. (...)
더욱 대담한 것은 논리에 대한 논리주의자들의 입장, 특히 논리주의에 반대하는 그들의 입장이다. 논리학은 언어에 속한다. 논리학은 추가의 언어적 맥락을 연역해 낼 수 있게 해 준다. 언어적 맥락은 진리의 소통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언어가 다루는 진리는 직관적으로 파악된 것이 아니며, 진리가 파악되었다는 보증도 언어는 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논리학은 진리를 캐내는 믿을 만한 도구가 못 되며,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진리를 연역해 내지도 못한다. 논리학 원리는 언어에서 후험적으로 관찰된 규칙일 뿐이다. (...) 가장 중요한 수학적 진보는 논리를 손질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 이론 자체에 수정을 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논리학이 수학에 기대고 있는 것이지 수학이 논리학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논리학은 직관적 개념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며 수학은 논리학의 보증이 필요하지 않다.
바일:
브라우베르늬 견해에 따르면, 그리고 역사를 살펴보면 고전 논리학은 유한 집합과 그 부분 집합에 관한 수학에서 추상화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제약을 잊고 사람들은 논리학이 수학보다 상위에 있고 또 그보다 앞선다고 잘못 생각했고, 마침내는 정당성을 확립하지도 않은 채 무한 집합을 다루는 수학에 논리학을 적용했다. 바로 이것이 집합론의 원죄이고 타락이다. 그에 대한 형벌로 이율배반이 생겨났다. 놀라운 점은 그러한 모순들이 나타난 사실이 아니라 뒤늦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배중률의 부정으로 결정 불가 명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무한 집합과 관련해 직관주의자들은 제3의 상태, 즉 증명이 가능하지도 않고 또 반론이 가능하지도 않은 명제가 존재하는 상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직관주의자들이 스스로 내세운 원칙에 따라 재구성하고자 애를 썼던 정리들이 실은 인간의 직관에 의해 제시되거나 보증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종류의 추론, 추측, 특별한 경우로부터의 일반화, 그리고 그 기원을 설명할 수 없는 통찰력 덕분이었다. 따라서 직관주의자들 역시 스스로 내세운 원칙에 따라 증명을 재구성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모든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구성 방식에 의지했을 뿐만 아니라 고전 논리학에까지 의지했던 것이다.
클라인은 소박한 직관은 엄밀하지 못하며 또 정교하게 다듬어진 직관은 순전히 직관이라고만 할 수는 없고 다만 공리에 기초한 논리적 전개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했다.
직관주의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직관주의가 자연에 대한 수학의 응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직관주의는 수학을 지각과 관련짓지 않는다. 브라우베르는 직관주의 수학이 실용 면에서 무익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직관주의의 성과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모순이 도출된다는 점을 보임으로써 존재성을 확립한 수나 함수에 대해서 그 값을 명확히 계산해 내라고 요구한 점이다. 이 수들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어딘가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힐베르트]의 주장 가운데 첫 번째는, 논리학 전개에 수학적 개념이 개입되어 있고 또 기존의 수학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한 공리와 같은 초논리학적인 공리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수학 연구 방식은 논리학과 수학의 개념과 공리를 모두 망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논리학은 연구 대상물이 있어야 하며 그 대상물은 수와 같이 초논리학적인 구체적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논리적 전개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직관 안에 내재해 있다고 여겼다.
형식주의자들에게 수학은 형식 체계들의 모임이다. 각 체계는 수학적 내용과 더불어 각자의 논리학을 세워 놓도 있으며, 각자의 개념과 각자의 공리와 각자의 연역 법칙과 각자의 정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연역 체계의 전개가 수학의 임무이다.(...)
하지만 공리에서 연역된 결과는 역설로부터 안전한가? 수학의 주요 분야에 대한 무모순성 증명은 산술이 무모순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얻어졌기 때문에 후자의 무모순성이 중대한 현안이 되었다.
힐베르트와 그의 제자들인 빌헬름 아커만, 베르나이스 그리고 요한 폰 노이만은 힐베르트의 증명 이론 또는 메타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분야를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이 분야은 모든 형식 체계의 무모순성을 확립하는 방법론을 다룬다. 메타 수학의 기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실례로 유추해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일본어의 효율성을 연구하고자 할 때 일본어로 연구를 하면 일본어가 지니는 제약에 얽매이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분석에 제약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만일 영어가 효율적인 언어라면 일본어 연구에 영어를 사용하면 된다.
힐베르트는 메타 수학에서 어떤 반대도 없는 특수한 논리학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수학의 위대한 이론은 배후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내용물의 참된 표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브라우베르의 비판으로 그런 믿음이 오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수학 이론을 본질적으로 실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의 이상화라고 여겼다. 그러나 특히 19세기에 고전 해석학의 상당 부분은 논리라는 면에서 직관주의자들의 불만을 샀을 뿐만 아니라 직관적 의미 영역에서 훨씬 벗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직관주의자들은 형식화된 수학의 무모순성을 힐베르트가 증명했더라도 형식화된 수학 이론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 수학을 형식화하고 의미를 사상함으로써 수학을 “직관적 결과들의 체계에서 고정된 규칙에 따라 식을 조작하는 놀이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형식주의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메타 수학에서 채택한 원리를 겨냥한다. 이러한 원리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형식주의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판관인 양 원리를 선택했다.
칸토어는 1885년에 순수 수학이 집합론으로 환원되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이 작업은 집합론 접근 방식이 매우 복잡하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화이트헤드와 러셀에 의해 이루어졌다. 결국 수에 관한 수학으로부터 기하학을 포함한 모든 수학 분야가 도출되어 나왔다. 따라서 집합론은 모든 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역설을 피해 보자는 희망은, 집합론의 공리화의 경우에는, 허용 가능한 집합의 유형을 제한하되 해석학의 기초가 될 정도는 되게 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1930년대까지 개별적이고 상이하며 서로 대립되는 네 가지 수학 접근 방식(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 집합론주의)이 생겨났고, 각 이론의 주창자들은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여 왔다. 수학 정리가 올바르게 증명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1930년대까지는 그 증명이 어느 학파의 기준에서 타당하다는 단서를 달아야 했다. 수학의 무모순성은 새로운 방법론을 낳은 주요 문제인데, 인간의 직관이 무모순성을 보증한다는 직관주의의 입장을 제외한다면, 이 무모순성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릭 T. 벨:
경험은 대다수 수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즉 한 세대의 수학자들에게는 확고하고 만족스럽게 보이는 상당 부분의 연구 성과도 다음 세대 수학자들의 면밀한 검토로 쓸모없는 폐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 수학의 기초에 관한 합의된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 현재(1930년대)의 상황을 가감 없이 직시하면 인간의 의의와 관련해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이 드러난다. 즉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보편성이나 일반성 또는 타당성을 최소한이라도 주장하게 하는 추론 가운데 가장 단순한 형태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고, 지금도 역시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혁신학교 반대세력에 대응하지 못한 첫 번째 사정은 기존 혁신학교에 대한 낙인효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력 저하론에 대해 이렇게 해명한다고 가정해보자. “혁신학교들의 평균 학력이 낮은 것은 혁신학교를 주로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지역에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칫 낙인효과를 낼 수 있는 해명이다. 따라서 교육청이나 혁신학교 주도 세력에서 적극적으로 이런 해명을 하기는 곤란했다.
서울시교육청이 혁신학교 반대세력에 대응하지 못한 두 번째 사정은 혁신학교를 대입과 연관짓는 것을 금기시해온 전통 때문이다. 초중고 교육이 대입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거나, 이른바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은 한국 교육계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진보 교육계는 이러한 믿음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혁신학교의 교육을 ‘대입’과 관련해 정당화하는 것을 기피해왔다. 그러니 대입과 관련한 학부모들의 우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학교를 다니면 진짜로 대입에 불리할까?? 고등학교의 경우 혁신학교의 교육은 대체로 학종에는 유리하되 수능에는 불리할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한정한다면 혁신학교의 교육은 학종은 물론이요 장차 수능을 준비하는 데에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 대입학력고사(1982~1983학년도 대입)는 암기 비중이 매우 높았던 반면 수능(1994학년도~)은 낯선 자료를 제시하면서 독해력이나 추론능력을 발휘하도록 요구하는 문항이 많다. 즉 수능은 객관식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역량’을 요구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다양한 탐구활동과 독서 등을 통해 기른 역량이 훗날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데 상당히 요긴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극단까지 산다는 것은 한계에 이르도록 사는 것으로, 여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우월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셋 중에서 자신의 방식을 선택한다. 우선 첫번째 방식은 삶을 극단까지 소유하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와 모든 살아 있는 감각을 경험하는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모든 방식으로 소유한 후에 온갖 피로를 다 합친 피로에 절어 눈감을 수 있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육체와 영혼을 다 바치는 인생을 산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사랑하기에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인생은 분명 우월하고 강한 영혼을 가진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고 ‘모든 것’을 얻어내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따라갈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완전한 포기, 공식적이고 완벽한 단념이다. 그럼으로써 활동과 에너지의 영역에서 온전히 소유할 수 없던 것들을 감성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인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자들처럼부실하고 부적절하고 헛되이 행동하는 것보다는 극도로 행동을 자제하는 편이 훨씬 낫다. 또다른 방식은 완벽한 평형 상태에서 ‘절대적 균형’의 ‘한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극단’에 대한 갈망은 의지와 감정에서 ‘지성’으로 옮겨지고, 개인의 야망은 모든 삶을 살아보거나 느껴보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질서를 바로잡고 삶을 지적인 ‘조화’와 ‘협동’ 안에서 운영하려는 것이 된다.
고대의 항해자들은 인생을 살 필요가 없고 항해만 필요하다고 말했다. 병적인 감성을 지닌 항해자인 우리는 이렇게 말하리라. 인생을 살 필요는 없으며 느낄 필요만 있다.
9일
두 가지 문제가 수학자들의 마음을 괴롭혔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수학의 무모순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 두 번째 문제는 이른바 완비성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한 분야가 완비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 분야의 개념들을 다루는 의미 있는 주장에 대해 항상 참 또는 거짓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공리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기초적인 수준에서 완비성 문제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가설(예를 들면 삼각형의 세 높이가 한 점에서 만난다는 가설)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들을 바탕으로 하여 증명(또는 논박)될 수 있느냐의 여부로 모아진다.
괴델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또 다른 논문을 출간했다. “{수학 원리} 및 관련 체계에서 형식적으로 결정될 수 없는 명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놀라운 결과 두 가지를 담고 있다. 두 결과 가운데 수학계에 더욱 큰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자연수의 산술을 포함할 정도로 큰 수학 체계의 무모순성은 논리주의, 형식주의, 집합론 등 여러 학파에서 채택한 논리학 원리로 확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그와 못지않게 놀라운 것이 이 결과의 따름정리이다. 이 두 번째 결과를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자연수 이론을 포함하는 형식 이론 T가 무모순이면 T는 불완비하다. 이는 의미 있는 수론 명제 S가 있을 경우 S와 S의 부정 모두 그 이론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S가 참이거나 아니면 S의 부정이 참이다. 따라서 수론에는 증명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존재하고, 이 명제는 결정 불가능이 된다. 괴델은 해당되는 공리 체계들 전부를 명확하게 적시해 놓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그의 정리는 러셀-화이트헤드 체계, 체르멜로-프렝켈 체계, 힐베르트의 공리화된 수론, 그리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든 공리 체계에 적용된다. 그의 공리는 무모순성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불완비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괴델이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산술화될 수 있는 수학 공리 체계나 논리학 공리 체계는 수학 모든 분야는 고사하고 한 가지 체계의 진리를 모두 포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공리 체계는 불완비하기 때문이다. 이 체계들에 속하지만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될 수 없는 유의미한 명제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명제들은 비형식 논증으로 참임을 보일 수 있다.
브라우베르가 직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정통 수학에서는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힌 반면에 괴델은 직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수학적 증명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20세기 수학의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절대적 확실성과 타당성인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주장을 펼 수 없게 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모순성이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수학의 내용이 헛소리일지 모른다는 위험성이 상존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순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더욱이 발견된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면 모든 수학은 무의미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두 개의 서로 모순되는 명제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고, 수리논리학자들이 채택한 함의, 즉 실질 함의의 개념에 따라 거짓 명제가 허용될 경우 모든 명제가 함의된다. 따라서 수학자들은 언제 이론 모두가 붕괴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연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배중률의 부정이다. 우리는 명제가 반드시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이라고 믿는다. 현대 기초론 용어를 빌리면, 이는 명제가 속해 있는 체계의 논리학 법칙과 공리들로 증명할 수 있거나 아니면 논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괴델은 일부 명제는 증명 가능하지도 않고 또 증명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부수적 문제들을 야기했다. 웬만큼 복잡한 수학 분야에서는 증명도 안 되고 논박도 안 되는 명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어진 명제가 논박될 가능성이 있는 명제인지 결정하는 방법을 묻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를 결정 문제라고 부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한 번의 단계를 거쳐 명제나 명제들의 모임에 대해 증명 또는 논박 가능성을 결정할 수 있는 효율적인 결정 과정이—어쩌면 컴퓨터 사용과 같은—필요하다.
결정 불가능 명제, 그리고 결정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 이 둘을 구별하기란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결정 불가능 명제는 특정 공리 체계 안에서 진위 결정이 불가능하며, 이런 명제는 중요성을 갖춘 모든 공리 구조에 항상 존재한다. (...) 처치에 따르면 명제의 진위 여부 확정 가능성을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명제는 진위 여부 확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 또는 증명도 불가능하고 또 논박도 불가능한 결정 불가능 명제일 수도 있으나 알려진 결정 불가능 명제의 경우에서 보듯이 명백하지 않다.
코언의 독립성 증명으로 수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출현했던 때만큼이나 심각한 곤경에 빠졌다. 알다시피, 유클리드 평행선 공리가 다른 유클리드 공리들과 독립이라는 사실은 여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코언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선택 공리와 연속체 가설, 그리고 이 공리들의 여러 변형된 형태 사이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 여러 선택지 가운데 무엇을 택하느냐는 가볍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각 경우마다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두 공리 모두 사용하지 않기로 하면 앞서 말했듯이 증명될 수 있는 것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셈이 되며, 그에 따라 기존 수학에서는 기본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내용들이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가게 된다.
두 가지 공리에 대한 코언의 연구는 여러 기초론 학파에 영향을 끼쳤으며, 평행선 공리에 대한 연구가 기하학의 분화를 낳았듯이 특별히 집합론을 기반으로 삼은 수학을 다양한 방향으로 분화시켰다. 이렇게 수학이 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럿 생겨났지만 한 가지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는 전혀 없었다. (...) 선택 공리 및 연속체 가설의 독립성 증명은 건축업자에게 설계를 약간 바꾸면 사무용 빌딩 대신에 성을 지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처럼 수학자들에 다양한 수학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미국 사람들만을 규정해 주는 속성들을 적어 놓았다고 하자. 그런데 적어놓은 속성들을 모두 만족시키지만, 동시에 미국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도 가진 동물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수학적 대상물들을 규정하도록 의도해 놓은 공리 체계는 그런 의도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가 공리 체계는 해당 수학 분야에 속하는 모든 정리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반면에,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공리 체계가 의도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델을 허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공리들은 모델을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학적 실체를 공리 체계 안에 오해의 가능성이 없도록 새겨 넣기란 불가능하다.
의도하지 않은 모델이 생기는 이유는 공리 체계에 무정의 술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공리가 바로 이 무정의 술어들을 간접적으로 정의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리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괴델의 불완비성의 정리는 모든 공리 체계가 불완비하다고 말한다. 즉 결정 불가능 명제가 존재한다. p를 그러한 명제라고 하자. 그러면 p나 p의 부정이나 모두 공리로부터 연역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p는 독립적이다. 따라서 본래의 공리들에 p를 추가하거나 아니면 p의 부정을 추가하여 더 큰 공리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두 개의 공리 체계는 정언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 모델들은 서로 동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불완비성이 비정언성을 함의한다. 그러나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훨씬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정언성을 부정한다. 새로운 공리를 추가하지 않고서도 극단적으로 상이한 모델들이 존재함을 입증했다. 불완비성은 상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상이한 모델들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모델에서 의미를 지닌 명제 가운데 어떤 명제는 결정 불가능이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명제는 두 모델 모두에서 성립하게 된다.
푸앵카레는 수학의 추상성을 지적하면서 수학이란 상이한 것들에 동일한 이름을 붙이는 기예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위대한 사람의 확신이라고 해서 선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와 그 이후 오랫동안 많은 사상가들은 지구가 구형이라는 생각을 맞은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거꾸로 하고 살고 있다는 헛소리라며 배격했다. (...)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의 무한소는 배격되어야 한다는 증명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에 대한 논리적 이론을 세우고자 노력했다.
모순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수학 구조의 무모순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공리적 방식을 받아들여야 할지—받아들인다면 어떤 공리 체계를 채택할 것인지—아니면 비공리적인 직관주의 접근 방식을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떤 합의도 없다. 각자의 공리 체계 위에 세워진 구조들의 집합체로 수학을 파악하는 일반적 견해은 수학이 포괄해야 할 모든 것들을 포괄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고, 또 한편으로는 포괄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포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생각의 불일치는 추론 방식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배중률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논리학 원리가 아니며, 또 배중률의 사용 여부를 떠나 정확한 계산을 허용하지 않는 존재 증명도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따라서 완벽한 추론을 주장하는 일은 이제 포기되어야 한다. 분명히, 다양한 선택지로부터 다양한 수학이 생겨날 것이다.
세상에는 그 하나하나의 부분과 전체의 의미가 다른 것들이 많다. 가령 물은 조금 있을 때와 많을 때에 따라 마시는 음료가 되기도 하고 익사시키는 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독이나 오락, 여가, 피아노 연주, 이데아 같은 것들도 그러하며 과연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의 의미는 그 밀도와 처해진 환경들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그런 것은 없으며 바로 그렇듯 아무 감흥이 없기 때문에 더욱 위대한 스펙터클에 매달리는 히스테릭한 애착을 드러낸다. 그것은 그 자체로 죽은 영예인 것이다.
괴테와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계의 인물은 나폴레옹이나 루터에 상응하는 칭송을 받는 반면, 오늘날 누구도 인류에게 마취술의 놀라운 축복을 제공한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도 가우스나 오일러, 맥스웰의 삶에서 슈타인 부인(괴테의 연인)과 같은 연인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라부아지에나 카르다누스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죽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똑같이 관심없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생각과 발명을 발전시켰는지를 배우며 그 짧은 생애를 불태운 후에 타인들에 의해 이어져온 그들의 업적에 집중한다.
일과 뛰어난 생산성이 도덕적 탁월함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오직 정치가, 영웅, 성인, 가수, 무엇보다 영화배우들에게서만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 천국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인생, 분석 불가능한 삶의 가르침 따위도 도덕을 증진시킬 수는 없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내면적 삶과 피, 심장, 조국, 유럽, 그리고 인류의 목소리임을 강하게 확신하는 한에서만, 시인은 그런 위대한 비합리적 힘에 속함을 느낀다.
시인이 스스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비한 전체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이해 가능한 것들을 파고들어간다.
위원회가 황제의 7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한 주요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첫번째 회의를 열었다.
유전자의 네 가지 성질:
(1) 하나의 유전자는 한 가지 성질을 결정한다.
(2) 세포분열에 즈음해서는 똑같은 유전자가 복제된다.
(3) 화학적으로 안정하며, 드물게 일어나는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변화한다.
(4) 양친으로부터 온 유전자 사이에서 재조합이 일어난다.
생물은 진화할수록 DNA가 길어진다. 그러나 흥미로운 일은 DNA가 길어질수록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부분도 많아진다는 점이다.
10일
세포분열의 속도는 생물의 종류에 따라, 또 다세포 생물에서는 세포의 종류에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세균과 같은 하등한 생물에서는 빠르고, 고등한 생물에서는 느린 경향이 있다.
예컨대 포유동물의 조직을 인공배양해 보면 한 번의 세포분열을 하는데 24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우리 몸의 세포는 항상 분열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때에 따라 또 조직에 따라 분열하거나 쉬고 있다. 또 뇌세포와 같이 일생동안 분열을 하지 않는 것도 있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과학이 현재의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냉정하게 질문한다면—이는 우리가 완전히 과학의 영향력 아래 있으며 수많은 과학의 생산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일자무식인 사람조차도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중요한 질문인데—우리는 아주 색다른 그림을 얻게 될 것이다. 믿을 만한 지식에 따르면 그것은 16세기 위대한 정신적 활동의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데 2천년간 이어져온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숙고를 그만두고 그 대신 겉으로 드러난 자연의 표면을 탐험하는 것에 만족했다. 가령 이 분야에서 항상 첫번째로 꼽히는 위대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도대체 왜 물질은 허공에 머물지 않고 땅에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떨어지는가, 하는 자연의 깊고 본질적인 문제를 지워버리고 좀더 일반적인 확정으로 대신했다. 즉 그는 오직 물체가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지, 그 궤적과 시간, 그리고 가속도를 간단하게 계산해내는 데 만족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주저없이 그를 처형하는 대신 죽일 듯 위협하다가 잘못을 뉘우친다는 말만 받아냈는데, 이는 큰 실수였다. 왜냐하면 바로 그와 같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서—전체 역사로 치자면 눈깜짝할 사이에—기차 시간표, 공업 기계, 생리학적 심리학, 그리고 교회가 더이상 어쩌지 못하는 도덕적 타락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실상 지식인들이 ‘현실’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기 전까지 현실이란 오직 군인이나 사냥꾼, 장사꾼처럼 폭력적이고 약삭빠른 사람들의 소유물이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어떤 감정적인 숙고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적을 가장 빠르도 확실하게 제거하려는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누구나 실증주의자다.
떨어지는 돌이나 궤도를 도는 별처럼 서로 굉장히 이질적인 현상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고, 의식 깊숙한 곳에서 나온 단순한 행동의 기원처럼 명백히 하나이며 나눠지지 않는 것을 내적인 기원이 천년이나 떨어진 여러 흐름으로 나누어버릴 수 있는 위대하고 건설적인 사고규칙들을 비롯한 앞서의 그 모든 것들은 강의실에서 다소 의식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주입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특정한 전문영역 밖에서 그런 접근을 이용해보려 한다면, 그는 아마도 삶의 요구는 사유의 요구와는 다르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삶에서는 지적으로 훈련된 정신에 익숙한 것과는 다소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삶은 자연의 본래 차이점과 공통점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어느 선까지는 자연적인 사물로 받아들이고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변화도 왈츠를 추듯이 지그재그로, 머뭇거리며 일어난다.
사유와 삶 사이에는 복잡한 절충과정이 있게 마련인데, 지식인들의 주장은 기껏해야 1천개 중에 반만 제값을 치르며 나머지 반은 명예 채권이란 명목으로 꾸며진다.
수염 속에서 미소짓는 과학, 또는 악과의 정식 첫 만남
17세기와 18세기 그리고 19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 수학과 이론 과학 사이에는 별다른 구별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지도적 수학자들은 수학 자체보다는 천문학, 역학, 유체역학, 전기학, 자기학, 탄성물리학 등에서 훨씬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칸토어의 무한 집합 연구는 순수 수학에서 많은 연구를 이끌어 냈지만 애초에는 푸리에 급수라는 매우 유용한 무한 급수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순수 수학은 과학이 제기한 훨씬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머리를 식히기 위한 취미 활동쯤으로 치부되었다. 페르마는 정수론의 창시자였지만 대부분의 노력을 해석기하학의 구성과 미적분학 문제, 그리고 광학에 쏟았다. 그는 파스칼과 하위헌스로 하여금 정수론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오일러는 18세기 최고의 수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수리물리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연구는 미분 방정식의 해법과 같은 물리 문제 해결의 심오한 수학적 방법론에서부터 천문학, 유체 운동, 선박과 돛의 설계, 탄도학, 지도 제작, 악기 이론 그리고 광학에까지 이른다.
...라는 가우스의 말은 가우스가 순수 수학을 선호했다는 주장을 펴는데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가우스의 생애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의 좌우명은 “그대 자연이여, 당신은 나의 여신입니다. 당신의 법칙에 경의를 표합니다”였다. 수학을 자연과 합치시키려는 그의 성실한 노력이 자신의 비유클리드 기하학 연구로 이어지고 결국 수학적 진리가 불신받게 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수학자들로 하여금 순수 수학 문제에 천착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과학 문제들은 완벽하게 해명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욱 나은 근삿값이 얻어질 뿐 최종 해답은 얻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3체 문제(three-body system, 3체 문제란 태양, 지구, 달과 같이 세 물체의 인력이 서로 작용할 때 그 운동을 기술하는 문제이다)와 같은 기본적 문제들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베이컨이 지적했듯이 자연의 정교함은 인간의 꾀를 훨씬 더 넘어선다. 한편, 순수 수학은 완벽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명쾌하고 분명한 문제를 내놓는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와는 달리 명쾌한 문제에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겠다.
순수 수학의 방향: 추상화, 일반화, 세분화, 공리화
연구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 추구한 일반화와 추상화는 대부분 응용 면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실, 그러한 논문들 대부분은 더욱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기존 사실들을 좀 더 일반적이거아 추상적인 용어, 또는 새로운 전문 용어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재구성은 수학을 응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물리적 아이디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전문 용어를 확산하는 것은 수학 응용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것은 새로운 언어이지 새로운 수학이 아니다.
부르바키:
많은 수학자들은 수학의 변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이 없는 것은 철저히 무시할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변방에서 일하는 동료 수학자들의 언어와 용어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폭넓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드넓은 수학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푸앵카레와 힐베르트처럼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 사람은 위대한 수학자들 가운데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세분화의 대가는 불임이다. 전문적 기교를 요구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결과는 거의 내놓지 않는다.
일부 순수 수학자들은 수학 이론에 잠재적 유용성이 있으며 어떤 이론이 미래에 응용될지 어느 누구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 만약 잠재적 응용이 목표하면 위대한 물리 화학자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가 언급했듯이 순수 수학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응용 수학자는 최소한의 분별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수학이 과학과 단절되어 있다. 지난 100년간,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영예로운 수학 활동의 동기, 즉 알맹이가 있고 유용성이 있는 주제를 제공해 오던 동기에 충실한 사람들과 구미가 당기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돌며 이것저것을 연구하능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다. 오늘날, 수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새로운 수학의 연구 성과가 응용 분야에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 더욱이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지나친 세분화로 수학자들 조차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푸리에:
자연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수학적 발견의 가장 풍부한 보고이다. 자연을 깊이 연구하면 명확한 목표 설정이라는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모호한 문제와 무익한 계산을 없애는 이점도 얻는다. 수학은 분석 자체를 구성해 내는 수단이며, 과학이 항상 추구해야 할 중요한 아이디어의 발견 수단이다. 기본이 되는 아이디어는 자연 현상을 그려내는 것들이다. (...)
과학의 역사를 완전히 망각하지 않는 이상,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수학 발전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축복할 만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 외부 세계의 존재를 잊는 순수 수학자는, 색채와 형태를 조화롭게 결합할 줄 알지만 그릴 모델을 찾지 못하는 화가와도 같다. 그런 사람의 창조적 힘은 곧 소진되고 만다.
클라인:
우리 시대의 수학은 평화로운 시기에 가동되고 있는 거대한 무기 공장과 비슷해 보인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뛰어난 솜씨의 퍼레이드가 전문가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런 물품을 필요로 하는 진정한 이유와 목적, 즉 전투를 해서 적을 물리치는 일은 의식의 한구석으로 물러나 아예 망각의 늪으로 사라졌다.
존 L. 싱:
대다수 수학자들은 수학 자체에 속하는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연구한다. 그들은 폐쇄적인 길드를 구성한다. 가입 회원은 충성을 맹세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맹세를 성실히 준수한다. 극소수의 수학자만이 이곳저것을 돌아다니며 다른 분야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1744년이나 1844년에는 두 번째 부류에 거의 대다수 수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1944년애는 그런 부류의 수학자가 극소수로 전락하면서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다수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생겼고 또 자신의 관점을 구차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폰 노이만:
한 수학 분야가 그 경험적 근원으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면, 또는 두 세대나 세 세대가 지나 ‘현실’로부터 간접적 영향만을 받게 되면 그 분야는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그 분야는 더욱더 순수한 미적 목적만을 추구하게 되어 ‘예술을 위한 예술’로 변하게 된다. 만일 긴밀하게 경험과 관련을 맺고 있는 연관 분야들에 둘러싸여 있거나 아니면 이례적으로 높은 감식력을 지닌 사람들의 영향 아래에 있다든지 한다면 미적 목적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다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야가 최소한의 저항도 받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아갈 위험성이 생긴다. 그렇게 될 경우 본래의 근원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여러 개의 보잘것없는 잔가지들로 분화될 것이며 통일성을 결여한 복잡하고 잡다한 내용의 집합체로 전락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래의 경험적 원천에서 멀어지거나 지나치게 추상화를 수용하면 그 수학 분야는 퇴화될 위험에 직면한다. 처음에는 그 형식은 고전주의 색채를 띈다. 바로크 형식을 취하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이면 위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런 상태에 이르면 유일한 처방은 젊음을 가져다주는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아이디어를 주입받는 일이다. 이는 신선함과 생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확신하며, 또 이런 사정은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행렬 이론, 텐서 해석학, 위상 수학 등, 순수 수학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여타의 분야를 살펴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현대 추상 대수학은 그 기원을 해밀턴이 만든 사원수에 두고 있다. 그 연구 동기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물리학과 맞닿아 있었으며 그 연구자들도 수학 응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애초에 순수 수학으로 생겨났지만 이후에 응용 가능성이 확인되었다고 여겨지던 분야들이 그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물리학 문제나 물리학 문제와 직접 연관된 주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애초에 물리적 문제 해결이라는 동기에서 출발한 수학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응용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렇게 수학은 과학에 신세를 갚는 것이다. 애초에 돌을 깨기 위해 만들었던 망치가 나무에 못을 박을 때에도 쓰인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있을까? 수학 이론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응용되는 것은 그 이론이 애초에 물리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내면의 영혼과 홀로 씨름하는 현명한 수학자의 예언자적 통찰력 덕분은 절대 아니다.
쿠란트:
수학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추상화와 일반화가 개별적 현상이나 귀납적 직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상호 작용하게 할 때에만 수학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
수학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의 정신을 영광되게 드높이는” 데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수학이 ‘순수’와 ‘응용’의 두 갈래로 완전히 갈라서게 놓아두어서도 안 된다. 수학은 과학이라는 대하장강과 함께 흘러가야 한다. 조그만 지류로 흘러가게 놓아두면 결국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고 만다.
순수 수학 이론이 제아무리 정교하고 연구자가 뛰어나다고 해도 그 수학적 논증을 실제 상황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게 마련이다. 추상 수학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필연적으로 추상 수학을 중시하는 환경 속에서 연구를 하게 될 것이고 또 그 분야에서 성공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또 응용의 필요성을 인식할 여유가 없어지고 응용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 시간도 부족해질 것이다.
응용 수학자는 엄밀한 증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물리적 사태와 합치되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올리버 헤비사이드였다. 그는 순수 수학자들이 보기에는 전혀 합당하지 않을뿐더러 기묘하기까지 한 연구 기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그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헤비사이드는 순수 수학자를 논리 계찰원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그는 “논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까다롭게 트집 잡는 사람들과는 달리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안다”라고 대꾸했다. 얼마 후에 그는 순수 수학자들을 더욱 당혹하게 했다. 당시에는 발산 급수의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어느 특정 발산 급수에 대해 “아, 이 급수가 발산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걸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겠군”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헤비사이드의 기법은 엄밀화되었고 새로운 수학 이론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응용 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순수 수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순수 수학자들은 어떤 해결책에서도 트집을 잡아 문제를 만들어 내지만 응용 수학자들은 어떤 난제도 그 해결책을 찾아낸다고.
다이슨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수학자들이 중요한 과학 문제들을 다룰 기회가 있었지만 그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실을 지적해 냈다. 이 문제들 가운데 일부나 그 파편들이 수학으로 스며들었지만 수학자들은 그 기원이나 물리학적 의의를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수학자들은 무작정 아무 방향을 향해 가고 있거나 자신이 무엇을 성취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탈레랑: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고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다.
그에겐 행복이 생겼다
그에게도 꿈많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어느날 그에겐 흰머리가 생기고
등이 휘고 토지가 사라지고
후배들은 그를 우습게 여기고
그에겐 코가 사라졌다
그에겐 입도 사라졌다
에로스도 사라지고
그를 지키려는
욕망도 사라지고
에고도 사라졌다
그에겐 성욕도 사라졌다
그는 육체를 추방한 건 아니다
그의 육체는 스스로 사라졌다
아아 그렇다고
정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에겐 정신도 없다
애인을 껴안을
힘도 없다
작은 침대에
등을 구부리고 누워
「어쩜 이대로 죽을지도 몰라」
중얼대며 잠드는 그는
자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걸
비로소 배웠다
자는 건 어린애가
되는 거다
말할 줄 모르던
행복한 시절로 돌아가는 거다
그에겐 행복이 생겼다
마흔 살이 넘자
칼은 없지만
모자도 없지만
주사기도 없지만
11일
과거에 논리학 원리가 불변이라는 점이 증명되지 못했다면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원리가 과연 미래에도 불변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최종적인 증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반례가 출현하여 기존의 증명을 뒤엎는다. 그러면 기존 증명에 수정을 가하는데, 그렇게 나온 새로운 증명이 최종적 증명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간의 역사에 비춰 판단해 볼 때 이는 단지 그 증명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따름이다. 그런데 비판적 검토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오류를 들춰낸다는 것이 영예를 안겨 주는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리의 증명에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연구 진척을 위해 그 정리를 인용하려는 것이 수학자들의 기본 생리이다. 수학자들은 기존의 정리에서 흠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정리를 만들어 내는 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실제로 수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그렇게 엄밀한 증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수학자가 만들어 낸 구성물은 형식화 되기 전에 이미 수학자 자신에게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 의미는 그 자체로 구성물에 존재성 또는 실재성을 부여한다.
직관이 논리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더 높은 설득력을 지닐 수도 있다. 어떤 결과를 놓고 수학자가 왜 그 결과가 성립하는지 자문할 때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직관적 이해이다. 사실, 직관상 그 결과가 불합리해 보인다면 엄밀한 증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쇼펜하우어:
수학 연구 방법을 개선하려면 논증으로 얻은 진리가 직관적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파스칼은 기하학 정신과 섬세함의 정신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기하학 정신은 강력한 논리적 추론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정신의 힘과 엄밀함을 의미한다. 섬세함의 정신은 더욱 깊이 있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뜻한다.
파스칼은 과학에서도 섬세함의 정신이 논리적 정신보다 한 단계 위라고 생각했으며 논리적 정신으로는 섬세함의 정신을 재단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진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학자들는 논리적 증명을 구성해 내기 전에 정리가 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증명의 기본 방향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실, 페르마는 방대한 수론 연구에서, 그리고 뉴턴은 3차 곡선 연구에서 증명 방향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새로운 수학 이론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엄밀한 증명을 구성해 내는 능력보다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로 담당했다.
화이트헤드:
결론은, 논리가 사고의 전개에 관한 적절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실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논리는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상식이라는 배경을 필요로 합니다. ... 철학적 사고의 최종적 모습은 개별 과학의 기반을 형성하는 엄밀한 명제를 바탕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엄밀성이란 날조된 거짓에 불과합니다.
엄밀성을 엄밀하게 정의할 도리란 없다. 당시의 지도적 전문가들이 승인하거나 유행하는 원리가 채택되어 있을 때 그 증명은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준은 없다. (...) 공리로부터 연역하는 방식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생각은 이제 과거의 퇴물이 되었다. 논리학에는 인간의 사고에 제약을 가하는 온갖 오류와 불확실성이 담겨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논리적이기를 바라지 못한다. 단지 기껏해야 비논리적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열정은 드높이되 엄밀함은 포기하라.”
러셀:
증명된 사실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증명이 지니는 주요 장점이다.
칼 포퍼:
증명의 이해에는 세 단계가 있다.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했다는 유쾌한 감정이 드는 때가 가장 낮은 단계이다. 그 내용을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때가 두 번째 단계이다. 최고 단계인 세 번째 단계에서는 그 증명을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헤비사이드:
논리야말로 천하무적이다. 왜냐하면 논리를 깨기 위해서는 다시 논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푸앵카레:
해결된 문제란 없으며 단지 어느 정도 해결된 문제만이 있다.
애딩턴:
증명이란 수학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학대하게 만드는 하나의 우상이다.
직관이 우리를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 19세기 내내, 엄밀성의 창시자 코시를 위시한 수학자들은 연속 함수라면 반드시 도함수를 갖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이어슈트라스가 어느 점에서도 도함수를 갖지 않는 연속 함수를 찾아내어 수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 함수는 직관으로는 절대 찾아낼 수 없다. 수학적 추론은 직관을 보완하지만 가끔 직관의 능력을 넘어서기도 한다.
논리를 적용하여 더 많은 기초론 문제를 해결하면 해결할수록 우리는 수학의 중심부에서 더욱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증명은 우리에게 상대적 확실성을 안겨 준다. (...) 와일더가 말했듯이 증명은 직관이 제시한 생각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날의 엄밀성은 그날로 충분하다.”
증명은 일정 부분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이란 모순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증명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보면 설사 얻을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해도 여전히 가치 있는 것들을 얻기도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미겔 데 우나무노:
이성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승리는 이성 자신의 타당성에 의문을 던졌다는 점이다.
수학적 정리는 어떤 방식으로도 확실성이 보증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전 200년 동안 뉴턴 역학을 사용한 것처럼, 또 리만 기하학이 나오기 전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한 것처럼, 더 나은 이론이 없을 때에는 기존 이론을 계속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확실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역사를 근거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앞으로도 수학에 새로운 이론이 첨가되고 첨가된 이론은 새로운 기초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학은 여타의 자연과학과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관측 내용이나 실험 결과가 기존 이론과 부합되지 않을 시에는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
부르바키:
역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수학에 모순이 없다는 말은 물론 참이 아니다. 무모순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지, 하느님이 우리에게 그냥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불확실성의 시대가 오면 거의 예외 없이 수학 전체나 특정 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뒤를 이었다. 모순이 생겨났지만 비판적 검토를 통해 그 모순이 해결되곤 했다. ...이렇게 2500년 동안 수학자들은 스스로의 오류를 고쳐 나갔고, 그 결과로 수학은 빈약해지기는커녕 더욱 풍성한 학문 분야로 발전해 왔다. 따라서 수학자들은 미래를 낙관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
집합론과 초한수 이론을 창시한 칸토어는 수학자란 개념과 정리를 발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발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개념과 정리는 인간 사고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토어는 스스로를 사실을 기록하는 보고자이자 서기로 생각했다.
괴델도 수학이 초월적 세계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집합론에 대해 그는 집합들을 실재하는 대상물로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발전하는 것은 수학 자체가 아니라 수학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다.
파스칼:
진리란 너무도 세밀해서 무딘 인간의 도구로는 그 진리를 집어낼 수 없다. 집어낸다고 해도 주변에 있는 것들도 함께 딸려 오는데, 이때 진리보다는 허위가 더 많이 딸려 나온다.
색각이나 언어처럼 수학의 진리 역시 인간 존재에 의존한다. 정치, 경제, 종교 등의 담론과는 달리 수학은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진리 체계라고 믿기 쉽다. 수학은 각 개인과는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문화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경험적 지식을 포괄하는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를 통해 경험 지식을 정돈하는 능력이 인간 정신 안에 존재한다. 수학의 근원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정신 그 자체이다.
수학의 본질에 관한 현재의 논란, 그리고 오늘날 수학이 누구나 받아들이는 반박 불가능의 지식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수학이 인간의 창작물이라는 견해에 더욱 힘을 실어 준다.
절대 진리를 찾는 끊임없는 노력은 절대 진리를 실제로 얻는 것의 차선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규칙을 이야기하셨죠, 장군. 우리는 절대 규칙을 통해서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할 거예요. 신중한 생각이나 비교, 검토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지요. 해결책은 번개, 불, 직관, 종합이 돼야 해요! 인류의 역사를 가만 살펴보면 논리적인 발전을 해왔던 것이 아니에요. 역사는 그 뜻이 나중에야 밝혀지는 갑작스런 착상, 곧 시를 떠올리게 하죠.”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각하.” 장군이 대답했다. “군인은 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 번개와 불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바로 각하일 겁니다. 늙은 군인도 그건 알 수 있습니다.”
슈툼 폰 보르트베어는 디오티마에게 찾아간 것을 그의 직무에서 하나의 기쁜 전환이라고 생각했다
백작은 스스로 ‘그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큰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문학은 유대인, 신문, 센세이셔널한 출판업자, 자유주의자들, 대안없이 떠들어대면서 오직 돈만을 위해 봉사하는 시민계급의 정신 같은 것들과 연결된 표상이었고 그래서 ‘그저 문학’이라는 단어는 그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다.
그가 소설 대신 생각한 것은 들판, 농부, 작은 시골교회, 그리고 마치 수확을 마친 들의 곡식단처럼 신이 묶어둔 사물의 질서였다. 또란 그 질서는 비록 시대에 맞추기 위해 이따금 술 제조장을 허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름답고 건강하며 보람찬 것이었다.
인간은 이성만으로는 도덕적이 되거나 정치를 수행할 수 없어요. 이성은 언제나 부족하고 진짜 중요한 것들은 이성을 넘어 존재하죠. 위대한 인간들은 언제나 음악과 시, 형식, 교육, 종교, 그리고 기사도를 사랑했습니다.
저는 거의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본성이 매우 자유롭고 독립적인데 내면적으로는 엄격하고 기이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이처럼 자유와 내면의 엄격함이 혼합돼 있다는 게 바로 그의 각별한 매력이죠.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 같은 도덕적 이국취향과, 정확히 어디로 갈지 모르면서 항상 모험으로 이끄는 그의 뛰어난 지성 때문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라인스도르프 백작이 의심을 품다
오늘날 이야기되어지는 것들은 모두 뒤죽박죽이어서 예언자와 사기꾼이 같은 말을 쓰고 바쁜 사람들은 그 작은 차이를 포착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기자들은 여기저기서 어떤 사람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방해를 받는 통에 과연 어떤 인물이나 사상의 참된 가치를 알아내기 힘들게 되었다.
위대한 인물과 영감의 속성은 그것을 만들어 낸 원인보다 오래 살아남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속성들이 남겨지는 것이다. 그 속성들은 한 뛰어난 사람에게서 다른 뛰어난 사람에게로 각인되지만 결국 이 사람들은 죽고 살아남은 개념들만이 다시 이용된다.
그가 조금만 애써서 말을 하면 사람들은 선의를 가지고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아른하임은 나름대로 규칙으로 정해놓은 것이 있었다. “인간의 진정한 의미 중 대부분은 그가 동시대인들에게 얼마나 이해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것이다.
언론의 친구 아른하임
평준화가 두 가지 의미로 혼용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고교평준화의 첫 번째 의미는 ‘비선발적 배정 방식’이다. 고교가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발하지 않는(non-selective) 배정 방식으로는 근거리 배정(현행 초등·중학교 배정 방식), 무작위 추첨(이른바 ‘뺑뺑이’), 선지원 추첨(고교선택제) 등이 있다. 고교평준화의 두 번째 의미는 ‘획일적 교육과정’이다. 학생들이 이수하는 교과목이나 교육과정이 획일적·일률적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의미다. 학생을 선발하지만 교과목·교육과정은 획일적일 수도 있고,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데 학생들이 이수하는 교과목·교육과정은 다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이 바로 고교학점제다. 고교학점제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제도로 자신이 배울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는 ‘수강신청’이 핵심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고등학생 개개인에게 이수과목 선택권을 부여한다. ‘학교별 다양화’가 아니라 ‘학생별 다양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심지어 중학교 때부터 일부 선택권을 부여한다. 핀란드의 경우 중학교 이수단위의 15%를 학생들이 선택한다. 주로 외국어와 예체능 과목이다.
서구 선진국에 특목고가 거의 없는 것은 수학·과학 과목을 많이 선택하면 과학고 구실을 하고 외국어 과목을 많이 선택하면 외고 구실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 다양성의 단위는 집단(학교)이 아니라 개인(학생)이다.
문재인정부는 ‘단계적 전환’이 초래할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왜 ‘일괄 전환’을 포기하고 ‘단계적 전환’을 채택했을까?? 일괄 전환에 따르는 갈등과 분쟁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고교평준화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준화를 곧 ‘획일화’와 ‘규제’로 이해하는 한 평준화는 곧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퇴행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고교평준화는 박정희식 개발독재와 관치의 상징 중 하나였으며 ‘자율’이라는 미래지향적 가치와도 상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고교평준화는 ‘산업정책’과 유사하다. 많은 진보 지식인이 산업정책을 개발독재와 관치의 산물로 인식하고 이를 적대시해왔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2018년 말 청와대를 떠난 다음인 2019년 1월이 되어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최초로 ‘산업정책’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2일
아주 불운한 사람이나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나쁜 생을 영위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계층은 다 다르다. 오늘날 인생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층을 자각한다는 것은 한번 가져볼 만한 대용품이라고 하겠다. 어떤 경우 그런 자각은 높은 곳의 권력을 향한 도취에까지 이를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방 한가운데서 창문을 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꼭대기에 오른 것처럼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디오티마의 변신
하스켈 브룩스 커리:
과연 수학이 정당성을 갖추려면 절대적 확실성이 필요한 것일까? 특히, 이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왜 먼저 그 이론이 무모순이거나 절대적으로 확실한 순수 시간의 직관으로부터 유도되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다는 것일까? 다른 과학에서는 그런 요구 조건을 달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정리가 가설에 머문다. 예측에 유용하게 활용된다면 그 이론을 채택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수정하거나 폐기 처분한다. 과거에는 수학 이론의 경우에도 그런 태도를 취했다.
괴델:
이른바 ‘기초’라는 것의 역할은 물리 이론에서 볼 수 있는 가설의 설명 기능에 좀 더 가깝다고 하겠다. 수론이나 여타 수학 이론의 소위 논리주의 기초나 집합론 학파의 기초는 기초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설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물리학의 공리가 그 체계의 정리들에 대해 참된 기초를 제공하기보다는 정리들에 의해 기술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똑같다.
수학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서 인간의 단점과 한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나 논리주의가 구성해 낸 수학은 이상적 요소를 지니고 있더라도 가짜 수학이자 허구이며 신화에 불과하다.
아직 그 참됨이 확립되지 않은 기초론으로 수학의 타당성을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수학의 ‘타당성’은 물질 세계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수학은 뉴턴 역학과 마찬가지로 경험 과학이다.
직관주의 학파의 시조인 크로네커는 대수학 분야에서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는 연구 성과를 냈다. 푸앵카레가 지적했듯이 크로네커는 자신의 철학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우베르 역시 1907년에 직관주의 철학을 천명했지만 그로부터 10년 동안 위상 수학 분야를 연구하면서 직관주의의 기본 주장을 무시했다.
이론은 나중에 언제라도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물질 세계의 설계 속에 새겨져 있는 진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잠정적 이론으로 간주된다. 우리 모두는 과학 이론을 바라보는 이런 생각에 익숙해져 있다. 새로운 이론의 등장으로 기존 이론이 전복되는 사례를 무수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수학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유는 철학자 밀이 지적했듯이 기초 산술과 유클리드 기하학이 오랫동안 유효함을 잃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수학을 진리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수학 분야는 효용성을 지닌 이론일 따름이다.
라플라스:
인간 이성은 진보를 이루는 데는 능해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살피는 데에는 서툴다.
연속 함수가 반드시 미분 가능은 아니라는 사실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알았더라면 미적분학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무모함과 신중함이 모두 중요한 발전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수학의 타당성을 응용 가능성 여부로 잴 때 한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얼마나 훌륭하게 응용되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전자기파가 무엇인지 그 물리적 의미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 오직 수학만이 그 존재성을 보증해 주고 있으며 그러한 수학의 도움으로 공학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놀라운 기계를 만들어 냈다.
원자와 핵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수학자글과 이론 물리학자들은 장—중력장, 전자기장, 전자장 등—을 마치 물결이 배와 기슭을 때리는 것처럼 공간으로 퍼져 나가 영향을 미치는 실제의 파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장은 허구이다. 그 물리적 속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현대 물리학 이론은 물질의 허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의 장들에 관한 법칙을 수학적으로 구성해 내고 이 법칙들로부터 결과를 도출해 냄으로써 물리적으로 적절히 해석했을 때 감각 인식으로 확인이 가능한 결론을 얻어 낸다.
아인슈타인:
뉴턴의 체계에 따르면 물리적 실제 세계는 공간, 시간, 질점*, 그리고 힘(질점의 상호 작용)으로 규정된다...
* 어떤 물체, 혹은 물체의 일부분의 무게중심에 전체의 무게가 집중되어있다고 가정했을 때 무게가 존재하는 지점이다. 좀 더 간단하게는 무게값을 가지는 0차원상의 점이다.
맥스웰 이후로 물리학자들은 물리적 실제 세계를 기계론적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편미분 방정식을 따르는 연속 장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실제 세계에 대한 개념의 이러한 변화는 뉴턴 이래 어떤 변화보다도 물리학에 가장 심오하고도 가장 풍성한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과학은 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장이나 전자 같은 순전히 인위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개념에 대해서는 오직 그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수학 법칙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추상화에 관한 수많은 정리와 연역을 수반하는 주요 이론들이 공리만큼이나 실제 세계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실제 현상을 믿기 어려운 수준의 정밀함으로 그려 내고 있는 수학의 힘을 보여 준다. 왜 여러 단계를 밟아 결과를 이끌어 내는 순수 추론에서 놀랄 만큼 높은 응용성을 지닌 결과가 도출되어 나오는 것일까? 이는 수학의 가장 큰 역설이다.
이중의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물리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파악하더라도 공리에서 연역된 수많은 명제들이 공리와 마찬가지로 응용성을 지니는 경우가 있다. 왜 수학은 그러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리고 물리 현상에 대한 가설만이 있고 그러한 현상의 기술에 수학만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왜 수학은 그러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실제 현실이란 모든 여성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다. 왜냐라면 언제나 당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단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성은 당신의 영혼이 머무를 만한 굳건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여성은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꿈속을 벗어나면 그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 여성은 자연이라는 거울에 비친 당신 자신의 생각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푸앵카레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편리한 기하학을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직선을 단단하게 잡아당긴 줄이나 자의 날처럼 똑바른 대상으로 해석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기하학이 가장 단순한 기하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로부터 나오는 명제들은 여전히 유용하게 응용될까? 푸앵카레는 이 질문에 수학과 맞아떨어지도록 우리가 물리 법칙을 수정한다고 답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로가 천동설을 배격하고 그 대신에 태양 중심설을 채택한 이유는 오로지 수학 이론이 매우 간결해지기 때문이었다.
푸앵카레:
세계는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 정신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히 파악되지 않는다. 우리가 ‘객관적 실체’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여러 사고하는 존재들에게 공통된 것, 모든 존재에게 공통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러한 공통되는 부분이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은 오직 수학적 법칙으로 표현되는 조화뿐이다.
아인슈타인:
어쨌든 나는 하느님이 주사위를 던지지는 않는다고 확신한다. (...) 하느님의 주사위는 항상 미리 정해진 대로 그 수가 나오게 되어 있다. (...) 하느님은 포착하기 어려운 존재이지 결코 악의에 찬 존재는 아니다.
오늘날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믿음은 지나친 억지로 취급받고 있다.
라플라스는 자연의 움직임은 수학적 법칙에 따라 완벽하데 결정되지만 그 움직임의 원인을 항상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관찰은 단지 근사적으로만 옳을 따름이라고 철저하게 믿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타당성이 가장 높은 데이터를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은 무질서하다. 하지만 개연성 높은 움직임 또는 평균적인 움직임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관측하는 내용이며, 우리는 이를 두고 수학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 자연을 통계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은 양자론의 발전으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 양자론에 따르면 견고한 개체로서 한 지점을 점유하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자는 공간의 어떤 곳에도 존재할 개연성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정 지점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을 따름이다.
아인슈타인:
세계와 관련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학이 효용성을 지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만족스럽든 불만족스럽든 간에 자연 자체와 자연에 대한 수학적 기술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초론을 연구하면서 얻는 잠재적 가치는 모순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모순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모순이나 명백하게 불합리한 정리를 찾는다면 최소한 수학자들의 시간과 정력이 허비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지난 이야기 하나...
예전에 출판 담당 기자를 하다보니 시공사 대표 전재국씨와 친해져 자주 술을 먹었다.
전두환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보니 처음에는 만나자고 해도 내가 소극적이었는데 만나다보니 사나이답고 사업가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이 친해지고 나서 궁금증이 일어 물어보았다.
“아버지 때 다른 건 몰라도 인사를 참 잘한 것 같다. 혹시 장군으로 있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나도 그게 궁금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각 부처에는 이미 인사파일이 축적돼 있다. 그 중에 최상급 3명 정도를 골라 사적으로 만날 기회를 만든 다음에 호흡이 맞는 사람을 골랐다. 이미 엘리트들이니 일하는 궁합만 보면 된다. 그러니 인사에 실패할 일이 있겠느냐!’
게다가 아버지는 군인이라 지휘관과 참모를 번갈아 가면서 올라오셨기 때문에 인사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던 것 같다.”
하긴 돌이켜보면 노태우도 인사를 비교적 공정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실패는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윤당선자도 아마 이 이야기를 했다가 광주시민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지만 이제 인사를 앞두고 이 지혜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탕왕이 인사를 할 때의 마음이 논어에 나오는데 참고했으면 좋겠다.
(탕왕이) 말했다. “나 소자 이(履)는 검은 희생을 써서 감히 거룩하신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 죄지은 자(有罪)를 감히 (내 마음대로) 용서하지 못하며 상제의 신하(帝臣)를 제가 감히 숨길 수 없으니 인물을 간택하는 것(簡)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제의 마음(帝心)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일반고에는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과정이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는 학생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1990년대 이래 ‘교실 붕괴’와 일반고 교육의 황폐화를 불러일으킨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20세기 말 한국 교육에 결정적 영향을 준 포퓰리즘 정책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 포퓰리즘 교육정책은 대학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대학졸업장을 남발한 것이다. 1995년 5·31교육개혁에서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천명하고 사립대를 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늘어난 대학 중에는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이른바 ‘대학 같지 않은 대학’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 번째 포퓰리즘 정책은 고등학교 학사관리의 부실화, 특히 유급과 낙제를 없앤 것이다. 유급이란 학년 진급에 실패하는 것이고 낙제란 해당 과목의 이수나 학점 취득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에는 대체로 초등학교·중학교에는 유급이, 고등학교에는 낙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한국의 고등학교에는 유급과 낙제가 모두 없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시험에서 0점을 받아도 ‘법정 수업일수’만 채우면 진급과 졸업이 가능하다. 이것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처럼 핵심 과목(주로 영어·수학)에서 성취도가 낮으면 졸업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유럽처럼 과목별로 낙제점을 받으면 학점이 인정되지 않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세 번째 포퓰리즘 교육정책은 고교에서 인문계 정원 비율을 대폭 높인 것이다. 그 결과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매우 낮아졌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 인문계고의 명칭을 ‘일반고’로 변경했다.(처음엔 ‘일반계고’로 바꿨다가 다시 ‘일반고’로 변경) 그런데 간판만 ‘일반’고로 바꿨을 뿐 교육과정은 변경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문계, 즉 ‘학문적’ 교육과정인 것이다.
1980년에는 15~17세 인구 중 26.8%만이 인문계 교육과정을 밟은 반면 2010년에는 15~17세 인구 중 70.4%가 인문계 교육과정을 밟게 되었다. 즉 1980년의 인문계고와 2010년의 인문계고(일반고) 사이에는 그 구성원의 평균적인 성향에 큰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인문계고 재학생 비율이 연령 인구의 50%대에 도달한 1990년대가 ‘교실 붕괴’의 임계점이었다고 추정한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1990년대 중반이 되면 중학교에서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들도 거의 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문화 충돌과 아울러 1990년대 ‘교실 붕괴’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인문계를 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계는 왜 이러한 학부모들의 요구에 호응했을까?? 그 배경으로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산업정책의 실종’을 빼놓을 수 없다. 박정희정부의 산업정책에는 실업계고를 육성해 산업 발전에 필요한 숙련노동자를 공급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기능공으로 제조업 현장에서 능력과 보수를 높여가거나 대기업이나 은행에 취업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실업계에도 명문학교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정책은 1980년대 이후 점차 약화되었고, 이후 새로운 세대의 관료·지식인·정치인들은 산업정책을 개발독재나 관치의 산물로 간주해 이를 방임했다. 이후 실업계는 2000년대 후반까지 오랫동안 정부의 주요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었다. 2010년부터 마이스터고가 개교하고 2016년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교육과정이 도입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으나 실업계 정원이 늘어날 조짐은 전혀 없다.
한국 ‘일반고 황폐화’는 학부모·학생들이 인문계로 진학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책임은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정부에 물어야 한다. 정부가 교육 수요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인문계고 비율을 무분별하게 늘린 것은 중대한 정책 실패다. 결국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이 일반고(인문계고)를 황폐화한 셈이다.
1990년대 ‘교실 붕괴’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학교 문화와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난 ‘문화적 부조화’ 현상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인문계(학문적) 교육과정이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데도 인문계고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학생들이 다수 발생하면서 나타난 ‘제도적 부조화’ 현상이었다.
수업·평가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 이외에 ‘일반고 살리기’를 추진할 수 있는 좀더 거시적이고 제도적인 접근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일반고의 구조적인 기능부전은 근본적으로 ‘일반’이라는 이름 아래 ‘인문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첫 번째 해법은 명실상부한 ‘인문계’(학문적) 고등학교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고, 두 번째 해법은 일반고에 진정한 ‘일반’ 학생들이 다닐 수 있게끔 학생이 선택 가능한 과목과 프로그램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일반고를 살릴 수 있는 첫 번째 해법, 즉 명실상부한 ‘인문계’(학문적) 학교의 위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일반고(인문계고)의 진입 문턱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는 고교 비평준화(읍·면 지역)와 평준화(동 지역)가 공존하는데 평준화 지역의 경우 일반고 정원이 적어서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50% 이내에 들어야 일반고 진학이 가능하다. 제주도 일반고 학생들의 학력 분포는 서울의 자사고(광역자사고)와 유사할 것이다. 제주도의 평준화지역 일반고에서 교실 붕괴 현상이 심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재 서울처럼 중학교에서 꼴찌를 해도 일반고 진학이 가능한 상황에서 갑자기 제주도처럼 ‘일반고 진입 문턱’을 높이면 어떻게 될까?? 성적 중하위권 학생들의 사교육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며,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고를 살릴 수 있는 두 번째 해법, 즉 진정한 ‘일반’고라는 명칭에 걸맞게 학교 기능을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수과목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과목의 폭을 대폭 넓혀야 한다.
유럽 대륙 국가들이 인문계/실업계를 구분하는 것과 달리 미국과 영국은 고등학교에서 인문계/실업계 교육과정을 나누지 않는다. 물론 직업교육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국가가 직업계 교육과정(vocational curriculum)을 따로 관리하지 않고, 더 유연하고 느슨한 ‘선택과목’이나 ‘프로그램’ 또는 별도 교육기관 등을 통해 직업교육을 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은 유럽 대륙 국가들에 비해 직업교육을 받는 고교생 비율이 낮고, 교육 효과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훨씬 ‘일반’이라는 말에 걸맞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일반고에서 참조할 만한 사례다.
미국과 영국의 고등학교가 진정한 ‘일반’고임을 실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예체능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일반고에서 미술은 맛보기 정도 수준에 불과한 반면, 영국의 일반고에서는 미술(순수미술), 디자인, 섬유공예, 사진, 영화 등을 배울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이런 과목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개설하고, 이러한 선택과목들을 적절히 조합해 사교육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미술 계열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술 입시학원이 성업하는 한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일정 수준의 수학 성취도가 확인되지 않으면 심지어 졸업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 요구하는 수학 수준이 한국의 중2~중3 수준이다. 미국의 대입시험인 SAT 기본시험 수학 범위도 한국의 중2 수준이다. 한국에서 중3 때 배우는 2차함수는 흔히 ‘SAT Ⅰ’이라고 불리는 SAT 기본시험에 포함되지 않으며 ‘SAT Ⅱ’라고 불리는 SAT 선택과목(수학 레벨1/레벨2)에 속한다.
영국에서는 마지막 2년간 수학을 전혀 배우지 않아도 옥스퍼드대나 케임브리지대에도 진학할 수 있다. 물론 이공계나 경제학과 등에 진학할 학생에게는 수학이 필수로 요구되며, 심지어 영국 고등학교의 심화수학은 한국의 이과 수학 범위보다 좀더 넓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수학이 별로 필요 없는 전공으로 진학할 경우 수학은 마지막 2년간 이수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는 순수한 선택과목에 불과하다.
‘수학이 중요하니 많이 배우게 해야 한다’와 ‘학습 부담을 줄여야 하니 적게 가르쳐야 한다’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딜레마가 나타나는 근본적 이유는 한국의 교육시스템 전체가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고가 진정한 ‘일반’고가 되려면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이 무엇을 배울지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한다. ‘안내’나 ‘권유’는 많은 게 좋지만 ‘필수’는 적은 게 좋다.
모든 게 잘 되어간다
제자들과 함께 들린 인사동 어느 술집 그 집에도 멸치가 없었다 동우, 동옥, 경아, 지선 등등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멸치가 없군! 내가 말하자 동옥아 네가 나가 사와! 동우가 시키자 동옥이가 말없이 일어나 나갔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이상하군 동옥이가 강릉으로 간 거 아니야? 아니 멸치 사러 순천으로 갔나? 내가 말했지 순천은 그의 고향이다 한참 지나 동옥이가 들어온다 동옥아 너 강릉까지 갔다 온 거야? 누군가 물었지만 그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멸치를 한 주먹 꺼내놓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선생님 멸치 파는 가게가 없어 한참 헤매다 어느 술집엘 들렀어요 그 집엔 멸치가 있다는 거야요 그래서 맥주 한 병과 멸치를 달라고 했죠 맥주만 마시고 돌아올 때 멸치를 주머니에 넣고 왔어요 모두들 하하하 즐겁게 웃던 밤
13일
중세의 여러 대학의 기본 교과는 일반적으로 사과(산술, 음악, 기하, 천문학)와 삼학(문법, 논리학, 수사학)이었다. 종교 개혁 이후로 이들 교과는 유럽 각지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발전을 이루었고, 라틴어는 여전히 학문용 언어로 남았다. 18세기 이후 각 대학에서는 오로지 교육, 특히 교수직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의 교육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신학이나 법학, 의학만 가르쳤고 자연과학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예외였지만 수학은 대개 무시되었다. 수학 연구를 장려한 곳은 대학이 아니라 과학 아카데미였으며, 그중에서도 베를린,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가 유명하였다. 이 아카데미들은 런던 왕립협회와 같은 독립 기구가 아니라 국가의 통제를 받는 연구소였다.
영화의 가장 근본은 이미지의 연속이며 이미지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되는 것이라는 게 프램튼의 이론이었다. 그는 이것을 철학적 문제로 보았고 이미지를 내러티브대로 배열하는 것은 가능한 해결책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주 과학적, 수학적 개념을 영화 구성의 기반으로 두었다. <프린스 루퍼트 물방울(Prince Ruperts Drops)>는 과학 이론 중에 나오는 사물에서 딴 제목이다. 영화<초른의 보조정리(Zorns Lemma)>의 제목과 그 구성은 “초른의 보조정리”라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수학적 개념에서 왔다.
14일
아직 젊은 당신이 아마도 모르고 있을 이야기를 이제부터 해주겠소. 현실정치란 사람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들의 하찮은 소망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인심을 얻을 수는 있지요.
라인스도르프 백작이 현실정치를 표방하다. 울리히는 협회를 조성하다
사회운동에 오랫동안 힘써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올바른’ 정책을 가지고 있고 이를 ‘정치’라는 관문을 통해 실현하면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종종 ‘올바른’ 것들끼리 상충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동시에 청년 고용도 늘리고 싶지만, 임금 총액이 제한되어 있는 한 이 두 가지는 상충한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줄이면서 동시에 내수경기도 살리고 싶다. 최저임금은 올리면서 고용도 늘리고 싶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상충할 가능성이 크다. 제아무리 ‘교육적’으로 올바른 정책을 펴고 싶다고 할지라도 사교육 걱정, 불공정 걱정, 불평등 걱정과 상충하는 한 실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걱정들은 교육에 무지한 소수 정치인들의 행태가 아니다. 사교육·불공정·불평등 걱정은 광범위한 대중의 삶과 관심사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다.
달랑베르는 비천한 성장 배경을 딛고 얻은 높은 지위를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 처음에는 클레로와 경쟁했고 나중에는 다니엘 베르누이, 오일러와 겨루었다. 우선권을 놓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연구 발표를 매번 서둘렀기에 연구 의의와 중요성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 오일러는 우선권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다른 이들의 업적을 인정하는 데 소홀했고, 그 때문에 심각한 분노를 사기도 했다. 달랑베르로서도 분개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지만, 자신의 이론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대신 아무 소득도 없는 논쟁에 휘말려 힘만 낭비했다. 그가 내놓은 놀라운 아이디어도 오일러가 받아들여 적용하기 전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5일
[라그랑주는] 학교에서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의 책들을 읽으면서 특별히 재미있는 점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에드먼드 핼리가 그리스 수학에 비해 미적분학이 가지는 위대한 점을 논한 글을 읽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부터 라그랑주는 수학을 연구하기 시작해 급기야 19살의 나이에 토리노에 있는 왕립포병학교의 수학 교수에 임명될 정도로 대단한 학식을 쌓게 되었다.
수학에서, 급수(級數, 영어: series, ∑an)는 수열의 모든 항을 더한 것, 즉 수열의 합이다. 항의 개수가 유한한 유한급수(有限級數, 영어: finite series)와 항의 개수가 무한한 무한급수(無限級數, 영어: infinite series)로 분류된다. 무한급수의 경우, 항을 더해가면서 합이 어떤 값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급수인 수렴급수와 그렇지 않은 발산 급수로 분류된다.
수학에서, 수열(數列) 또는 열(列, sequence)은 수 또는 다른 대상의 순서 있는 나열이다.[1] 나열 순서를 생각해야 하고 중복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집합과 구분된다. 양의 홀수의 크기 순 나열 1, 3, 5, 7, ...은 수열의 예이다.
변분법은 수학의 한 분야로서 범함수의 최소, 최대를 찾는 방법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두 점을 연결하는 다양한 곡선들의 집합을 생각해 보자. 이들 중 가장 짧은 것, 즉 두 점 사이의 최단경로는 두 점을 연결한 직선이 된다. 직관적으로는 답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수학적인 엄밀성을 갖춰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 일정한 길이의 닫힌 곡선으로 만들 수 있는 도형을 생각해 보자. 무수히 많은 가능한 도형들 중 가장 넓이가 큰 것은 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증명을 위해 모든 가능한 도형들을 만들어 넓이를 비교해 볼 수는 없다.
범함수: 함수를 입력받아 스칼라(즉 숫자 하나)를 내어놓는 함수를 말한다.
18세기에는 유럽 전체가 과학 아카데미를 통해 천체역학에 관한 연구를 권장했으며 특정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면 종종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러한 연구가 항해술에 특별히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라그랑주는 프리드리히 대제로부터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 ‘유럽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이 ‘유럽 최고의 수학자’를 왕궁에 모시고 싶다는 의향을 전한 것이다. 알다시피 오일러는 이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는데, 라그랑주에게 그곳에서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라그랑주는 그 제안을 거절했으며, 1766년에 베를린 아카데미의 수리물리학 분과의 책임자가 되었다.
라그랑주는 예의 바른 행동과 사교적인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 성격으로 보자면 초조해하고 소심했으며, 논쟁을 싫어해서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했다고 주장해도 내버려 두었다.
달랑베르의 수학적 연구 결실은 뉴턴, 코시와 맥을 같이하는 실질적 유용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라그랑주는 젊은 시절부터 라이프니츠의 독창성을 떠올리게 하는 시적인 면이 종종 있었다.
라그랑주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일러에 대해서는 언제나 말을 삼갔다. 자신보다 연장자인 수학자 중에서 라그랑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오일러였다. 그 때문에 라그랑주는 자신의 연구를 오일러의 연구를 검토한 뒤에 그의 연구와 함께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석학을 앞에 두고서도 라그랑주는 선배 학자들의 연구를 비판할 뿐 아니라 종합하고 체계화하며 심화시키는 독창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이 생각해서 이상한 대답을 어린이가 했을 때, 왜 그런 계산을 했을까, 그 이유를 잘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때로는 어른이 배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이는 아직 정해진 틀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발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발상을 능숙하게 이용해서 가르치거나 발전시켜 주는 일이야말로 어른의 의무입니다.
니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확실한 지식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눈앞에 뭐가 있는지 확실해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했어. 어느 순간에는 말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거지! 나는 네가 언젠가는 뛰어난 일을 할 거라고 기대했어!
오늘날 정말 비열한 일들은 사람들이 행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 내버려두는 일 때문에 일어나고 있어. 그런 비열한 일들이 점점 자라서 공허의 구멍을 채워주고 있지.
어떤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어떤 것을 행하는 것보다 열배나 위험해! 알겠니?
클라리세가 울리히의 해를 요청하다
신은 세계를 절대 문자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계는 신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은유이고 비유이며 숙어이기 때문에 항상 당연히 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을 언어로 파악하지 못하며 신이 낸 수수께끼를 우리 스스로 풀어내야만 한다.
우리가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그것이 백년인지 천년인지 아니면 학창시절에서 노년까지의 기간인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여러 조건들이 불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뭔가 불만족스럽고 개별적으로 선택된 잘못된 해법들의 무질서한 이어짐이며 인류가 그 모든 조각들을 맞추는 법을 알아야만 완전하고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껏 부푼 생각들을 위해 철학이나 신학, 문학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큰 새장을 만들어주었는데 그 안에서 생각들은 각자 점점 더 알 수 없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번성해나갔고 그것은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그렇듯 번성중인 그들이 타인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쏟을 수 없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신문이 그렇듯이 일어난 일을 그때그때 적어두거나, 그 일이 자신의 직업이나 재산 문제에 관련된다는 확신이 없으면 역사에 대해 뭐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은퇴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어느 때가 되면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같은 것이 더없이 중요해진데다 전쟁조차도 그런 맥락 속에서야 기념할 만한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가까이서 관찰하면 마치 반만 밟고 다닐 만한 진흙길처럼 불명확하고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아주 이상하게도 결국에는 역사를 가로지르는 길이 보이는데 그 ‘역사의 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역사에는 저자가 없다. 역사는 중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진다. 사소한 원인들에서 말이다. 고딕 시대의 인간 또는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현대의 문명화된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식인종이 될 수도 있고 순수이성비판을 쓸 수도 있다. 또한 처한 상황에 따라 똑같은 신념과 특성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때 드러나는 외면 상의 큰 차이는 아주 작은 내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나 증권에 정통할수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역사를 많이 만들어내지 않을수록 기뻐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역사를 잘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사상들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사상들 사이에는 어떤 평형이, 힘의 균형이, 무장한 채로 평화를 이루는 순간들이 있어야 하며 그래서 어떤 사상들도 너무 많이 현실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고 그런 일이 벌어지다. 또는 왜 우리는 역사를 고안하지 못하는가?
서울대를 포함하여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를 통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렇게 되면 ‘1등 대학’이라는 서울대의 상징적 지위는 즉시 연고대로 넘어갈 것이다. 물론 대학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연구 지표는 서울대가 연고대보다 높을 것이고, 세계적인 대학 평가들은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하므로 서울대의 세계 대학 랭킹은 여전히 연고대보다 높을 것이다. 하지만 10개 거점 국립대를 통합하여 공동 선발할 경우 이 대학의 합격선은 연고대와 동등하거나 이를 능가하기 어렵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붙은 학부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서울대 폐지론’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학부생 3,000여 명을 선발하던 서울대의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고 10개 거점 국립대가 연합하여 3만4,000여 명을 공동 선발하는 가칭 ‘통합대’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정원이 합쳐서 약 8,000명인 연세대·고려대와 정원이 3만4,000명인 통합대에 동시에 합격한 학생은 어디를 선택할까?? 대체로 연세대·고려대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서울대가 대학원 중심으로 가지고 있는 연구 기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학부 입학자의 경우 통합대보다 연고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통합대에 투자를 집중하여 통합대의 교육 여건을 연고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어떻게 될까?? 학생 1인당 교육비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대를 제외한 9개 거점 국립대가 1,500~1,700만 원대이고 연고대가 3,000만 원 남짓이므로 9개 거점 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지금의 2배 가까이 증액해야 교육 여건이 동등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도 통합대는 네트워크 효과, 후광효과, 인서울효과에서 연고대에 뒤질 뿐만 아니라 입학정원이 연고대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에 합격선을 연고대 수준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통합대의 합격선은 연고대보다 낮을 것이고, 심지어 서성한보다 낮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통합대가 연고대와 서열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통합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현재의 2배 수준(연고대 수준)으로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아마도 현재의 3배 수준(서울대 수준) 정도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가 남는다. 통합대 정원이 3만4,000여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많은 학생은 여전히 서열화된 대학들 사이에서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합대 정원을 늘리면 연고대와의 서열 경쟁에서는 다시 불리해진다.
정부로서는 통합대에 투자를 집중하는 형편일 테니, 사립대에서 ‘등록금을 올려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나서면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 국립대(통합대)에 돈을 몰아주면서 사립대는 손만 빨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상위 사립대들은 통합대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공공성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등록금을 높이면서 고급화를 표방하고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결국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의 귀결은 미국식 대학 구조, 즉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일부 사립대들이 최상위 서열을 차지하고 그 아래에 주립대들이 위치하는 식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과거 서울대 학부가 차지했던 지위와 기능을 연고대가 차지하고, 서울 지역 최상위 사립대들이 아이비리그와 유사한 그룹을 이루는 결말이다.
결국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한국사회의 대입 경쟁을 완화하는 데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유일하게 효과가 있을 만한 점은, 9개 거점 국립대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비수도권 상위권 학생들이 상경하지 않고 자기 지역 거점 국립대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서울·수도권 학생들의 경쟁도 줄어들 수 있다. 내가 국립대 ‘통합’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서울대를 제외한 거점 국립대에 집중 지원하는 방안에 적극 찬성하는 것은 이것이 균형발전이나 공공성 강화라는 대의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대입 경쟁 감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경쟁의 감소가 학생·학부모에게 확실하게 체감될 만한 수준일지는 미지수다.
글쓰기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것, 보이지 않았던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과정에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든 실험적으로 써라. 그러나 독자가 그 실험의 일부가 되게끔 해라.
애매모호한 것들에 대해 써라. 그렇지만 애매모호하게 쓰지는 마라.
글의 일부를 모호하게 남겨 놓는 데에는 일말의 이점이 있다.
나폴레옹에 대해 무언가 독창적인 것을 쓰기는 어렵지만, 그의 조력자들에 대해 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20세기로부터 우리는 관찰자의 시선이 관찰의 대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당신이 하나의 전기biography를 쓴다면, 당신이 어디서 그 자료를 찾아냈는지, 베벌리 힐스의 그 여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당신이 공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따위의 이야기들을 모두 말해야만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제 시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공존한다. 시간선은 우리의 감정들에 의해 결정되는, 완전히 인위적인 것이다. 시간상의 연속은 사물들의 층, 과거와 현재를 달라붙어 있으며 공존하는 것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현재시제는 자연스레 희극으로 이끌린다. 과거시제는 이미 지나간 것이며 본질적으로 구슬픈 것이다.
화자 중에는 연대기 기록자라는 하나의 종species이 있다. 그는 냉담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보았다.
텍스트 속 등장인물이 놓여진 상태에 결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그는 풍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다', '그는 너무 취해서 이것 저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공간의 감각은 하나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 공간은 여러 장소들로부터 증류해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공간에 대해 서술하지 않으려면 아주 좋은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기후적인 조건은 스토리에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마라.
신체적 움직임을 제대로 쓰기는 굉장히,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부정확할지라도 독자에게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생략 부호를 사용할 수 있고, 일련의 동작들을 함축할 수도 있다. 고단할 정도로 하나하나를 서술할 필요는 없다.
'의미심장한 디테일'은 지루한 상황 속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예리하고, 무자비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서로 구분이 불가능한 쌍둥이 혹은 세쌍둥이의 사용은 으스스하고 불유쾌한 윤곽을 부여한다. 카프카는 그렇게 할 줄 안다.
독자는 소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매력을 느낀다. 디킨스가 그것을 창안했다. 에세이가 소설을 침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픽션에 있어서 '사실들'을 믿지 말아야 할 지도 모른다. 픽션이란, 종국에는, 환상일 뿐이다.
과장은 희극적 소재이다.
스토리 속에 명시되지 않은 병과 정신 질환들을 포함시키는 게 좋다. 시골은 알려지지 않은 정신병들로 가득 차 있다. 도시적인 환경에서와 달리, 그곳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이 바깥에 알려지지 않는다.
방언은 평범한 단어들을 색다르고, 이상하며 거슬려 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의에수님'이라고 쓰기.
특정한 분야들에는 독립적인 언어를 갖는 전문 용어들이 있다. 나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한 페이지를 30분 만에 번역할 수 있지만, 골프 장비들은! 정말 다른 이야기다. 세인즈버리(영국의 슈퍼마켓 프랜차이즈)의 매니저 둘이서 나누는 대화는 완전히 종류가 다르다.
문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책을 읽어라.
메인 도로에서 벗어나라.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칸트의 <비판>은 지루하지만 그의 우연적인 글들은 매력적이다.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것을 당신의 주머니 속에 쑤셔넣는 일에 대한 호색적 즐거움이 있어야만 한다.
일꾼들이 당신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라. 모든 일을 당신 혼자서 해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그들이 제공하는 것들로부터 거침없이 훔쳐내라.
당신이 혼자 만들어내는 것들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알려주는 것들이 무조건 더 놀라울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이 훔치라고 밖에는 조언해줄 수 없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작은 조각들을 위한 노트를 가지고 다니되, 누가 말했는지는 적어놓지 마라. 그리고 나서 몇 년 쯤 지난 후에 그 노트를 다시 꺼내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 내용물을 당신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
이상하고 유창한 인용구들을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 말고, 스토리 속에 집어넣어라. 인용구들은 효모라든가 어떤... 추가할 수 있는 재료와도 같다.
오래된 백과사전들을 뒤져라. 거기에는 다른 시선이 있다. 그것들은 완전하고 체계적인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 이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완전히 무작위로 수집된 것들의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의 글, 하나의 박편을 통해 쓰는 것은 아주 좋다. 그것으로부터 당신의 글을 써내고 하나의 팔림세스트(원본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 글을 쓴 고대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졌는지 알릴 필요가 없다.
꽉 짜인 구조는 가능성을 개방시킨다. 하나의 패턴, 기존의 모델이나 하부 장르를 고른 뒤, 그것에 따라 써라. 글쓰기에 있어서 제한은 자유로움을 준다.
자세히 관찰하면, 어떤 작가이든지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은 당신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그들에게서 결함을 더 잘 찾아내게 될수록, 당신은 그 결함을 더 능숙히 피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이 '시적으로' 쓰려 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운율이 있는 산문은 쓰기 쉽다. 그것은 당신을 이끌어 준다. 얼마 뒤 그것은 지루해진다.
나중에 올 문장들을 위한 밑밥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문장은 피해라.
'그리고'를 최대한 적게 사용해라. 다양한 접속사를 시도해 볼 것.
너무 많이 탈고하지 마라. 기운 헝겊처럼 보일 것이다.
많은 것들은 단순히 벽장에 한동안 넣어놓기만 하면 저절로 해결된다.
누구의 말도 듣지 마라. 내 말도. 그건 치명적이다.
최고의 학자들 중에는 웨일스 출신이 많다. 그들은 일상적인 것들과 경건한 것들을 뒤섞어놓는 언어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하기 가장 쉬운건, 중산층들에겐, 미국에선, 특히 젋은 사람들에겐, 대부분의 것들은 자주, 물질적이고, 매우 편리하단 점입니다. 또한 자주 커다란 슬픔과 공허도 동반하죠. 그런 것에 대해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가 그 책 (*무한한 재미, infinite jest)을 쓰기 시작한 뒤로 몇몇 사람들이,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제가 알고 지내던 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자살했어요. 그리고 여기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명확해져 갔죠.
제 책에선, 제가 기억하기로는, 마약 중독자가 된 캐릭터들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중독(addict)이라는 영어의 어원은 라틴어 'addicere'인데, 종교적인 헌신을 의미하거든요. 그건 초기 수도사들의 특징이었죠. 그래서 제 책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뭔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진실한걸 수행하죠. 우리 모두는 뭔가를 바라거나, 또는 종교적인 충동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스스로를 무에 내맡긴다는 신화는 단지 우리 자신을 뭔가 좀 아닌 것에 노출되게끔 방치할 뿐이에요.
저는 줄을 타고 빌딩을 내려와 최루탄을 던지는 사람들은 몰라요. 제가 알기로 의미있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많이 소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시각을 텔레비전에서 얻지 않아요. 그리고 선거를 위해 4,5시간씩 조사를 하죠, 광고를 보고 가기 보다는요. 문제는 미국에서는, 다들 저항을 뭔가 매우 섹시한걸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액션과 무력을 동반하는 보기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에요. 제 추측은 여기서 모든걸 의미있게 바꿀 저항의 형태는 매우 조용한 개인적인 것이 될 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보기에 그렇게 흥미롭지 않을거에요. 오히려 덜 흥미롭기를 원합니다. 폭력은 흥미롭거든요. 그리고 끔찍한 붕괴나 스캔들, 무력의 과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세계에서 다른 운명에 처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악마화 하는 것, 그런 것들은 흥미로워요. 의자에 앉아서 정말로 이게 뭘까 생각하고, 내가 행하는 것이 세계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와 어떻게 관련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흥미롭지 않아요. 그건 진실에 매우 가깝죠. 하지만 그게 이해될 것 같지는 않네요.
16일
최근 한국의 교육 담론에서는 구조 개혁과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위험한 경향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 번째 위험한 경향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파산선고된 대안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국립대 위주 정책으로는 한국의 교육 경쟁을 완화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것이 사립대의 격렬한 반작용을 초래할 것임을 간과한 소치다. 두 번째 위험한 경향은 대중의 욕망을 힐난하며 교육이 계층 상승 도구가 되는 것을 비난하는 태도다. 즉 구조가 아니라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일시적 화풀이는 될지 몰라도 무력하고 허망한 담론이다.
세 번째 위험한 경향은 교육 경쟁의 근본 원인을 대학 서열이 아닌 노동시장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대학 간 격차보다 더 복합적인 원인이 있어서 완화하기가 더욱 어렵다. 물론 노동시장도 교육 경쟁에 영향을 주지만 이는 주로 심리적·간접적 영향이다. 의대·약대·교대 등 일부 전공을 제외하면 노동시장 상황이 대입 경쟁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따라서 노동시장 개선과는 별개로 대학 시스템을 개혁해 대입 경쟁을 상당 수준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대입 경쟁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보와 보수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학부모들의 노후 대비를 위해서 대입 경쟁을 줄여야 한다. 교육 경쟁에 쏟아붓던 사교육비를 절약해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기대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국민연금으로는 노후 대비가 충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약속한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2050년대에 고갈될 것이고, 고갈 이후 청장년 세대가 내는 연금보험료로 연금을 지급하기에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구조가 절망적인 수준이다. 지금은 부양자 대 피부양자 비율이 100:40이지만 2050년대에는 100:100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를 예방하고 노후 대비를 든든히 하려면 교육 경쟁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구조 개혁이 필수적이다. 나는 이 논리로 심지어 강남 사람들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남 사람들은 다 부자이고 노후 대비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내가 보기에 강남 거주민 중에서 노후 대비가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1/3도 되지 않는다.
둘째, 수월성 교육과 교육 선진화를 위해서 대입 경쟁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수월성(탁월함, excellence)을 경쟁과 등치한다. 그러다보니 경쟁이 줄어들면 수월성 교육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쟁이 한국보다 훨씬 적으면서도 학력 수준이 높은 사례들(특히 핀란드)로 반박된다. 또 한국에서는 대입 경쟁 때문에 고교학점제, 영어 말하기-듣기 평가(NEAT 등), 대학 학점 선이수(AP), 논술형 입시 등을 도입하거나 활성화하기 어려움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심한 대입 경쟁이 수월성 교육에 악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접하다보면 예를 들어 고급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할 만한 학생들이 겨우 고3 수준의 초보적(!) 이론과 문제 풀이에 몇 년씩 투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국가적 낭비일 뿐이다.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영재학교라는 별도 트랙을 만들었지만 이것이 또 다른 경쟁과 사교육을 초래한다. 대학 시스템을 개혁해 대입 경쟁을 줄인다는 전제하에 월반제, 과목별 심화반(honor class), 중고 통합 무학년 학점제, 대학 학점 선이수제 등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기존의 교육시스템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시행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고등학교까지의 수월성만 이야기하고 정작 대학 교육의 수월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의 대학 교육은 OECD 평균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몇 년 동안 4차산업혁명 이야기가 무성하지만 이를 위해 대학 교육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는 다들 꿀 먹은 벙어리다. ‘포용적 상향평준화’는 획기적인 재정 투자와 대학 교육에 대한 평가체계를 정비해 대학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셋째,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 대입 경쟁을 줄여야 한다. 최근 한국의 출산율이 1.0보다 낮아져 전 세계 꼴찌가 되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이미 OECD 기준으로 한국은 지난 15년간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였다. 한국의 출산율이 ‘초저출산’의 경계로 삼는 1.3 이하로 떨어진 것은 무려 2001년부터였다. 이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는 경제성장은 물론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국가 근간을 이루는 제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결혼율이 낮아진 것은 주로 소득과 고용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소득 상층의 결혼율은 거의 낮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략 1980년대까지 자산과 소득이 상당히 평등한 편이었던 한국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극화’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한국인은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고, 결혼한다 해도 출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적응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노동-복지-교육-보육-주거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결혼을 안 하는 이유를 설문해보면 소득과 고용 문제를 첫손으로 꼽고, 출산을 안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교육 및 보육 부담을 우선으로 꼽는다.
음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종소리나 그와 유사한 음들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는 상태라면, 종소리를 소재로 한 음악을 연주해본들 그 음은 주위 환경에 동화돼버릴 것이다.
진정한 정적은 일상생활 안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히 특수한 환경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음악에서의 무음無音의 의미, 혹은 점차 약해지다 결국 사라져가는(정지돼가는) 음이 가지는 적극적인 의미를 환기시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적 자체가 최강음最强音을 뛰어넘는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정적의 아름다움에 맞서 그것과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태어난다. 따라서 음악을 만든다는 행위는 정적의 아름다움을 이겨내는 과정, 즉 음을 소재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어떤 교향곡을 감상할 경우, 그 연주가 완결됐을 때 비로소 듣는 사람은 그 교향곡의 전체 상을 묘사할 수 있다. 음악을 감상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최고의 시간은 연주가 끝난 바로 그 순간, 요컨대 최초의 정적이 찾아온 순간이다.
음악의 소재가 되는 음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에 있는 모든 음이라 해도 무방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나 천둥소리, 세찬 비바람 소리, 혹은 포성이나 로켓 발사음조차 의식적으로 사용했다면 모두 음악의 소재로서 유효하다.
음은 높이, 길이, 강약, 음색이라는 네 가지 기본적 속성을 가진다. 이런 것들이 정해지면 하나의 특정한 음이 규정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리적인 음의 높낮이와 우리가 받는 인상이 상이하다는 현상은 음악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 전체 음역보다 피아노가 가진 음역 쪽이 더 넓지만, 오케스트라 음악 쪽이 훨씬 음역이 넓을 거라고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애당초 진동수가 많으냐 적으냐 하는 물리적 현상을 높고 낮다는 말로 바꿔 말하는 것 자체가 인상에 근거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몽주는 시간을 쪼개서 가정도 돌보고 에콜 폴리테크니크, 프랑스 연구소 및 상원에서의 역할도 담당해 냈다. 특히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는 강의도 계속했고 학생들의 실력 향상 여부도 지속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무렵의 라플라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후배가 순수역학 분야에서 자신을 능가한다는 사실에 달랑베르가 상당히 분개했던 것은 확실하다. 다른 학문에도 광범위한 지식이 있긴 했지만 라플라스는 아카데미 내에서 모든 것을 도맡아 발표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이전부터 오만하다는 평판이 자자했고, 동료 회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파리에 들렀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라플라스 박사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는 위대하면서도 상냥한 기하학자였지만 굉장히 꼼꼼하고 조급했으며 남의 말은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았다.”
1790년 5월에 혁명 정부가 아카데미에 도량형 개혁 임무를 맡기자, 라플라스는 라그랑주, 몽주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에 소속되어 일하게 되었다. (...) 길이의 단위를 미터라고 이름 붙인 것도 라플라스가 제안한 것이다.
라플라스:
대수적 해석을 하다 보면 추상적인 조합에 몰두해서 주요 연구 목표를 금세 잊어버리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원래 목표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해석 과정에 완전히 몰두하면, 이 방법의 일반성에 도달하게 되고 종종 기하학적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기계적인 과정을 거친 추론으로 변환시키면 이점이 아주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중에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고 나서 이렇게 술회했다. “라플라스는 수학자로서는 최고였지만 행정가로서는 최악이라는 사실이 금세 드러났다.
푸아송의 라플라스 장례식 추도사:
라플라스에게는 수학적 해석은 다양한 응용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기에 언제나 수학적 방법을 해당 문제의 성격에 맞게끔 변용했습니다. 아마 후손들은 한 명을 위대한 수학자로, 다른 한 명을 가장 진보된 수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연 지식을 추구한 위대한 과학자로 여길 것입니다.
17일
몇몇 아주 뛰어난 예외를 제외하고 현실세계의 성공한 정치적 창안자들은 하나같이 싸구려 극작품의 작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정신과 새로움이 부족해 지루하기 그지없고, 그래서 결국 우리를 무력하게 잠들게 하며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일상적인 생각에서, 곧 생각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오며 그래서 생각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삶도 유토피아적이라는 주장
그러므로 이제 가정은 경험과 관련되었던 비중으로 보아 경험만큼이나 현실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가정은 실현적이어야 한다. 이제 이상하고 고립된 경험들의 시기가 지나간 것과 같이 유동적이고 일관성 없는 가정들의 시대도 끝났다. 따라서 이제부터 가정은 종합적이어야 한다.
모든 새로운 진실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생성되며, 모든 새로운 경험은 즉각적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성된다.
물리과학의 군림하에서는 현실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기초들을 단번에 지적할 수 있는 현상의 직관들이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물리과학의 군림하에서는, 경험적임 연구방법에 근본적인 범주를 부과시키려는 한정적이면서 절대적인 합리주의적 신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방법적 독창성을 밝히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이론과 경험의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합리적인 방법이건 혹은 경험적인 방법이건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의 가치를 계속 수호하는 데 단정적일 수 없다. 그 까닭은 가장 독특한 방법일지라도 그 방법의 대상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 풍요로움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과학적 세계는 검증(확인)의 세계이다. 주관을 초월해서 그리고 즉각적인 객관을 넘어서 현대 과학은 경험적 설계 위에 그 기초를 확립한다. 그러므로 과학적 사고에서의 주관을 통한 객관에 대한 숙고는 항상 경험적 설계의 형태를 취한다.
사실상, 우리에게 한 현상이 연관된 복잡성으로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다양한 방법을 써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객관성은 사회적 특징들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
과학적 관찰은 논쟁적인 관찰이다. 과학적 관찰은 선행된 주장, 선행된 구조, 관찰의 설계들을 파기하거나 확인한다.
과거에 있었던 과학정신의 원시적 노력은 세계의 이미지에 대해서 이성으로 세계를 구성했었으나, 현대과학의 정신적 활동은 이성의 이미지에 의해서 세계를 구성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과학철학은 존재를 일체성의 표현으로 늘 생각해왔던 우리의 믿음을 단절시키고, 존재를 일체성의 표현으로 늘 생각해왔던 우리의 믿음을 단절시키고, 존재를 일체성이 아닌 보충적인 특징으로 보도록 한다. 사실상, 그 자체로서의 존재가 정신과 교체를 가져야 하는 것이라면—행동의 영역과 공간과의 관계 사이의 물질적인 면에서조차—일체성이란 상정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모순의 형이상학보다는 덜 격렬한 보충적 변증법의 존재론을 설립하는 것이 보다 더 적합하다.
아무리 박식한 학자일지라도, 내재적 일체성이나 외재적 장황성이나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즉각적으로 대치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자들의 태도를 가지고는 더 이상 합리주의자도 현실주의자도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아무리 박식한 학자일지라도 존재를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완벽하게 감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식론자는 경험과 이성의 비교적 유동적인 종합성을 고려해야 한다.
과학철학의 근본적인 복합성
황금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이들에 비해 르장드르는 덜 알려진 인물이다. 푸아송은 그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료들은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연구 업적 말고는 언급할 것이 없다고 자주 말했다. 정말로 연구 업적이 삶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르장드르는 출세에 관심이 없었고 라그랑주, 라플라스 및 몽주와 달리 귀족의 지위를 받지도 못했지만 업적이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았다.
수학자들 중에 행정임무를 떠맡을 능력과 자질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푸리에는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푸리에는 그 후 잠시 개교했던 에콜 노르말에 입학했다. 그곳의 혁신적인 교육 방식은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라그랑주, 라플라스 및 몽주 등을 비롯한 당대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들을 만나는 기회도 생겼다. 자부심이 강한 라플라스가 행정상의 실수로 교수가 아니라 학생으로 등록되자 푸리에는 무척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그가 자주 말했듯이 자연에 대한 심오한 연구는 수학적 발견의 가장 비옥한 원천이지만 그가 알아낸 수학 이론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었다.
음색에는 높이(Hz), 길이(초), 세기(dB)처럼 그 성질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는 단위가 없다. 어둡다거나 밝다거나 찬란하다거나 광택이 없다거나 탁하다거나 등등의 시각적 형용사, 딱딱하다거나 부드럽다는 등의 촉각적 표현, 달콤하다는 등의 미각적 표현까지 동원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특정 상황이나 실천적 경험과 분리되어 있는 절대적인 정치적 독단들을 불신했다. 버크는 그런 독단들을 “추상적 개념들”이라 일컬었지만 인간 사회의 행동을 지배하는 영속적 진실들의 존재는 믿었다.
보수주의자는 재산 그 자체를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재산을 더더욱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보다 재산이 없으면 모든 남녀가 전지전능한 정부의 자비에 맡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는 당대의 성마른 의견을 넘어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6이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the democracy of the dead”라 부른, 다시 말해 우리 시대보다 앞서 살았던 현명한 남성과 여성들의 사려 깊은 견해나 인류의 경험을 추종하라고 호소한다.
보수주의자는 이상향을 만들어주겠다는 모든 계획들을 불신한다. 그는 법률을 제정하는 힘으로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을 견딜 만하게 만들겠다 희망을 품을 순 있으나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주제넘은 확신과 열정으로 이뤄진 혁신은 엄청난 재난7이 되기도 한다.
18일
오늘날 교전중인 사상그룹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지원부대와 지적인 보급품을 자체 병참기지뿐이 아니라 적진의 병참에서도 끌어온다네. 그들의 전방은 계속 바뀌고 갑자기 별 이유도 없이 전방을 되돌려 아군의 병참기지에 공격을 퍼붓지. 사상들은 끊임없이 이쪽저쪽을 넘나들고 그래서 한번은 이쪽에서, 다음번에는 저쪽에서 전투가 이어진다네. 한마디로 거기엔 질서있는 군사계획도, 군사분계선도 없으며—비록 나조차도 믿을 수 없긴 하지만!—우리 군사 지도자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깡그리 엉망진창이라네.
뭐든지 가치를 지니거나 이름을 얻으려면 반복될 수 있어야 하고 여러 표본으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 신과 관련해 학문이 겪는 곤란함은 신이 창조 때에 단 한번만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지요. 그때에는 숙련된 관찰자도 없을 때인데 말입니다.
어떤 선구적인 사상가가 하나의 사상을 제출하자마자 그 사상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배치과정을 겪죠. 처음에는 숭배자들이 그의 사유 중 자신들에게 맞는 큰 덩어리 하나를 골라내 마치 여우들이 사냥감을 찢듯이 갈기갈기 찢어버립니다. 그 다음에 반대자들이 나서 약한 관절들을 파괴해버리면 결국에는 친구든 적이든 서로 마음껏 써먹을 수 있는 아포리즘만 남게 마련이죠. 결국 일반적인 모호함만 가득하지요. ‘아니오’가 붙지 않은 ‘예’는 없는 것입니다.
슈툼 장군이 시민정신에 질서를 부여하려 시도하다
평행선에서 야기된 한 개념의 문제는 데카르트 인식론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그 개념이 가진 내재적 특징에 의해서 판단하는 단순성을 초월해서 그 개념과 특수한 한 경우와의 관계 내에서 포착된 그 개념의 외재적•관련적 속성과 그 개념 적용의 현실성 등을 고려해서 이해해야 한다.
선에 대한 현실성은 다양한 면에 속하는 선들을 앎으로써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이 이러한 사고의 진수는 이러한 사고의 확대 적용을 허용하는 변형의 가능성들에 의해서 밝혀진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념을 매우 다양하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하나의 같은 것을 찾게 되며, 이러한 방법이 곧 물질주의적 현실성에 대한 정의의 근간이 된다.
수학적 현실주의의 정도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 개념들을 얼마 만큼 확대 적용시켰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측지선은 직선보다 더 현실성이 있는 것이다.
측지선(測地線, geodesic) 또는 지름길이란 직선의 개념을 굽은 공간으로 일반화한 것이다.
관계란 현실은 결코 원초적 물체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하나의 물체와 또다른 물체 사이에서 얻어진 관계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든 일관성의 현실화는 수많은 관계들이 그 보충을 요구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우리는 명백하게 주어진 현실에서보다 감추어진 현실에서 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주베:
하나의 공리를 구성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과학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이용하고 있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실상 이렇게 이미 쓰여지고 알려진 사실, 즉 공리에 근거해서만이 우리는 하나의 다른 공리를 세울 수 있을 뿐이다.
과거에는 수학이 한 손으로 연주하는 선율에 의해서 반주가 결정되었으니 현대에서의 수학은 두 손으로 연주하는 선율에 의해서 반주가 결정된다고 하겠다.
주베:
한 기하학의 공리는 그것이 진실로 한 군(집합과 연산의 결합)에 정확한 표상이 될 때에 한해서만 완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성을 다루는 군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이성은 완결되지 못하였거나 혹은 아마도 이미 모순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곤세트의 연구를 세밀히 추적하면 경험화란 과거 지식의 구성에 의해서 좌우되며, 추상화란 과거의 구체적인 지식들의 일치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경험의 가능성이란 그러므로 공리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리들을 다양화했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을 재음미함으로써 우리는 물리-수학적 문화에 접근하게 된다.
기하학적 철학의 딜레마들
늘 그녀(소피 제르맹)는 누가 처음 아이디어를 내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자기의 평판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에 결실을 안겨 주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명성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사소한 나의 인상이라며 비웃었고 또한 부르주아의 허영이라고 비꼬듯이 말했습니다.
독일의 수학은 실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로부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두뇌는 참으로 뛰어났고 관심사도 넓었지만, 앞에서 소피 제르맹과의 편지 교환에서 보았듯이 혼자 연구하기를 좋아했으며 다른 수학자들과 달리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 번째 아내가 죽은 후 가우스는 점점 더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 후의 우울한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만나러 오면 가우스는 청춘 시절 이야기만 하곤 했다. 사람들이 수학의 새로운 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말을 잘라 버리고 자신은 오래전부터 알던 거라고 우기기도 했다. 사후에 가우스의 노트를 살펴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다 맞는 말은 아니었지만 가우스의 말은 대부분 진실이었음이 드러났다.
가우스는 형식적인 교육을 싫어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자신이 만든 소모임에서는 젊은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등 기존의 소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소모임에 참가하는 수학자 중에는 가우스가 후견인 역할을 했던 아이젠슈타인이라는 재능 있는 수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우스는 비탄에 잠겼다. 그 말고도 리하르트 데데킨트, 요한 리스팅, 아우구스트 뫼비우스, 베른하르트 리만, 그리고 카를 폰 슈타우트 등이 있었다.
학자로 지내는 내내 수리천문학의 기본 이론에 관해 강의했을 뿐 자신의 연구는 가르치지 않았다.
역사서를 즐겨 읽었으며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소설을 좋아했다. 가우스는 유머 감각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뉴턴과 마찬가지로 가우스는 논쟁을 싫어했고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발표하기를 꺼렸다.
가우스:
고급 수학에서는 관심이 가는 연구 대상인 여러 진리들을 서로 훌륭하게 연결시키는 통찰력이야말로 종종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진리에 대한 새로운 증명도 진리의 발견만큼이나 중요하다.
오일러나 코시 같은 저명한 수학자를 얕보려는 뜻은 아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빛나는 연구 성과에 스스로 도취되고 연구 결과가 지닌 흥미로운 점에 너무나 매료되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논리적 질서를 갖추도록 정리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는 직관적인 느낌만으로 진리라고 여겨 엄밀한 증명을 게을리했다. 하지만 가우스는 달랐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진실인 것은 가우스의 연구 내용이 논리적으로 너무나 정밀하고 완벽했기에 다른 이들로부터 모호하다는 불필요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19일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일반적인 천문학에서처럼 세계의 현상에 관한 연구로부터 상대성 이론이 출발한 것은 아니다. 상대성 이론은 본래의 개념에 대한 심오한 숙고, 명백한 개념에 대한 의심 그리고 간단한 개념들의 기능적 이중화를 통해서 생겨났다.
::현상 관찰이 아닌 기존 연구 결과들에 대한 연구에서 상대성 이론이 탄생했다는 말. 필드워크를 생략하고 기존 인류학 연구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레비-스트로스가 떠오른다. ‘개념들의 기능적 이중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상대성 이론은 마치 로바체브스키가 유클리드 평행선 개념의 원초적 사고를 공박했던 것과 같이, 동시성 개념의 원초적 사고를 공박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리를 어떻게 해서 탄생했다는지, 또 상대성 이론이 공박했다는 동시성 개념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동시성의 간단한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구성됨으로써, 즉 그 개념과 통합하는 다른 개념들과의 구성 내에서의 그 역할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매우 기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러한 개념은 인간의 이성에서나 경험에서나 그 기반을 취할 수가 없다.
::’동시성’이란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통합했을 때 맡는 역할로 이해될 수 있다는 뜻. 즉 외따로 파악될 수 없다는 뜻. 뒤에 따로 인용한 “이러한 개념은 인간의 이성에서나 경험에서나 그 기반을 취할 수가 없다”는 말은 별개의 이야기. 다른 개념과 통합돼 이해/외따로 이해 쌍과 인간 이성이나 경험에서 기반을 취할 수 있음/없음 쌍은 총 4개의 경우의 수를 갖는다.
현실주의자들은 장소의 개념이 가지는 단순성, 명백성 및 직접성에 의거해 전자가 있는 곳에서 전자를 찾을 것이라고 헛되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의 지지자들은 우리에게 소립자 물체의 연구는 매우 미묘한 연구로서, 우리가 소립자의 위치를 측정하자마자 그것은 그 장소를 옮긴다는 점에 주목하도록 한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실험이 곧 물체의 존재에 대한 정의와 동시에 물체임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의 정의는 실험에서 이루어진다.
::양자와 소립자의 관계가 궁금해 찾아봤다. 비슷하게 쓰이는데 양자는 에너지의 최소 단위이고 소립자는 물질 또는 장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이루는 작은 입자를 통칭한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구분인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양자 역학 공부할 때 더 찾아봐야겠다.
::트윈픽스 속 장 르노가 죽어가며 쿠퍼에게 했던 말: 당신이 오기 전까진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당신이 오고서부터 계속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쿠퍼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러 온 것임에도, 쿠퍼가 온 이후에도 또 다른 사건들이 계속 발생한다. 원래 해결하려던 사건도 쿠퍼의 의도가 아닌 이상한 이유에 의해 해결되고. 또 쿠퍼는 사건을 해결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FBI 요원 자격정지가 되었음에도 지역 보안관의 부관까지 해가며 트윈픽스를 떠나지 않는다.) 트윈픽스 마을과 쿠퍼의 관계는 양자 역학과 얼마나 관계를 갖는가. 또 양자 역학 이후의 소설 창작에 관한 제발트의 말이 떠오른다. “20세기로부터 우리는 관찰자의 시선이 관찰의 대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당신이 하나의 전기biography를 쓴다면, 당신이 어디서 그 자료를 찾아냈는지, 베벌리 힐스의 그 여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당신이 공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따위의 이야기들을 모두 말해야만 한다.” 고다르도. “조이스에서는 글쓰기 자체의 신비가 소설의 일부가 된다. 관찰자와 우주는 동일한 우주의 한 부분이다. (...) 소립자들의 위치는 알 수 있지만, 그것들의 속도는 알 수 없다. 혹은 속도는 알 수 있으되, 소립자들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찰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묘사하는 사람은 묘사의 한 부분이다.
페데리고 앙리크:
현대 물리학은 고전 역학에서 한 것처럼 더 명확한 검증을 제공하는 대신, 오히려 원리들을 고침으로써 그 명확성을 유도한다.
::구체적인 실례가 궁금하다. 명확성을 위해 원리를 고치는 예.
움직이는 물체의 질량은 그 속도에 대한 기준 없이는 그 명확성을 밝힐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속도의 개념도 점차 그에 수반적인 질량의 개념과 결합되어 사용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운동역학적 순간 그 자체는 매우 독특한 순간에 불과하다. (...) 이렇게 많은 어려운 속에서 보어는 속도의 개념에 관한 모든 것들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속도에 관한 개념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만 명백할 뿐이다.
::질량과 속도 모두 서로를 조건으로 달지 않고 독립적으로 논할 수 없다는 말.
모호성의 징후를 가져오는 것은 현실이지 결코 지식이 아니다.
랑지뱅은 텐서계산이 물리학 그 자체보다 물리학을 더 잘 알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텐서계산은 상대성이론의 진실한 심리적 틀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현미경이 미생물학을 창조했던 것과 같이, 수학적 표현이 현대 물리학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수학적 표현 도구의 숙달 없이는 새로운 지식들도 없다.
::텐서계산: 벡터 계산을 단순화하기 위해 같은 성질의 여러 벡터를 한 행렬 안에 표기하고 그것을 단순화하여 표기한 것으로 보면 된다.
::역시 현상에 대한 직접적 관찰에서 출발하는 과학 발전이 아닌 다른 경로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이다. 선행 연구에 대한 재고찰로부터 탄생한 현대 물리학.
수학의 기원 이전에는, 물리학자들은 현실의 풍부한 예들을 통해서 개념들을 일반화시켰으며, 따라서 그 시대의 사고는 완성된 경험들의 요약에 불과했다. 그러나 새로운 상대성 사고에 의하면, 단 하나의 수학적 상징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게 되고, 이것이 또한 수천의 감추어진 은밀한 현실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제 사고는 경험들을 현실화시키는 계획이다.
::”사고는 경험들을 현실화시키는 계획”이란 표현이 묘하다. 잘 이해가 안 간다. 결국은 이전 시대와 달리 현대 물리학은 현상 관찰로부터가 아니라 이미 정리된 수학적 상징으로부터 발전했다는 얘기인데, 그게 “경험들을 현실화시킨다”라? 요약에서 현실화로의 발전? 현실화라는 말을 잘 살펴봐야겠다.
수학자의 판단 하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판정된 것은, 물리학자에 의해서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가능성이라는 것은 곧 존재와 같은 뜻이 된다.
환상적 용어들(행렬 계산 같은 용어들)이 오히려 사고의 필요불가결한 좋고도 아름다운 디딤돌이 된다. 이러한 용어들의 중재 없이는 과학적 사고는 마치 경험적 지식의 단순한 나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상적 용어는 우리를 이상주의적 관계로 이끌어가고, 이러한 용어가 현대 과학에서 합리적인 일체성의 아주 중요한 단면을 이루는, 결과에서 인과로의 대치를 완성시켜 준다. 따라서 과학적 사고는 두드러진 어떤 특징에 대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실험적 가능성들을 생각해야 한다.
::”결과에서 인과로의 대치”와 “경험의 요약에서 현실화”로의 이행. 결과와 인과의 차이는? “단순한 나열”과 “합리적 일체성”의 차이. 이 차이는 “현실적인 경험에 그저 만족하는 것”과 “모든 실험적 가능성”을 사고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뉴톤적 과학과 현대 물리학과의 인식론적 관계들의 일반적인 견지에서 볼 때 우리는 새로운 현대 사고, 즉 상대성 이론은 과거의 학문이 발전한 결과가 아니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오히려 현대적 사고에 의해 과거의 과학적 사고가 에워싸이게 되었다고 봄이 옳다. 이렇게 정신적 번영은 계속적인 사고의 접합으로써 이루어진다.
::상대성 이론과 뉴턴 역학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는 주장. 같은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시각의 차이. 따라서 에워싸인다는 표현이 사용될 수 있다. “계속적인 접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비뉴톤 역학
푸아송은 결코 한 번에 두 가지 일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하다가 현재 하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연구 과제가 마음 속에 떠오르면 작은 공책에 관련 내용을 몇 글자 적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과학적인 주제를 그와 논의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논문을 마치고 나면, 일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차원에서, 연구 주제를 적어 둔 공책을 보고 다음 주제를 고르는 습관이 있다능 사실을 압니다. 이런 식으로 연구의 성공 여부를 미리 내다보고 주제에 몰두하기 전에 여유를 갖는 습관은 그가 통찰력과 체계적 방법론을 겸비한 인물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나도 몇 가지 관심 주제들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분류해야겠다. 예컨대 코미디의 여러 양상들 및 그 분석들, 수학이나 과학을 예술에서 활용하는 방식 혹은 과학 이론의 발전이 예술에 미친 영향. 이를테면 양자역학 이후로 관찰자와 사건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조이스, 제발트 등등. 그리고 현시점의 첨단 과학의 연구 성과는? 별개로 수학을 예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도 궁금하다. 홀리스 프램튼이나 쿠르트 크렌 같은 이들의. 그 예들에서 출발해 수학을 공부하는 것도 좋겠다. 미리 교과 과정 순으로 공부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레카. 포는 당대 과학의 최신 성과와 자신의 창작을 어떻게 연결시켰는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수학자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비록 장점이 거의 없더라도 변환을 이루어 내는 능력이다. 푸아송은 그 능력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 하지만 과학자로 기억되려면 자기의 사상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는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만 빌려 왔다. 게다가 두 가지 상반된 사상 중 하나를 골라야 할 상황일 때는 잘 파악하여 뛰어난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도 대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보수주의자는 대중적 판단이 실수에 실수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한 판단은 신의 뜻과 전혀 다르다. 정치에서 구현하려는 진실의 진정한 근원을 우리는 오직 불완전하게 그리고 희미하게 인식하며, 인간의 법으로 모방하려 시도할 뿐이다.
인간의 본성을 그릇되게 낙관적으로 보는 개념이 있다. 그런 개념에 근거해 지상에 인공적인 낙원이 수립된다는 가설은 인간을 광기의 지배라는 멸망으로 이끌고 만다. 세계 정부라는 애매한 계획들은 대개 이런 어리석음이란 질병에 걸렸다는 징후다. 완벽한 시대, 완벽한 사회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사실을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안다. 인류의 모든 정치적 고안물들은 과거에 이미 모두 시도된 바 있었으나 그 무엇도 완벽하고 만족스럽게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의 현 사회를 비판하는 종교적 사상가는 어떤 시기가 모두 하얗기만 했고 또 어떤 시기는 모두 검기만 했다고 주장할 이유가 없다. 그는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신중하게 선별한다면 비록 우리 사회를 완벽하게 만들진 못해도 많이 개선하리라는 희망은 가능하다.
우리는 이상향에 도달할 만큼 빠르게 달리지 못하고, 설사 도달한다 해도 곧 그 이상향을 증오하게 된다. 이상향은 끝없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진정한 요소는 전투 그 자체다.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투쟁, 악에 맞서 싸우며 올바름을 갈망하는 투쟁 말이다. 그 투쟁이 종말을 고한다면 우리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자멸해버리고 만다. 천사가 아니라는 그 본성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족하며 휴식하려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종교적 보수주의자도 이상향을 지향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오직 하나의 의미에서만 그렇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믿는 지도자로서 그는 인간이 악에 맞서 싸우고, 인간 본성과 문명의 유산을 지키며, 올바름을 위해 투쟁하도록 지상에 불려 왔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대를 불문하고 보수주의자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몽테뉴는 책에 밑줄을 긋고,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책을 다 읽은 날짜와 그 책에 대한 자신의 평을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의 문장을 발췌하여 옮겨 적는 것 위주로 독서 노트를 썼는데, 차츰 생각이나 질문을 쓰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저자가 쓴 내용에 대한 제 해석을 적었고,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적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제 삶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을 적기도 했습니다.
메모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는 책을 손에 잡으면 빨리 끝까지 보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결말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 묘사가 긴 부분을 건너뛰며 읽기도 했죠. 실용서를 볼 때는 관심이 가는 부분만 자세히 읽었습니다. 수박 겉핥기로 눈으로만 대충 책을 훑는 독서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읽은 책의 권수는 늘어나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메모 독서를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 책을 더 적게 읽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메모 독서를 통해 깊이 읽기의 맛을 보게 되면 독서가 더 재미있어지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를 가도 책과 독서 노트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됩니다. 잠깐 시간이 날 때 책을 펼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천천히 옮겨 적으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책을 읽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책에서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저자의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을 만들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메모 독서를 꾸준히 하면 독서 노트에 책 속 정보와 내 생각이 쌓입니다. 축적된 생각의 재료가 충돌하고 반응하며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적인 작업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20일
코시는 셰르부르에 네 권의 책을 가지고 갔다.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라그랑주의 {함수해석학},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이었다.
::해군 기지 건설 현장에 들고 간 도서 목록이다. 재미있다. 두 권은 당대 학자가 쓴 최신 과학/수학 이론서, 한 권은 3세기 전에 쓰인 고전 신학 서적, 나머지 한 권 역시 고전 문학 작품이다. 당대의 독서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해 얼마나 개성 있는 도서 선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흥미로운 조합의 4권이다.
적극적인 독서의 핵심은 질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책을 쓴 이유니까요. 책을 읽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문장을 찾으면 밑줄을 그어야 합니다.
저는 일단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판단이 되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다시 보면서 더 중요한 문장을 찾아 표시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문장의 중요도에 따라 몇 단계로 구분해서 밑줄을 치는 것이죠.
제가 사용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읽을 때 괜찮은 문장을 발견하면 형광펜으로 밑줄을 칩니다. 그리고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보면서 중요도가 더 높은 문장을 찾아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을 칩니다. 그리고 나중에 참고할 만한 정말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면 문장 옆의 여백에 체크 표시를 해줍니다. ‘1단계: 형광펜 → 2단계: 빨간색 볼펜 → 3단계: 기호 표시’로 문장의 중요도를 구분해서 표시하고 있죠.
책의 여백에 어떤 것을 메모해야 할까요?
1. 생각
책을 읽고 나서의 감상, 문장에 대한 해석, 저자와 다른 견해, 내 삶에 적용해보기 위한 아이디어 등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메모의 대상입니다.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저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는 수동적인 독서입니다. 책에 생각을 메모하면서 읽는 독서는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능동적인 독서입니다.
2. 질문
책의 내용에 의문이 생기면 해당 문장 근처 여백에 질문을 적으세요. 이렇게 메모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책을 깊이 있게 읽는 방법입니다. ‘저자의 주장이 옳은가’, ‘주장에 대한 근거는 타당한가’, ‘책의 내용을 내 삶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질문이 떠오르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바로 메모하세요. 질문을 잘 메모해두어야 나중에 잊지 않고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4. 요약
책을 읽다 보면 앞서 읽은 장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한 장을 읽고 나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 장의 핵심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여백에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두면 읽은 내용이 기억에도 오래 남고, 서평이나 다른 글쓰기를 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장의 끝부분이 아니더라도 중간에 내용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으면 정독한 후 그 내용을 요약해 내가 만든 문장으로 적어두세요. 책을 다시 볼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할 일
책을 읽는 도중에 할 일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관련된 다른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든지,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위해 조사를 해봐야겠다든지 등 할 일이 떠오르면 여백에 메모하세요. 이렇게 적은 ‘할 일 메모’가 글쓰기나 다른 연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독서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해야 합니다. 책에서 읽은 것 중에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이 있거나 책의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여백에 메모하세요. 할 일을 메모해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지독한 메모광이었습니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5년 동안 항해를 하며 관찰하고 발견한 것들을 끊임없이 수첩에 기록했습니다.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영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이 기록한 내용을 끊임없이 읽으며 새로운 암시를 찾아냈습니다. 예전에 기록한 내용을 읽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또 떠올랐고, 그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사실들을 다시 기록하며 연구했습니다. 그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면서 만난 각종 동식물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종의 기원》 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브레송은 “동반, 보조, 강화”로서의 음악을 피했고, 다른 사운드가 그러하듯 음악도 “정보” 제공의 기능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가 자신의 저서 {시네마토그라프에 관한 노트}에서 기술했듯 음악은 따라서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실제의 강력한 조정자 혹은 심지어 파괴자”가 더 이상 되지 못 했다.
::”{당나귀 발타자르}에 나오는 라디오 음악, {무셰트}의 큰 스피커 소리의 카페 음악, {아마도 악마가}의 맥주집 재즈” 등의 내러티브 상 꼭 필요한 소리의 일부가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진 모든 음악을 브레송은 추방하고자 했다는 것.
::{사형수 탈옥하다}에 영화를 보조해 주는 방식이 아닌 (절제된) 방식의 음악 사용이 있다는데 정말인지 검증하는 식으로 영화를 봐야겠다.
수잔 손택:
모든 브레송의 영화들은 공통적 주제가 있다. 감금과 자유의 의미가 그것이다.
::감금은 내 관심 주제이기도 하다. 500년간 오행산 밑에 유폐된 손오공, 감옥 드라마들(오즈, 프리즌 브레이크, 오렌지이즈더뉴블랙), 아서 쾌슬러의 한낮의 어둠, 히치콕의 이창 등이 떠오른다. 또 원치 않는 탄생과 삶이라는 감옥. 유배지에서 500권 이상의 저서를 남긴 정약용, 봉신연의 속 유리에 7년간 유폐돼 있던 주문왕 희창. 푸코의 감시와 처벌.
폴 슈레이더:
브레송이 모짜르트의 미사곡의 경우처럼 음악을 중요한 것으로 사용할 때 그것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오즈 야스지로의 종결부 음악처럼 냉철한 맥락 내에서 감수성의 광풍 같은 음악이 되는 것이다.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특히 “냉철한 맥락 내에서 감수성의 광풍”이라는 표현이. 부가적이 아니라는 것까지만 알겠다. 나중에 오즈의 영화도 찾아봐야겠다.
음악과 브레송의 스타일 모두는 지금쯤이면 영화의 실제적인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우리를 옮겨주며 실제를 초월한 그 무엇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 이때 음악이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실제의 강력한 조정자 혹은 심지어 파괴자”와 무엇이 다른지. 실제를 벗어나게 해주는 또다른, 이를테면 기도와 명상 같은 좋은 조정자인가? 신성의 영역에 들어가게 돕는?
소녀(무셰트)는 삶이 더 이상 자신에게 답을 줄 수 없다고 결론 내리지만 마그니피카트는 우리에게 그 반대를 얘기해 주고 있다. 그 곡은 신이 불쌍한 자들을 찬양하고 구원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브레송 영화에서 늘 그렇듯 위로도 강조된다.
::브레송 영화에선 음악뿐 아니라 음악의 가사에도 역할이 할당돼 있나? 있다면 어떤 방식의? 주제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를테면 위에 인용된 식으로 내러티브와 상반되는 내용의 가사를 병치함으로써 역설을 만드는 식?
특히 혹독한 사실은 무셰트가 어떤 면으로서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그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것이다. 아마 그렇기에 몬테베르디의 음악이 꼭 알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순수함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단순함이기 때문이다.
::인물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음악의 단순함. 이때 음악은 “동반, 보조, 강화”의 역할을 전부 수행한다.
감독은 이런 작업을 정확히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각기 분리된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음악이며 그것은 동반, 보조, 강화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정보로서 작용하며 필요한 차원을 창조하기 위해 사운드(음악?)도 다른 사운드처럼 쓰인다.
::대니얼 데닛이 말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붐받이 그게 아니라술의 예. 동반, 보조, 강화에 참여하는 정보는 없는가. 둘의 집합은 교집합을 갖지 않는가.
레벤느망, 오드리 디완의 두 번째 장편, 2021
가장 처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친구에게 껌이 없냐고 주인공이 묻자 친구가 없다고 대신 자신이 씹던 껌을 넘겨준 장면이다. 영화를 끝까지 봐도 아직은 그 의미를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났던 영화는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이다. 아직 다 본 영화는 아니지만 여성의 수난사를 클로즈업을 주로 활용해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무엇일지 드레이어의 영화를 봐야겠다.
또 다른 잔 다르크 영화인 자크 리베트의 잔 다르크에서 잔 다르크를 연기한 상드린 보네르가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한다. 이 점 또한 리베트의 영화를 보며 어떤 연관을 갖는지 찾아봐야겠다.
영화의 어느 시점부터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의 변화가 보인다. 위로 묶었던 머리를 어느 순간부터 푼다.
단발머리인데 상드린 보네르의 잔 다르크와 비슷하다. 머리를 푼 이후로 소방관과 섹스를 하고, 선생님이 되기를 포기하고, 낙태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임신과 낙태라는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본 세상과 그 이후로 변경된 욕망이 헤어스타일로 표현된 것 같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인물의 심경 변화 또는 이전과 달라진 무엇을 표현한 영화로는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와 홍상수의 그후가 있다.
주인공의 사건 이전과 이후에는 계급과 사회 그리고 그에 결부된 욕망이 있다. 주인공은 공부를 통해 계급 상승을 꿈꿨고 또한 그건 주인공의 가족의 욕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면 더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던 60년대 프랑스라는 시대와 지리적 배경 탓에 주인공은 그 욕망에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주인공의 욕망과 그 욕망이 기반하고 있던 세계인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주인공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꿈꿨던 계급의 허위의식과 위선을 본다. 또한 같은 꿈을 꿨던 동급생들의 그것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욕망도 수정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육체적으로는 끌리지만 계급 때문에 주저하던 소방관과의 섹스를 결행하고, 선생님이 되려던 목표 역시 자발적으로 내려놓는다. 대신 글을 쓰겠다고 한다. 아니 에르노의 사건이란 소설을 스스로 지시하는 셈이다.
영화적으로는 앞에 언급했듯 두 편의 잔 다르크 영화에 대한 참조를 드러내며 여성의 낙태라는 사건이 잔 다르크의 투쟁과 같은 계보에 속하는 일임을 말한다.
아니 에르노의 원작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으려나. 크게 궁금하진 않다.
+ 낙태 수술을 해주는 마담 리비에르 역을 아나 무글리아스가 연기했다. 필립 가렐의 질투에 나온 배우인데, 전혀 몰라봤다. 중성적이라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목소리나 몸집이 남자 같았다. 이 캐스팅이 뭘 의미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영화는 역시 캐스팅의 예술이다. 각본을 어느 물성의 조합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천차만별이다.
3/20 일기
요즘에 흥미있는 두 주제는 역사와 코미디이다.
역사는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의 확실성을 보며 특정 분야의 발전 흐름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다른 분야, 문학사나 물리학사도 볼 마음이 있다.
코미디는 이오셀리아니 영화를 보며 관심이 생긴 게 직접 원인이다. 물론 그전부터 시 창작을 하며 너무 진지해지기만 하는 경향에 스스로 지겨워진 감이 있어서, 그 돌파책으로 코미디를 생각하게 된 이유도 있다.
문학사는 김윤식이 쓴 한국현대문학사를 볼 계획이다. 잠깐 살펴 보았을 때 문체에 흥미를 느꼈다. 지금 세대와 다른 한국어를 쓰는 게 재밌어 보였고 또 개성도 강해 더더욱 그랬다.
물리학사는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일본인들이 쓴 책을 볼 생각이다. 그쪽 글들은 요약이 잘 돼 있고 글도 쉽게 쓰여 있다. 학자나 학자-예술가의 글이 아닌 나와 같은 생활인의 글이라고 할까.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 잘 드러나는 문체. 힘 빼고 멋부리지 않은.
코미디와 관련된 책은 참고할 것이 여럿 있다. 베르그송의 웃음, 쁘로쁘의 희극성과 웃음, 볼츠의 희극(프랑스 희극의 역사), 바흐친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등등.
아니면 바로 희극 작품들을 찾아 분석해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뽑아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라블레, 스턴 등의 문학과 그 계보. 영화에도 채플린, 키튼 등의 계보가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흥미를 느낀 시작점인 이오셀리아니로 바로 들어가는 게 좋을 지 모른다.
또 제발트의 이 문장, “과장은 희극적 소재이다.”라는 것에서 관심이 한층 더 증폭되기도 했으니 제발트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곰브로비치도 생각나고. 고다르의 60년대 영화들도 생각난다.
과장이라고 하니 중국 고전소설들도 떠오른다. 중국인은 땅덩이와 인구 규모와 같은 무지막지하고 호방한 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한다. 내가 중국을 좋아하는 이유 한 가지. 최근에 전목의 중국문학사란 책을 발견했는데 읽어보고 싶다.
코미디 장르가 아니지만 웃겼던 영화가 생각난다. 마이클 스노우의 시티스케이프이다. 도시 풍경을 여러 카메라 테크닉으로 보여주는데 후반부에 무지막지하게 빠른 좌우 패닝의 반복에서 웃음이 터졌다. 카메라의 빠른 속도로 풍경이 다 찌그러지는데 그걸 반복하니 무슨 놀이기구 타는 것 같았다. 1928년생 감독이 2019년에 만들었으니 한국 나이로 92세에 만든 영화인데도 천진난만한 활력이 느껴진다. 방금 확인해 보니 유튜브에선 영상이 사라졌다.
21일
유독 코시에게만 왕정복고 기간이 가장 결실이 큰 시기였다. 이 기간에만 세 가지 면에서 창조적인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는 학계를 비롯한 어디에서든 성스러움의 신봉자였다. 모든 형태의 자유주의를 싫어했으며 특히 자유로운 분위기의 가톨릭 신앙을 싫어했다. 수학에 관해 논의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종종 개종을 권유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과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로베스피에르 집권기, 나폴레옹 집권기, 왕정복고 시기에 수학자들이 어떤 대응을 하고 어떻게 처지가 변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각각의 출신 배경과 엮어서. 또 이런 정치적 격변이 각각의 생애주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수학적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치적 색깔을 띤 학문 논쟁에도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코시는 학자들의 권모술수에도 깊이 관여했기에 줄곧 에너지를 빼앗겼다. 또한 발견의 우선권을 놓고 쓸데없는 논쟁에도 휘말렸다. (...) 평생 그는 연구 논문과 교재, 아울러 지속적으로 발표하던 논문 등 방대한 연구 업적을 발간했으며, 사후에는 유언에 따라 미발간 연구도 방대한 연구 총서 목록에 보태졌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내용이 혼란스러웠고 한 번 내놓은 결과를 반복하더니 다시 제기하는가 하면, 어떤 과정을 신랄하게 비난했다가 다음 기회에는 성공적으로 적용을 하기도 했고, 분명한 이유도 없이 표기법이 이리저리 바뀌기도 했다. 연구 업적을 발표하길 꺼렸던 가우스와는 정반대였다. 코시의 저술은 다른 이에 비해서 깊이는 얕았지만 후속 연구를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여러모로 코시는 가우스와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출신 배경과 기질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시가 수학사에 업적을 남겼던 것은 당시 학계의 분위기와 뛰어난 수학자들이 함께 살았던 시대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코시는 자기 생각에 빠져 있고, 스스로 올바르다고 자처하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행세했기에 당연히 사람들의 눈 밖에 났다. (...) 너그럽지 못하고 거의 광적이었던 정치적 견해만 없었더라면 그는 더 큰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단점 때문에 천재적인 재능을 낭비했고 때로는 그 덕분에 얻은 힘을 잘못 사용하기도 했다.
::이래서 불교에서 보리심을 그토록 강조한다. 재능이 어느 욕망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성과의 양과 내용이 달라진다.
코시가 다른 이들의 연구가 지닌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이의 논문을 검토할 때 설령 자신의 연구와 중복되더라도 그 장점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그는 당대의 모든 수학자 가운데서 다른 이의 연구 내용을 인용하는데 가장 주의를 기울였으며 실수가 드러났을 때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자기에게 도취된 인물이었을망정 결코 사사로운 이익에 굴복하지 않았다.
::코시에 대해 혹평으로 일관하다 마무리를 좋게 끝내는 건 무슨 의도일까. 정말 평가해 줄 만해서 그런지, 다른 의도가 있어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코시에게 르장드르나 가우스 같은 성품이 없었다는 건 확실하다. 요즘은 품성론이라고 하면 86세대의 무능과 위선에 엮여 비웃는 경향이 만연한데, 정말 유능하려면 (위장되지 않은) 품성 또한 필요한 조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정치에서의 도덕은 일반인이 사는 환경에서와는 다르지만, 그 다른 도덕에서도 ‘도덕적’이어야 유능하게 통치할 수 있다.
물질의 구조적인 문제와 순간적인 그 반응의 문제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 우리는 물질의 시간적인 속성들과 공간적인 속성들의 두 교차점에는 형이상학적으로 풀기 힘든 가장 난해한 문제가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 왜냐하면 첫째, 이것이 물질주의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며 둘째, 우리는 거의 물질의 연속성에 대해 무관심하며, 우리에게는 안정된 물질에서만 그 물질의 본질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물체는 그 움직임 안에서만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물체는 작을수록 공간-시간의 복합성을 더 잘 현실화시키며 이것이 곧 현상의 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고전적 기하학의 추상에서 벗어난 확대된 현대 물질주의는 자연적으로 물질과 방사와의 연합을 연구한다.
에너지의 개념은 운동과 물질 사이에 가장 유익한 결합의 모습을 형성시킨다. 에너지의 중재를 통해서,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 물질의 효율성을 측정하고 또한 이러한 중재를 통해 어떻게 움직임이 물질이 되는가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에너지 개념은 시간의 지속적인 현상들에 대한 경험을 확대시킴으로써 그 의미를 심화시킬 수 있다. 만일 물질은 단지 에너지적 속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흡수하고 또 축적할 수 있는 식으로 물질에 대한 연구에 접근한다면 곧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와는 달리 마치 은행의 창구에 있는 잠재된 돈들처럼, 에너지를 시간적으로 축적하면서만이 에너지는 잠복적이고 잠재적이며 그리고 가공적이 된다.
::에너지를 시간적으로 축적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원자는 그가 발산하는 모든 에너지에 대해 하나의 구조를 부여한다. 즉, 원자 그 자신은 비연속적인 에너지의 발산 혹은 흡수를 통해 연속적인 물질로 변화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마치 현상을 통해 그 본질을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물질을 에너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물질이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이와는 전적으로 달리, 존재론적 측면에서 물질은 에너지이며 또 그 역으로 에너지는 물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동사 “가지다”에서 동사 “이다”로의 대치는 우리를 새로운 과학적 측면에 접근하게 한다.
::물질과 에너지를 더 이상 구분된 것으로 보지 않고 물질=에너지로 본다는 뜻.
원자는 원자의 형태를 바꿈으로써 에너지를 잃거나 혹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는 에너지를 버리거나 혹은 획득하면서 그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형태를 바꿔서 에너지를 획득하거나 버리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획득하거나 버려서 원자의 형태가 바뀐다. 선후관계 주의.
가능하다면 우리는 원자를 이해하는 데 있어 덜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만 에너지의 변화, 즉 에너지의 추상적인 변화가 설명되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바슐라르는 현실, 현상에 대한 직관에 계속 맞선다. 그러나 이때의 현실은 새로운 아인슈타인적 현실주의로 대체된다.
과거의 소박한 직관에 의하면, 물질은 마치 그림처럼 윤곽을 뚜렷이 가진, 그리고 제한된 용량에 잘 감금된, 따라서 일정한 장소를 점유하는 양태로 표현되며, 에너지는 형태 없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더욱이 이러한 에너지에 우리는 그것을 억지로 수치와 연결시켜 간접적으로 그 구체적 구성을 부여할 뿐이었다. 그러나 에너지는 잠재적인 형태 안에서 존재하며, 또한 명확한 제한 없이 일정한 용량을 점유한다. (...) 이러한 에너지 연구의 발전에 따라 원자는 존재인 동시에 생성이며, 현재인 동시에 미래이며, 그것은 또한 사물인 동시에 움직임을 뜻하게 된다. 원자는 시간-공간 안에서 도식화된 생성-존재의 기본 요소이다.
움직임을 통해 원자가 창조된다는 개념의 제안은 이 시대의 실험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신중한 것의 하나가 되었다. (...) 별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원자의 파괴는 그 파괴 당시 방사 에너지를 보내며, 이것은 별들 사이의 공간에 있는 지배적닌 현상, 즉 밀도와 온도가 없는 조건에서 물질 즉 전자로 재전환된다. (...) 이렇게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되는 것은 우주선에 의해서이다. (...) 움직임이 물질로 그리고 방사가 소립자로 되는, 그러므로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이루어지는 상호 진보적 개념은 우주를 죽은 세계로 보았던 과거의 생각들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이제 방사는 물질이 될 싹, 즉 버팀목이 없이 움직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물질적 버팀목에 의존해 새로 창조되기도 하고, 돌연히 그 스스로 새로이 버팀목을 창조하기도 한다. 또 움직임은 스스로 완전히 고립되었거나 공허 속에 머물러 있거나 혹은 모든 물체들이 완전하게 제거된 그러한 조건에서도 새로이 그 버팀목을 창조한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는, 물질의 창조는 이러한 방사 즉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됨을 인식할 수 있다.
물질과 방사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이처럼 ‘출전(문헌 제목과 쪽수, 나아가 출판 연도 등)’을 명기한 독서 노트를 계속 쓰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을 출전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독서 노트에 책을 읽고 깨달은 것과 함께 실천 항목을 적어보세요. 어딘가에 목표를 써두면 이룰 확률이 커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티벳어를 공부할 때 회화책을 통으로 외우지 말고 중요한 문장만 뽑아서 필사하고 외우면 효율적일 것 같다.
원대한 계략은 꾸밀 수 있어도
눈앞의 재앙은 모면하기 어렵구나.
107쪽
이렇게 된 바에야 죽기 아니면 살기죠? 백 살까지 살아도 고작 고기밖에 더 먹겠어요?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목숨을 걸고 달려들 거예요.
22일
청와대가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택한 순간 ‘원칙 없는 승리’와 ‘원칙 없는 패배’만 기다릴 뿐이다.
::청와대가 검찰과 전면전을 선택했나?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다. 윤석열이 추미애에게 탄압받는 모양새만 만들었지, 윤석열을 잘라내지도 못 하고 방치하고 방조했을 뿐이었다. 윤석열을 그대로 두면 정권 핵심에 대한 수사를 할 테니 그대로 둘 수도 없고, 윤석열을 잘라내면 탄압받는 순교자로서의 정치인 윤석열을 키워주는 모양새였다. 결국 청와대가 이기는 법은 하나였다. 윤석열을 품고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스스로 측근 비리를 엄벌하고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민주당과 청와대의 인기는 더 올랐을 것이다.
르장드르는 가우스에게 특히 반감이 컸다. 1828년에 크렐레가 가우스에게 타원함수에 관한 논문을 한 편 부탁했을 때, 가우스는 ‘야코비가 그 주제를 대단한 총명함과 우아함 및 통찰력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는 굳이 발간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르장드르는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야코비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가우스가 어떻게 감히 자네의 타원함수 정리들을 자신도 알고 있었으며 무려 1808년에 이미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이의 연구를 자기 것으로 할 필요가 없는 이가 그처럼 뻔뻔스러운 말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라고 썼다.
::사람 좋은 르장드르가 분개한 게 재밌다. 공감할 만하다. 누군가 연구를 발표했는데, 다른 사람이 ‘내가 전에 했던 건데 발표는 안 했어. 네가 더 잘 하네. 네 성과로 해’라고 하면 기분 나쁘지.
타원함수론에 관한 역사는 많이 연구되었다. 그 결과 아벨이 야코비보다 몇 년 일찍 알아냈지만 사실은 가우스가 이 둘보다 더 일찍 핵심 이론을 알아냈음이 드러났다.
디리클레의 아내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야코비:
나나 코시, 가우스가 아니라 오직 디리클레만이 완벽하게 엄밀한 증명이 어떤 것인지 안다. 우리는 디리클레에게 배워서 알게 된다. 가우스가 어떤 것을 증명했다면 아주 명확하다. 코시가 그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찬반으로 나뉜다. 한편 디리클레가 그렇게 말하면 확실하다.
허스트:
강의 자료의 풍부함과 그 속에 담긴 놀라운 통찰력에서 디리클레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강의를 하기에 아무런 신체적인 이점이 없음에도, 즉 말을 잘하지 못하면서도 총명한 눈과 깊은 이해력으로 그러한 단점을 극복한다.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머뭇거리는 듯한 그의 강의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학생들을 결코 쳐다보지 않고, 칠판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등만 학생들을 향한 채 서 있기도 하고, 높은 책상에 앉아 학생들을 바라보거나 안경을 이마에 걸치기도 한다. 어떨 땐 머리를 양손에 기대기도 하고, 손으로 가리지 않고 두 눈을 감은 채로 있다.
::인물 묘사가 흥미롭다. 내 시랑 비슷하다.
해밀턴은 평생 천문대 감독직을 맡았으며 천문대 안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실제 천문학자로서는 성공하지 못해 몇 년 후에는 천문관측 일은 그만두고 수학에만 전념했다.
앞서 다룬 코시와 뒤에 다룰 실베스터와 마찬가지로 해밀턴은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기에 귀국 후에 워즈워스에게 자신이 쓴 시 몇 편을 보냈다. 워즈워스는 “그 시들은 시정으로 활기에 차 있으며 강렬한 느낌의 소산임이 분명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감정만으로 좋은 시를 쓸 수는 없다는 설명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작가든 비평가든 젊고 미숙한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능력이 시와 관련이 깊습니다.” 해밀턴은 워즈워스의 재치있는 비평에 기가 죽지는 않았기에 평생을 문학 동호회 활동에 참여했다. 더블린 근처에 살았던 소설가 마리아 에지워드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으며 그녀를 통해 다른 작가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중에는 칸트 철학에 바탕을 둔 사상으로 해밀턴을 감명시킨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도 있었다.
::특정 분야에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 그 분야에만 몰두할 거란 생각과 달리 뛰어난 수학자임에도 시문학에 몰두했고 직업은 천문대 관리자였다. 코맥 매카시가 동료 문인들은 재미 없다고 과학자들과 교류하는 것이 떠오른다. 에드거 앨런 포도 당대 첨단 과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조지 엘리엇도 다윈의 종의 기원에 영향 받았다고 알고 있다.
리우빌은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고작 26살의 강사 신분이면서 위대한 당대의 수학자들의 연구를 평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20대는 그런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20대이기에 그런 치기가 용인된다. 30대부터 그러면 큰일이다. 그때부턴 남에 대한 평가 따위가 아닌 자기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말보다 행동으로.
1839년에 또다시 [아카데미에] 공석이 생겼지만 이번에는 천문학 분과였다. 수학 분과에서는 선출될 가망이 없다고 본 리우빌은 그 자리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한 사람이 여러 분과를 동시에 연구했고 업적도 냈다. 현재는 그렇지 못한 데 어떤 역사와 사정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현재의 분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은지, 아니면 통합돼 있던 옛 과거를 회복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게 좋은지 알고 싶다. 큰 목적이 중요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분화를 지속할지 아니면 통합을 회복할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허스트: (리우빌에 대해)
그는 체구가 작았지만 말을 재밌게 잘했기에 만나자마자 매우 편하게 느껴졌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가끔 의미 없이 낄낄대며 웃는 습관이었다.
그 무렵 슈테틴에서 멀지 않은 베를린에서는 이미 디리클레의 명성이 높았지만 그가 디리클레나 괴팅겐의 가우스, 쾨니히스베르크의 야코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박학다식했던 라이프니츠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정말 영향을 안 받았는지, 기록만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거인 한 명을 붙잡고 그의 어깨 위에서 볼 수 있는 걸 최대한 다 보고 내려오는 공부법도 괜찮은 방법이다. 분야마다 사기캐들이 있다. 영화에 고다르, 미술에 백남준, 재즈에 마일스 데이비스 등.
수학에 대한 관심 이후 그라스만을 매료시킨 분야는 비교언어학이었으며 여기서 그는 훨씬 성공했다(가우스와 야코비도 문헌학에 매력을 느꼈음을 상기해 보라). 그는 산스크리트어 및 그 언어가 유럽 언어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였다. 그의 수학 연구와 달리 언어학 연구의 중요성은 금세 관련 학자들에게 인정받아, 1876년에 튀빙겐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이 젊은이의 게임이라 그런지 나이들며 중간에 다른 분야를 연구한 수학자들이 많다. 아니면 다른 분야 연구를 위해 수학을 공부하거나.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조숙했다기보다는 평범했다. 어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대한 열정돠 자세가 남달랐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비교적 늦게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이 젊었을 때 가장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했다는 일반적인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있다. 즉 하디의 말대로 수학자는 젊은이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수학자는 젊은 시기에 가장 독창적인 사고를 발휘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독창성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전시켰다.
::젊은이의 게임인 분야들이 있다. 대중 음악의 몇몇 분야, 락, 힙합, 아이돌, 패션 그리고 스포츠 분야.
우리말에 겸손하다고 하면,
실제로는 높고 고귀한(?) 사람인데 천박하게 드러내지 않는 걸 뜻한다.
그런데 겸손에 해당하는 타페이노스와 그에 파생된 단어들은 조금은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잘났는데 잘난 척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로 보잘 것 없고 비천하고 낮아진다는 뜻이다. 무시 당하고 수치스럽다는 뜻도 당연히 포함된다.
논변, 특히 철학자의 논변을 읽거나 훑어볼 때 시간과 노력을 부쩍 아낄 수 있는 ― 특히 지금처럼 컴퓨터로 검색하면 그만인 시대에 ― 비법이 있다. 글에서 ‘당연하지surely’를 찾아 살펴보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당연하지’는 저자가 자신이 실제로 확신하며 독자도 확신하기를 바라는 부분의 끄트머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주장이란 직관적 확신이 논리와 무관하게 있고, 그것을 보조해 줄 근거들이 동원된다. 사심 없는 연역적 추론을 통해 도달된 결론을 주장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신앙 생활이나 정치 활동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23일
국내 45개 대학 외국인유학생 취업 현황(2009년)에 따르면 매년 졸업생 1만여명 중 국내 취업자는 100명에 못미친다. 유학생 99%가 한국에서 취업을 하지 못해 돌아간다는 뜻이다.
::일자리가 양극화되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니 유학생들이 내국인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니 한국어 사용 가능한 고급인력이 계속 유출된다.
한국의 비자·체류 관리 시스템은 이주민이 거의 없던 1960년대 만들어진 틀에 새 비자를 덧대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대분류로 36개(A~H), 세세하게 나누면 250여개에 달한다. 비자 종류가 복잡해지면서 이주민들은 적합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출입국 20년 근무 경력의 행정사 A씨는 “(비자 발급 등에 대한) 불허 기준은 명분이 분명하지 않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04년쯤 한국에서 20년 넘게 봉사한 수녀가 영주권을 신청했어요. 거절 명분이 없었는데 당시는 대만 화교를 빼면 요건 안 따지고 거의 불허하던 시절이라 그냥 이유 없이 불허했습니다.”
한국은 한때 ‘이민 국가’임을 천명한 적이 있다. 2008년 제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적극적 이민 허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비전이 담겼다. 앞서 2006년엔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정책이 시작됐다. 중국과 구소련 지역 동포들을 위한 방문취업(H-2) 비자가 도입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2013년 2차, 2018년 3차 기본계획을 거치며 ‘이민 허용’을 ‘국민이 공감하는 질서 있는 개방’이 대체했다.
::‘국민이 공감하는 질서 있는 개방’. 전형적인 민주당식 위선적 수사법이다. 국민이 공감? 그냥 여론 핑계로 뒤로 미룬다는 소리다. 그들의 관심은 제 지지율뿐이므로 미래에 대한 넓은 시야나 인권 감수성 따위는 없다. 비슷한 말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할 건데? 계획도 없이 그냥 뒤로 미룬다. 사람 좋은 얼굴로.
‘저숙련 노동자’의 정주화는 이주민 정책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단기순환 원칙을 통해 이들의 정착을 막아왔다. 노동력은 활용하되 장기체류에 따른 각종 사회적 부담은 피하려는 의도였다.
2017년 숙련기능 외국인 점수(E-7-4) 비자 신설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받았다. 까다롭긴 해도 저숙련 노동자도 노력하면 장기 거주(F-2)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둔 것이다. 지난해 1250명이 E-7-4 비자를 받았고, 2025년까지 연간 쿼터가 2000명으로 늘어난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농어업 이민비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계절근로자 등이 농어업 분야에서 5년간 일하면 정주 가능한 비자를 준다는 게 골자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정부가 저숙련 노동자를 이민 형태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첫 공식 선언이자 개방적 이민정책으로의 첫 신호”라고 했다. 그러나 정책 선회라기보다는 ‘일손 부족’ 호소 민원에 부응한 성격이 아직 강해 보인다.
영국의 경제학자 폴 콜리어는 <엑소더스>에서 “이주가 좋은가 나쁜가는 틀린 질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정도”라고 했다. 그럼 현재 한국으로의 이주 행렬은 이상적인 수준인가. 전문가들은 쉬이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주민 유입의 적정 규모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했다.
::이주민 유입의 적정 규모를 조건짓는 사유들은 무엇무엇이 있나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개방적 이민 정책의 필요성을 한국 사회 구성원이 이해하게 하는 일”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주를 밸브처럼 열었다 잠글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비자 체계는 이주·이동 패턴의 실제 현상을 못 따라가는 이데올로기에 가깝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주민 정책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해묵은 ‘이주민 건보 무임승차론’을 꺼내 혐오에 기름을 부었다. ‘이민처(청)’ 설립 논의는 오래도록 답보상태다.
::요즘 같은 정치 지형 및 문화에서 이주민 유입이 중요한 정치 쟁점이 되긴 어려울 테다. 한국의 정치권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그제서야 부랴부랴 뭘 한다. 그것도 정교하지 않게, 문화재 복원하는데 대충 시멘트 쳐발라 놓듯이.
이야기와 시를 만들어내는 인간 의식의 무책임한 영역은 우리의 심신이 노곤해지거나 술에 취한 것처럼 흐트러지거나 뭔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간섭이 일어나는 드문 경우에 떠오르는 유치한 기억들의 원천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창작의 순간은 비일상적인 특별한 순간일 수밖에 없을까? 몇달 전 일상적인 순간에서 창작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일상적인 순간에 쓴 글을 나중에 시로 고치려고 한 것이다. 지금은 시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일기는 쓴다. 시로 고쳐볼까?
사업의 왕과 영혼-사업의 합병: 정신으로 향한 모든 길은 영혼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무도 영혼으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리처드 파인만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가 한 비유를 나는 참 좋아한다. “주피터(목성)가 평범한 남자인 듯 말하고 그의 전차와 허벅지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메탄과 암모니아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시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거대한 구가 몇 배나 더 놀랍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왜 인간이 달에 갔다고 한탄해야 하는가? 왜 환상을 깼다고 한탄해야 하는가?
::메탄과 암모니아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에 대한 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당장 퐁주의 시가 떠오른다. 그리고 또?
예술가와 과학자의 출발 조건은 따라서 경이로움이다.
::창작의 지속은 경이로울 수 있는 조건을 계속 만들 수 있느냐 여부일 수도. 홍상수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시간을 보내며 영화를 길어올리듯. 나는 어떤 조건에서 경이로울 수 있나?
피카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연을 모방하지 말고(재생산하거나 복사한다는 의미로) 자연처럼 작업해야 한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의 나뭇가지들이 자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피카소는 “내 나뭇가지가 자라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무슨 맥락에서 한 말인지 몰라 본뜻은 알 수 없지만 인상적이다. 대충 느낌은 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언어로 만들고 싶다.
예술가와 과학자에게는 경이로움과 상상력이 공통으로 있다. 또 둘 다 ‘추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실재하는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서 독립적으로 탐구할 현실의 측면들을 선택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선택은 경이로움을 기준으로 삼는다.
시인 앙리 미쇼*는 자신의 작업에서 과학적 서사를 일부러 사용했고, 시적 모호성을 깎아내리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당대 시인들의 작품이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단순한 인상의 파편처럼 보일 때가 많다고 생각했다. 일정한 균형을 이루려면 예술가와 과학자의 정신 모두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그만의 방식이었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서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철학자 미셸 비트볼*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의 전개가 되었고 실재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멀어졌다.”
::바슐라르가 {새로운 과학정신} 비뉴턴 역학 챕터에서 지속적으로 말했듯, 현상에 대한 직접적 관찰에서 비롯한 “완성된 경험들의 요약”의 사고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단 하나의 수학적 상징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게 되고, 이것이 또한 수천의 감추어진 은밀한 현실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장-피에르 세르와 무명의 수학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실제로 혼자 연구하는 무명의 수학자가 최고의 전문가들도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풀기도 한다.(몇 년 전 중국의 장이탕이, 그리고 1970년대에 프랑스의 로제 아페리가 좋은 예이다.3 두 사람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예순 살이 넘어서였다.)
::어제 이오안 제임스의 책에서 본 “수학은 젊은이의 게임”이란 말과 상반되는 사실이다. 저들은 예외적 존재일까, 아니면 최근 경향이 더 이상 수학이 “젊은이의 게임”이 아니게 된 것일까.
수학자라면 “a에서 유추해서 b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수학자는 “이것을 아주 작은 단위까지 증명해 보일 것이다. 논리적인 추론으로 당신을 확신에 이르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테니까. 물론 이 부분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목표이다. 그리고 모든 추론에는 작은 도약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아주 작은 추론까지도 논문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요즘 나도 더 세밀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별개로 메모를 중요도에 따라 더 세밀하게 분류해야겠다. 3단계 정도로.
맞다는 것은 알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추측을 살펴보면 더 놀랄 것이다. 매일같이 증명되는 추측들이 있고, 매일같이 새로운 추측들이 만들어진다.
수학자들에게는 리만 가설이 가장 유명하다. 리만 가설이 10조 개의 사례에 적용되어 한 번도 오류로 확인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나 수학자들이 보기에 10조 개의 일치하는 단서들이나 100조 개의 확인된 예측들은 증명의 가치가 없다.
::단 하나의 반례만 나와도 무너지는 가설. 경험을 통한 배움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경험칙은 유용한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다.
수학자들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단서들이 뒷받침하면 그 추측을 그대로 믿는 경향도 있다. 그 추측을 정립된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이 수학자들을 안내할 때가 많다. 수학적 진리를 정립하는 데 증거가 되는 것은 연역적 추론이 맞지만 귀납적 추론이나 사고의 경험으로도 같은 진리를 엿본다.
::그렇다. 반례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귀납적 추론을 쉽게 버리기 어렵다. 연륜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삶의 많은 부분은 그리 엄밀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수학 용어를 사용하는 행복한 실험을 했다.
::확인해 봐야겠다.
3/23 일기
“꽉 짜인 구조는 가능성을 개방시킨다. 하나의 패턴, 기존의 모델이나 하부 장르를 고른 뒤, 그것에 따라 써라. 글쓰기에 있어서 제한은 자유로움을 준다.”
그렇다. 제발트의 말처럼 뭘 쓸지 모를 땐 곧이 곧대로 베끼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을?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것을. 끌리는 것을. “호색적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고다르는 60년대에 자기가 좋아하던 미국 영화를 베끼고 거기에 자신의 코멘트를 붙인 영화를 만들었다. 오즈 야스지로는 자신의 코멘트도 없이 할리우드 영화를 그대로 베끼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베끼고 싶은 시는? 내가 베끼고 싶은 영화는? 내가 베끼고 싶은 소설은?
목록을 만들고 연구하고 베끼자. 열심히 베끼고 공들여 베끼자. 기타 연주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의 곡을 똑같이 연주하듯. 내 수족 같은 악기가 되도록. 우선은 이오셀리아니다. 고다르다. 브레송이다. 드레이어디. 시는 박상순과 김언이 생각난다.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 보르헤스가 생각난다. 로베르트 무질은 나와 글쓰는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독자로서 크게 끌리지 않는다.
코맥 매카시가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왜일까?
요즘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중되고 수렴보다 발산과 분산의 시기다. 뭔가에 열중하고 몰두하기 힘들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찔끔찔끔 뭐라도 하는 게 좋다. 모든 걸 내려놓고 공백을 바라봐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의견을 쓰며 독서를 하다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읽는 분량이 감소했지만 적응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감속이다. 마치 느리게 달리는 차에서 더 많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듯.
+화가로는 장대천과 코로가 생각난다. 이응노가 생각난다. 장대천의 그림은 여태 본 중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받았다. 이응노는 1차적로 천진한 즐거움을 주고, 작품 각각과 작품 세계의 너비에서 호방한 기개를 느끼게 해준다. 코로는 깊이와 절제에서 오는 묵직함. 고야는 어린이의 경계 없는 천진난만함과 그 이면인 반사회성과 거기서 증폭된 광기가 느껴진다.
사유의 세계도 몸피를 넓혀야 하는 벌크업과 세부에 집중하고 다듬어야 하는 데피니션의 시기가 나눠져 있다. 지금은 데피니션의 시기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고, 난 뭘 하는가? 멀고 큰 목표 말고 지금 바로. 무엇을 보고 할 것인가?
브레송의 말. “내가 너무 단순하다고 거부한 것이 사실상 가장 중요하며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것들에 대한 어리석은 불신.”
또 브레송의 말.
“낚싯대 끝에 뭐가 걸릴지 모르는 낚시꾼처럼, 네가 무엇을 포착할지 알지 못해야 한다. (아무 데서나 갑자기 튀어 오르는 물고기.)”
“물고기를 얻기 위해 연못을 비울 것.”
“네가 찾은 것이 네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유익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놀라고 흥분해서.”
“네가 비밀스럽게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그 어떤 것도 만날 수 없다.”
내가 탐구할 대상들은 정해졌다.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지 미리 정하고 그것만 골라내려고 하지 말자. 일단 지금은. 기다리고 내게 먼저 다가오는 것을 들여다 보자. 그게 더 호색적 즐거움에 가깝다.
빌스택스의 말이 생각난다. 앨범 믹싱할 때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확 올려 좋은지, 안 좋은지 판별한다는 것.
때에 따라 참고 견디는 것을 포기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무작정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언제,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가?
책을 끝까지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책을 빨리 덮는 것이다.
고다르의 말. “영화를 시작할 때 나는 아주 분명한 관점, 하지만 아주 전체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단지 그 관점을 훨씬 더 분명하게 만드는 것 뿐이다.”
나는 무슨 관점을 갖고 있나? 나는 무슨 할 말이 있나? 나는 축적하기에 바쁘지 그걸로 뭘 만들어 내놓을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바람이 없다.
또 고다르의 말. “사실 나는 책을 진지하게 깊이 읽는 편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느낌이 오는 문장 두세개 정도를 포착해서 노트에 적어놓는다. 그런 문장들을 추려내는 것 자체로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 두셋이 좋다. 너무 많은 돈이 불안을 낳듯 너무 많은 문장이 나를 짓누른다. 축적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노력을 지향해야 한다. 너무 많은 발췌된 문장은 나를 옥죌 뿐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순하고 정확하고 명료해져야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 F. S. O.에게
“그대 사랑받고 싶나요?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현재의 오솔길에서 벗어나지 말게 하오!
지금 그대 자신인 모든 것이 되면서
그대 자신이 아닌 그 무엇도 되지 마오.
그러면 그대의 온화함, 그대의 품위,
그리고 그대의 지극한 아름다움이
세상이 끝없이 찬양하는 주제가 될 것이고
그대에 대한 사랑은, 그저 세상의 의무가 될 거예요.”
나의 현재의 오솔길을 내가 벗어나려는 걸 막아야 한다. 누가? 내가.
24일
[갈루아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도 들어갈 실력이 된다고 믿었지만 기본 과목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어려운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죽은 지 며칠 후에 그는 다시 에콜 폴리테크니크 입학시험에 떨어졌다(지원자 중 단 두 명만 합격했음). 그러자 조금 수준은 낮지만 여전히 권위 있던 준비학교(프레파)에 도전했다. 이 학교는 이후 에콜 노르말 쉬페리에르(고등 사범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갈루아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2번 떨어지고 프레파에 붙었다. 그 유명한 학교 교수들의 이해를 못 받아서 낙방한 천재라는 일화는 다음과 같다. “당시 시험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갈루아는 구술 면접에서 " 그것은 자명하다"만 반복하며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표정만 지으면서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좀 알기 쉽게 설명해달라는 요구를 하자 면접관들을 자신의 뛰어난 의도를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경멸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으니 당연히 갈루아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떨어졌다. 사실 갈루아는 수학 이외의 성적이 낙제거나 평범해서 입학 자격 자체가 안 되었다. 실제로 갈루아의 에콜 폴리테크닉 낙방의 공식적인 사유는 수학 이외의 성적 미달이다.”
갈루아는 준비학교에서 미분학과 적분학에 과한 시험을 통과하였지만 여덟 명 중 4등에 그치고 말았다.
성격이 모나다보니 식구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가 병원에서 죽을 당시, 그나마 그를 유일하게 존경하던 13살 난 막내아우 알프레드만 와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우를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보이며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울지마라, 알프레드! 나이 스물에 죽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단다.
::자폐적 천재의 한 전형인듯. 결국 자의식 과잉으로 죽었다. 여러모로 운도 없었다.
슈발리에는 포기하지 않고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수인 조제프 리우빌에게도 갈루아의 논문을 보냈고, 리우빌은 갈루아의 논문을 주의 깊게 검토해본 결과 그의 발견이 아벨과 비슷한 업적임을 이해하게 된다. 애국자였던 그는 조국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의 존재를 알게 되자 굉장히 흥분했지만, 갈루아의 논문은 불세출의 천재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설명이 부족했기에, 리우빌은 일반 수학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주석을 덧붙인 후 학계에 공개한다. 사후 10년이 지나서야 젊은 천재의 업적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갈루아의 논문을 무시했던 야코비도 그제야 혹시 갈루아의 또 다른 논문이 없냐면서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가우스도 10여년이 지나서야 아벨과 갈루아를 무시했던 걸 후회한다. 갈루아 사후 갈루아의 천재성이 알려지자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입시 담당관들은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죄로 징계를 먹게 되었다. 그리고 갈루아의 케이스는 후에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입시제도 개편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친구인 슈발리에가 없었다면 갈루아는 잊혀졌을 것이다. 생전에 운이 없었지만(코시는 논문을 받고 병에 걸리고, 푸리에는 죽고, 푸아송은 설명 부족이라고 비판하고, 야코비와 가우스는 받은 논문을 읽지 않음.) 사후에 친구 덕에 기억되었다. 카프카의 장편들도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발표된 것이 떠오른다. 그러나 둘 다 생전에도 당대의 대가들에게 인정을 전혀 못 받지 않았다.
정신분석학은 공리계의 권리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실험 학문이 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에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지침이 있지요. 즉 정신분석학을 전제하는 조작에서 생기는 진실 외 다른 진실은 없다는 것, 그 결과 정신분석 환자용 침상은 법적으로 무한히 깊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었다는 것—이것이 바로 독특한 지침입니다. 정신분석학은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두었습니다. 바로 그 정신분석학이 진실을 구성하니까요.
::정신분석학은 현상에 대한 해석으로서 학문을 길어올리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학문의 해석이 현상을 그런 것이었던 것으로 창조한다. “정신분석가는 기자처럼 되어 사건을 꾸며냅니다.”
푸코:
모든 권력 형성은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지식이 권력 형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권력 없이 지식 자체로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국가에 필요한 공리계나 추상 기계의 구실을 해줄 사유의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국가란 없어요. 반면에 국가는 사유의 이미지가 작동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죠.
::권력은 지식을 동원해 스스로 정당화한다. 지식은 권력에 의해 스스로를 유효한 것으로 만든다. 권력과 무관한 지식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살펴봤던 바로 그 고전적인 철학의 어처구니없는 역할이란 이처럼 교회나 국가라는 권력 기구들에 적절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었죠.
::권력에 지식을 제공하는 게 왜 잘못인가? 권력 없는 세상이 존재하는가? 무작정 저항만 하면 그 다음은? 어떤 권력인지, 어떤 지식인지, 언제, 왜, 어떻게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 국가가 없다면 의료 보험 서비스나 치안 및 안보 서비스 등이 제공되지 않는 세상일 텐데 과연 좋은가? 저항은 대안과 구체적 실현 방안을 가져와야 정당화된다. 카오스만을 지향하면 기다리는 건 백래쉬뿐.
수사 의문문을 볼 때마다 뻔하지 않은 대답을 마음속으로 제시해보라. 좋은 대답이 생각났으면 수사 의문문에 답하여 질문자를 놀라게 하라.
‘S+7’이라는 규칙을 적용한다고 치자. 중요한 단어와 관심이 있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에서 찾은 다음, 그 단어에서 일곱 번째 뒤에 있는 단어를 취해서 원래 단어와 바꿔보자.
::내가 구상 중인 창작 방법 중 고치기 수법에 적용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개의 제약을 더 붙인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글이 되면 아무 의미가 없을테니. 이를테면 ‘시의성 있는 주제가 연상되도록 조정할 것’ 같은 조건. ‘동시대 한국인이 모두 알 만한 유명인의 이름을 한 번 이상 활용할 것.’ 그러면 창작은 영감에 의존하는 부분을 훨씬 줄이고 꽤 많은 부분을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되는 노동의 영역으로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물 간 대화를 못 쓰는 데 컴플렉스를 느껴 왔다. 답을 찾았다. 다른 대화를 가져와 단어를 바꾸고 인물을 바꾸고 배치를 바꾸면 된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든 걸 내 마음에 들게 고치면 내 것이 된다. 샘플링 같은 것이다.
수학자들만 있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그들이 소통을 추구하지 않아도 그들의 연구 안에 시적 방법론이 존재하는가? 짐작했겠지만 그 대답은 확실히 ‘그렇다’이다.
우선, 수학에서는 늘 관계, 유추, 비교—고전적인 작시법—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 수학자는 장-마리 위아르가 가사를 쓴 그리부유의 노래를 들으며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수학에 있어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수학자는 매우 상이한 두 가지 대상의 관계를 설정하는 중인데, 매우 상이한 자신의 연구와 노래의 관계도 설정한다.
서로 다른 요소가 갖는 관계야말로 수많은 수학 방법론의 기본이다. 그것은 시의 핵심이기도 하다. 시인도 두 개의 대상, 사물과 일상의 현상을 예를 들면 이미지, 알레고리, 표상, 온갖 종류의 유추를 통해 연결한다.
::시의 기본 중 하나다. 서로 다른 사물 또는 현상에서 공통점을 찾아 연결하기. 무작위 연결이 재미 없는 이유다.
25일
에드거 앨런 포는 진짜 악몽에 대한 글을 썼지만, 그것은 깨어 있는 사람의 문체였다.
문학의 관심사는 오직 허구다, 변형이다.
그[후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철학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전체로서의 세계)를 풀어야 할 의문의 대상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세계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러저러한 실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앎에의 열정이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세계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궁금해 하지 않고 사는 삶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어떤 식일까? 그냥 살기.
실제로 고대 유럽 철학 전부가 그것을 팽개쳐 놓았다는 판단 하에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분석한 모든 중요한 실존적 주제들은 네 세기(소설이 유럽의 다른 몸에 깃드는 네 세기) 동안 유럽 소설에 의해 노출되고 제시되고 조명되었던 것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소설은 나름의 방식과 고유한 논리에 따라 존재의 상이한 면모들을 찾아냈다. 세르반테스의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소설은, 모험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더불어 소설은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와 감정의 은밀한 삶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발자크와 더불어서는 역사에 뿌리내리는 인간을 발견한다. 플로베르와 함께 그것은 그때까지 미지의 세계였던 일상의 지평을 탐사한다.
톨스토이와는 사람들의 결정과 행위에 개입하는 비합리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시간을 탐색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제임스 조이스와는 붙잡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과 더불어서는 시간의 밑바닥에서 유래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원격 조정하는 신화의 역할을 묻는다.
::소설은 과학과 철학이 놓치는 삶의 모습을 담는가? 현재 아주 중요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고 흘러가버리는 건 무엇일까? 수행자의 1인칭적 경험은 소설에 담긴 적 있는가? 소설이 적합한 형식인가? 시는? 영화는? 고은의 {화엄경},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별개로 ‘당대-한국을 사는-나’에 관해선 최인훈의 소설들이 가장 깊이 있다. 또한 형식적으로도 소설과 타 장르 글쓰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나는 이민과 난민, 다문화 시대를 껴안는 적극적인 문학 형식은 뒤섞기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어떤 뒤섞기? 어떻게 배치하고 통제할 것인가, 가 관건이다. 또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직접적인 앎이 없다.
헤르만 브로흐:
오직 소설이 발견할 수 있는 것만을 발견하라. 그것만이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어떤 게 있을까?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1인칭적 서술. 문자로 쓰인 모든 형식의 글을 뒤섞기. 어려운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매혹적으로 전달하기.
유럽 소설의 역사를 이루는 것은 (이미 쓰인 것에 대해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발견의 계승’이다.
::발견의 계승? 무엇을 발견했다는 것인가? 답: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 우리 나라에서 저소득층 이민 노동자의 삶은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 미디어는 그들을 가렸다. 동남아,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쪽 사람들은 구체적인 정체성을 드러낼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동남아’, ‘흑인’ 이런 식으로 퉁쳐질 뿐이다. 또 그들이 방송에 나온다면 돈이 많거나 학력이 높은 이들로 ‘보정’된다. 아니면 이슈와 결부된 전쟁국 출신 국민 또는 난민과 같은 이거나.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저 선량하기만 한 피해자나 약자도 아니다. 선악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내면을 가진 이들이다.
유럽 최초의 소설들은 무한해 보이는 세계를 편력하는 여행담들이다. {운명론자 자크}의 첫 장은 길을 가는 두 주인공을 포착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서 오는지,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속에 있으며 아무런 경계도 없는 공간, 창창한 미래로 열린 유럽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왜 주인공이 둘일까? 나는 여러 인물을 동시에 다루지 못 하고 있다. 또 쿤데라는 제 소설, {자크와 그의 주인}에서 이 소설을 어떻게 변주했을까?
영감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거기에 규칙은 없다. 영감은 주로 긴 시간 치열하게 연구하다 보면 갑자기 찾아온다.
과학자가 연구할 때 나타나는 교차 현상도 알아두라. 연구를 할 때에는 체계적이고 의식적인 탐구를 하는 시기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려주는, 크고 작은 섬광처럼 아이디어들이 나타나는 때가 반복된다.
우리가 어떤 삼단논법의 결론으로 하나의 명제를 처음 만나는 순간에서 또 다른 삼단논법의 전제로 그 명제를 다시 만나는 순간까지는 많은 시간이 흐를 수 있다. 그래서 사슬의 고리를 많이 펼쳤을 것이다. 그러면 사슬을 잊어버릴 수 있고, 더 심각하게는 그 사슬의 의미를 잊을 수 있다. 따라서 명제를 조금 다른 명제로 바꾸거나 똑같은 서술을 유지하면서 조금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오류에 빠진다.
::뭔가를 쫓는다는 것. 해결하기 위해, 밝혀내기 위해. 그러다 길을 잃고, 스스로의 정체성도 오리무중에 빠지고.
수학적 증명은 삼단논법을 단순히 열거하는 과정이 아니다. 일정한 순서로 그것을 배치해야 하고, 구성 요소의 배치 순서가 구성 요소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 내가 그 순서를 느끼고, 말하자면 순서에 대한 직감이 있어서 한눈에 추론 전체를 알아볼 수 있다면 구성 요소 중 하나를 잊어버리는 것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각 구성 요소는 미리 준비된 틀에 저절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구성 요소에 대한 파악과 그 순서를 정하는 일은 내 오래된 관심사다. 병법, 정치, 음반 프로듀싱, 서사 만들기 등.
조화와 감춰진 관계를 추측하게 만드는 이런 느낌, 수학적 질서에 대한 직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딱히 무엇이라고 얘기하기 힘든 그 느낌도 없고 비범한 기억력과 집중력도 없는 사람들은 약간 차원 높은 수학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런 느낌을 조금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특출난 기억력과 뛰어난 집중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든 디테일을 기억하고 수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수학을 응용까지 하겠지만 창조할 상태에 이르지는 못한다.
수학적 발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알려진 수학적 존재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게다가 조합이라는 것도 경우의 수가 유한하고, 가장 많은 경우의 수라도 도무지 흥미롭지 않다. 발명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조합을 하지 않는 것이며 쓸모 있는 아주 적은 수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발명은 구분 짓고 선택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조합을 하지 않기. 임의적 선택으로 이뤄진 초현실주의자들의 시가 지루한 것은 이 때문이다. 뭔가에서 벗어나거나 반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표가 돼선 곤란하다. 어떻게 벗어나고 무엇을 지향하며 반대할 것인가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연구할 가치가 있는 수학적 사실들은 다른 사실들과의 유추를 통해서 우리에게 수학 법칙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실험적 사실들이 물리학의 법칙을 알게 해주듯이 말이다. 그래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서로 연관이 없다고 믿었던 사실들이 뜻밖의 관련성이 있다는 점이 드러날 것이다.
::순환 논법이다. 새로운 수학 법칙을 알기 위해 수학적 사실들의 뜻밖의 결합을 만들어야 하고, 수학적 사실들의 결합은 오직 새로운 수학 법칙을 알아내는 한에서만, 쓸데 없지 않게 된다.
나는 두 주일 전부터 내가 ‘푹스 함수’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함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한두 시간을 보내면서 수많은 조합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나는 원래 잘 그러지 않는데 블랙커피를 마셨다. 그러자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그 아이디어들이 마치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중 두 개의 아이디어가 결합해서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초기하급수에서 유도되는 푹스 함수의 한 계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새로운 결합을 통해 새로운 법칙을 만들려면 그 행위자도 의외의 것과 결합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평소 마시지 않던 블랙커피와의 결합처럼. 그런데 블랙커피와의 결합은 단지 내가 아는 결합일 뿐이다. 내가 모르는 다른 요소들과의 결합과 그것들의 순서의 독특함이 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요소에는 단지 물리적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도 포함될 수 있다. 이를테면 영적인 세계 같은. 그러나 일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뭔가를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길은 벌써 이미 내가 샛길로 여기는 길들과 전부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문에 빙 둘러가고, 샛길로 빠지는 일이 오히려 지름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의 길로 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샛길이든 뭐든 생긴다. 내가 가는 길은 어느 방향을 향하는가? 내가 원하는 건 미래의 한국이 다원화, 다문화 사회가 되고 여러 문화가 현재의 한국 문화와 경쟁하고 섞이고 변이를 일으켜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가족 서사가 떠오른다. 백년의 고독,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홍루몽, 금병매, 왑샷 가문 연대기, 고목탄 등. 가족 서사의 형식을 통해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상태에서 나는 군 복무를 하러 몽발레리엥으로 떠났다. 따라서 머릿속에는 수학 문제와는 아예 다른 생각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건너다가 나를 막고 있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답을 더 파고들려고 하지 않고 군 복무를 마친 뒤에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내게는 퍼즐의 모든 조각이 있었다. 그것을 모아서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논문도 단숨에 쉽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때까지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는 분명한 신호이다.
::황농문의 {몰입}이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고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처음에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러다가 조금 긴 휴식을 취하고 난 뒤에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첫 30분 동안에는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때 의식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잠깐 궁리를 멈추고 휴식을 취했던 뇌가 에너지와 활력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휴식을 취하는 동안 뇌가 무의식적으로 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무의식적인 연구의 조건에 대해 기억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의식적인 연구가 항상 선행하고 또 후행해야만 무의식적인 연구도 가능하고 풍요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번뜩이는 영감은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며칠 동안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로 보이고, 제대로 한 일이 없는 것 같고,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 같다고 느낀 뒤에야 찾아온다. 그러니까 노력은 생각만큼 쓸모없지 않았다.
::결과물이 나오든 말든 창작의 시간을 매일 따로 마련하는 게 창작자에게 중요한 이유.
나는 영감을 받자마자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었다. 내가 말한 사례에서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외 없이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확신에 우리가 자주 속기도 하고, 확신이 강해서 무조건 맞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증명을 하려고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경우에는 아침이나 저녁에 침대에 누워 반수면 상태에 있을 때 떠오른 아이디어들이 그럴 때가 많았다.
잠재적 자아는 의식적 자아보다 절대 열등하지 않다. 잠재적 자아는 완전히 자동적이지 않으며, 분별력과 전략, 정교함이 있다. 그것은 선택을 할 줄 알고, 추측을 할 줄 안다.
::’잠재적 자아’라 불리는 것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것의 활용 방안을 이리저리 실험해 볼 수 있겠다.
의식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의식적 현상은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감수성을 가장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수학적 증명을 얘기하면서 지성이 아니라 감수성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놀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은 수학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는 감정, 수와 형태의 조화, 기하학의 우아함에 대한 감정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수학자라면 누구나 이러한 미적 감정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감수성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다움과 우아함이라는 특징을 부여했고 우리에게 일종의 미적 감동을 줄 수 있는 수학적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구성 요소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서 우리의 정신이 별다른 노력 없이 전체를 아우를 수 있고 그러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들이다.
::전체를 정리된 형태로 조망하고 아우르려는 욕망. 산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며 느끼는 경이로운 쾌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유용한 조합은 가장 아름다운 조합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은 딱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바로 게임과 이야기다.
천재적인 수학자 푸앵카레가 명징함의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에는 생략이 많고, 근거 없는 주장, 논리의 흐름을 깨는 딴소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모든 특징은 푸앵카레의 독자들에게 이미 친숙하지요. 그의 글에는 아이디어가 들끓지만 그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26일
“제일 어려운 과정은 메모하는 거예요.” 월리스가 말했다. “엄청나게 많은 것이 앞에 놓여 있죠. 하지만 저한테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아주 적어요. 저는 아주 불안해지죠.
월리스는 공식적인 자리와 만남은 죄다 각본에 따른 것이고, 바로 그게 사람들이 가진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능력을 서서히 손상시킨다는 가설을 펼쳤다.
::나도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당장 생각이 안 난다.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특히 정치적인 글쓰기에서 전복적이다. 2000년,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가 치러진 일주일을 묘사한 「일어서라, 심바여!Up, Simba!」는 책의 보배와 같은 작품이다. 동행한 정치 취재기자들과 달리, 그는 정보의 대부분을 수년간 무대의 막이 오르는 순간들을 목격하고 또 극 전체가 어떻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지에 대해 꿰뚫고 있는 기술지원 스태프를 통해서 얻었다.
“제가 기술 스태프와 이야기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그 사람들은 저한테 ‘누구쇼, 당신은?’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거든요.”
:: 제발트의 말. “나폴레옹에 대해 무언가 독창적인 것을 쓰기는 어렵지만, 그의 조력자들에 대해 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아방가르드건 사실주의건, 서사예술의 기본 동력은 어떻게 나와 타인 사이에 드리워진 막에 작은 구멍을 낼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 새로운 막이 생기는 건 아니고? 진심의 전달보다 중요한 건 진심의 전달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냐이다. 그게 달성된다면 진심의 전달은 부차적일지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제겐 이런 이론이 있어요.” 그가 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말했다. “무척 반복적인 생활을 하면 상상력이 정말 잘 작동한다는 거죠. 무척 활발하게요.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준비를 합니다.”
“글쓰기는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느릿해진다. “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지요. 방은 어둡습니다. 완전히 캄캄해요.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볼 수 있고, 그걸 만질 수도 있어요. 그런 다음 이 세계, 이쪽 편으로 돌아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거지요.”
“아시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매혹적입니다.”
27일
로스의 글쓰기 방식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다. “저는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씁니다. 초고에서, 그것들을 안에서부터 확장시키죠. 그건 제가 뭘 덧붙이는 방식으로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저한테 이야기가 있죠. 제가 발전시켜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그 이야기 안의 재료들, 독자들에게 일격을 가하고 흥미를 강화하는 그런 재료들입니다.” 그가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지점이 오면 로스는 선택된 초기 독자 집단에게 원고를 보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만나요. 앉아서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거죠. 대부분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요. 그들이 뭐라고 하든 유용하죠. 왜냐하면 제가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은 제 책에 관한 타인들의 의견이거든요. 그게 저한테 유용한 거예요. 그들이 책을 펼쳐서 산산이 박살 내고 나면 저는 다시 돌아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할 수가 있죠.”
::”선택된 초기 독자 집단”이 중요하다. 이게 있냐, 없냐에서 창작자가 되냐, 못 되냐가 갈린다. 내 경우는 없다.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겠다. 내 소관 밖이다.
과거의 로스는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가진 약점을 소설가 자신과 혼동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할 만큼 자전적인 소설을 썼다.
::뭘 쓸지 모를 때 자전적인 소설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조금씩 바꾸고, 자르고, 감추는 거다. 프루스트도 그랬다.
비크람 찬드라:
“범죄 집단과 그 협력자들의 최전선에 총잡이로 나서는 젊은이들은 사실상 극빈자들이 아닙니다.” 찬드라가 말했다. “아마 대학에 잠시라도 다녔을 법한 중하위층 젊은이들이죠. 조직원들은 정말로 똑똑해요. 조직원들이 그들에게 접근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좋아, 네게 오토바이를 주고 한 달에 1만 루피씩 주겠다. 네가 열심히 충성을 바치면 언젠가 메르세데스 벤츠를 받게 될 거다.”
::내가 물과 배를 가지고 쓰고 싶었던 내용의 전부이다. 디드로는 여기서 뭘 더 말할까? 그리고 이후 그를 계승한 이들은?
소설의 행로를 돌아보면 기이하게도 짧고 좁아 보인다. 돈키호테, 바로 그 자가 세 세기에 걸친 여행 끝에 측량 기사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을에 돌아온 것은 아닌가?
예전에 그는 스스로 모험을 택해 떠났지만, 이제 성 밑에 있는 마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그에게 모험은 ‘하달’된다. 고작 서류상의 잘못에 대해 관리와 벌이는 한심한 말다툼이 그의 모험일 뿐이다.
이성의 완전한 승리의 순간에 세계라는 무대를 장악하는 것은 비합리적 순수(권력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원하므로)다. 그것은 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공인된 가치 체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에서 훌륭하게 밝힌 이 역설은...
::어떤 역설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브로흐의 소설을 나중에 읽어 봐야겠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이라는 괴물하고만 싸워야 했던 평화로운 시대는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카프카, 하셰크, 무질, 브로흐의 소설에서 괴물은 바깥에서 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 그것은 비인격적인 것이고 다스릴 수도,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소설사의 시대들은 대단히 길고(그것은 양식의 변덕스런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소설이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존재의 이러저러한 양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지금 내가 처한 존재의 양상은? 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철학적으로? 표현 기법 상으로는? 또 동시대/한국/소설은 어딨고 무엇인가?
K 같은 사람의 자유로운 행위가 완전히 공허한 것이라면 도대체 ‘모험’이란 무엇인가? {특성 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이 이제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전쟁에 대해 추호의 의혹도 갖지 않는다면 ‘미래’란 무엇인가? 브로흐의 후게나우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뉘우치기는커녕 그것을 잊어버린다면 ‘죄’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시대의 유일하게 훌륭한 코믹 소설인 하셰크의 소설이 전쟁을 무대로 한다면, 과연 ‘코믹’이라는 것에 있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사랑을 나누는 잠자리에서까지도 K가 성에서 파견된 두 사람과 떨어져 있을 수 없다면, ‘사생활’과 ‘공생활’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경우 ‘고독’이란 무엇인가?
인간 현상의 상대성과 애매성에 기초한 이 세계의 모델인 소설은 전체주의적 세계와는 양립할 수 없다. (...) 이것은 정치 도덕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일한 진리 위에 기초한 세계와 소설의 애매하고 상대적인 세계는 각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실존의 어떤 새로운 면모도 찾아내지 않는다. 단지 이미 이야기되어 있는 것들만을 확인해 주는 것이 그 소설들이 처한 사회에서의 존재 이유, 영광, 용도인 것이다.
무질과 브로흐는 소설의 무대에 가장 빛나는 지성을 등장시켰다. 그것은 소설을 철학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바탕 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밝혀 줄 수 있는 모든 수단,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서술적이거나 명상적인 것을 막론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리하여 소설을 가장 지적인 종합체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례는 최인훈이 생각난다. 그는 소설을 모든 글쓰기 형식이 모두 동원될 수 있는 공간으로 봤다.
::독일의 소설들을 예로 들며 쿤데라가 한 논평.
28일
에이드리언 리치:
“시는 광고판이 아닙니다. 언어적인 아로마테라피가 아니죠. 마사지도 아니고요.”
::내가 많은 한국시를 보며 느낀 것이다. 언어적인 아로마테라피. 언어로 만든 예쁜 조각케익. 많이는 못 먹는다.
느끼해서.
::순수- 어쩌구를 최고로 치는 풍조는 어디서 비롯했을까. 순수 수학, 순수 예술 등등. 순수/응용의 이분법. 물론 이쪽에서도 계승하고 훔쳐낼 것은 있을 것이다. 풍성할 것이다.
위대한 시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아요. 당신이 정중한 대우를 받을 사람으로 여겨질 때 그들과 같은 줄에 앉게 되지요.
::그렇다. 그들은 급이 맞아야 놀아준다. 그게 아니라면 성인이거나, 위선자, 아니면 취재 욕망 같은 이유다. 젊은이라면 젊은 감각 흡혈 같은 이유로 그들은 놀아준다.
여러분은 욕망이 얼마나 단순한지 아십니까? 자다는 욕망입니다. 산책하다도 욕망이고요. 음악을 듣다, 아니면 음악을 연주하다, 아니면 글을 쓰다, 이 모두가 욕망입니다. 어느 봄과 겨울도 욕망이지요. 노년 역시 욕망입니다. 심지어 죽음도. 욕망은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고 단지 경험하기만 하면 됩니다.
::봄과 겨울, 노년, 죽음이 욕망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리만은 물리적 공간의 확실성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물리적 공간에 적용되는 특정한 공리를 경험상으로 결정하기 전에 공간에 대한 바로 그 경험을 하려면 어떤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주장의 한 예가 유클리드 공리는 자명한 진리라기보다는 경험상의 진리라는 것이다.
29일
시간이 지날수록 아른하임은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해갔으며 날로 새로워지면서도 결국에는 진부해지고 마는 감각이란 자연의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겠느냐는 회의에 빠져들었다.
::감각만 쫓다가는 추한 어른이 된다. 젊은이와 싱크로가 맞든, 안 맞든. 어른은 희생과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업의 왕과 영혼-사업의 합병: 정신으로 향한 모든 길은 영혼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무도 영혼으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여기서 자연적 본성과 인공적 수단을 구별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개중에 다른 층위와 관련해서 [자연적] 본성의 층위라 부를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하는 여러 층위들을 공존시키지 않는 욕망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재성의 판의 모든 인공적 수단을 동원하여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자연적 본성이기도 하지요. 봉건제 배치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에는 ‘말-등자-창’이 있습니다. 기사가 취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자세, 창을 잡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등자를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말을 가장 인위적인 것으로 만드는 인간-동물의 새로운 공생 관계에 의존합니다.
::자연/인공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들뢰즈. 자연, 인공의 층위는 욕망 안에서 배치를 통해 결합하고 또 이 맥락 안에서 규정된다. 말이 인공적인 것이고, 등자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 것처럼.
욕망을 결핍 법칙과 쾌락 규범에 연결시키는 것은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죠. 사람들이 본질적인 무엇인가의 결핍을 깨닫는 경우도 그들이 쾌락에, 얻어야만 하는 어떤 쾌락에 욕망을 계속해서 연결시킬 때이고요.
::결핍이 먼저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목적으로서의 쾌락에 욕망을 연결시킬 때 발생한다는 것.
욕망의 과정은 결핍이나 요구가 아니라 ‘기쁨’으로 불리는 것이죠. 욕망의 완전한 과정, 배치를 부수려고 오는 것만 아니라면, 모든 것이 다 허용됩니다.
::목적이 아닌 과정의 기쁨.
“그것은 자연적 본성에 해당되는 일이지”라고 말하지 맙시다. 내부의 결핍, 상부의 초월적인 것, 허울뿐인 외부를 귀신 쫓듯 쫓아내기 위해서는 그 반대로 많은 인공적 수단들이 필요하니까요. 금욕이라고 왜 안 되겠습니까? 금욕은 언제나 욕망의 조건이었지, 욕망의 규율이나 금지는 아니었습니다.
성욕은 다른 흐름들과 결합할 것이기에 그만큼 더욱더 성욕으로 완전히 이상화된/관념화된 숭고화와는 거리가 먼 순수하고 단순한 성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더욱더 성욕은 창의적이고 경이로운 성욕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할 것입니다.
근방이나 접합접속이 오로지 두 ‘주체’들 상호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 주체 각각에서도 여러 흐름들이 결합하여, 둘 모두를 예컨대 클라라의 음악-되기, 슈만의 여성-되기 혹은 아이-되기로 이끄는 하나의 생성 블록을 형성하니까요. 이항 기구 안에 갇힌, 생식기를 가진 수컷-암컷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분자적으로 되는 생성, 음악에서 분자가 된 한 여자의 탄생, 한 여자 안에서 분자로 된 한 음향의 탄생.
우리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선들, 다른 식으로 조합을 이룰 수 있는 선들, 위도들과 경도들, 회귀선들, 자오선들 등의 선 다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일-흐름은 없습니다. 무의식을 분석하는 일은 역사학보다는 지리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역사학인 이유는 부모/가족과 결부된 유년기 기억의 축적이 현재에 영향 미치기 때문이다. 지리학은 현재의 흐름들의 접합접속을 다룬다.
과연 어떤 선들이 차단 되고, 석회화되고, 격리되고, 궁지에 몰려 꼼짝달싹 못하고, 검은 구멍/블랙홀로 떨어지거나, 고갈되는 것일까요? 또 다른 어떤 선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하거나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로 인해 무엇인가가 빠져나와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일까요?
“너의 아버지, 너의 어머니, 너의 할머니, 다 좋아,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까지도 뭐 괜찮아, 출구만 여러 개 다양하게 있다면 어떤 입구라도 다 좋아”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은 이 모든 것을 다 만들었지만 출구들은 빼놓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개미핥기는 개미 천지인 곳에 대충 자리 잡고 커다란 혀를 낼름거리면 그만이다. 어떤 철학자는 개미핥기에게 ‘개미’란 ‘물’이나 ‘얼음’이나 ‘가구’ 같은 ‘덩어리 말mass term’(물질명사에 해당하는 철학 용어_옮긴이)이지 ‘올리브’나 ‘빗방울’이나 ‘의자’ 같은 ‘분류어sortal’(셀 수 있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개미핥기는 먹음직한 개미 떼를 보면 혀로 후루룩 빨아들인다. 우리가 사탕을 먹을 때 포도당 분자 하나하나를 의식하지 않듯 개미핥기도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그 호프스태터가 즐겨 쓰는 생각도구 목록을 살펴보면서 용어가 우리 마음에 구조와 특징을 부여하고 개개인의(다른 방법으로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을) 현시적 상을 ‘사물’ ― 헐거운 대포, 입술 서비스, 다시 먹이기 ― 로 풍부하게 할 수 있음을 이미 살펴본 바 있다.
30일
말의 등자는 그것이 유목 전쟁 기계에 연결되었는지, 혹은 반대로 봉건 기계에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기구가 됩니다. 도구를 만드는 것은 기계이지 그 반대는 아니죠. (...) 기계에 대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말은, 기계은 사회적이라는 것입니다.
문학은 지드가 콩고에서 탄식했듯이 배고픈 사람에게 빵 하나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추문을 퍼트림으로써 이 비정한 세계의 가혹한 현실을 폭로하고 선의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든다.
::문학의 쓸모에 관한 근거 중 하나. 특정 사실을 널리 알리는 기능. 신문과 같은 보도 기능. 대신 여기에 내러티브와 결부되는 각종 극작술, 보도에서는 다 담을 수 없는 부분들, 예컨대 내면에 관한 상세한 서술 등을 추가할 수 있다. 더 세련되게 꾸밀 수도 있다. 찰스 디킨스, 사회풍자문학, 사회고발문학 등등.
미국은 이제까지 없는 새로운 연구라면 그게 무엇이든 무조건 연구비를 지급한다. 일본은 어떻게든 미국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것에 투자하면 우리나라가 돈을 벌 수 있고 반도체, 자동차 이후의 주력 수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연구비가 나온다.
::문학의 쓸모에 관한 근거 중 다른 하나.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미지의 영역도 개척해 놓으면 예상밖의 쓸모가 뒤따라올 수 있다.
인간의 달 착륙에는 20㎞ 거리에서 바늘구멍을 뚫는 일에 비교되는 초정밀의 과학과 공학 수준을 요구했고 각가지 새로운 소재와 기술의 개발, 우주 공간 상태를 견뎌낼 의학적 대비가 필요했다.
::당장 쓸모없고 무모해 보이는 목표일지라도 추구하다 보면 함양되고 발전하는 능력들이 생긴다. 이 능력들이 다른 분야에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도구 A를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유용하게 활용할 누군가 나타난다.
::참고할 문헌: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
+보여주기 방식으로서의 문학. 같은 내용도 어떤 문체로, 어떤 분위기로, 어떤 묘사로, 얼마만큼의 묘사로, 어떤 순서와 생략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즉 어느 형식을 부여할 것이냐의 문제.
독일의 작가 페터 비에리에 따르면 문학은 언어의 힘을 빌려 ‘우연이 지배하는 맹목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의 차원’으로 바꾼다.
인류는 낯선 것을 익숙한 것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속성이 있다.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많은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인간은 은유를 통해 낯선 것을 수용하려 한다. 위험한 낯선 것은 ‘사자 같다’, 달콤한 낯선 것은 ‘사탕 같다’고 함으로써, 별도 언어를 마련하는 힘든 작업을 회피하면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사태에 대처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정보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도구로서의 문학/이야기.
31일
또한 삶은 그저 경찰서에서나 최고의 가치를 증명받는 논리적 금지나 규율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로운 충동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는 게 아닐까?
하이네:
사려깊고 겸손한 청년들은 고귀한 기쁨을 갈망한다네.
우리는 시대와 함께 가야 한다
{(다양체의 일반 이론의) 기초}를 발간한 후 10년 동안 칸토르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낙담해서 수학에 등을 돌렸다. 철학 저널에 글을 발표했는데, 그의 서신을 살펴보면 장미십자회나 프리메이슨, 그리고 베이컨과 셰익스피어 간의 논쟁과 같은 문학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학계에 다시 등장하면서 그는 {초한집합론의 기초에 대한 기여}라는 대작을 내놓았다.
::빙 둘러가는 것도 방법이다. 어느 하나에 몰두하다 여러 사정으로 막히면 다른 관심사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다른 분야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면에서건 내적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사란 케케묵은 거라고, 나올 만한 이야기는 다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거지요. 그럼에도 서사가 가진 매력은 서사를 금지하는 이런 규정들을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과 플롯, 그리고 실제처럼 느껴지는 인물에 대한 깊은 몰입은 언제나 중요하리라는 얘기다.
::공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몇 년 동안 매카시는 무엇인가 걸 만한 벽을 가진 적이 없다. 그가 맥아더 재단에 관한 뉴스(수상 후보 명단에 들었다는 소식)를 들었을 때에도 그는 테네시주의 녹스빌의 모텔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그는 집처럼 읽고 쓰기에 적합한 조명을 보장받기 위해 높은 밝기의 전구들을 가지고 여행을 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자르고, 끼니는 핫플레이트(전기로 음식을 데우는 기구)나 카페테리아에서 때우며, 동전을 넣는 빨래방에서 옷가지를 세탁한다.
매카시가 ‘좋은 작가’라고 불리는 목록 -‘멜빌’과 ‘도스토예프스키’, ‘포크너’- 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작가들을 뺀 것이다. ‘프루스트’와 ‘헨리 제임스’는 리스트에 들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매카시는 말한다. “내게 있어서, 그들의 책은 문학이 아니에요.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많은 작가들이 제게는 그저 이상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남들의 평가에 연연해 하지 말고, 내 리스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읽어는 봐야 한다. 프루스트든, 헨리 제임스든.
<뉴요커>지에 실린 긴 리뷰를 쓴 ‘Robert Coles’은 매카시를 ‘종교적 소설가’라 부르며, 그를 그리스의 극작가나 중세의 도덕주의자들에 비교했다. 그리고 선견지명적인 통찰로 매카시가 “우리 시대의 문학 및 지적인 요구를 완고히 거절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거나 종종 오역될 운명을 지닌 작가”라고 평가했다.
::루시언 프로이트의 사례처럼 시대적 요구 따위를 묵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혹은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작가를 하는 것인가? -해야 한다, 가 아니라 이미 하고 있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매카시의 대단한 점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Pearce감독은 말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평정심과 자신만의 리듬, 그리고 이에 대한 완벽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4월
1일
나딘 고디머:
그녀는 돈 드릴로, 도리스 레싱에서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앨리스 먼로에 이르는 열다섯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있다. “계획을 세워서 읽었죠. 작가들의 첫 두 작품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는 한 작품 정도 더 읽고, 그다음에는 ‘바로 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읽는 거죠.”
“그다음에는 요새 출간된 작품을 읽었어요. 그러면 한 작가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죠.”
토니 모리슨:
“언어는 고유한 음악을 가져야 합니다. 장식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독자가 읽을 때는 아무런 소리도 눈에 띄어서는 안 되니까요. 하지만 구어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하죠. 표준 영어와 토착어, 일반 구어체가 혼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소설의 진짜 기술적인 부분은 심층 구조예요. 정보들을 드러내고 감추는 방식 말이에요. 그래야 독자들이 사건들을 적당한 때에, 또는 독서를 내밀한 경험으로 만드는 시간 틀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죠.”
2일
작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그 자신이 되도록 노력해 보세요. 동료나 공모자가 되어보는 거죠. 작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처음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비판을 하면, 지금 읽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풍부한 가치를 스스로 내치게 됩니다. 가능한 한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복잡다단한 첫 부분부터 감지하기 힘들 만큼 섬세한 기호들과 암시들이 나타나면서 그 누구와도 다른 한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것이고요. 그 과정에 푹 빠져 함께 어울리면 곧 작가가 훨씬 분명한 무언가를 전해주고 있다는, 전해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아마 소설가의 작업이 어떤 요소로 구성되는지를 가장 빨리 이해하려면 읽지 말고 직접 써봐야 할 겁니다. (...) 우선 뚜렷한 인상을 남겼던 어떤 사건을 떠올려보세요. 거리를 가다가 길모퉁이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지나쳤던 일이라든가, 나무가 흔들리고 가로등이 춤을 추던 장면 같은. 두 사람이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슬픈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렇다. 글은 자신이 인상 깊었던 사건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별하지 않은 순간으로부터 시를 길어내려 한 내 시도는 그래서 실패한 걸지도 모른다. 일상의 특별함이더라도 특별함이어야 한다. 그러나 철저히 수동적인 특별함. 그것을 능동적으로 일상의 매순간에 요구하기 시작하면 삶이 피폐해진다.
{로빈슨 크루소}에서 우리는 넓은 평지를 터덕터덕 걸어가죠. 차례대로 사건이 일어나고, 사실과 그 사실들이 배열되는 순서만으로 충분해요.
그들에게는 뺄 건 빼면서 전체를 장악하는 예술가의 능력이 없어요.
::예술가는 뭔가를 더하기 보다 빼는 게 중요하다. 뭘 안 보여주고, 일축해 버릴지. 사실과 사실 사이에 얼마 만큼의 공백을 둘 건지.
시인은 언제나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삽니다. 자신만의 격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처럼 우리의 존재가 잠시 압축되며 한 곳에 집중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점차로 그 감각이 우리 정신 속에서 갈수록 날개를 활짝 펼치며 동떨어진 감각도 건드리기 시작해요. 그러면 각각의 감각이 소리를 내고 논평을 하고, 우리는 그 반향과 반영을 의식하게 되죠.
최상의 이해력으로 인상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과정은 독서의 반쪽일 뿐이에요. 책에서 온전한 즐거움을 얻으려면 다른 반쪽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무수히 많은 인상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거지요. 스쳐 지나가는 형태들에서 단단하고 오래 지속될 것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하지만 당장은 아니에요. 독서로 피어오른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해요. 갈등과 의문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는 거죠. 걷고, 얘기하고, 장미의 시든 꽃잎을 떼어내고 잠을 청하기도 하면서. 그러면 의도하지 않아도 문득 책이 다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요. 자연은 원래 그런 식으로 그런 변화를 일으키거든요.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정신의 꼭대기까지 올라오는 거죠.
각각의 책을 그 부류에서 가장 훌륭한 저작과 비교하는 거예요.
독자는 감정을 통해 배워요. 우리 각자의 독특성을 너무억누르면 그것이 결국 빈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시간을 들여 우리의 취향을 훈련할 수는 있지요. (...) 시, 소설, 역사, 전기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게걸스럽게 집어넣은 후 한동안 독서를 멈추고 살아 움직이는 세상의 다양함과 모순을 바라보면 그것이 약간씩 달라지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취향이 특정한 책에 대해 판단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책에 공통적인 특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거예요. (...) 그렇게 취향이 안목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게 되면, 우리는 특정한 책을 넘어 여러 책을 하나로 묶어주는 특성을 찾아 나서게 될 거예요. 거기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의 지각을 정리해줄 규칙을 만들어내겠죠. 그렇게 분별해가면서 더 크고 드문 즐거움을 얻게 되고요.
모두들 알아주는 콜리지와 존 드라이든과 새뮤얼 존슨의 비평은 물론, 별로 알아주지는 않지만 시인과 소설가 자신들의 말도 사실 놀랄 만큼 적절할 때가 많아요. (...)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진솔하게 떠올린 질문이나 암시를 가득 들고 찾아갈 때에만 도움이 돼요. 그 권위를 좇아 양떼처럼 옹기종기 모여 울타리 그늘에 늘어져 있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요.
박준상:
‘désastre’는 별들의 운행 질서로부터 벗어나 있는, 천체의 안정성 바깥의 공간을 가리킨다.
‘désastre’가 의미하는 바는, 원인과 결과를 갖고 있고 한정된 시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구체적 사건으로서의 재난이 아니라, 설사 그러한 사건에서 드러날 수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사건의 유무와 무관한, 또는 그 이전의 인간 존재(실존)의 조건이다. ‘désastre’는 (...) 인간 자신이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든지, (...) 그 능력을 통해 질서화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는, 존재의 잉여를 가리킨다. (...)
우리가 설사 지식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추구한다 할지라도 존재는 ‘나’의 의식 내부에서 총체화될 수도 총체적으로 완성될 수도 없으며, 또한 설사 어떠한 방법으로든 거주 가능성의 극단까지 이른다 할지라도 ‘내’가 공간과 조화(지식에 의한 관념적, 의식적 일치가 아닌 어떤 ‘공명’)를 이룸으로써 탈자태의 정서적 차원에서 고양되어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것 속에 융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는 자는 네가 아닐 것이다. 설사 망각이나 침묵에 따라서일지라도 카오스가 네 안에서 말하도록 내버려 두라.
세계는 그리스도교적인 도덕 지향성을 지니는 서구와, 유교적인 도덕 지향성을 지니는 중화 문명권(한반도도 포함됨), 그리고 이슬람교적인 도덕 지향성을 지니는 이슬람 문명권 세력들의 도덕 지향적 싸움의 시대다. 이에 반해 도덕 지향적인 발상이 없는 일본은 분명 개성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개성을 지키고 명예로운 고립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궁지에 몰려 도덕 지향성이라는, 눈부시면서도 때로는 부도덕한 마약을 취하려 달려들 것인가?
메이지 초기의 이데올로기에서 시작하여 공산주의자나 초국가주의자를 거쳐 1960년대의 학생운동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보의 주인공들은, 메이지 이후에 유교적인 지와 권력의 역동적 관계를 처음으로 안 사람들과 그 후예들로, 하나같이 도덕 지향적인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도덕이 풋풋했던 한 세기의 이야기이다.
‘도덕 지향성 국가’인 한국에서 도덕의 최고형태는, 도덕이 권력 및 부와 삼위일체가 된 상태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인이 이상으로 여기는 인생 또한 이 세 가지가 전부 구비된 상태이다. 즉 현세주의적인 유교에서 도덕이란 결코 사회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도덕은 권력이나 부와 결합되어 있는 것 자체만으로는 원래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지만, 권력과 부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손상될 수가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모든 도덕이 상처를 입고 있다. 그곳을 노리고 다른 세력이 굶주린 늑대들처럼 도덕 지향적인 공격을 해 온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도덕을 쟁취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필사적으로 자기선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알았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정도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철학’이 이 땅에 숨쉬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즉 조선(및 중국)에서 학문이란 세계를 해석하고 동시에 변혁하며 나아가서는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철학이다. (...)
조선 철학은 독창성에서는 중국 철학보다 현격하게 떨어지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사회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를 둘러싼 바늘 구멍 같은 세밀한 이론이 강력한 폭탄이 되어 권력 중추를 위협한다는 과격함은 중국보다 철저하였다. (...)
오늘날의 철학자에게 철학은 먹고사는 수단이지만, 조선에서는 먹고사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suffisamment puissante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besoin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더 이상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해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겸손, 검소, 순수, 이것들은 그[철학자]에게는 현자Grand Vivant가 되는 방식이고, 자신의 신체를 지나치게 오만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지나치게 육감적인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모든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복종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류, 공로와 과실, 선과 악 등은 복종과 불복종에 관련된 단지 사회적인 개념들일 뿐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사회는 사유 능력을 복종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회, 오직 행위에만 적용되는 국가의 규칙에 그것을 종속시키지 않는 것을 자신의 고유한 이해로 삼는 사회일 것이다.
그가 요구한 것은, 운 좋게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유별난 목적들에 대한 관용이었을 뿐이며, 그는 이 관용에 의해서 한 사회가 가질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정도와 진리의 정도, 또한 반대로 모든 인간들을 위협하는 위험의 정도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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